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 이름만 들어도 애잔한 섬, 고흥 소록도
글과 사진 / 송일봉(여행작가)
전라남도 고흥은 청정지역인 고흥반도를 중심으로 230여 개의 섬으로 이뤄진 고장이다. 우리나라의 지방도시 대부분이 그렇듯 고흥 역시 1966년에 약 24만 명에 이르던 인구는 현재 7만여 명으로 줄어든 상태다. 하지만 최근 들어서는 고흥군의 남쪽 끄트머리의 외나로도에 나로우주센터가 들어서면서 새롭게 관심을 모으고 있다. 고흥이 청정지역인 만큼 특산물도 많다. 그 대표적인 것으로 유자, 석류, 미역, 다시마, 새꼬막, 마늘 등이 있다. 고흥반도 동쪽에는 새꼬막의 명산지인 여자만(汝自灣)이 있고, 육지와 연결된 거금도는 다시마 명산지로 유명하다.
작은 사슴을 닮은 섬, 소록도
고흥의 서남쪽 끄트머리에 있는 녹동항. 이곳에서 600m쯤 떨어진 곳에 소록도(小鹿島)가 있다. 섬의 생김새가 “마치 작은 사슴’을 닮았다”라고 해서 붙여진 이름이다. 예전에는 배를 타야만 들어갈 수 있는 작은 섬이었지만 지난 2009년 3월 2일에 개통된 소록대교를 통해 이제는 쉽게 섬으로 들어갈 수
있게 되었다. 소록대교의 길이는 1,160m다.
소록도는 평범한 섬이 아니다. 관광을 위해 찾아가는 섬은 더더욱 아니다. 한때 많은 사람들로부터 질시와 냉대를 받았던 한센병 환자들이 치료와 갱생을 위해 몸부림쳤던 현장이기 때문이다. 지금도 소록도에서는 많은 한센병 환자들이 치료를 받고 있다.
소록도와 한센병 환자들과의 인연은 일제강점기 때인 1916년 5월에 설립된 소록도 자혜의원으로부터 시작되었다. 당시의 한센병에 대한 대책은 한센병 환자들을 격리수용하는데 주력하고 있었다. 따라서 소록도가 외부로부터 접근이 어려운 섬이라는 점, 기후가 온화하다는 점, 비교적 육지와 가까워 물자조달이 편리하다는 점 등이 자혜의원을 설립하는데 적합한 장소로 선택되었다. 그 후 소록도 자혜의원은 중앙나요양소(1949년), 소록도갱생원(1957년) 등으로 불리다 지난 1982년부터는 국립소록도병원으로 불리고 있다. 아울러 현재는 한센병 환자들의 격리수용을 벗어나 진료와 치료, 완치 후 안정적인 사회복귀를 위한 다양한 프로그램도 진행되고 있다.
한센병을 앓던 시인 한하운 시비도 있어
소록도에서 일반 방문객들이 가장 많이 찾는 곳은 중앙공원이다. 황금편백, 후박나무, 종려나무, 치자나무 등을 비롯한 100여 종의 관상수가 울창한 숲을 이루는 명소다. 하지만 중앙공원은 수 십 년 동안 한센병 환자들이 인권을 유린당한 아픔의 현장이기도 하다. 중앙공원은 1936년 12월부터 1940년 4월까지 3년 4개월 동안 한센병 환자들이 강제로 동원되어 피와 땀으로 조성한 곳이기 때문이다. 따라서 중앙공원 곳곳에서는 한센병 환자들의 애환을 담은 유적과 기념물들을 어렵지 않게 찾아볼 수 있다. 당시 조성된 중앙공원의 총면적은 19,834㎡(약 6,000평)이었으나 이후 1970년대 초에 25,000㎡로 확장되었다.
중앙공원의 많은 유적 가운데서도 감금실(1935년 건립, 국가등록문화재)과 검시실(1934년 건립, 국가등록문화재)이 눈길을 끈다. 일제강점기 당시 한센병 환자들을 불법으로 감금하고, 출감하는 날에는 강제로 일명 ‘우생수술(優生手術)’이라 불리던 정관수술을 자행했던 곳이다.
중앙공원에는 ‘한센병은 낫는다’라는 글이 새겨진 ‘구라탑(救癩塔)’도 있다. 미카엘 대천사가 한센균을 박멸하는 모습을 형상화 한 이 탑은 1963년에 세워졌다. 한센병을 앓던 한하운 시인의 시비도 있다. 시비에는 그의 대표작 가운데 하나인 ‘보리피리’가 새겨져 있다. 한하운 시인은 생전에 여러 차례 소록도를 방문해서 한센병 환자들에게 많은 용기를 주었다.
가슴 아픈 사연을 담고 있는 수탄장(愁嘆場)
소록도에서 가장 아름다운 길이자 가장 가슴 아픈 사연을 담고 있는 곳은 ‘탄식의 장소’라는 의미를 지닌 수탄장(愁嘆場)이다. 이 길은 한센병 환자들이 거주하는 병사지대와 의료진이 거주하는 직원지대를 구분하는 경계선이기도 했다. 한센병 환자들에게는 한 달에 한 번 ‘미감아 보육소’에 있는 자녀들을 만날 수 있는 면회가 허용되었다. 하지만 손을 잡을 수도 말을 할 수도 없었다. 서로 맞은 편 길가에 길게 늘어서서 서로 눈을 마주치는 것이 면회의 전부였다. 1950년부터 1970년까지 이 길 양편에는 철조망이 설치되어 있었다고 한다.
소록도를 얘기하면서 빼놓을 수 없는 세 사람이 있다. 외국에서 온 간호사인 마리안느 수녀, 마가렛 수녀, 마리아 수녀가 그 주인공들이다. 이들은 20대의 젊은 나이에 소록도로 들어와 40년이 넘게 한센병 환자들과 자녀들을 위해 헌신했다. 한센병에 대한 편견을 해소하고, 한센병 환자들에 대한 외부인들의 인식을 새롭게 하는데 크게 기여했다. 이들은 본국에서 보내오는 생활비까지 환자들의 간식비로 사용했다. 병원 측에서 마련한 회갑잔치도 “기도하러 간다”며 사절했다. 심지어 오스트리아 정부가 주는 훈장도 주한 오스트리아 대사가 직접 소록도로 와서 전해주었을 정도였다.
“죽음이 찾아올 때까지 이곳 소록도에서 봉사활동을 계속하고, 죽어서도 소록도에서 화장되어 소록도에 묻히고 싶다”라고 원했던 세 분의 수녀님들. 하지만 자신들의 평소 생각과는 달리 2005년 11월 22일에 그들은 소록도를 떠났다. ‘사랑하는 친구들에게’로 시작되는 편지 한 통만을 남긴 채..., 이제 나이가 들어 주변 사람들에게 부담을 줄 수 있다는 판단 때문이었다. 현재 중앙공원에서는 세 수녀들의 공적비가 세워져 있다.
▲찾아가는 길 : 남해고속도로 고흥나들목→국도 15호선→국도 27호선→소록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