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1월 30일 일기
동짓달 갈 바람 센 바람이 싸대기 치다 약해진다. 나무 잎사귀 힘듦을 알고 봐주는가 보다. 이 이파리들, 무지개 꿈꾸다 추락 그리는 시간 여행을 위하여 세월에 몸 의탁하려 한다. 올해는 가을 가을하는 중창의 소리는 잘 들리지 않는다. 비내골 가을도 밋밋하게 지나고 있다. 계곡 기슭 나목 날가지로 하늘 보는 것들. 옷 잎새 내리는 홀로 서기. 그 무엇의 호주머니일까 다른 시간 움켜쥐려 한다. 이제 찬서리 내리기 때 상고대는 언제 오를까? 이런 일 시간이 이런저런 웅심 부리며 간섭한다. 존재의 이유인 인연, 연기緣起가 열려지는 것 같다.
가실 걷이가 별로 없는 텃밭. 그나마 누렇게 분위기 이끌던 대붕감 아직도 홍시가 되려면 멀었다. 하지만 새들의 먹이 놀잇감으로 고생 말이 아니다. 몸도 내놓고 하늘도 보고 햇볕도 받고 바람 지나가며 한 번씩 갈잎새 흔들어 자각을 한다. 익는다라고 할까? 하루라는 시간 동안 윤빛 더해지는 대신 입질도 더 심하다. 한 인간은 약이 오르고 보다 못해 딴다. 홍시 만들기 단지에 차곡히 담는다. 자력이 아닌 사람의 손 마지막 담금이다. 다음 행을 위한 보시 준비라 일러 준다. 동심과 청춘의 꿈 저당 당하는 물건감임을 알았을까. 무심으로 보는 것 같다. 반야심경의 있으면서 없고 없으면서 있는 공을 품은 듯. 내면 수행 가부좌에 들어간다.
배추는 벌써 가실의 값어치로 선택되어 김치로 곱게 단장하고 단지 속 겨울잠에 들었다. 산속 저장이라 먼저 침샘 자극하지만 참는다. 일부는 아직 비닐하우스 안에서 푸른 잎사귀 자랑하고 있다. 밖에는 잡초들이 찬서리에 산 잎사귀 풀 죽어 고개 젖혀 힘도 못 서는데. 잎날 곳 세우는 풍경이 자랑의 일 일까. 삼겹살 보쌈용으로 날자 예약 기다리고 있는 중이다. 무는 모두 뽑혀 고전의 집 신문지에 보쌈되어 땅속 단지에 다시 저장에 들어갔다. 한 겨울의 일 잔주 안주용 고등어 찜은 아직은 언감생심이다. 오온개공 도일체 고액이 도레미 음계로 주문처럼 읍져린다
한낮 기온이 영하 2도다. 텃밭의 무 배추 정리는 다 했는데 집사람 친구가 친구의 겨울 김장용으로 한차를 갖다 준다. 적은 양이 아니다. 배추는 30 포기 이상은 되겠고 무는 7포 데기나 된다. 정자에 갑바천으로 이틀간이나 덮여 있었다. 어제야 배추는 물통에 소금으로 절였다. 오늘은 절여진 배추 소금물 빼기 위해 받침대 위에 올려놓는다. 무는 시기상조 언제 손 볼지 모른다. 바람 들지 않게 비닐 보온재 등 2중 3중 덮개로 덮어주고는 알아서 견디라는 것이 전부다. 허옇게 인간욕구에 그저 맡기고 있다. 마하반야마라밀다심경 구절이 머릿속에서 오르락 내리락은 왜일까.
밤새 비가 왔나 보다. 채소밭 지킴이 복순이가 털이 부분 뭉쳐 군데군데 흙이 묻혀 있다. 개란 이유로 목줄 묶긴 애처로운 산 짐승이다. 반려 동물이라고들 하지만 밭에서 혼자 지낸다. 잔반 냄새에 꼬리 흔들며 달려든다. 밥통에 사료도 얼마 없다. 사료 포대기에서 알 밥통 한 통 가득 담아 부어 준다. 올 무배추는 산 짐승들에게 하나도 손실되지 않았다. 순 복순이 덕이다. 텃밭 무 배추 가실 걷이는 끝났으니 산 짐승 지킴이 약조기간 종료되었다. 하다고 자유로운 몸은 될 수가 없다. 대신 텃밭 지키기 공로로 주임직으로 승진시켜 준다. 순리인가 운명인가 반응치 않는다. 바라보는 두 눈이 맑기만 하다. 땅바닥에 다 턱을 괴니 산그림자가 다가와 가린다. 색즉시공 공즉시색 순리를 이미 터덕 했나 보다.
찬 냉기 머금은 바람이 따기 때리는 겨울 맞기 참 맵다. 배추용, 마늘용, 표고버섯용 집 여러 채. 명색이 비닐하우스인데 꼴사납게도 너무 허접하다. 이번 겨울만 견디라라며 바람이 새어 들까 더 보완 단도리 한다. 며칠 전까지도 꽃피워서 하얗게 웃던 제비꽃이 고개 숙였다. 시기를 알아 세월에 동참인가. 호인처럼 있더니 망부석이 된다. 호작질하는 작업장 처마 끝에 풍경이 종소리 낸다. 옆에서 두더지 퇴치용 팔랑개비가 갑자기 요란을 뜬다. 그 소리 들으며 마지막으로 주변을 둘러보고 오늘 하룻일 마무리한다. 낙엽 한 잎이 가지에서 거미줄 줄타기 한다. 이 환송받으면서 하산 집으로 간다. 아제아제바라아제바라승아제모지사바하 독창한다.
22. 11. 30.
비내골 : 경산시 남천면 산전리 계곡 이름. 또는 비녀 계곡이라기도 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