숨비소리
“해녀들은 사진 찍히는 걸 싫어하니 잘 하세요.”
이른 아침, 카메라를 들고 오래된 돌집을 나서는 내게 정희씨가 주의를 준다. 그의 말이 아니라도 그렇지, 한겨울 거친 바다에 들어가 생사를 걸고 물질을 하는 해녀들을 상대로 어찌 내 욕심만 채우겠는가. 마을 고샅길을 빠져나가다가 해녀들을 보았다. 검은 잠수복을 입고 태왁(스티로폼 튜브)과 망사리(채집물을 담는 그물망)를 걸머진 해녀들이 삼삼오오 바다로 향하고 있었다. 그들은 곧 바다와 밭담 사이로 긴 행렬을 이루었다. 육지에서 농사짓는 나는 겨울이면 농한기를 핑계로 지리산도 가고 제주도를 거쳐 우도에도 오는데 저들에게도 어한기(漁閑期)가 있을까.
육지와는 다른 맵찬 바람이 부는 전흘동 해안에 도착했을 때 몇몇 나이 든 해녀들은 하마 불턱에 모여 모닥불을 쬐고 있거나 허리에 납 벨트를 차고 있었다. 고개 숙여 인사를 하고 사진을 좀 찍어도 되겠나 물으니 나이 드신 한 아주머니가 흔쾌히 허락하신다.
“어떵 안해영 마심, 하영 찍읍서. 저기 해녀들 하영 왐시난, 퍼뜩 찍읍서. 어떵 안해영 마심.” 괜찮다고, 저기 해녀들이 많이 오니 얼른얼른 많이 찍으라는 말을 눈치껏 알아듣고 급히 카메라를 들어 거리를 맞추며 사진을 찍을 때였다. 내 뒤를 따라오던 젊은 해녀가 발끈한다.
“왜 사진을 찍지? 왜 사진을 찍지?” 어른께 허락을 받았고 아주머니들의 뒷모습과 불턱을 찍었노라고 하니 삐쭉 입을 내민 채 더이상 말이 없다. 그만 추운데 수고하시라는 인사를 하고 비양도로 향한다.
휘유우 휘유우--- 바람소린가 했다. 파도소린가 했다. 그러나 바람소리도, 파도소리도 아니었다. 물 밖으로 고개를 내민 해녀들이 참았던 숨을 길게 내뱉는 숨비소리(숨비질소리)였다. 자신의 키 높이의 대여섯 배, 수심 10미터 바닷속에 들어가 전복과 소라를 채취하느라 정신을 쏟다 보면 숨이 다해 저승길이 오락가락하기도 할 것이다.
탈의실로 사용하는 ‘해녀의 집’ 건물 모퉁이에 몸을 기대고 물질을 하는 그들을 지켜보았다. 색색의 태왁이 푸른 너울에 출렁거리고 잠수를 하는 해녀들의 머리가 물 위로 솟는가 하면 검은 갈퀴 발들이 거꾸로 치솟다가 이내 물속으로 사라진다. 휘유우 휘유우--- 물 밖 세상과 이어주는 생(生의) 끈, 생의 확인이다. 숨비소리가 바람과 함께 달려와 가슴을 휘어잡다간 바람과 함께 섬 안쪽으로 달려간다.
섬 안의 섬, 비양도는 해녀들이 걷어 올린 해산물을 실어내기 위한 포장도로가 바닷속까지 연결되어 있었다. 바닷물이 들어오면 물에 잠겨 발목까지 찰랑거리고 바닷물이 나가면 신발을 적시지 않고 건너다닐 수 있는 어여쁜 바닷길이다. 해녀의 집 뒤편 언덕엔 보랏빛 갯쑥부쟁이가 지천이다. 해녀들의 길을 따라 바다로 시선을 던지면 와락 수평선이 달려든다. 이곳의 풍경이 늘 그리웠다. 육지에선 제주보다 더 먼 섬, 제주보다 훨씬 더 가기 힘든 섬, 우도. 그곳 해녀들의 힘겨운 삶을 어느 정도 눈치를 챘다 해도, 비양도 푸른 바다, 푸른 바닷속을 유영하는 그들이 턱없이 부러워지고 마는 곳, 그곳이 우도 안의 섬, 비양도다.
육지와 달리 제주의 해녀들은 밭일은 물론, 물때를 맞춰 바다 밭도 일구며 척박한 섬의 삶을 이끌어 간다. 열 살도 되기 전 헤엄치기를 익히고 무자맥질(잠수)을 터득하며 시작한 물질은 죽는 날까지 가족들의 생계를 떠맡으며 이어진다. 잠수복과 끈으로 연결된 태왁은 수면 위에서 해녀들이 매달려 쉴 수 있는 생명선이다. 해녀들이 허리에 찬 납 벨트는 물속에서 부력을 조절하기 위해 필요한 중요한 장비로 보통 10~20㎏에 육박하는 무게다. 그것을 허리에 둘러 몸을 의지해야만 바닷속에서 자유로운 물질을 할 수 있고, 급하게 수면으로 떠 오르는 일을 방지할 수 있다고 한다. 이들이 간간이 물에서 올라와 쉬는 장소인 불턱은 거센 바닷바람을 피해 모닥불을 피워 해녀들이 쉴 수 있도록 만든 반달형의 돌담을 말한다. 해녀들의 노천탈의장이기도 하다. 고무로 만든 잠수복이 나오기 전 얇은 무명천으로 만든 '물옷'만 입고 한겨울에도 물질을 해야 했던 이들에게 불턱이 어떤 공간이었을까를 짐작하는 일은 어렵지 않다. 마을 해녀들의 집합장소인 이곳에서 해녀공동체가 형성되었을 것이며 어린 잠수부들에 대한 학습이 이루어져 서럽고도 용맹한 직업의 전승이 이루어졌을 터였다.
우도박물관에서 해녀들의 무명 물옷을 보았다. 흰 무명옷의 은근한 황홀이라니. 바닷물에 젖은 그 옷에 하얀 속살이 비쳤었다니… 거칠 것 없이 펼쳐진 파란 하늘 아래 바닥이 보이는 초록빛 투명한 바다, 젖은 몸의 곡선을 드러낸 흰 무명옷의 해녀들을 상상하는 일에는 살갗을 파고드는 예리한 통증이 따른다. 가냘픈 여자의 몸으로 양어깨에 짊어진 삶의 무게에 매달려 처연히 빛나는 진줏빛 아름다움이다.
비양도를 지나 일곱 빛깔 초록 물빛이 눈부신 하고수동 해변을 지날 때였다. 섬 안쪽 밭담들 사이로 하늘을 이고 있는 좁다란 길이 보였다. 우도의 하늘은 바다에 닿아있거나 붉은 밭들에 닿아있거나, 나지막한 돌집들의 색 바랜 슬레이트 지붕들에 닿아있다. 잠시 해안도로를 버리고 구릉으로 이어진 좁은 길로 들어섰을 때 예기치 않은 일이 벌어졌다.
누가 우는 것일까. 느닷없이 가슴을 거머쥐며 달려드는 소리를 따라 언덕을 올랐을 때 모진 바닷바람에 제멋대로 드러누운 억새군락이 출렁거리고 보리밭 여기저기 돌담을 두른 무덤들이 누워있었다. 무덤에는 이 섬에서 나고 자라 이 섬에서 생을 마친 사람들이 누워있을 터였다. 사람의 그림자는 보이지 않는데 울음소리는 더욱 커져 바람과 엉켜 돌아갔다. 거센 바다, 물질이 고단해 나이 어린 해녀 하나 물질하다 말고 슬그머니 여기 올라와 저 편한 곳에 자리 잡고 누운 것인가. 손닿지 않는 턱없는 사랑을 꿈꾸다 홀로 늙어간 홀어미의 육신이 누운 것인가. 애꿎은 호미 날만 닳게 하는 돌밭, 보리밭 이랑을 매다가 살아도살아도 고단한 세상, 에라, 고만 살자. 내가 고만 살겠다는데 하늘아, 어쩔 것이냐 하며 어느 집 며느리, 하늘을 정면으로 치어다보며 누운 것인가. 밭일을 하다가 찬 보리밥 한 덩이 건넬만한 거리에 제 맘대로 누운 것 같은 무덤들이 즐비하다. 무덤들은 정다운 돌담 안에서 마냥 아늑해 보였다. 뭍에서 건너간 가난한 여행자도 무덤처럼 한참을 거기 누워있었다.
누구인가. 당치않은 통곡을 끝내고 바지 엉덩이를 털고 일어서는 저 여자. 그녀의 어깨엔 작은 배낭과 삼각대와 카메라가 걸려있다. 한낮의 해는 구릉 너머로 기울기 시작하고 여자는 우도봉을 향해 걸음을 재촉한다.
휘유우 휘유우 해변에서 들려오는 소리, 저 짙푸른 바닷빛 숨비소리….
2006 충북작가 여름호
첫댓글 이 작폼을 읽어가며 내안의 숨비소리를 함께 토해냈습니다.
이름모를 무덤가에 통곡하는 여인이 나인듯, 그인듯 세상을 향해 휴우~뿜어냈습니다.
뛰어난 문장력과 세상을 바라보는 눈, 대단하십니다. 많이 배우고 싶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