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행스님 말씀중에서
자기 뿌리를 믿어야 공덕이 있습니다.‘너의 뿌리를 알고 둘이 아닌 줄을 알고, 찰나찰나 생활을 하고 찰나찰나 공해서 없어지는 줄 알아야 둘 아니게 여여하게 들이고 낼 수 있느니 그래서 이 마음공부가 얼마나 편안한지 모르겠습니다.
마음 자체가 광대하고 무변해서 육신을 움죽거리게 해서 보게 하고 듣게 하고 가고 오게 해서 육신이 죽어도 죽어질 수 없는 마음, 자기가 지은 행위로 부터는 그 어디로도 도망칠 수도 없는 이 마음, 그래서 마침내 깨닫는 그때에 가서야 해탈이 되는 이 마음의 진화만이 가장 소중한 단 한가지의 일입니다. 그것이 얼마나 소중하냐 하면 목숨과 바꾸어도 아깝지 않을 만큼 소중하단 말입니다. 그런데 그 마음을 타락시키느라고 애쓰는 못난 사람들이 세상에는 있습니다.
자기 자신에게도 복되지 못하고, 남에게도 해가 되는 일을 하는 사람들이
있는 것이지요. 얼핏 보기에는 그것이 제 육신을 살찌우니까 복이라 생각할지 모르지만 그 욕심이 정작 중요한 주인(마음)을 해칩니다. 비유하자면 자기 집을 짓는 사람이 집을 제법 멋지게 짓긴 했으나 거기에 너무 집착한 나머지 몸을
상하여 낙성식 날 죽었다고 할 때, 그 아름다운 집은 무슨 쓸모가 있겠습니다. 집은 주인의 것이요, 주인에게 편하게 되는 것입니다. 그런데 이 경우,
집이 주인에게 봉사한 것이 아니라 주인이 집의 노예가 된 꼴이 아니겠습니까. 그러니까 육신을 위하는 탐욕으로 마음을 타락시키는 사람은 종살이를 하는 셈입니다. 그래서 아무리 찬란한 성공을 거둔다고 해도 그것은 집이 그럴듯해진 것일 뿐 정작 집주인은 그 사이에 다 늙어 버린 꼴입니다. 이런 어리석은 사람들이 많습니다. 무엇이 참으로 중요한지를 모르는 사람들이지요. 그런 사람들 중에는 욕심이 지나쳐서 남에게 해를 끼치기까지 합니다.
마음에는 형체가 없습니다. 그래서 서로 합쳐지면 그대로 하나가 됩니다
어린이가 오면 어린이와 한마음이 되고, 노인이 오면 노인과 한마음이 됩니다. 병자 오면 아픈 그 심정과 하나가 되다가도 기쁜 사람이 오면 나도 함께 기쁩니다. 그런데 그 중 어느 때의 마음이 내 마음이겠습니까
맡겨라, 맡겨라 해도 고정관념에 사로잡힌 중생은 그 뜻을 얼른 알아 듣지
못합니다. 어디 한 곳에 고정되게 딱 점을 찍어 놓고 하는 일이 아니기
때문이지요. 중생은 고정된 생각에 익숙해져 고정되지 않은 것을 잘 모릅니다. 그러나 그런 중생도 사실 살아가는 양태는 고정된 것이 아닙니다.
금방 남편 앞에서는 아내가 되었던 사람이 자녀 앞에서는 어머니가 되거든요. 그렇게 며느리가 되고, 시누이가 되고, 시장에 가면 고객이 되고, 버스를 타면 승객이 되지요. 그냥 저절로 그렇게 됩니다. 그렇게 고정됨이 없이 살면서도 생각은 딱 고정되려고 하니 얼마나 억지스러운 일입니까? 그러니 그 모든 것을 다 싸잡아서 주인공 ! 한 겁니다
무조건적으로 주인공에 맡기십시오
누구나 본성은 다 선하고, 본성 자체는 부처라는 사실입니다
먹구름 뒤에는 맑고 푸른 하늘이 있듯이, 나쁜 생각을 나쁜 줄 아는 마음이
있다는 그것이 더 중요합니다. 나쁜 마음이라는 먹구름은 생겼는가 하면 얼마 안가 사라지게 마련입니다. 아무리 짙은 먹구름이라고 해도 하늘의 본성을 더럽힐 수는 없습니다
그런 위대한 자리가 만중생에게 다 갖추어져 있다는 것은 너무나 미묘하고
감격스러운 진리가 아닐 수 없습니다. 그리고 수행자는 그걸 믿고, 그 자리를 증득하고자 나아가는 이들입니다. 다만 그런 자리가 너무나 위대하기 때문에, 내 속에 그런 어마어마한 불성이 있다고 믿기지 않는 무언지 두려운 중생도
있는 것 같습니다. 좋게 보면 자기의 못나고 어리석고 욕심 많은 것을 잘 알고 있는 겸손한 중생인 것이고, 다른 한편으로 보자면 진리를 못 믿는 못난 사람이겠지요 신이다, 부처다, 뭐다… 하면서 모두 밖으로만 빌고 있으니 이것이 기복입니다."그래서 믿음이 가장 중요합니다
기도란 둘로 보고 낮은 자의 입장에서 비는 것이고, 또 밖으로 찾는 것을
말하지요. 관한다는 것은 평등한 마음으로 비추어 보는 것입니다. 마음
안쪽을 향해서 주인공은 무엇인가? 하고 관합니다 있긴 있는데 스스로 고요할 뿐이기 때문에 무심인 것입니다 무심이 제 스스로 작용을 하게 되는 것
통 밖에 나와야만 통을 굴릴 수가 있다고요. 통 속에서는 통을 굴릴 수가 없다고 말입니다 오직 '우리 모두 함께 복된 길'만을 통해서 나의 참된 행복도, 이 세상의 참된 행복도 성취될 수 있습니다
인간으로 태어나서 그냥 갈 순 없잖아요
일체를 다 녹이는 용광로 - 그 용광로가 우리의 마음 안에 있습니다. 남을 위해 가슴 아파하는 마음, 남을 나보다 더 사랑할 수 있는 마음, 그런 마음의 안쪽에 그 용광로가 있습니다. 그리고 그 용광로를 거쳐 나올 때 던져넣은 모든 잡쇠 부스러기들은 순금이 되어 있게 마련입니다. 영원히 빛이 변하지 않는 순금 말입니다. 삶은 고가 아니라 완전한 자유이고, 영원한 즐거움인 것
세계는 거대한 도량이요, 개개 인생들은 그 도량에서 자기를 향상, 정화시켜 나가는 수도자 입니다 삶이 곧 수행이어야 합니다
땅 밑에는 뿌리가 있습니다. 그 뿌리는 땅을 헤집어야만 볼 수 있습니다.
그러니까 나무는 줄기·가지·잎·꽃·열매만은 아니라는 말입니다.
결국 하나로 돌아가 열반을 증득하는 것이며, 밖으로 둘로 보면 번뇌를 키우는 것입니다 그것이 우선은 자기의 좁다란 이익을 지켜 주는 것 같지만, 오히려
그것이야말로 크나큰 이익, 즉 위대한 부처님의 세계에 동참할 수 있는 길을 막는 악의 근본입니다. 그리고 그렇게 되기 전까지는 우리에게 영원한 안식이란 없습니다. 그러므로 수행자는 어떤 경계를 둘로 보지 말고 무겁고 진실하게 자기 근본 자리에 그것을 되돌려 놓아 나가지 않으면 안 됩니다
행복과 불행의 열쇠는 바로 자기 마음이 가지고 있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