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전3:1~9 자라게 하시는 이
성도는 죄인이지만,
믿음으로 의롭다함을 받았고, 또한 놀라운 것은 동역자라는 사실이다. 하나님께서 성도와 함께 일하신다. 계시록을 보면, 성도는 하나님의 제사장, 또는 그의 영토 나라이다.
계1:6 그의 아버지 하나님을 위하여 우리를 나라와 제사장으로 삼으신 그에게 영광과 능력이 세세토록 있기를 원하노라 아멘
성경을 보면, 인간이 죄인이라는 것을 강조하면서도, 동시에 믿음으로 의롭다함을 입고, 하나님과 함께 동역하는 것을 볼 수 있는데, 이것이 신기한 일이다.
엡2:10 우리는 그가 만드신 바라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선한 일을 위하여 지으심을 받은 자니 이 일은 하나님이 전에 예비하사 우리로 그 가운데서 행하게 하려 하심이니라
골3:10 새 사람을 입었으니 이는 자기를 창조하신 이의 형상을 따라 지식에까지 새롭게 하심을 입은 자니라
그런데 하나님의 동역자인 성도는 맨몸으로 일하는가. 하나님께서 은사를 주신다. 그러므로 롬12, 고전12, 엡4장을 보면, 사람의 은사가 각각 다른 것을 볼 수 있는데,
고전12:3~11 그러므로 내가 너희에게 알리노니 하나님의 영으로 말하는 자는 누구든지 예수를 저주할 자라 하지 아니하고 또 성령으로 아니하고는 누구든지 예수를 주시라 할 수 없느니라 은사는 여러 가지나 성령은 같고 직분은 여러 가지나 주는 같으며 또 사역은 여러 가지나 모든 것을 모든 사람 가운데서 이루시는 하나님은 같으니 각 사람에게 성령을 나타내심은 유익하게 하려 하심이라 어떤 사람에게는 성령으로 말미암아 지혜의 말씀을, 어떤 사람에게는 같은 성령을 따라 지식의 말씀을, 다른 사람에게는 같은 성령으로 믿음을, 어떤 사람에게는 한 성령으로 병 고치는 은사를, 어떤 사람에게는 능력 행함을, 어떤 사람에게는 예언함을, 어떤 사람에게는 영들 분별함을, 다른 사람에게는 각종 방언 말함을, 어떤 사람에게는 방언들 통역함을 주시나니 이 모든 일은 같은 한 성령이 행하사 그의 뜻대로 각 사람에게 나누어 주시는 것이니라
성도는 말할 것도 없고, 목회자도 보면, 파종하는 사람이 있고, 또 가꾸는 사람이 있다. 바울의 경우 파종하는 자였고, 아볼로의 경우 가꾸는 자 물주는 자였다. 누가 중요한가. 둘 다 중요하다. 그러나 제일 중요한 것은 물을 주던 파종을 하던, 자라게 하시는 이가 자라게 하지 않으면 소용이 없다.
세상에서 재능도 그렇듯이, 달란트도 각각 사람들에게 맞게 주신다. 그런데 때론 왜 나는 이런가. 다른 사람과 비교하게 되는데, 예수님은 요한을 시기하는 베드로더러 내가 그를 영원히 살게 할지라도 그게 너와 무슨 상관이 있느냐 너는 나를 따르라고 말씀하셨다. 하나님이 알맞게 하신다.
그러므로 파종하는 자, 물 주는 자, 김 매는 자 등 하나님께서 사람마다 은사와 역할을 주시는데 다 다르다.
그런데 어린아이는 나는 씨뿌리는 바울만 좋아. 또는 나는 물주는 아볼로만 좋아. 그러면 분쟁이 일어나는 것이다. 파당은 어린 아이 같은 것이다. 어린아이는 나는 젖만 먹을 거야, 나는 물만 먹을 거야, 편식하면서 징징대는 것이다. 씨 뿌리는 바울만 좋아하고, 물주는 아볼로만 좋아하면, 누가 물주고 누가 씨를 뿌리는가. 그러므로 어린아이들은 바울이나 아볼로를 용납을 못한다.
1 형제들아 내가 신령한 자들을 대함과 같이 너희에게 말할 수 없어서 육신에 속한 자 곧 그리스도 안에서 어린아이들을 대함과 같이 하노라 2 내가 너희를 젖으로 먹이고 밥으로 아니하였노니 이는 너희가 감당하지 못하였음이거니와 지금도 못하리라
-> 어린아이는 젖만 먹고, 딱딱한 음식은 못 먹는다. 밥이나 고기는 먹지 못한다. 왜 아볼로 같이 못하냐고, 왜 바울같이 못하냐고. 왜 예언을 못하냐고, 왜 방언을 못하냐고. 또는 왜 방언을 하냐고 왜 예언을 하냐고 시기하고 다투고 분쟁한다. 그런데 몰라서 그러는 경우가 많다. 나도 예수 믿기 전에는 방언이 이질감이 있고 좀 적당히 믿지. 그런데 거듭나고 나서 보니, 와 신기하다 이런 것도 있구나 나도 방언 좀 할 수 있으면 좋겠다. 물론 극단적인 것도 있는데, 그런 것은 말씀과 기도를 통해서 분별해야 한다.
3 너희는 아직도 육신에 속한 자로다 너희 가운데 시기와 분쟁이 있으니 어찌 육신에 속하여 사람을 따라 행함이 아니리요 4 어떤 이는 말하되 나는 바울에게라 하고 다른 이는 나는 아볼로에게라 하니 너희가 육의 사람이 아니리요
-> 이런 편 가르기는 아이에 속한 것이다.
5 그런즉 아볼로는 무엇이며 바울은 무엇이냐 그들은 주께서 각각 주신 대로 너희로 하여금 믿게 한 사역자들이니라 6 나는 심었고 아볼로는 물을 주었으되 오직 하나님께서 자라나게 하셨나니
-> 바울과 아볼로는 역할을 주신 것 뿐이다. 그러나 그 역할을 통해 자라게 하시지 않으면 소용이 없다. 그러므로 자기 역할을 잘 찾아야 하며, 비교는 어리석은 짓이다.
7 그런즉 심는 이나 물 주는 이는 아무 것도 아니로되 오직 자라게 하시는 이는 하나님뿐이니라 8 심는 이와 물 주는 이는 한가지이나 각각 자기가 일한 대로 자기의 상을 받으리라
-> 이는 달란트 비유에서도 그렇다. 5달란트 2달란트 받은 이들이 열심히 하는 것을 두고 예수님께서 똑같이 기뻐하시고 상을 주셨다.
9 우리는 하나님의 동역자들이요 너희는 하나님의 밭이요 하나님의 집이니라
-> 예수님은 씨뿌린 밭비유를 하셨는데, 좋은 채소를 내는 밭은 복을 받고 엉겅퀴를 내는 밭은 마지막에 불사름을 당한다.
그러므로 바울은 성도를 동역자, 혹은 밭, 또는 집으로 비유하는데, 어떤 밭은 채소를 심고, 어떤 밭은 포도를 심고, 어떤 밭은 고구마를 심고, 다 다르다. 그러나 무엇을 어떻게 하였던 간에 씨를 뿌렸던 물을 주었던, 자라게 하시는 하나님이 하시지 않으면 아무 소용이 없다.
7 그런즉 심는 이나 물 주는 이는 아무 것도 아니로되 오직 자라게 하시는 이는 하나님뿐이니라
그러므로 은사를 주신 하나님을 자랑하고, 자라게 하시는 하나님을 자랑해야지, 은사를 가지고 사람을 자랑하면 안된다. 씨를 심어도, 물을 줘도 안 자라게 하시면 안자라기 때문이다. 옛날에 학교 숙제를 하려고 산에서 흙을 가져와서, 강낭콩을 심었는데, 신기하게도 얼마나 잘 자라는지, 떡잎이 나고 잎사귀가 나고, 얼마나 튼실하고 잘 크던지 나중에는 열매를 맺었는데, 누가 마치 자라게 하시는 것 같았다. 그런데 몇 해가 지나고 또 그 때 그 강낭콩 자라는 것을 또 보았으면, 하고 심었는데, 잘 안자라는 것이다. 아니 왜 이렇게 부실한가. 산에서 흙을 캐오지 않아서인가. 다시 산에서 흙을 캐와서 심었는데 종자가 잘못되었나. 성경을 보니, 이삭이 하나님께 복을 받으매 농사를 하니 100배 결실을 맺었다. 자라게 하시는 이가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