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namelovecomname1004
땅이름 문의 02) 717-3200 배우리 회장
140914 KBS1 방송 2005 땅방 통일로 가는 길 타박타박 북녙 땅 기행 022 `나선
나선1
1. ... 이제는 북한에서도 변방 지역이고 두만강 하류 근처인 나선시로 가 보기로 하죠? 나선시는 함경북도의 큰 도시이긴 하지만 도청 소재지는 아니죠?
함경북도의 도청 소재지는 청진이다.
인구로 보면 나선시가 더 많을지 모르지만, 나선시가 특별시로 되어 있 때문에 행정적으로는 함경북도와 분리되어 있다.
2. 최근 소식을 들어보니까 최근 두만강에 신두만강대교가 올해 안에 착공한다고 하던데, 이 대교가 건설되면 아무래도 그 근처의 나선시가 더 중요한 변방 도시로 자리매김될 것 같기두 하구요.
중국의 훈춘시 당위원회 서기는 최근 신두만강 대교를 올해 안에 건설을 시작할 예정이라고 밝혔다.
중국 훈춘 취안허 세관과 북한 원정리 세관을 잇는 신두만강대교는 길이 920미터, 왕복 4차선으로 건설될 예정이란다.
원정리는 모래 언덕에 천연기념물 해당화 군락을 이루고 있는 두만강변의 마을이다.
현재 취안허 세관과 원정리 세관 사이엔 취안허대교가 있지만 1930년대에 건설돼 낡은 데다 왕복 2차선으로 북중간 물동량이 늘어날 경우 한계가 있다.
훈춘은 두만강 유역에서 북중 무역의 거점 도시로 북한 나진항과는 50킬로미터 가량 떨어져 있다.
3. 나선시라는 시는 광복 전에는 없었지 않나요? 어떻게 해서 이 도시가 태어난 거죠?
광복 전에는 함경북도에 시가 둘 있었는데, 청진시와 나진시였다.
1945년 8월 8일 소련군의 대일 참전과 함께 나진과 웅기는 공습을 받아 12월에 소련군이 조선인민혁명군과 함께 최초로 상륙했다. 조선인민혁명군의 최초의 상륙지인 것을 기념해 1980년대 초에 웅기군은 선봉군으로 개명되었다.
1993년 나진(라진), 선봉시로 개편하였다가 2001년에 나선직할시(라선-)로 변경되었다. 나진시와 선봉군(웅기군)을 합하여 ‘나선(라선)’이란 이름을 붙인 것이다.
2004년 1월 최고인민회의 상임위원회의 정령에 의하여 나선직할시가 폐지되었고, 지역 전체가 함경북도에 소속되면서 나선시로 개편되었다.
2010년 1월 4일 최고인민위원화 상임위원회 결정에 따라 나선특별시로 승격되었다.
현재 행정구역은 20동(관곡동, 남산동, 동명동, 두만강동, 상현동, 송평동, 신안동, 신해동, 신흥동, 안주동, 안화동, 역전동, 웅상동, 유현동, 중현동, 지경동, 창평동, 청계동, 하현동, 해방동), 12리(굴포리, 무창리, 백학리, 부포리, 사회리, 우암리, 원정리, 조산리, 하여평리, 하회리, 홍의리, 후창리)로 구성되어 있다.
4. 나선시는 함경도에 속한다고 하셨는데, 이 함경도라는 곳이 변방 지역이잖아요. 옛날엔 우리의 행정력이 여기까지 미쳤을까요?
이 지역 굴포리 두만강 하구에서 굴포문화로 특징지어지는 구석기시대의 유물들이 대량으로 발굴된 것은 이 시기부터 이 지역에 이미 인류가 생존해 있었던 것임을 확증해 주고 있다.
문헌기록에 의하면 이 지역에 부여, 숙신, 말갈, 옥저 등 부족국가가 있었으며 그 이후에는 고구려의 영역으로 되어 있었다.
고구려가 멸망한 뒤 한때 당나라에 예속되어 있었으나 그 후 발해국이 건립되면서 동경용원부에 소속되었다.
고구려, 발해의 영토였던 이곳은 고려 때는 영토로 편입시키지 못하여 여진족, 거란족 등의 북방 민족에 복속되어 있었다.
그러다가 북방 개척으로 말미암아 조선시대에 이르러 명칭을 가지게 되었다. 그 변천은 아래와 같다.
동북면(東北面), 태조 (1392년 ~ 1413년)
영길도(永吉道), 태종 13년(1413년 ~ 1416년)
함길도(咸吉道), 태종 16년(1416년 ~ 1468년)
영안도(永安道), 예종 즉위년(1468년 ~ 1469년)
영안도(永安道), 성종 1년(1469년 ~ 1498년)
함경도(咸鏡道), 중종 4년(1509년 ~ 현재)
함경도(咸鏡道)는 조선 시대의 행정 구역이다. 철령의 북쪽에 있다고 하여, 관북지방(關北地方)이라고도 한다. 감영 소재지는 함흥부(현 함흥시)였다.
함흥과 경성의 머리글자를 따서 함경도라 하였다.
1896년 함경북도와 함경남도로 분할되었다.
5. 고대에 이 지역은 어떤 부족국가가 있었을까요?
고대에 이 일대는 임둔(臨屯)이라는 소국이 있었던 것으로 추정된다. 기원전 2세기에 위만조선에게 복속되었다. 기원전 108년에 위만조선이 한나라의 한 무제의 침입을 받고 멸망하자, 한사군중 하나인 임둔군이 설치되었다. 그러나 토착민의 반발로 폐지되어 현도군에 편입되었고, 현도군마저 북쪽으로 옮기면서 다시 낙랑군에 편입되고 동부도위(東部都尉)의 관할을 받았다. 그러나 전한, 후한 교체기의 혼란 중에 낙랑군은 동부도위의 영역을 포기하였고, 이후 옥저의 영역이 되었다가 고구려에 복속되었다.
고구려가 멸망한 후에 남부의 안변, 원산 일대는 신라의 영역이 되었고, 나머지는 무주지가 되었다가 발해가 한반도로 진출하여 남경 남해부를 설치하면서 함경도 지역은 신라와 발해의 국경지대가 되었다.
이후 후고구려의 영역이 되었다가, 고려가 후삼국을 통일하면서 남부지역은 고려의 영토가 되었다. 그러나 화주(和州 : 지금의 영흥) 이북은 여진족의 땅이 되었다.
성종 때 10도를 두면서 강원도 지역과 함께 삭방도(朔方道, 삭방은 안변의 별호)가 되었다가 현종 때 5도 양계로 정비하면서 동계가 되었다. 윤관이 여진족을 정벌하고 동북 9성을 쌓으면서 한때 함경도 지역 대부분이 고려의 영토가 되었으나, 얼마 후 동북 9성은 여진족에게 돌려주었다. 1258년에 원나라가 차지하고 쌍성총관부를 설치하면서 1356년에 공민왕이 되찾을때까지 약 100년동안 원나라의 영토가 되었다. 이후 동북면(東北面)이 되었고, 또 강릉삭방도(江陵朔方道), 삭방강릉도(朔方江陵道) 등으로 불리다가 공양왕때가 되어서야 강릉도(강원도)와 분리되어 별개의 행정 구역이 되었다.
140921 KBS1 방송 2005 땅방 통일로 가는 길 타박타박 북녙 땅 기행 023 `나선
나선2
1. 오늘은 나선시의 자연을 중심으로 해서 이야기 해 보죠.
지난 시간엔 이 지역이 고려 때에 우리 행정력이 크게 미치지 못하셨다고 하셨는데, 그렇다면 조선시대에 와서야 이 지역이 완전히 우리 국토로 들어온 건가요?
조선시대가 되어 영토를 북쪽으로 더욱 확장했고, 세종 때 육진을 개척하면서 지금의 함경도의 영역이 완성되었다.
태종 13년(1413년)에 도내 영흥부(永興府)와 길주목(吉州牧)의 이름을 따서 영길도(永吉道)가 되었다. 조사의의 난이 일어나자 1416년에 영흥을 화주목(和州牧)으로 강등하고 함주목(咸州牧)을 함흥부로 승격하여 감영을 함흥으로 옮기고 함길도(咸吉道)로 개칭하였다. 세종 때 화주목이 영흥대도호부로 승격한 이후에도 함길도라고 부르다가, 길주에서 이시애의 난이 일어나자 예종 원년(1468년)에 길주목을 길성현(吉城縣)으로 강등하고 길주 대신 경성도호부의 머리글자를 따서 함경도(咸鏡道)가 되었다. 성종 1년(1469년)에는 함흥에서 반란군을 따라 관찰사를 살해했다 하여 함흥부를 군으로 강등하고, 감영을 다시 영흥으로 옮기고 영흥과 안변의 머리글자를 따서 영안도(永安道)가 되었다.
중종 4년(1509년)에 감영을 함흥으로 옮기고, 함흥을 다시 함흥부로 승격시키고 영안도도 함경도로 개칭하였다. 이후 함경도라는 명칭이 정착되었다.
1895년에 팔도가 폐지되고 이십삼부가 설치되면서 함흥부, 갑산부, 경성부로 분할되어 함경도는 폐지되었다. 1896년에 이십삼부가 폐지되고 십삼도가 설치되면서 함흥부와 갑산부를 합쳐 함경남도, 경성부는 함경북도가 되었다.
2. 지금은 나선시가 북한에서 매우 중요한 시가 된 게 분명한데, 중요 시라 그런가요? 얼마 전 체코 회사가 나선시에 맥주공장의 건설을 지원했다고 하던데요.
체코의 유명 양조장 전문회사가 북한 경제특구인 나선시의 맥주공장 건설을 지원했다고 미국의소리(VOA) 방송이 올해(2014년) 7월 17일 체코 언론을 인용해 보도했다.
체코의 한 일간지에 따르면 지난해 12월 문을 연 나선 맥주공장은 전 세계에 맥주공장 250여 개를 건설한 체코의 양조장 전문회사 '즈부 포테즈'의 지원으로 건설됐다.
즈부 포테즈는 나선에 맥주공장 건설을 위한 기술을 제공하고 전문가를 파견했다.
특히 북한 관계자들에게 체코의 소규모 양조장을 견학시키며 생산하고 싶은 맥주의 종류를 정하도록 했고, 자회사의 기술자를 6개월간 북한에 보내 제조기술을 전수토록 했다. 생산 설비 역시 모두 체코에서 들어갔는데 러시아의 시베리아와 하산을 통해 열차로 운반됐다.
체코 주재 북한 대표부가 체코 맥주를 생산하고 싶다고 직접 연락함으로써 취해진 조치였다.
일본 교도통신도 나선에서 체코 맥주가 근로자들에게 인기가 많다며 맥주의 값은 중국 위안화로 받고 한 잔에 약 8위안(약 1천300원)이라고 소개했다.
이에 앞서 북한은 2000년 영국 양조업체 설비를 평양에 다시 설치하고 나서 대동강맥주를 생산하기 시작했다.
3. 나선시는 해안 도시니만큼 산보다는 들이 많겠죠? 이 지역의 지형을 대충 소개해 주시죠.
이 지역은 대부분이 산지로 되어 있다.
북부와 서부 지역은 함경산줄기(咸鏡山~)에서 갈라진 송진산줄기(松眞山~)와 그 지맥들로 하여 이 지역에서 비교적 높은 산지를 형성하고 있는데, 여기에 송진산줄기의 주봉인 송진산(松眞山, 1,146m), 보로지봉(保老地峯, 816m), 화대산(火臺山, 704m), 저슬령(352m), 마대령(馬待嶺, 467m)이 솟아 있다.
동부 두만강 연안은 주로 구릉성산지와 벌을 형성하고 있는데, 이곳에는 증산봉(甑山峯), 우암산(牛岩山, 265m), 구룡산(九龍山, 266m), 두리봉(179m)을 비롯하여 해발 200m 안팎의 산들이 솟아 있으며 그 아래로 농경지와 목장으로 이용되는 넓은 벌이 있다.
산림자원은 주로 북부와 서부의 산지에 분포되어 있는데, 소나무와 참나무가 주요 수종을 이루고 있다.
4. 해안 도시 나선, 동해안이니까 남한의 강릉이나 속초같은 그런 해안의 모습을 닮지 않았을까요?
해안은 주로 침강해안과 퇴적해안으로 되어 있다. 각이한 특징과 규모를 가진 만들과 단, 끝, 각들이 분포되어 있는데, 대표적인 만은 조산만(造山灣)과 나진만(羅津灣)이다.
앞바다에는 시에서 가장 큰 대초도(大草島)와 북한의 등대섬으로 알려진 알섬을 비롯하여 크고 작은 섬들이 분포되어 있는데, 원 선봉군 지역에만 10개의 섬이 있다.
근해에는 수산자원이 풍부하여 좋은 어장을 이룬다.
5. 여기에 강도 있나요?
영역 내에 동부경계로 유입되어 있는 두만강을 제외하면 큰 하천이 없다.
이 지역의 하류부에서 흐르고 있는 두만강에는 은계섬(隱溪~), 벽신포섬(闢新浦~), 사회섬(四會~), 증산섬(甑山~), 큰섬을 비롯하여 이 강의 물길변화와 퇴적작용에 의하여 이루어진 크고 작은 모래섬이 있으며 어귀에는 삼각주가 이루어져 있다.
두만강 연안과 남동부에는 북한에서 큰 자연호수로 알려진 서번포(西藩浦), 동번포(東藩浦), 흑지(黑池), 만포(滿浦)를 비롯한 자연호수들이 있다.
그리하여 원 선봉군 지역은 호수가 많은 곳으로 알려졌다.
6. 그 앞바다엔 어떤 삼들이 있죠?
앞바다에는 알섬, 붉은섬, 비파도, 안섬, 소초도, 대초도, 괴도, 쌍섬 등이 산재해 있다.
특히 비파도가 유명한데, 그 생김새가 비파라고 하는 악기모양과 같다고 하여 비파도, 파도를 막아주는 섬이라고 하여 비파도, 한쪽 옆으로 보면 신통히도 바닷물 위에 떠오른 고래처럼 생겼다고 하여 고래섬이라고도 한다.
해수욕장 뒷산 기슭에 영황호텔이 있다.
140928 KBS1 방송 2005 땅방 통일로 가는 길 타박타박 북녙 땅 기행 024 `나선
나선3
1. 지난 시간엔 나선시 앞바다에 비파도 말씀을 잠깐 해 주셨는데, 그렇다면 이 비파도가 나선시에서 가장 큰가요?
나선시의 여러 섬 중 가장 큰 섬은 대초도이다.
비파도는 함경북도 나선시 앞바다 조산만에 있는 섬으로, 면적 0.236㎢, 둘레 4.3km, 해발 42m이다. 비파섬이라고도 한다.
구성암석은 화강암이다. 섬의 등마루는 해발 42m 되는 봉우리를 비롯한 4개의 봉우리들이 연결된 산릉선으로 되어 있다.
남쪽 해안과 동쪽 기슭에는 바닷물의 작용으로 이루어진 벼랑이 있는데, 그 높이는 5~15m이다. 소나무, 참나무, 오리나무, 싸리나무 등이 기본 수종을 이루고 있으며 이밖에 한해살이 식물도 많이 분포되어 있다. 뭍과 섬 사이에는 다리가 놓여 있으며 다리로부터 능선을 따라 도로가 뻗어 있다.
-비파도 해수욕장
함경북도 나선시 신해동에 있는 해수욕장. 나선시 중심에서 동쪽으로 13km 떨어진 비파도를 앞에 두고 남쪽으로 전개되어 있는 해수욕장이다.
천연자원 그대로 풍치수려하고 유난히도 물이 맑아 한번 들어서면 나오고 싶지 않은 곳이다. 백사장과 잔교로 연결되어 있는 이 섬은 동서방향으로 길게 누워 있어 얼핏보면 육지와 연결된 반도 같기도 하다.
-비파굴
함경북도 나선시 관곡동 동쪽 비파섬에 있는 굴.
2. 그렇다면 나선시에서 가장 크다는 대초도. 어떤 섬인가요?
나선시 나진만에 있는 섬으로 나선시의 섬들 중 가장 크다.
면적 4.342㎢로 여의도보다 넓다. 여의도처럼 옛날 말을 방목하였다 하여 마섬이라고도 하고, 함경북도에서 가장 큰 섬이라 하여 ‘큰섬’이라고도 한다.
대초도 옆에 소초도가 있는데, 여기도 방목지로 이용되었다.
대초도의 구성암석은 편마암, 현무암, 화강암, 점판암이다. 섬 가운데 솟은 초도산을 중심으로 북쪽 고부진단까지, 남쪽 끝단까지에는 능선이 길게 이루어져 있다. 이 능을 분수령으로 하여 동쪽 경사면은 물매가 급하고 서쪽 경사면은 물매가 느리다.
북서쪽 해안은 거의 평지대로 되어 있고 남쪽, 남서쪽, 남동쪽 기슭은 먼 바다에서 밀려드는 파도의 영향을 강하게 받아 높이 5~30m의 절벽 해안으로 되어 있다.
소나무, 참나무, 떡갈나무, 싸리나무 등이 많이 분포되어 있다.
주변 바다는 수산자원이 풍부하여 좋은 어장을 이루며, 비교적 물결이 잔잔한 대초도의 북쪽 나진만에서는 다시마 생산을 기본으로 하는 바닷가양식이 대대적으로 진행되고 있다.
3. 오랜 옛날에도 이 섬에 사람들이 살았을까요?
이 섬에서 청동기시대와 철기시대 초기의 유물들이 발굴되었다.
여기에서는 여러 개의 집터와 옛 무덤이 발굴되었다. 문화층은 청동기시대층과 철기시대층이 뚜렷이 구분되어 있지 않았으며 문화층에서 드러난 집터 바닥도 그 윤곽이 명백치 않았다.
비교적 잘 남은 집터의 하나는 길이 4.5m, 너비 3.4m 정도의 장방형이었으며 바닥에는 얇게 진흙을 깔았다. 바닥 동남쪽과 서북쪽 변두리에 각각 3개씩의 기둥구멍이 줄지어 있었고 바닥 한쪽구석에 7개의 돌을 네모지게 돌려 놓은 화덕터가 있었다.
괭이, 갈돌, 도끼, 활촉, 투창, 그물추, 찔개살, 끌, 숫돌 등 석기들과 뼈송곳, 뼈끌, 뼈낚시, 뼈바늘, 뼈바늘통, 뼈숟가락 등 수많은 유물들이 나왔다. 그 밖에 한 지점에서는 청동으로 만든 방울과 원판형기, 가락지, 장식품 등이 나왔으며 또 다른 한 지점에서는 쇳조각과 녹아 엉킨 쇳덩어리도 나왔다.
유적에서는 질그릇도 나왔는데 갈색민무늬토기, 붉은간토기가 기본이고 검정간토기도 있다. 질그릇들은 비교적 작은 단지류와 항아리, 보시기, 바리, 대접, 굽다리접시, 시루, 잔 등 종류가 다양하다. 질그릇에는 그어서 새긴 기하학적 무늬와 반원통형의 덧무늬가 새겨져 있다. 유적에서는 굽혀 묻은 늙은이와 젊은이 그리고 1명의 어린이를 포함하여 모두 14개 체분의 사람뼈도 나왔다.
사슴, 노루를 비롯한 산짐승과 개, 돼지, 소 등 가축의 뼈도 나왔고 방어, 명태, 상어, 가자미 등 물고기뼈와 섭, 가리비, 굴 등 수많은 조개껍질이
나왔다. 초도유적의 유물 갖춤새는 두만강유역의 청동기시대 및 철기시대 초기의 문화를 연구하는데 의의가 있다.
4. 그 밖에 어떤 섬들이 또 있는지?
두만강 연안과 해안에는 서번포(西藩浦)를 비롯하여 동번포, 만포, 흑지, 소호, 용수 등의 자연호수들이 있다.
해안선은 복잡한 편으로 반도와 갑(岬), 조선만, 나진만, 이진만을 비롯한 크고 작은 만들과 포구들이 있다.
등대섬으로 알려진 알섬(면적 0.166km², 둘레 3.03km, 해발 66m)을 비롯하여 크고 작은 섬들이 분포되어 있는데, 원 선봉군 지역에만 10개의 섬이 있다.
붉은섬(적도).
함경북도 나선시 굴포리 앞바다 조산만에 있는 섬. 섬을 이루고 있는 암석이 붉은색을 띤 화강암이며 그것이 섬 아래 부분에서 드러나 있어 붉게 보이므로 붉은섬 또는 적도라고 한다. 면적 0.107㎢, 둘레 1.95km, 해발 61m이다. 뭍에서 약 700m 정도 떨어져 있는 이 섬은 남북으로 길게 놓여 있으며 북부에서 남쪽과 동쪽으로 가면서 점차 낮아졌다. 섬 변두리는 굴곡이 심하며 바닷물결의 작용을 받아 바위들이 드러나 있을 뿐 아니라 절벽으로 되어 있다. 섬에는 소나무와 참나무 그리고 약간의 새초(억새)들이 자라고 있다.
섬기슭에서는 여러 가지 바다나물들이 자라며 주변 바다에는 청어, 임연수어, 오징어, 가자미, 섭, 성게, 미역 등 수산자원이 풍부하다. 섬 주변 바다에서 바닷가양식이 대대적으로 진행되면서 붉은섬은 세소어업의 기지로 이용되고 있다. 섬에는 이성계의 선조 익조(翼祖)가 여진족에게 쫓기어 이 섬으로 피신한 일이 있다는 사적을 새긴 어제기적비(御製紀蹟碑)가 있다.
북한의 섬들은 그 이름들이 ‘붉은섬’처럼 순 우리말로 된 것들이 많다. 알섬, 붉은섬, 비파도, 안섬, 소초도, 대초도(큰섬), 괴도, 쌍섬 등.
알섬(난도)
나선시 우암리(우암각) 앞바다에 있는 섬. 위암리에서 남서쪽으로 5km, 선봉항에서 15km 정도 떨어져 있다. 섬이 작아 1970년대에 들어와서야 세상에 널리 알려졌는데, 그 북동부는 벼랑으로 되어 있고 남서부로 경사가 져 있다. 해당화가 알섬 기슭에 많이 분포되어 있다.
옛날 이 알섬에는 알섬봉수가 있었고, 현재 알섬등대가 있다. 바닷새번식보호구로 지정된 이 섬에는 북한 갈매기들 가운데서 수가 가장 많은 괭이갈매기를 비롯하여 흰수염바다오리, 가마우지, 붉은발바다오리, 바다오리 등 여러 종류의 바닷새들이 무리를 지어 모여든다. 특히 번식기인 5~6월에는 ‘새의 알섬’을 이룬다.
5. 나선시의 교통은 어떤가요? 북한에서 매우 중요하게 여기는 도시니만큼 교통 시설을 잘 해 놨을 것 같기두 하구요.
철도가 교통의 큰 핵심인데도 북한의 철도 시설은 말이 아니다. 거의가 일제 강점기에 만들어진 그대로이고 차량도 구식인 데다 속력도 많이 내지 못한다. 전기도 안 들어오는 데다가 단선 철도가 90% 이상이나 된다.
나선 지역에는 평라선철도와 함북선철도 그리고 그 지선들인 두만강선, 승리선, 흥의선 철도들이 개설되어 있다.
평라선은 한반도에 가장 긴 철도로 무려 700km나 되는데, 나선 지역에는 후창역(厚倉驛), 명호역(明湖驛), 나진역(羅津驛)이 설치되어 있다.
함북선에는 사회역(四會驛), 홍의역(洪儀驛), 물골역, 구룡평역(九龍坪驛), 웅상역(雄尙驛), 동선봉역(東先鋒驛), 선봉역(先鋒驛), 관곡역(寬谷驛), 웅라역(雄羅驛)이 설치되어 있으며 두만강선에는 적지역(赤池驛), 두만강역(豆滿江驛)이 설치되어 있다.
나진역은 나선시 동남쪽에 있는 기차정거장으로, 평라선철도와 함북선철도의 종착역이다. 1932년에 함북선철도의 남양~나진 구간이 완공되면서 건설되었다.
함북선에서 두만강선이 동쪽으로 분기되는데, 여기에 국경역인 두만강역이 있다.
함북선을 따라 북쪽으로 가면 탄광으로 유명한 아오지탄광(阿吾地炭礦)이 나온다.
나선시는 해상운수도 발전한 지역으로서 해상운수는 나진항, 선봉항, 웅상항을 통해 진행된다.
나선시 20동 12리의 하나로 역전동이 있다. 시 남부에 위치. 1967년에 나진군 나진읍을 분리하여 나진시에 신설한 동으로서 나진역 역 앞에 있는 동이라 하여 역전동이라 하였다.
도로망은 청진~나선시~우암 간 1급도로가 통과하고 있으며 나선시~경흥, 우암~조산~두만강~홍의~사회~하여평, 굴포~두만강(16km) 간 2급도로가 개설되어 있다.
6. 철도 이야기를 하다가 아오지탄광 말씀을 잠깐 하셨는데, 우리에게도 아주 익숙한 아오지탄광. 이 탄광이 선봉 지역에서 가까운 곳에 있나 보죠?
선봉역(전 웅기역)에서 함북선을 따라 북동쪽으로 조금 가면 아오지탄광으로 유명한 아오지가 나온다.
북한에서는 사상이 불건전하거나 자기네에 이롭지 못한 일을 저지른 사람에게 벌을 주고자 할 때 곧잘 아오지탄관으로 보내곤 했다.
평안남북도나 황해도 등지에서 아오지탄광으로 실려 가는 사람들은 대개 철도를 타고 가게 되는데, 이용하는 철도선은 대개 평라선과 함북선이다. 결국 동해안을 따라 나진 선봉 지역을 지나게 되는 것이다.
141005 KBS1 방송 2005 땅방 통일로 가는 길 타박타박 북녙 땅 기행 025 `나선4
나선4
1. 앞시간에 나선시 근처 아오지에 관해서 조금 말씀을 해 주셨는데, 이 아오지라는 지명이 아주 특이해요. 무슨 뜻일까요?
물이 아울러 '아우라지(아오라지)'로 된 땅이름은 전국에 여러 곳 있다. 강원도만 해도 이 정선군 외에 홍천군 두촌면 철정리의 '아오라지', 같은 군 내면 중방대리의 '아우라치', 철원군 서면 도창리의 '아우라지' 등을 들 수 있는데 모두 물이 아우르는 곳에 위치하고 있다.
'아우라지'와 비슷한 땅이름에 '아울지'와 '아우지', '아우내' 등이 있다. '아오지탄광'으로 유명한 북한의 '아오지'도 두만강의 지류들이 아울러서 붙은 땅이름이고, 유관순 열사의 만세 운동으로 유명한 충남 천안시 병천면의 '아우내'도 물이 아울러서 붙은 땅이름이다.
지금은 '아우르다'가 '어우르다'의 작은말이지만, 이 말은 옛말 '아올다'에 그 뿌리를 두고 있다.
옛말 '아올다'의 부사형은 '아오로' 또는 '아올'이다.
6·25 때 형제들 남하…고향은 강원도
‘누구나 자기가 나서 자라 탯줄을 묻은 고향을 사랑한다. 나도 남한 사람들이 아오지라면 지옥을 상상케 하는 고향 아오지를 사랑한다. 냇가에 흐르는 맑은 물과 산골짝들마다 흐르는 계곡의 노랫소리도 너무 아름답다. 높은 산봉우리와 수려한 산림, 기이한 절벽들이 장관을 이루고 있는 내 고향이다.
북한의 최북단에 자리잡고 있지만 여러 공장, 기업소들로 조화를 이루어 앞을 다투어 솟아있는 굴뚝들을 자랑스럽게 생각하곤 하였다.‘
2. 아오지탄광. 탄광이라면 석탄을 캐는 곳일 텐데, 여기에 석탄이 아주 많이 나나 보죠?
아오지탄광은 함경북도 경흥군에 소재를 둔 탄광.
이곳의 석탄이 옥탄가가 높아 일제 강점기부터 석탄 액화 시설이 있었던 곳이다. 쉬운 말로 석탄으로 석유를 만드는 시설이 있었다는 뜻.
아오지가 널리 알려진 것은 이곳의 석탄액화 공장이 유명했기 때문이다.
북한에서 아오지탄광은 한번 끌려가면 ‘거기서 죽어 나간다, 다시 원래 살던 데로 못 돌아온다’는 말이 있을 만큼 대단히 악명이 높다. 이네 반해 같은 탄광으로 알려진 철산탄광은 그런 악명이 조금 덜하다.
한북남부탄전
대략 길주명천지구대(吉州明川地溝帶)를 축으로 그 부근 지역을 포함한다. 부근의 지층은 신생대 제3기층에 속하는 석회암이 분포하고, 역청탄(瀝靑炭)에 가까운 양질의 갈탄(褐炭)을 산출한다.
이곳의 갈탄은 일반적으로 수분이 많으나 불이 잘 붙고, 매연이 적으므로 가정용 연료탄으로 적당하다. 또한, 기선·기관차의 연료로 환영을 받고, 더욱이 북한지방에 유지·마그네사이트·제지 등의 공업이 시작됨에 따라 점차 그 수요가 증가하여왔다.
특히, 1932년에 영안(永安)에 조선질소계(朝鮮窒素系)의 조선석탄회사의 석탄저온건류(石炭低溫乾溜)의 원료로 이용되고, 또 피치·파라핀·메탄올·포르말린·도료(塗料)·베이클라이트 제조원료가 산출됨으로써 갈탄의 수요량이 크게 증가하였다.
주요 탄광으로는 생기령(生氣嶺)·주을(朱乙)·영안·명천·길주 탄광 등이 있으며 우리나라 갈탄 매장량의 32% 가량을 차지하고, 1942년에 11만 2,000t을 산출하였다.
3. 아오지탄광에는 수용소 사람들을 통제하기 위한 어떤 시설들이 있을까요?
북한에서는 아오지탄광에 구류장, 관리소, 교화소, 노동 교양소, 강제 노동 집결소 등의 피의자 수용 시설을 운영하고 있다.
정치범이나 사상범 등은 특별 분류하여 탄광일대에 관리소에서 가족단위로 구류하여 관리한다. (최근에는 탄광뿐만 아니라 농장에서도 관리소를 운영하고 있는 사례가 늘어나고 있다.)
실제로 함북 일대에 퍼진 관리소의 생활상은 아오지뿐만 아니라 다른 곳도 모두 최악의 상황이다. 게다가 대부분이 탄광 관련 업무에 종사하면서도 제대로 된 의료 혜택을 받지 못하고 있어 진폐증 등으로 고생하고 있다.
아오지는 사람을 죽이는 곳이라기보다는 관리소로서 정치범 수용소쯤으로 이해하는 것이 맞다.
또한 관리소의 크기는 51킬로미터에서 250킬로미터까지이며, 죄질에 따라 완전통제구역과 혁명화구역으로 구분되고, 대략 5천에서 5만명씩 수용되어 있다.
아오지탄광이라는 곳은 현재 존재하지 않는다. 왜냐하면 지난 1994년 아오지라는 지명이 은덕으로 아오지탄광은 육일산(6.13)탄광으로 개명되었기 때문.
4. 아오지처럼 북한에서 정감이 가는 지명이 있을가요?
아선시에 있는 땅이름들 중 좀 특이한 것을 몇 개 말해 보겠다.
너레바위 / 함경북도 나선시 신해동의 북쪽에 있는 바위.
아래골잔등 / 함경북도 나선시 안주동 아래골에 있는 등성이.
첫고래 / 함경북도 나선시 후창리의 남서쪽에 있는 골짜기.
시리미(증산) / 함경북도 나선시 부포리. 함경북도 나선시 부포리의 서쪽 홍의리와의 경계에 있는 산. 시루같이 생겼다. 이 일대에서 가장 높은 산이라 한다.
아래드루 / 함경북도 나선시 부포리의 북쪽 월포 아래쪽에 있는 벌.
초대바위 / 함경북도 나선시 백학리의 북쪽 백학산줄기에 있는 봉우리. 초대바위가 있다.
5. 나선시에 두만강이 있다고 하셨죠? 두만강 근처에서 주목받는 곳은 어디일까요?
두만강동 / 나선시 20동 12리의 하나. 시의 북쪽 두만강변에 위치한 동. 두만강을 사이에 두고 러시아의 연해 변강 하싼과 마주하고 있다.
2000년 8월에 나진-선봉시 선봉군 두만강노동자구가 나선시 두만강동으로 개편되었다. 이 지역에는 두만강 기관차대, 두만강 철길대, 두만강 객화차대, 두만강 침목제재공장 등 주요 업체들이 있다.
교통은 두만강선이 통과하고 있으며 여기에 러시아와의 국경역으로서 철도화물 수송에서 큰 의의를 가지는 두만강역이 설치되어 있다. 도로망은 나진~경원 간 2급도로와 선봉~두만강동 간 2급도로가 개설되어 있다.
두만강노동자구
함경북도 나선시 두만강동 영역에 있던 폐구. 1967년에 나진군 일부와 웅기군을 병합하여 나진시를 신설할 때 웅기군 홍의리의 일부를 분리하여 나진시에 신설한 노동자구로서 두만강을 끼고 있으므로 두만강노동자구라고 하였다. 같은 해에 웅기군이 나진시에서 독립되어 나오면서 웅기군 두만강노동자구로 되었다.
1981년에 웅기군이 선봉군으로 개칭되면서 선봉군 두만강노동자구로 되었고, 1993년에 나진-선봉시 선봉군 두만강노동자구로 되었다가, 2000년 8월에 나선직할시 두만강동으로 개편되었다.
6. 언젠가 들은 이야기인데, 두만강 하구에 있는 우리의 섬 하나가 러시아 땅으로 넘어갔다고 하던데요?
녹둔도라는 모래섬이 있었다. 이순신 장군도 와 있던 곳인데, 이 모래섬은 육지와 닿으면서 지금은 러시아 땅이 돼 버렷다.
승전대비라는 비석이 근처에 있다.
나선시 조산리에 있는 비. 1762년의 유적이다. 승전대비는 임진왜란시기의 애국명장인 이순신 장군이 일찍이 북부 국경연선의 조산만호 겸 녹둔도 둔전관으로 있을 때 성 방비를 강화하고 침입해 오는 여진족들을 물리쳐 나라의 국경을 믿음직하게 지켜낸 사적을 적은 비이다.
1586년 조산만호로 임명된 이순신 장군은 성 방비를 굳게 하였으며 이듬해 가을 대부분 인원이 녹둔도 둔전의 가을걷이에 나간 사이에 불의에 기습한 여진족들의 침입을 불과 10여 명의 인원으로 과감히 물리쳤다.
이어 적들의 소굴을 소탕하여 다시는 그들이 얼씬하지 못하게 하였다. 후세에 이곳 주민들은 여기에 기념탑을 세우고 그와 인접한 산봉우리를 승전봉이라고 하였다.
그 후 이순신 장군의 5대 후손인 이관상이 관북 절도사로 부임되어 와서 탑을 없애고 그 자리에 이 비를 세웠다. 비는 장방형의 받침돌(너비 1.18m) 위에 대리석비몸(높이 1.58m)을 세우고 그 위에 합각지붕의 비머리를 올린 것이다.
비의 앞면에는 ‘승전대’라고 쓰고 뒷면에는 이순신 장군의 당시 공적과 이 비를 세우게 된 내력을 적었다.
7. 지금까지 나선시에 관해서 많은 것을 말씀해 주셨는데, 끝으로 나선시에는 어떤 기관들이 있는지 말씀해 주시죠.
이 지역에는 나진해운대학, 화학전문학교, 농업전문학교를 비롯한 각급 학교들이 있다.
또한 도서관, 문화회관, 노동자회관, 체육관, 수영장, 경기장들이 있고, 나진인민병원, 선봉인민병원을 비롯한 10여 개의 병원과 요양소, 정양소들이 있습니다.
-------------------
산지
이 지역은 대부분이 산지로 되어 있다.
북부와 서부 지역은 함경산줄기(咸鏡山~)에서 갈라진 송진산줄기(松眞山~)와 그 지맥들로 하여 이 지역에서 비교적 높은 산지를 형성하고 있는데, 여기에 송진산줄기의 주봉인 송진산(松眞山, 1,146m), 보로지봉(保老地峯, 816m), 화대산(火臺山, 704m), 저슬령(352m), 마대령(馬待嶺, 467m)이 솟아 있다.
동부 두만강 연안은 주로 구릉성산지와 벌을 형성하고 있는데, 이곳에는 증산봉(甑山峯), 우암산(牛岩山, 265m), 구룡산(九龍山, 266m), 두리봉(179m)을 비롯하여 해발 200m 안팎의 산들이 솟아 있으며 그 아래로 농경지와 목장으로 이용되는 넓은 벌이 있다.
해안
해안은 주로 침강해안과 퇴적해안으로 되어 있다. 각이한 특징과 규모를 가진 만들과 단, 끝, 각들이 분포되어 있는데, 대표적인 만은 조산만(造山灣)과 나진만(羅津灣)이다.
앞바다에는 시에서 가장 큰 대초도(大草島)와 북한의 등대섬으로 알려진 알섬을 비롯하여 크고 작은 섬들이 분포되어 있는데, 원 선봉군 지역에만 10개의 섬이 있다.
근해에는 수산자원이 풍부하여 좋은 어장을 이룬다.
하천
영역 내에 동부경계로 유입되어 있는 두만강을 제외하면 큰 하천이 없다.
이 지역의 하류부에서 흐르고 있는 두만강에는 은계섬(隱溪~), 벽신포섬(闢新浦~), 사회섬(四會~), 증산섬(甑山~), 큰섬을 비롯하여 이 강의 물길변화와 퇴적작용에 의하여 이루어진 크고 작은 모래섬이 있으며 어귀에는 삼각주가 이루어져 있다.
두만강 연안과 남동부에는 북한에서 큰 자연호수로 알려진 서번포(西藩浦), 동번포(東藩浦), 흑지(黑池), 만포(滿浦)를 비롯한 자연호수들이 있다.
그리하여 원 선봉군 지역은 호수가 많은 곳으로 알려졌다. 산림자원은 주로 북부와 서부의 산지에 분포되어 있는데, 소나무와 참나무가 주요 수종을 이루고 있다.
섬
두만강 연안과 해안에는 서번포(西藩浦)를 비롯하여 동번포·만포·흑지·소호·용수 등의 자연호수들이 있다. 해안선은 복잡한 편으로 반도(半島)와 갑(岬), 그리고 조선만·나진만·이진만을 비롯한 크고 작은 만들과 포구들이 많다.
앞바다에는 알섬·붉은섬·비파도·안섬·소초도·대초도·괴도·쌍섬 등이 산재하여 있다.
앞바다에는 시에서 가장 큰 대초도(大草島, 면적 4.342km², 둘레 10.54km, 해발 233m)와
북한의 등대섬으로 알려진 알섬(면적 0.166km², 둘레 3.03km, 해발 66m)을 비롯하여
크고 작은 섬들이 분포되어 있는데, 원 선봉군 지역에만 10개의 섬이 있습니다.
* 웅기군
선봉군(웅기군)
나선시 영역에 있던 폐군. 1981년에 웅기군을 선봉군으로 개칭하였다.
2000년 8월에 나진-선봉시가 나선직할시로 승격되면서 원 선봉군 선봉읍이 상현동, 중현동, 하현동, 송평동으로, 원 선봉군 두만강노동자구가 두만강동으로, 웅상노동자구가 웅상동으로 개편되면서 폐지되었다.
선봉산(웅기산)
함경북도 나선시 상현동에 있는 산. 해발 405m. 송진산줄기의 동쪽 끝부분에서 남쪽으로 갈라진 지맥에 솟아 있다. 웅기산이라고도 한다. 바닷가에 바투 솟아 있으며 상현동 시내에서 보면 험준하고 높아 보인다.
기반암은 두만강암군의 화강암이다. 북쪽 경사면의 물매는 느리고 남쪽과 동쪽 경사면의 물매는 30°이상으로 급하다. 둘레에서 흐르는 큰 하천이 없으므로 골짜기는 적다.
울창한 산림으로 덮여 있는데, 기본 수종은 소나무와 참나무이다. 전반적 지역에 갈색산림토양이 분포되어 있다.
선봉산 남쪽 경사면에는 산봉우리를 오르내리는 길이, 북쪽 경사면에는 선봉에서 웅상으로 넘나드는 길이 있다. 산릉선을 따라 은덕, 나선 일대를 비롯하여 주변의 여러 지역을 다니기에 편리하다.
송평동
나선시 20동 12리의 하나. 시의 중부지역의 동쪽에 위치한 동. 1967년에 웅기군 웅기읍을 분리하여 나진시에 신설한 동으로서 소나무가 많은 벌을 낀 마을이라 하여 송평동이라 하였다.
1968년에 나진시 상현동-중현동-하현동-백학일동 일부와 병합하여 웅기군 웅기읍으로 개편되면서 폐지되었다가, 2000년 8월에 나진-선봉시 선봉읍을 분리하여 나선시 송평동으로 다시 복귀되었다.
나진
함경북도 나선시 동남쪽 나진만에 있는 항구. 나진만의 입구에 가로놓여 있는 대초도, 소초도 두 섬이 천연적으로 방파제를 형성하여 양항으로서의 조건을 구비하고 있다.
대초도 밖에서 최고파도높이는 6m이고 평균파도높이는 2.1m이지만 항만의 파도높이는 영에 불과하다. 나진항은 일제가 중국 동북지방을 강점한 이후에 식민지 약탈의 수요에 따라 건설되었다.
1932년 축항공사를 하여 중계 무역항으로서의 구실을 하였다. 광복 후 나진항은 여러 차례의 확장공사를 통하여 세계적인 수준을 자랑하는 항구로 거듭나게 되었으며 1973년부터는 국제무역항으로 되었다.
항구에는 현대적인 상하선설비, 선박수리기지를 비롯한 물질 기술적 장비가 튼튼히 갖추어져 나라의 해상운수발전에서 큰 역할을 하고 있다. 항의 총부지면적은 38만m², 현재 화물통과능력은 300만톤, 화물보관능력은 10만톤이다.
나선시 행정구역 개편
2000년 8월에 나진-선봉시가 나선직할시로 승격되면서 나진구역과 선봉군이 폐지되고, 원 선봉군 선봉읍이 상현동ㆍ중현동ㆍ하현동ㆍ송평동 등으로 각각 분리되었으며, 원 선봉군 두만강노동자구가 두만강동으로, 웅상노동자구가 웅상동으로 각각 개편되고, 원 나진구역 안주동 일부가 해방동(解放洞)으로 개편되었습니다.
2004년 1월 최고인민회의 상임위원회 정령에 의하여 나선직할시가 폐지되고
지역전체가 함경북도에 소속되면서 나선시로 개편되었습니다.
자연
이 지역은 대부분이 산지로 되어 있습니다. 북부와 서부 지역은 함경산줄기(咸鏡山~)에서 갈라진 송진산줄기(松眞山~)와 그 지맥들로 하여 이 지역에서 비교적 높은 산지를 형성하고 있는데, 여기에 송진산줄기의 주봉인 송진산(松眞山, 1,146m), 보로지봉(保老地峯, 816m), 화대산(火臺山, 704m), 저슬령(352m), 마대령(馬待嶺, 467m)이 솟아 있습니다.
동부 두만강 연안은 주로 구릉성산지와 벌을 형성하고 있는데, 이곳에는 증산봉(甑山峯), 우암산(牛岩山, 265m), 구룡산(九龍山, 266m), 두리봉(179m)을 비롯하여 해발 200m 안팎의 산들이 솟아 있으며 그 아래로 농경지와 목장으로 이용되고 있는 넓은 벌이 전개되어 있습니다.
지층은 여러 지질시대의 암석들로 이루어져 있으며, 여기에는 수정, 이탄, 니켈, 금 등이 매장되어 있습니다.
이탄은 주로 부포리, 굴포리, 백학리, 사회리 등 지역에 분포되어 있다고 합니다.
사회리 일대의 이탄은 현재 채굴 이용되고 있습니다.
기후
나선시는 바다의 영향으로 봄과 여름에 안개가 자주 끼어 날씨가 흐리고 겨울철에 북서풍이 강하게 부는 곳입니다.
첫서리는 10월 6일, 마감서리는 5월 7일경에 내립니다.
동토의 깊이는 나진에서 60cm입니다.
영역 내에 동부경계로 유입되어 있는 두만강을 제외하면 큰 하천이 없습니다.
이 지역의 하류부에서 흐르고 있는 두만강에는 은계섬(隱溪~), 벽신포섬(闢新浦~), 사회섬(四會~), 증산섬(甑山~), 큰섬을 비롯하여 이 강의 물길변화와 퇴적작용에 의하여 이루어진 크고 작은 모래섬이 있으며 어귀에는 삼각주가 이루어져 있습니다.
두만강 연안과 남동부에는 북한에서 큰 자연호수로 알려진 서번포(西藩浦), 동번포(東藩浦), 흑지(黑池), 만포(滿浦)를 비롯한 자연호수들이 있습니다.
그리하여 원 선봉군 지역은 호수가 많은 곳으로 알려졌습니다.
산림자원은 주로 북부와 서부의 산지에 분포되어 있는데, 소나무와 참나무가 주요 수종을 이루고 있습니다.
웅상동과 백학리 일대에는 잣나무가 매우 많이 분포되어 있으며 송진산 일대에는 북한의 특산물로 알려진 선봉피나무가, 우암리에는 천연기념물로 지정된 우암산벚나무가 있다고 합니다.
송진산 일대에서는 송이버섯이 많이 자라며, 동물상은 북부와 서부 산지에 멧돼지, 오소리, 노루가 서식하고 있고, 대초도에 들쥐가 많이 서식하고 있다고 합니다.
앞바다는 수산자원이 풍부하여 좋은 어장을 이룬다고 합니다.
전반적 지역에는 갈색산림토양이, 두만강 연안과 바닷가 일대의 일부 지역에는 충적지토양ㆍ논토양ㆍ진펄토양이 분포되어 있습니다.
* 출처 : 북한지역정보넷( http://www.cybernk.net),
평화문제연구소( http://www.ipa.re.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