여성인권의 대변혁을 가져온 한센환자의 어머니: 서서평(Miss E. J. Shepping)
조선왕조의 계층적 사회구조에서는 최상층의 왕권과 관료층은 최하층의 천민들에 이르기까지 계단적으로 압박을 가하였다. 이 과정에서 가장 불쌍한 계층은 천민의 딸로 태어난 여성들이었다. 물론 이 단계에 이르지 못하였을지라도 일반 가정의 여성들도 개인적으로 인권을 누리지 못하고 살아가야 했었다.
여성들은 자녀출산과 양육, 가사의 노역, 생계유지를 위한 노동을 하였지만 가정의 경제권이 없었고, 교육의 기회가 제한적이었다. 또한 질병이 발병하였을지라도 의술의 치료를 받을 기회가 극히 제한적이었으므로 여성들 사이에서는 주술적이며 미신적인 질병치료나 예방방법이 유행하였다.
이러한 여성과 아동 하대 현상을 파악한 윌슨원장은 광주기독병원에 간호사가 절실하다고 선교본부에 요청하여 한국에 오게 된 서서평(Elizabeth J. Shepping)은 버려진 아이들의 양모, 병들고 가난한 사람들의 대모로서 이웃에 대한 그리스도의 사랑을 실천하였다.
그녀는 여성의 권익을 위하여 교회 내에 “부인조력회”를 창설하여 오늘날의 성미제도를 창안하였으며 여성교육을 위한 “이일성경학교”를 시작하여 오늘날의 “한일장신대학교”의 출발을 이루었다.
또한 조선간호협회를 창설하여 초대회장을 역임하였으며 간호교육을 위한 교과서 번역에도 적극적이었다.
세핑으로 인해 어려운 처지에 있던 여성들이 질병을 치료할 수 있었고 교육을 받게 되면서 여성인권의 대 변혁을 가져오게 되었다.
세핑에게 광주는 고향이다.
광주에서 17년을 살다가 광주에 묻혔으며 13명의 양자와 양녀를 받아들여 양육시켰다.
그리고 최흥종 목사와 연계하여 광주시내 빈민들의 구제와 한센환우들의 생활개선, 권익보호에 앞장섰다.
1934년 세핑이 별세하였을 때 광주에서는 처음으로 사회장으로 치러졌으며
수많은 여성과 빈민, 그리고 나환자들이 “어머니”를 외치며 애곡하였다고 한다.
출처 : 광주기독병원 홈페이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