깍두기 삼겹살
“션푸(신부님), 오늘이 무슨 날인 줄 알아요?”
“4월 1일...... 아! 중국에서는 뭐라고 해요?”
“우인절(愚人節), 사람을 우롱하는 날요. 오늘 나 거짓말 할 참예요.”
“그려? 그람 본원에 전화해서 차쿠 수탉이 알 낳았다고 해봐요!”
사람들은 왜 만우절 같이 쓸데없는 장난을 만들어 놨을까? 라는 생각보다 내심 밝은 톤으로 말꼬를 터주는 허수녀한테 고마워지는 밥상머리이다.
작년 가을부터 나는 중국 수녀들과 함께 산다. 요녕교구에서는 중국하고도 벽지에서 홀로 사는 한국 신부가 딱해보였던지 무순 예수성심회 수녀들을 파견해 주었다. 방금 만우절이란 화제를 식탁에 올려준 허수녀가 분원장이다. 수도회 제1기로 연장자인 설(薛, 쑥)수녀는 여간 과묵한 게 아니다. 지난 한 주간 살면서 영 대화가 없었다. 사소한 말이라도 오가야 아침이 반짝반짝할 텐데 숟가락만 딸가닥거린다. 꿀꺽하고 음식물 넘기는 소리가 민망한데 둘 사이에도 한 마디가 없다. 아니! 어차피 난 언어장애가 있는 거고, 자기들끼리라도 말 좀 하면 안 되나? 어서 따뜻해져서 사택 부엌에 취사가 가능하면 따로 밥 먹어야겠다, 던 원안을 상기한다.
그래도 우리 셋, 한 때는 호시절이었다.
처음 수녀님이 오신다고 했을 때 설렘 반 걱정 반이었다. 억센 동북여자 둘이 외국인 하나쯤 막 해 넘기면 어쩌나? 싶었다. 그런데 부임시기가 마침 월동준비기간이었다. 백발이 된 내 얼굴에 무 구덩이를 파느라 흐른 땀을 보더니 절인 배추처럼 야들야들해져서는, 션푸 고생이 참 많아요, 했던 것이다. 이런 기회를 놓칠 수 없는 나는
“향후 바깥일은 신부가, 집안일은 수녀가! 오늘 바쁘니 라면 좀 끓이시라.”고 했다.
그러고서 30분이 지났을까? 식사하라는 소리에 들어가 보았더니 실로 가관이었다. 한 냄비에 끓인 라면 세 개가 각각 다른 회사의 제품들! 그나마 옆에 있는 쫄면에 손 안대고 고추장 들이붓지 않아서 천만다행, 그래도 좋아라했다.
또한 지난 성탄절, 주교님이 금일봉까지 주신 차쿠 신자 삼겹살 파티는 다소 실패로 끝이 났다. 그 직후에 평가회를 하면서 대패삼겹살처럼 얇게 썬 두께에 대해 너무 강조했던 탓일까? 그렇지. 죄라면 그게 원죄이다. 2주 전에는 뜬금없이 한국 삼겹살을 준비했다고 득의양양해온 것이다. 그러나 식탁에 앉던 나는 다시 벌떡 일어서야했다. 아뿔싸! 이게 무엇인가? 삼겹살은 삼겹살인데 정사각형의 깍두기 꼴이 아닌가. 아무리그래도 너털웃음이 터진 것은 이분들이야말로 혼자이던 차쿠에 오신 교회의 따님들이다. 김대건 최양업 신부님의 은인되는 후손이 아니시던가. 나는 복된 이로세, 누가 있어 이런 삼겹살을 먹어본단 말이요? 했더니 허 수녀는 “션푸가 끓여 놓은 된장국이 맛있으니 됐어요.” 하다 “1년 후엔 내가 한국 요리사 될 거요”라며 벙글거렸었다.
하지만 반년도 못가서 시들시들해진 우리의 식탁 분위기, 방금 전 허수녀는 만우절을 이용해서 이걸 좀 어찌해보려고 저러는 것이다. 그 말끝자락으로 ‘션푸도 조심하세요!’라는 장난의 꼬리가 살짝 비치기는 했었다.
아니나 다를까, 오전 묵주를 돌리는 시간이었다. (이 때는 말 걸지 말라고 큰 묵주를 들지만) 여회장이 “션푸!”하며 2층까지 올라온다. 이 정도면 당에서 관원이 나온 정도의 급한 일이다. 나도 놀라서 왜 그래요? 라며 눈짓을 크게 했다.
“아니 수녀님 왈, 션푸가 찾는다고 해서요?”
고개를 좌우로 흔들어 회장을 돌려보내고도 쉽게 묵주가 돌아가지 않는다.
‘하하, 요요요, 허수녀가 만우절 성공했다!’
불교로 말하면 인연이다. 몇 겹의 연이 서리서리 닿아 차쿠에서 한국신부에 중국수녀로 만났을까? 우리 식으로 말하면 섭리일진데.
부디 수녀님들, 지금까진 어떻게 살아오셨는지 몰라도 열여덟에 시작했다는 수도생활, 여기 차쿠에서 꽃피우시라! 올해도 의연히 시작해주신 봄 사월처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