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DFI Korea 선교회 회원 여러분들께 인사드립니다.
이번 창립 총회에서 회장으로 선출된 정을기 목사입니다.
다들 저에 대해서 궁금하신 점이 많으실 것 같아 간단히 제 소개를 드리겠습니다.
제가 불신자 가정에 태어나 교회에 발을 처음 디디게 된 것은 집사람을 만난 것이 계기가 되었습니다.
처가집 가족 청문회를 통해 불신자란 이유로 거절을 당했지만 포기하지 않고 집념을 가지고 대쉬한 결과 결혼전에 교회 학습과 세례를 받는 조건으로 승낙을 받아 결혼하게 되었습니다.
그러나 한 5년간은 성령으로 거듭나지 못한 상태에서 교회를 다니다 이사를 가면서 교회를 옮기게 되었는데 그 교회에서 성경공부를 통해 마음의 문을 열고 예수님을 주님으로 영접하여 죄를 자백하고 용서를 받으면서 성령으로 거듭나는 체험을 하게 됩니다.
그 후 구원에 대한 감격으로 열심히 전도하는 삶을 살다가 1989년 40세에 소명을 받게 되었습니다.
바로 직장에 사표를 내고 신학교에 입학하여 1년후 교회를 개척하고 목회를 하다 1994년 미국 유학을 떠나게 되었습니다.
미국 텍사스 포트워스에 있는 싸우스 웨스턴 침례 신학 대학원에 입학하여 M-Divbl 과 Ph. D 학위를 받고 2002년 7월에 노스케롤라이나 샬롯에 위치한 온나라 교회에 담임 목사로 부임하였습니다.
그곳에서 16년 반 목회를 하고 2018년 12월 31일 송구예배를 인도하고 2019년 영신예배는 새로 부임하신 목사님께서 인도하심으로 담임목사직에서 은퇴하게 되었습니다.
그런데 감사하게도 신대원 졸업 후에도 여기 저기 신학 대학원에서 겸임교수로 강의 할 기회가 주어져 목회와 병행하여 신학생들을 가르치는 사역을 감당하였습니다.
김혜련 선교사는 제가 고든 콘웰 신대원에서 강의할 때 입학한 학생이었습니다.
UN 직원으로 지진으로 무너진 아이티에 구호 활동을 나갔다가 거기에서 예수님을 믿고 신앙 생활한지 6개월만에 선교사로 소명을 받아 UN을 사직하고 아이티에서 선교사역을 하고 있다는 말을 듣고 황당하다는 생각보다는 하나님께서 함께하고 계시는구나 하는 것을 느꼈습니다.
그래서 그 때 미국 뉴져지 켐프에서 강의를 하고 있었는데 강의를 마치고 저녁에 선교사님 숙소인 장로님 가정에서 4, 5명을 앞에 놓고 복음과 선교에 필요한 기초 신학에 대해 속성 과외 공부를 시작하였습니다.
이 일을 계기로 저는 자의반 타의반으로 헬렌 선교사님의 멘토가 되었습니다.
제가 은퇴하고 2019년 가을 한국에 나와 있을 때도 카톡과 전화를 통해 선교지 소식을 주고 받으며 상담과 기도는 계속되었습니다.
그러던 어느 날 선교사님으로 부터 DFI Korea 독립 선교단체 대표를 맡아 줄 수 없느냐는 제안을 받고 거절을 할 수가 없었습니다.
여기 저기서 총소리가 들리는 무정부 상태인 무법천지에서 없는 것이 특징인 열악하고 척박하기 짝이 없는 아이티 땅에서 그 좋은 직장 그 좋은 환경을 떠나서 목숨 걸고 선교하고 있는 사람의 부탁을 거절했다가는 하나님앞에 갔을 때 책망을 듣는 것은 말할 것도 없고 부끄러움으로 영원히 얼굴을 들고 살 수 없겠다는 생각이 들어 승낙을 했습니다.
그리고 나서 DFI Korea 회원님들을 만나기 시작했는데 윤경언 회장님, 김윤자 부회장님, 김광주 안수집사님, 이기영 집사님, 이병우 장로님, 김선미 집사님, 김현주 집사님 그리고 이번 창립 예배 장소를 제공하여 주시고 선교사님의 호텔까지 잡아 주신 다비다 선교회 오지선 회장님과 회원들 그리고 만나는 모든 한 분 한 분이 빛나는 보석 그 자체였습니다.
저는 이번 창립 총회와 Helen 과 Laurent 선교사님 파송예배를 치루면서 성령의 권능으로 하나된 DFI Korea의 저력을 느낄 수가 있었습니다.
이 능력으로 수천년동안 닫혀진 아이티의 하늘 문을 열기를 소원하시는 하나님의 뜻이 이루어 지기를 기도합니다.
그래서 지금은 제가 하나님의 큰 복을 받았다는 생각을 합니다.
특히 연약하고 부족한 저를 위해 기도하시는 많은 분들이 함께 한다는 사실 하나만으로도 너무 행복합니다.
감사합니다.
그리고 모두를 사랑합니다.
첫댓글 우리회가 정을기목사님을 만나게하신 놀라우신 하나님의 은총을 받았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