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르는 전화가 걸려 왔다. 받을까 말까 하다 받아 보기로 했다. 상냥한 여인의 목소리에 뭔가 의심스러워 달갑지 않게 대했다.
‘저는 서울 사는 사람이고 우리나라에 외침이 있을 때마다 목숨걸고 싸워 나라를 구한 자랑스러운 선열들의 묘소를 찾아뵙고, 선열들의 희생있어 오늘의 평온한 삶에 감사 인사를 드리기로 결정한 뒤, 현재 190여명의 묘소를 찾아뵙고 절을 올렸습니다. 보성문화원에 문의한 결과 전방삭 장군을 소개받고 찾아뵈려 하는데 안내를 해줄 수 있는지요’하는 말에 감동되어 기꺼이 응했다.
그러나 약속 날짜와 시간을 정했는데 오지 않았고 어긴 약속 사유를 알려 주지도 않았다. 의심스러운 생각이 들었다. 몇 년 전 족보 사기 판매 사건이 문득 떠오르는 것이었다.
며칠 뒤 새벽녘에 전화벨이 울렸다. 오늘 여수를 들른 다음 보성 벌교 전방삭 장군을 찾아뵙고 고흥으로 갈 계획이란다.
종전의 약속을 어긴 일도 있고 해서 퉁명스럽게 거절했다. 4월 7일 오후가 되어 걷기 운동을 하려고 집을 나서려는데 모른 남녀 두 분이 대문으로 들어서고 있었다.
누구세요 했더니 전방삭 장군 묘소를 참배하고 싶다고 했다
주소를 알았으니 내비게이션이 인도했으리라 본다.
어처구니가 없기도 하고 끈질기게 찾는 이유가 더 의심스러웠다.
사연을 듣고 보니 그 정신이 너무나 고귀하기에 앞선 일은 잊고 안내했다.
산 밑까지 그들이 타고 온 제네시스(genesis) 차로 간 뒤 걸어서 묘소에 도착했다. 여인이 장군의 묘 앞에서 잠시 기도를 하고 절하는 모습이 너무나 아름다워 사진을 찍으려 했더니 극구 사양한다, 드러내고 싶지 않다는 것이다.
참배를 마치고 고흥로 간다고 해서 안내해 주었다.
그들을 보내고, 깊은 생각에 잠겼다.
외침을 당하여 국토가 초토화되고 백성이 무참히 살해당하는 지경에, 힘껏 일어나 목숨을 아끼지 않고 나라를 구한 장수와 병사들을 고맙게 생각해 본 것은, 평시에는 까마득하게 잊고 있다가 행사 때의 묵념하는 짧은 시간뿐이었던 자신이 부끄러워졌다.
생전에 보지도 듣지도 못한 여인의 숭고한 정신을 찬양하지 않을 수 없다.
이 여인의 정신이 온 누리에 퍼져 보은 정신을 갖는 사람이 많아졌으면 좋겠다.
그 여인의 이름도 모르지만, 이분이 실행하는 선열들의 묘소참배 정신에 감개무량함을 한없이 전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