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내 감각을 기억하던 때에 내가 세계를 인식할 수 있는 도구는 한정되어 있었다. 소리의 진동을 감각하는 귀, 물질의 온도와 거침을 감촉하는 피부, 입술과 혀의 감각, 형태와 색의 경계를 가르는 눈 등이 내 인식 도구의 전부였다. 이를테면 바람이 나뭇가지를 통과할 때 흩어지는 소리와 나무와 나무 사이를 통과할 때 쭉뻗어나가는 소리를 구분해 보는 일로 세상을 인식하고 감각했었다. 그렇게 소리와 짝을 이루는 물체의 모양이 어떠한지를 관찰하는 일은 퍽 재미있었지만 감각은 기억을 저장하기에 늘 부족했다.
이레네 바예호는 <갈대 속의 영원>에서 모든 독자는 자신에게 흔적을 남긴 말을 비밀스러운 도서관에 담아두고 있다(p.154)고 한다. 독자 자신만의 비밀스런 도서관에는 새로운 책, 하나의 예술 작품이 살아있다는 설명이다. 어쩌면 인간은 ‘자신만의 삶을 하나의 예술작품으로 만들 수(미셸 푸코, <성의 역사>. p.183)’있기를 꿈꾸고 있는지도 모른다. 그것은 정지한, 죽은, 박제된 예술품이 아닌 살아서 새로워지고 있기에 마술과도 같다. 내 안에서 감각을 넘어 예술작품과도 같은 도서관이 만들어지기 시작한 것은 언제였던가?
내 유년 시절의 첫 책은 만화책 <보물섬>이었다. 소백산 산골 마을, 흙벽 위로 허술한 기와지붕이 얹혀있던 집. 세상과 방을 가르는 경계에는 높은 문지방과 창호지 한 장이 발린 미닫이문이 전부였던 집이었다. 대여섯 살의 나는 그 경계에 걸터앉아 보물섬의 세계를 엿보는 걸 좋아했다. 그때까지 글자를 몰랐기에 네모 칸으로 나뉜 컷을 따라가며 인물들의 표정을 살펴 나름의 이야기를 엮어보곤 했다. 간혹 언니, 오빠에게 그림 옆에 있는 글자를 읽어달라고 졸라 익힌 글자 몇 개는 내 상상력을 퍼 올리는 마중물이 되어주곤 했다.
사물의 변화를 감각하고 느끼지만 표현할 도구를 갖지 못했던 나에게 글자는 하나의 혁명이었다. ‘아’, ‘으악’, ‘이런’, ‘헉’과 같은 의성어가 처음에는 하나였지만 시간이 지날수록 둘, 혹은 셋으로 이루어져 있다는 걸 어렴풋이 알게 되었다. 내 인식 속에서 글자의 해체는 세계에 대한 새로운 조직이었다. 내가 언제부터 어떤 방식으로 그걸 알게 되었는지는 기억에 없다. 하지만 어느날 엄마를 따라 갔던 읍내 장터거리에서 본 간판과 버스 앞에 걸린 우리 마을 행선지를 읽었을 때의 그 환희만은 기억한다.
<보물섬>으로 글자를 깨친 이후 나는 더 많은 ‘보물’들을 책 안에서 찾을 수 있게 되었다. 이제 세상과 방을 가르는 경계에 걸터앉지 않고도 세상과 방을 드나들 수 있었다. ‘글자’를 통해 세상을 이해하고 습득하여, 내 안의 방에서 감각한 느낌과 생각을 ‘글자’로 표현할 수 있게 된 것이다. 책과 도서관이 고요히 세상을 침입했던 것처럼 글자는 내 몸을 조용히 침입했다. 그것은 세상에 대한 자유이자 도피처였다.
내 몸과 세계를 넘나드는 도구로써 ‘글자’는 자유였다. 나만의 개별적 경험이 타인에게도 유효한 보편적 경험으로 확대될 때, 육감이 인식한 단조롭던 내 세계 너머에 존재하는(혹은 할지도 모르는) 환상과 미지의 세계를 경험할 때, 나 또한 그 이상을 글자로 상상할 수 있을 때 등 글자를 매개로 나와 세계가 연결되던 모든 순간이 ‘나만의 비밀스러운 도서관’에 담겼다.
그러나 모든 순간을 도서관에 담아둘 수는 없는 노릇이다. 선택한다는 것은 보호하려는 것이기에 가끔은 글자 속으로, 책 속으로 나를 숨기기도 했다. 그렇게 글자와 책은 세상과 분리되기를 욕망하는 나를 위한 도피처이자 안식처였다. 어떤 날은 이해할 수 없는 사건에 대한 이유를 글자와 글자 사이에서 찾는 데에 시간을 허비했다. 또 어떤 날은 잃어버린 시간을 찾기 위해 증명할 수도 없는 사건을 조직했다가 해체하기도 했다. 이러한 경험은 균열, 사각지대, 이야기의 파편들 속에서 내 정체성을 이해하고 나의 정신을 새롭게 할 수 있다는 것을 깨닫게 했다.
오늘도 나는 글자로 책을 읽고 나만의 비밀스러운 도서관을 글자로 채워나간다. 내 안의 도서관은 시공간의 경계가 없기에 무한을 꿈꿀 수 있다. 또 글자와 이미지, 상상만으로 채워져 있기에 거대한 예술품과도 같다. 이제 나는 내가 삶이라는 기억의 균열, 글자와 이야기의 파편, 기억과 기록의 사각지대 속에서 예술품으로 새로워지길 꿈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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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지창 평]
보물섬, 만화책에 대한 의미에 대해 구체적으로 쓰면 좋겠다. 보물섬 이외의 책이 또 있었는지...마치 마블 세계관과 다른 경쟁하는 책이 있었다면, 보물섬 파와 다른 책 파의 아이들이 나눈 대화는 어떠했나? 그들이 나눈 대화에서는 어떤 비밀스런 도서관이 있었는지 정서적으로 이야기를 확장시키려면 우리들의 세계가 어떤 과정을 통해 어떤 요소로 확장되었는지 쓰면 좋겠다. 한마디로 보물섬과 관련된 이야기가 구체적으로 들어가면 더 재미있고 공감을 얻을 수 있겠다. 어렸을 때는 종이질이 뻣뻣했고 흑백이었만 컬러로 다가왔다. 우리의 상상력을 자극했으므로. 어떤 과정을 통해 보물섬이 우리 집에 왔는지 기다리던 마음을 써보라.
부모님이 보지 못하게 했던 만화책을 어떻게 보게 되었나? 만화광이었던 친구들이 다른 친구집에 분산투자해 두었던 경험, 성인이 된 후에도 만화책은 택배로 친구집에 보냄. 꿈이 만화책방처럼 꾸민 집에 사는 일. 어렸을 때 최초의 책이었던 만화책, 보물섬에 관련한 추억담을 풀어놓으면 좋겠다.
언니 오빠에게도 서치해 보라. 부모님들이 경계가 없던 분이라 책이라면 무조건 오케이, 부모님의 반대에도 불구하고 호되게 혼난 후 집에 남겨진 책인가.
글자를 알았기에 기뻤던 순간과 슬펐던 순간을 좀더 확장시켜서 써라.
인용해 둔 두 문장을 통해 한 편의 글을 써볼 수도 있다.
문자를 안다는 것은 아주 중요하다. 언어를 알게 된 것의 중요성. 나만의 고유한 문화가 만들어지는 것은 문자와 언어 덕분이다. 문해교실이 계속 있는 이유도 이 때문. 조기 교육을 시키는 이유도 그런 이유. 남들 안하는 언어를 해야 유리하다는 판단으로 아랍어를 가르치기도. 그만큼 언어를 마스터하는 것의 중요함.
좀더 본질적인 얘기를 하려면 문화에 관한 얘기까지 다루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