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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주현 푸드칼럼니스트&요리연구가
‘오마카세’가 MZ세대를 중심으로 고급 식문화로 자리 잡고 있다. 주로 일식당에서 사용되는 오마카세 개념은 정해진 메뉴 없이 그때그때 가장 신선한 제철 재료나 최고급 특산물 등을 사용해 셰프가 알아서 내주는 특급 상차림이다. 그러다 보니 자연스럽게 가격이 높을 수밖에 없다. 하지만 오마카세 인기는 코로나 팬데믹과 고물가 시대의 장벽에도 아랑곳하지 않고 맹렬히 기세를 이어오고 있다. 빛의 속도로 맛집을 예약해야 하는 일명 ‘스강신청(스시와 수강신청을 합친 신조어)’ 대란과 가성비 오마카세인 ‘엔트리급(인당 7만 원) 오마카세’ 전문점 증가 등 곳곳에서 등장한 새로운 현상들이 오마카세의 인기를 실감케 한다.
오마카세가 유래된 일본의 몇몇 언론은 한국의 오마카세 인기 이면에 ‘과시성 허세’와 ‘사치성 소비’가 깔려 있다고 분석했다. 하지만 현재 한국에 자리 잡은 오마카세 문화는 초창기와 달리 값비싼 일식당에만 한정되지 않는다. 다양한 가격대의 오마카세 전문점이 폭넓게 등장하여 오마카세 문화를 즐기고 싶은 소비자의 부담을 줄여준다. 또한 일식을 넘어서 한우, 스테이크와 같은 한식, 양식 오마카세는 물론 초콜릿, 차, 전통주 등 다양한 음식 장르에 오마카세 문화가 적용되고 있다. 치킨이나 족발 오마카세처럼 기발한 아이디어도 엿볼 수 있다. 기본값만 내면 식당 이모님이 알아서 차려주는 ‘이모카세’와 같은 파생어도 나왔다. 비슷한 용어로 ‘할미카세’ 또는 ‘아재카세’ 등이 있는데, 기존의 손님 연령층이 대부분 중장년층이었다면 지금은 오마카세의 인기에 힘입어 MZ세대가 식당을 차지하고 있다. 폭넓게 변모하는 오마카세 양상을 살펴보면, 본질은 조금 흐려질 수 있지만 맡김 차림 문화의 대중화 흐름만큼은 선명하게 읽을 수 있다.
오마카세 대중화의 가장 큰 원동력은 아무래도 특별한 맞춤형 서비스가 아닐까 싶다. 그날그날 공수된 신선한 식재료로 만든 요리가 손님이 먹는 속도에 맞춰 세심하게 서빙된다. 365일 천편일률적인 음식으로 끼니를 해결하는 식당이 아닌 하나의 특별한 이벤트를 제공하는 셈이다. 술 한 잔, 음식 한 입에도 맛은 물론 특별한 경험을 추구하는 MZ세대는 이 특별한 한 끼에 기꺼이 지갑을 연다. 그들이 소비에 중점을 둔 건, 물건보다 가치가 아니었을까. 이는 고물가 시대에 절약하는 청년들도 많아졌지만, 동시에 프리미엄 시장의 주요 소비층으로 떠오르고 있는 젊은 층의 소비 양극화 현상까지 설명할 수 있다.
여기에 오마카세 방식은 소량 다품종을 지향하는 현재의 트렌드와 정확히 부합한다. 오마카세의 장점은 단품 메뉴와 달리 다양한 음식을 조금씩 맛볼 수 있다는 것이다. 단순히 끼니를 채우는 것이 아닌 특별한 경험으로 요리를 접하고 싶은 미식가들에게 이처럼 매력적인 요소가 또 있을까. 게다가 최근의 오마카세는 음식과 최상의 조화를 이루는 주류까지 제공하는 페어링 문화로도 그 의미가 확장되고 있다. 누구보다 자기 음식을 잘 아는 셰프의 안목이 빛을 발하며 식사 분위기를 몇 배나 더 풍성하게 만들어 준다. 손님들은 평소에 접하지 못한 술이나 새로운 조합을 발견하는 재미를 느끼며 인증샷을 공유한다. 오마카세는 더 이상 식사 영역에 한정되는 것을 넘어 하나의 놀이 문화로도 확장되고 있는 것이다.
오마카세는 ‘타인에게 맡김’이라는 뜻을 갖고 있다. 그 누구보다 개인의 취향이 뚜렷한 요즘 젊은 층과 매칭이 안 되는 조합처럼 보이지만, 이제 오마카세는 일시적인 유행을 넘어 하나의 식문화 유형으로 자리 잡고 있다. 장르와 형태를 뛰어넘으며 종횡무진하는 오마카세 문화를 보고 있자니, 앞으로도 오마카세의 전성시대가 오래도록 지속되지 않을까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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