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1. 04. 09
# 1997년과 2002년, 두 차례 대선에서 이회창 한나라당 후보가 연거푸 패한 데는 일찌감치 50% 안팎의 여론 지지율로 대세론을 탔기 때문이기도 하다. 2002년 대선을 앞두고는 노풍 (노무현 후보 지지 열기)이 본격화되기 전까지 4년여 동안 대세론이 흔들리지 않았을 정도다.
이 같은 대세론에 당내 의원들과 당직자들의 마음은 콩밭으로 쏠리는 듯했다. 장관 등 고위 공직자 진용을 이미 짜놨다는 등의 소문까지 들렸다.
1997년 대선 땐 이 후보가 승리를 ‘과신’했던 것 같다. 두 아들 병역비리 의혹으로 여론 지지율이 급락하던 상황에서도 동요하는 모습을 보기 어려웠다. 법적으로 문제될 게 없다고 믿었고, 탈당해 출마한 이인제 후보도 다시 데려올 수 있다고 자신했다는 얘기가 측근들에게서 들렸다. 정권을 뺏긴 적 없는 집권당 후보이기도 했다.
2002년 두 번 째 도전에선 달라졌다. 아들 병역비리 의혹이 다시 불거진데다 가회동 자택 ‘호화빌라’ 논란까지 겹치면서 대세론이 흔들리자 긴장하기 시작했다.
1997년 대선 땐 일축했었던 JP(김종필)와의 연대 카드까지 꺼내 들었던 것. 당내 참모들도 수 차례 건의했다. 당시 자민련 총재였던 JP 역시 김대중 (DJ) 대통령과 결별, 공동정부를 떠났던 상황인 만큼 양측 모두 연대에 적극적이었으며 성사되는 듯했다.
하지만 자민련을 탈당, 한나라당에 입당해 있던 중진 의원의 거센 반발이 계속되자 이 후보는 연대협상을 접었다.
이 후보의 ‘변신’에는 대선 재수에 따른 절박감이 있었지만, JP와 결국 손잡았던 대선 4수 DJ만큼 크지는 않았던 듯하다.
앞서 대선 때만 해도 이 후보는 3김 시대 청산을 역설하며 JP 연대론을 줄곧 일축했다. 김영삼(YS) 당시 대통령까지 연대를 성사시키려 애쓴 것으로 전해졌고 참모들도 심야에 가회동 자택까지 찾아가 호소했지만 허사로 끝나버렸다.
▲ 대선후보 합동토론회 경제분야 토론회가 열린 2002년 12월 10일 MBC 스튜디오에서 이회창 한나라당 후보,노무현 민주당 후보,권영길 민노당 후보가 손을 잡고 포즈를 취하고 있다.
# 2012년 4월 이명박 대통령 임기말 총선에선 민주통합당(더불어민주당 전신)이 초반 판세를 낙관하다 낭패를 당했다.
이 대통령의 여론지지율이 측근 및 친인척 비리의혹 등으로 급락하자, 선거전 내내 정권심판론을 부각시키며 과반수 의석 확보를 자신했다. 한해 전 서울시장 보선에서 야권 연대를 통해 집권당에 승리하는 등 기세가 한껏 올라 있었던 것.
그러나 악재들이 잇따라 터지면서 판세는 흔들리기 시작했다. 인터넷 방송 ‘나꼼수’로 유명세를 탔던 김용민 후보의 여성비하 성희롱 등 과거 방송발언이 선거 막판 공개됐던 게 결정타였던 셈. 파문 확산을 막기 위해 김 후보를 사퇴시키려 했으나 무산됐고 비난여론만 더욱 키웠다.
선거결과 새누리당이 임기말 정권의 집권당임에도 과반수인 152석을 차지하며 승리했다. 예상밖 패배에 충격받은 민주통합당은 연말 대선에 비상이 걸렸고 결국 졌다.
이처럼 선거판에서도 초반 끗발이 개끗발이 된 경우가 적지않다. 판세를 뒤집는 악재들이 많이 터졌고 제대로 수습하기도 어려웠기 때문이다.
2017년 대선때 문재인 후보가 투표일까지 대세론을 유지, 당선될 수 있었던 것은 박근혜 대통령 탄핵이라는 ‘초특급 호재’도 있었기 때문이다. 선거전 한때 승리를 과신하는 행보를 취했다가 당내에서 지적받기도 했고 악재들까지 잇따라 터졌으나 이에 비할 바는 못됐다.
국민의당 안철수 후보와 지지율 선두자리를 놓고 접전을 벌인 적도 있었으나 뒤집혀질 정도는 아니었고 그 덕에 탄핵여론의 최대 수혜자가 됐다.
▲ 2012년 4월 29일 서울 한강시민공원 잠원지구에서 ‘나는꼼수다’의 용민운동회가 펼쳐졌다.
# 서울, 부산시장 보선에서 압승한 국민의힘은 대선, 총선, 지선 등의 4연패 수렁에서 벗어남으로써 내년 3월 대선을 앞두고 야권통합을 주도하는 등 탄력을 받을 수 있다. 더불어민주당도 이번 보선에선 졌지만 지난해 총선에서 180석이나 차지하는 등 전국단위 선거에서 4연승을 거뒀을 정도로 지지기반이 탄탄하다.
정권이 재창출될까, 교체될까? 차기 대선 판세가 안개속으로 빠져들고 있다.
더불어민주당과 국민의힘 중 어느 쪽이 개끗발을 보일 지 예단하기는 이르다. 분명한 것은 야권을 통합, 쇄신하는 과정이나 임기말 여권분열을 차단한다는 건 모두 지난한 과제란 점이다.
서봉대 / 정치 칼럼니스트
월간조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