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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승경전들의 당위성
마지막으로, 경전들이 (틀림없이 거짓으로) 대부분 붓다의 가르침에 근거한다고 하는데,
대승경전들의창조를 위해 대승불교도들은 어떤 정당성을 제시할 수 있는가?
이미 위에서 보았듯이 비대승의 주류 부파들은 대승경전들이 붓다의 말이 아니라 오히려 시인과
날조자들의 저작이라고 여겼다. 『8천송반야경』에서 대승주의자들은 이러한 비난에 대한 자구책으로 이런
비난은 불교의 적인 악마 마라(M?ra)가 할 말이라고 경고하고 있다(MacQueen, 2005a: 313; 1981: 309).
그렇지만 대승에 포함되지 않고 대승에 동조하지 않는 불교부파라 할지라도 경장을 구성하는 모든
경전들이 실제로 붓다가 직접 말한 것이라고 여겼다고 생각해서는 안 된다. 항상 그렇듯이 불교에서는
상황이 훨씬 복잡하다.
붓다가 직접 말하지 않은 것에 완전한 권위를 부여하기 위해서는 붓다가 그 말과 관련되었음을 증명해야
한다. 맥퀸(MacQueen)은 좀 길지만 흥미 있는 논문에서 대승 이전의 부파들이 인정한 다음 세가지
방식의 인가를 말하고 있다.
즉 사건 다음의 승인,
사건 전의 승인,
성인(聖人)의 공인이다.
그러므로 붓다는 누군가가 가르친 것을승인했거나,
누군가를 가르치기 위해서 방문했거나,
붓다가 지혜와 능력을 갖추었다고 찬양해서 인정해준 사람이 전한 가르침이어야 한다.
이 모든 공인에서 중요한 것은 붓다가 세상에 존재하는 것이다. 그러므로 이론적으로는 붓다와 그의
직제자들이 입멸한 후 경장의 성립은 끝나게 된다. 그러므로 붓다가 자비의 화신으로 남아 새로우며
‘신비하게 공인된, 경전들을 창조할 가능성을 가지고 세계와 접촉하고 있다’는 교리가 발달된다.
대부분의 대승주의자들은 대승경전들이 역사적인 붓다인 석가모니 붓다가 설한 것이라고 여긴다.
경전들은 거의 변함없이 “나는 이와 같이 들었노라, 한때…”라는 아난다의 말과 설법이 행해지는 장소에
대한 정형화된 구절로 시작된다.
그러나 현대 학자들은 원전 비판과 역사적 인식을 통해 이 전통적인 기록을 받아들이지 않는다.
그렇지만 대승의 경전이나 가르침이 역사적인 붓다에게까지 거슬러 올라가며, 초기 학파 들이 경전을
결집할 때 경시하거나 배제했을 수도 있는 요소를 포함할 것이라는 가정이 항상 불합리한 것은 아니다.
제1차 결집에서조차 붓다의 가르침에 대한 분명한 의견 대립이 있었음은 이미 살펴본 것과 같다.
고메즈(Luis Gómez)는 가장 오래된 팔리어 경전의 하나인 『숫타니파타(Sutta Nip?ta)』의 가르침이 ‘원시
중관’이라고 할 수 있는 대승 중관(中觀)철학과 매우 밀접함을 발견하였다. 중관은 반야부 경전의 철학적
체계화와 발달을 의미하고, 반야부 경전에서는 아비달마 학자들의 혁신들을 거부하였고, 정법과 세계에
대한 초창기의 이해로 돌아가려 했다고 보아도 틀리지 않을 것이다.
그러나 보다 중요한 것은 대승경전들에 나타나는 전통이다. 이것은 경전들의 근원을 기원전 5세기나
4세기에 입멸한 역사적 붓다가 아니라 오히려 보다 높은 단계의 불국정토에 여전히 존재하는 수많은
붓다 들에 대한 관상(觀想) 체험과 감응을 연결시키는 전통이다(MacQueen 2005b: 327 이하; 1982: 51
이하).
이 가르침은 적어도 몇몇 대승경전 들의 기원들을 이해하는데 납득할 만한 기초를 제공하는
『반주삼매경』에서 가장 명확하게 설해져 있다. 이 경전의 중심 메시지는 정토에서 보살들에 둘러싸여
법을설하는 붓다(특히 아미타불)의 모습을 그리면서 붓다를 생각하는 명상 수행에 있다.
수행자는 7일간 밤낮으로 집중한다. 이후에 수행자는 붓다를 환상이나 꿈속에서 보게 되는데 이것은
그리 놀랄 만한 일이 아니다. 보살은 이 세계에 있으면서 세존, 아미타여래를 본다. 그는 자신이 그
세계에 있음을 받아들이면서 법을 듣는다. 보살은 붓다들의 설법을 들으면서 가르침을 받아들이고,
완전히 습득하고, 마음속에 간직한다. 그는 세존 아미타불을 숭배하고, 경모하고, 공경하고, 경외한다.
이 사마디에서 나온 후에 보살은 자신이 듣고 간직하고 완전히 습득한 법들을 다른 사람들에게 널리
설했다.이 사마디 속에서 보살은 붓다에게 질문할 수 있고 “더욱이 … 설해지지 않았고 얻을 수 없었던
법을 듣고 얻을 수 있다. 그 사마디의 힘으로 보살은 법을 듣는다.” 그러므로 여기서 하나의 이론, 즉
‘붓다가 정토에 있으면서 정법을 가르친다’는 가르침에 기초한 대승경전의 계시적인 기원에 대한
이론을 볼 수 있다.
최근에 해리슨(2003: 특히 117-22)은 많은 초기 대승경전의 생산 뒤에는 숲속의 은둔 승려들이 있고,
그들이 분명하게 택한 깊은 명상, 명상의 지속, 유지의 중요성에 대한 인식을 상세히 설명하고 있다.
그는 (철학적 문헌들도 포함해서) 불교문헌들에 대한 접근은 명상 수행에 대한 고려까지 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예를 들면 해리슨은 『무량수경(無量壽經, Sukh?vat?vy?ha)』 또는 『아촉불국경(阿?佛國經, Ak?obhyavy?
ha S?tra)』과 같은 초기 대승경전들이 정토에 집중하고 있다는 점에 주목한다. 그 경전들은 관법에
대한 처방을 제공하고, 붓다에 집중하면, 수행자가 그의 정토에 접하기―방문하기―를 원한다면 사실상
정토는 수행자의 마음에 건설되고, 오염된 일상생활의 세계에서 ‘청정한 세계’로 대체하거나 하나의
대안을 제시한다는 것이다.
그러한 문헌들은 단순히 읽어서는 안 된다. 말하자면, 그것들은 악보 같이 보아야 한다. 그리고 그것은
실재에 대한 집중적인 명상의 변화라는 이런 종류의 맥락에서 보살은 산, 동굴, 나무 같은 곳에 있는
‘법의 보배들’을 발견한다고 하고, ‘끝없는 법의 가르침들은 책 형태로 그들의 손에 들어간다’ 라고
말하는 『집일체복덕삼매경(集一切福德三昧經, Sarvapu?yasamuccayasam?dhi S?tra)』 같은 경전을
이해하기 시작할 수 있다(앞의 책: 125).
그러나 손에 나타나는 책들이 아니고, 동굴 속에서 발견되는 것도 아니고, 환영 속에서 붓다의 직접적인
가르침을 받는다고 말하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그들에게 중요한 계시를 주고 숲에 머무는 은둔
명상가들을 방문하는 신들, (숲속의 명상가에 어울리는 나무의 정령들을 포함한) 초자연적 존재들을
말하는 다른 초기 대승경전도 있다.
이 초자연적 존재들은 불교 전반에 걸쳐서 발견되고, 특히 종종 밤에 방문하고, 특히 새벽 전에 자주
방문한다. 그들의 방문과 ‘전법’을 부파에서는 대개 긍정적으로 본다. 그리고 해리슨은 주류 불교의
경전들도 그러한 환경 아래서 신들이 전법을 했고 믿을 만한 ‘붓다의 말’로 그 가르침을 받아들였다고
주장한다.새벽전에 신격화된 존재들의 방문은 꿈의 계시적인 중요성을 암시한다.
해리슨은 주류 불교의 원전들이 꿈속의 수행 혹은 꿈의 정신적 중요성과 그 해석에 별로 관심을 표하지
않는다고 지적한다. 그 상황은 대승에서 매우 다르고 해리슨은 특히 꿈에 관심을 가진 『아리야스바프
나니르데샤경(?ryasvapnanirde?a S?tra)』이라는 (3세기 후반 이전에 편찬된) 초기 경전에 관심을
기울인다.
이 경전은 108가지 꿈의 상징을 열거하고 해석한다. 이들의 대부분은 불교의 종교적 특성들과
활동이다(Harrison 2003: 136-7)그들 가운데서 우리는 정법의 가르침을 듣는 꿈들의 목록들을 발견한다
(No. 22), 정법을 설하고 있는 그때까지 알지 못한 승려들을 만나고 (24), 법을 가르치는 붓다를 보고 (29),
책을 받고 (56) … 법보의 이름을 듣고 (63), 다른 세계에 있는 여래의 이름을 듣고 (64), 다른 세계에서
있는 아무개 보살의 이름을 듣고 … 거기서 자신이 법좌에 앉아 정법을 전하는 것으로 여기는 꿈을 가질
수 있고 (25) … 경전들의 생산을 위한 영감을 얻고 (62), 혹은 정법을 수많은 군중들에게 가르친다 (95)
해리슨은 불교 수행자들이 경전들을 반복해서 말하는 것을 포함한 깨어 있는 시간에서 수많은 시간을
보낼 때, 그렇게 하는 꿈을 가지고 새로운 계시를 받는다고 간주하더라도 놀랄 만한 일은 아니라고
주장한다. 해리슨은 다음과 같이 결론 내린다(2003: 142).
그러므로 여기서 내가 주장하는 것은 숲의 환경에서 명상과 경전의 전달에 집중하는 것이고, 기술 발달의
결과로서 글로 쓰여진 새로운 창조물의 출현을 자극한 것이다. 여기 현실 세계의 특별한 환경들은 명상
혹은 꿈의 깊은 상태에서 받아들인 구전(口傳) 전통을 새로운 종류의 불교로 바꾸기 위하여 환상들과
결합한 것이다. 결과적인 계시는 완전히 새로운 것이 아니라 문맥과 전통에 의해 깊이 조건 지어진 것이다.
비록 시적인 조합으로 일축하거나 … 혹은 심지어 반대론 자들에 의해 무의미한 것이라고 포악하게 공격
받더라도 … 그들은 사실 널리 공동체에서 권위 있는 [‘붓다의 말’]로서 이미 받아들여진 재료의 창조적
개조인 것이다.
그러나 아직 계시의 이론과 반드시 모순되지는 않지만 대승 전통 자체에 내재한 대승경전의 당위성에
대한 문제를 다루어 보고자 한다.
적천(寂天, ??ntideva 8세기)의 『대승집보살학론(大乘集菩薩學論, ?ik??samuccaya)』에서는 한 경전을
인용하고 있다.계시를 받아서 하는[pratibh?na; MacQueen을 보라] 붓다의 말은 네 가지를 구족한다.
무엇이 네 가지인가? 1)그것은 진리와 관련될 뿐 진리 아닌 것과는 관련이 없다. 2)그것은 정법과 관련될
뿐 정법 아닌 것과는 관련이 없다. 3) 그것은 번뇌를 버리게 할 뿐 번뇌가 많아지게 하지 않는다. 4) 그것은
열반의 훌륭한 모습을 보여 줄 뿐 윤회의 모습들은 보여 주지 않는다. (??ntideva 1961; 12)
경전에서는 만약 한 마디의 말이 이 네 가지 특징을 갖는다면 선남자 선여인
(대승경전들을 듣는 사람들에대한 표현임)은 ‘붓다’를 알 수 있고,
이 말을 정법으로 들을 것이라고 설명한다. 왜 그런가?
“잘 말하여 진것(subh??ita)은 모두 붓다의 말(buddhabh??ita)이기 때문이다.
”붓다의 말이라고 설명하고 있는 이 명백한 고백은 팔리어 경전들에서도 찾을 수 있다. 잘 말하여진 것은
붓다의 말이다라는 주장이 팔리어 경전 『웃타라비파티 숫타(Uttaravipatti Sutta)』에서도 발견된다
(“붓다가말한 것은 무엇이든지 모두 잘 말하여진 것이다”라는 아쇼카왕의 말을 참조 바람).
그러나 아직 모호함이 남을 것이다.이것은 전통적으로 훌륭한 모든 것이 붓다에서 유래한다는 의미가 될
수 있다. 그러나 마찬가지로 ‘붓다의 말(buddhavacana)’은 고타마 붓다가 실제로 한 말이라기 보다는
‘잘 말하여진 것’이라는 의미로 다 시 정의된다는 것을 함축한다. (MacQueen 2005a: 323: 1981: 314)
그럼에도 불구하고 팔리어 경전에서는 깨달음으로 이끄는 가르침들은 무엇이나 정법(Dhamma)이라고
정의하고 있다. 물론 잘 말하여진 것은 무엇이든지 붓다의 말이다라는 것은 잘 말해진 것에 대해 정확하게
설명하지 못한다. 이것이 열반으로 이끈다고 하기에는 충분하지 않다. 왜냐하면 과정과 수행이 다른
방향으로 이끌 수 있다는 점에서 의견이 다를 수 있기 때문이다.
심지어 주류 불교 부파에서 믿을 만한 경전으로 간주되는 표준적인 경전인 『대설경(大說經, Mah?pade?a
S?tra)』조차도 이 문제를 해결하는 데 구체적으로 별 도움이 되지는 않는다. 이 경전은 어떤 사람의 권위에
의지하기보다 믿을 만한 경장 및 율장과 밀접하게 연관이 있는 새로운 것을 검토한 뒤 그것에 의지하라고
한다. 그러나 위에서 본 것처럼 경장은 붓다의 열반 이후 수세기 동안 고정된 상태로 있었던 것도 아니고
분명하고 명백한 것도 아니었다.
그렇지만 초기 대승이 정신적인 효과에 기조를 둔 혁신을 위해서 발전시키고 체계화시킨 체제가 있다는
점이 중요하다.대승은 붓다가 열반에 든 이후에 정법이 제자들을 잘 이끌어 줄 것이라는 붓다의 선언에서
발생했고, 세존은 정법이 깨달음으로 이끌어 주는 것, 즉 영적으로 도움을 주는 것이라고 묘사했다는 점을
강조했다.
영적으로 도움을 주는 것은 사람과 시간·공간에 따라 엄청나게 다양할 것이다. 시간이나 공간 그리고
사람이 변해감에 따라 혁신은 불가피하게 되었다. 유일한 문제는 그 혁신에 당위성을 제공하는 것이다.
몇몇 대승문헌들은 기원이 붓다 시대로 올라가거나 혹은 붓다가 실제 로 경전들을 말했다는 것이 아니다.
오히려 위대한 스승이라고 생각되는 다른 이름을 가진 개인들 그리고 그의 가르침과 계보는 특히
깨달음의 도를 따르는 데 효과적이라고 하는 논서들에서 주장된다.
시간이 흘러 (이러한 저작들이 정신적 가치 혹은 권위가 증대한 것처럼 보인다) 그들은 ‘경전화’ 과정에
들어간다. 이것은 그들 안에 붓다의 말로 분류하고 최고의 권위를 제공한 경전적 요소들을 포함하고 있다.
종종 그것은 그 가르침을 직접적으로 붓다에게로 돌리거나 혹은 경전의 내용 안에 분명하게 붓다가 경전의
진위에 보증을 부여한 것을 의미한다.
어떤 의미에서 대승은 붓다의 가르침이 아니라고 비판하는 주류 부파들의 주장은 논점을 비켜간 것이다.
첫째, 역사적 붓다는 그가 선언 한 원리, 붓다가 열반에 든 뒤에 사람들을 이끌어 줄 것이라고 발표한
원리들을 지지하는 의미가 쇠퇴했다.
둘째, 시간이 흐르면서 역사적 인물로서 이 세계에 존재하는 석가모니불보다 정신적으로 더욱 정제되고
하나의 측면과 다른 항존하는 붓다에 대한 시각들의 중요성이 더욱 증가했다. 이 두 번째 점에서 역사적인
붓다에 호소하는 것은 어떤 집단들에서 보다 열등한 존재에 호소하는 것으로 간주될 수 있다.
지금까지의 논의를 간략하게 요약해 보자. 기원전 1세기경부터 불교 내에서 발생한 변화는 붓다 자신의
말이라고 주장하는 새로운 문헌에서 태동되었다. 이 문헌은 하나의 조직되고 통일된 운동의 산물이
아니고, 존재하는 불교 교단 내에 있는 뛰어난 승려들이 만든 것으로 보인다. 대부분의 문헌은 붓다와
그의 존재에 대한 인식의 우월성과 연관되어 있다.
이 문헌들은 할 수 있는 모든 사람들이 추구하는 고귀하고 더 높은 차원의 보살도, 완전한 성불을 지향하는
것을 주창한다. 성불을 목표로 하면서 이것은 수행자 자신의 이익이 아니라 일체중생의 이익을 위한
것이라고 자주 말한다. 적어도 부분적으로 이러한 경전들의 생산은 숲속의 은둔 승려들의 활동과 관련이
있었음이 확실해 보인다. 이 새로운 경전을 받아들인 비구, 비구니 그리고 적은 수의 재가 수행자들은
일련의 대승 혹은 보살 집단을 형성했고, 아마도 다른 경전들과 그들에 동반하는 수행들에 기초하였을
것이다.
어느 정도 시간이 지남에 따라 그들은 서로 직접적이고 정기적인 연관성이 거의 없거나 혹은 전혀 관련되지
않은 것 같고 그들이 얼마나 공통점을 가졌는지는 불분명 하다. 어떤 경우에 대승의 추종자들은 스스로
명상의 환영 혹은 꿈속에서 그들에게 영감을 제공하는 붓다 혹은 초자연적인 존재와 직접 접촉한다고
느꼈던 것이 확실하다.
때때로 그들은 스스로 교리를 설하기도 했고, 불탑에서 만나고 숭배하는 붓다의 사리보다 불신(佛身)·
법신(法身)이 우월하다는 것을 경전에서 구체화시켰다. 초기 대승주의자들은 자신들이 계율과 정신의
파괴를 막는 올바른 보루라고 생각했던 것이 확실하다. 그것의 증거는 건립된 사찰에서나 숲속의
은둔처들에서나 이 열렬한 추종자들은 인도불교에서 극히 소수였다는 점을 보여 준다.
대승의 추종자들이 불교 내에서 최대한의 의미로 일상생활에서 스스로를 우월한 집단으로 여긴 것은 몇
세기가 지난 후의 일처럼 보이고, 일반적으로 이 시기에 그들이 한 대중적 행위(집단의 의례 혹은
개인적인 의례에 반대하는 것)가 비대승의 수행자들의 것과 얼마나 다른 지는 불분명하다.
시간이 흘러서 그들은 자신들의 영감을 점점 더 ‘대승’에 일치시켰고, 경전에서는 대승의 가르침에
주의를 기울이지 않거나 바르게 이해하지 않는 사람들에 대한 강한 적대감을 보여주기 시작한다. 시간이
지나면서 대승을 받아들이지 않거나, 대승을 인정하면서도 여전히 ‘소승’을 고집하는 사람들에 대한
적대감이 특히 커졌다.
결국 역사적 관점에서 기원에서부터 어느 정도의 시간이 흐른 후 사찰들은 ‘대승’ 소속이라는 자각으로
결합하기 시작했고, 아마 (비록 이것은 불분명하지만) 이 시기부터 붓다들과 대보살에 대한 대중의
공양과 같은 보다 공공연한 의례 활동들이 나타나기 시작했다. 그 뒤에 (위에서 언급한 것처럼) 7세기
중국 순례승의 관찰에서 대승주의자들은 ‘보살들을 숭배하는’ 한 집단이었다.
그렇지만 현장(玄?, 600-664)은 그의 인도 방문기에서 대승주의자들이 50% 미만에 불과했다고 한다.
이정도로 서론을 마치고 이제 경전들을 살펴보기로 하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