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느 늦은 저녁 나는
한강
어느 늦은 저녁 나는
흰 공기에 담긴 밥에서
김이 피어 올라오는 것을 보고 있었다
그때 알았다
무엇인가 영원히 지나가버렸다고
지금도 영원히
지나가버리고 있다고
밥을 먹어야지
나는 밥을 먹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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밥상머리에서도 시상이 떠오르는 것은 천상 시인이고 글쟁이라서 일까?
밥통도 아니고 작은 밥그릇에서 피어오르는
김의 사라짐을
누군가의 사라져간 영혼과 결부시킨 것 같은 느낌을 받는다
드라마나 영화에서 나오는 영혼의 모습이 그러했기 때문이다
밥에서 피어나는 김을 보며
그 소롬 돋는 그녀의 시상에 고개를 절로 끄덕여 본다.
그래도 남은 이들은 살아야 하기에
밥은 먹어야지.
이 대목에서는 왠지 모를 눈물이 맺힌다.
후에 그녀가 쓴 소설 속에
상실과 고통을 조용하고 섬세하게 잘 그려낸 걸 볼 수 있다
그 속에서 주인공 나는
너를 처벌하지 않고 내가 희생되는 것을 선택한 것이 그것이다.
한국인 최초이자 아시아 여성 최초로 노벨문학상을 받은 자랑스런 한국문학의 큰 산
한강 작가는 기자회견 대신 이같은 말을 남겨서 더 화재다.
"전쟁이 치열해서 사람들이 날마다 주검으로 실려 나가는데 무슨 잔치를 하겠느냐",
"이 비극적인 일들을 보면서 즐기지 말아 달라",
"스웨덴 한림원에서 상을 준 것은 즐기란 게 아니라 더 냉철해지라는 것이다" 라고 말했다는 것이다.
작가가 노벨문학상 수상 후 남긴 말은 그녀의 인간적, 예술적 깊이를 다시금 일깨워준다.
축하보다 비극적 현실을 함께 냉철하게 바라보기를 바라는 그녀의 말은
마치 잔잔하지만 깊은 여운을 주는 문장처럼 다가온다.
그녀는
앞으로 살아가는 동안 버리고 싶은 것은 '한숨 쉬는 습관'
얻고 싶은 것은 '단순함과 지혜'
잃고 싶지 않은 것은 '길을 걸으며 노래를 흥얼거리는 버릇'이란다.
이와 같은 한강 작가의 태도는 '한숨을 버리고 싶다'는 소박한 소망과 '
길을 걸으며 노래를 흥얼거리는 버릇을 잃고 싶지 않다'는 인간적 일면으로도 이어져,
우리에게 꾸밈없이 순수한 작가의 모습을 보여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