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송일봉의 힐링여행(7)-스위스 그린델발트
알프스 그 ‘천상의 화원’을 걷다
글과 사진 / 송일봉(여행작가)
알프스로의 여행은 언제나 가슴이 설렌다. ‘알프스’라는 단어가 주는 어감 자체가 사람들의 마음을 한껏 들뜨게 하기 때문이다. 특히 형영색색의 야생화들이 피어나는 ‘알프스 시즌(7~8월)’에 찾으면 그 설레임은 더욱 커진다.
천혜의 자연환경을 자랑하는 스위스는 나라 전체가 관광지라해도 결코 손색이 없는 나라다. 아주 자그마한 산간마을을 가더라도 도로안내판이나 간판, 가로등, 간이역, 오솔길 등 어느 것 하나 사람들의 손길이 닿지 않은 곳이 없을 정도다. 당연히 오래 전부터 관광산업이 스위스의 중요한 기간산업으로 발달했다. 그런 만큼 스위스에는 다양한 테마를 가진 여행상품들이 많다. 기차와 우편버스를 이용해 스위스 구석구석을 돌아보는 여행, 자전거를 이용한 알프스 하이킹, 알프스의 아름다운 자연을 직접 걸어보는 가벼운 트레킹 등등. 이 가운데서도 기차여행과 알프스 트레킹을 결합한 또 다른 여행형태가 큰 인기를 모으고 있다. 그 중심에 있는 마을이 그린델발트다.
아이거 북벽 아래의 산간마을, 그린델발트
산간마을인 그린델발트는 아이거 북벽을 보기 위해 찾아오는 사람들이 많아지면서 유명해진 알펜리조트다. 그동안 수십 명의 목숨을 앗아간 아이거 북벽을 병풍처럼 끼고 있는 마을인 그린델발트. 악명 높은 아이거 북벽과는 달리 그린델발트는 평온하고 아름다운 산간마을이다. 만년설과 멋진 조화를 이루는 마을 주변에는 알프스를 동경하는 사람들이 꿈에도 그리던 풍경들이 그림처럼 펼쳐져 있다.
2008년 독일에서 제작된 산악영화 ‘노스 페이스’는 1936년 독일의 산악인 토니 쿠르츠와 앤디 히토이서의 등정 실화를 다룬 영화다. 이 영화는 ‘알프스 3대 북벽’ 가운데 하나인 아이거 북벽을 배경으로 하고 있다. 영화의 주인공들은 등정에 성공하지 못하고 짧은 생을 마감했다. 하지만 2년 후인 1938년 마침내 아이거 북벽은 독일과 오스트리아 연합등반대에 의해 정복되었다. 우리나라은 1979년에 처음으로 아이거 북벽 등정에 성공했다.
그린델발트를 찾아온 여행자들은 대부분 일주일 이상 이곳에 머물며 근처의 명소들을 천천히 둘러본다. 시간이 그리 많지 않은 여행자들은 곤돌라를 타고서 서둘러 피르스트(해발 2,168m)로 올라간다. 그린델발트에서 쉽게 찾아갈 수 있는 최고의 트레킹 명소가 바로 이곳 피르스트에서 시작되기 때문이다. 그린델발트에서 피르스트로 올라가는 곤돌라는 계절에 따라 조금씩 다르기는 하지만 대략 오전 8시30분부터 오후 5시까지 운행되고 있다. 총길이는 4,355m로 약 25분이 소요된다.
피르스트의 하이라이트, 바흐 알프 호수
피르스트의 트레킹 코스는 융프라우 지역에서 가장 인기가 많은 명소다. 특히 각양각색의 야생화들이 무리를 지어 피어나는 알프스 시즌에는 산 전체가 온통 아름다운 꽃밭을 이룬다. 비교적 걷는 길이 평탄해 어린이를 동반한 가족 여행자들도 무리 없이 소화할 수 있다.
알프스 전망대가 있는 피르스트 산장에서 시작되는 트레킹 코스는 해발 2,265m 지점에 위치한 바흐 알프 호수까지 이어진다. 고도가 높아질수록 길가에 핀 꽃의 종류도 조금씩 변하고, 전망이 좋은 곳에는 잠시 쉬어갈 수 있는 벤치도 군데군데 마련되어 있다. 트레킹 코스는 알프스의 능선을 따라 자연스럽게 이어져 있어 조금도 지루하지가 않다. 피르스트 산장~바흐 알프 호수 중간쯤에는 갑자기 비가 내릴 경우 잠시 피할 수 있는 대피소도 마련되어 있다.
피르스트 트레킹 코스의 하이라이트는 바흐 알프 호수다. 깨끗한 수면에 비치는 만년설의 웅장한 자태를 보는 순간 누구라도 자연의 경이로움에 절로 고개를 숙이게 된다. 호수에 비치는 만년설의 최고봉은 슈렉호른(해발 4,078m)이다. 피르스트 산장에서 바흐 알프 호수까지는 약 1시간30분이 소요된다.
피르스트에서 야생화 트레킹을 마치고 그린델발트로 내려올 때는 취향에 따라 다양한 방법을 선택할 수 있다. 그냥 곤돌라를 타고 내려오며 느긋하게 알프스의 산록을 감상하는 것도 좋지만 이왕이면 색다른 체험을 해보는 것이 좋을 듯싶다. 일반적으로 피르스트~슈렉펠드 구간은 플라이어 체험, 슈렉펠드~보어트 구간은 곤돌라, 보어트~그린델발트 구간은 트로티 바이크 체험을 하는 방법이 가장 많이 이용되고 있다. 이 가운데서도 플라이어 체험은 쇠줄에 몸을 의지한 채 800m 거리를 약 45초 만에 내려가는 스릴만점의 레포츠다.
투박한 멋을 자랑하는 쉬니케 플라테
쉬니케 플라테 역시 그린델발트를 찾은 여행자들이 빼놓지 않고 찾는 트레킹 명소다. 현지 사람들이 ‘알프스의 정원’이라고 입에 침이 마르도록 자랑하는 쉬니케 플라테로 향하는 출발지는 빌더스빌이다. 빌더스빌 기차역에서는 쉬니케 플라테로 향하는 옛 스런 등산열차가 오전 7시25분부터 오후 4시45분까지 약 40분 간격으로 출발한다. 가파른 산길을 힘겹게 오르는 기차 안에서는 인터라켄 시내와 두 개의 호수(브리엔츠, 튠)가 한 눈에 들어온다. 빌더스빌에서 쉬니케 플라테까지는 약 50분이 소요된다.
쉬니케 플라테는 아름답고 평화로운 알프스의 이미지와는 조금 다른 멋을 보여주는 명소다. 투박하지만 깊은 맛을 간직한 알프스의 진면목을 보여주는 곳이라 할 수 있다. 기차역에서 2~3분 거리에 있는 산장에서 쉬니케 플라테의 가슴 벅찬 트레킹은 시작된다. 트레킹 코스는 쉬니케 플라테에서 피르스트로 넘어가는 6시간 코스를 비롯해 모두 6개의 코스가 있어 시간이나 체력에 따라 자유롭게 선택할 수 있다.
쉬니케 플라테의 진정한 멋을 느껴보기 위해서는 산장을 출발해 다우베(Daube), 오베르버그호른(Oberberghorn)을 거쳐 산장으로 돌아오는 2시간30분짜리 코스를 돌아봐야 한다. 전망대 역할을 하는 오베르버그호른을 지나 산장까지 이어지는 코스는 야생화 꽃길로 이뤄져 있다. 이름도 알 수 없는 수십 종류의 예쁜 야생화들이 펼쳐진 꽃길. 이곳이야말로 진정한 ‘천상의 화원’이다.
▲찾아가는 길 : 대한항공에서 주2회(목, 토) 인천-취리히 구간 직항편을 운항하고 있다. 약 13시간이 소요된다. 취리히 공항역에서 베른까지는 기차로 약 1시간15분, 베른에서 인터라켄까지는 기차로 약 50분, 인터라켄 동역에서 그린델발트까지는 약 35분이 소요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