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월당집 序/이자李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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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아!
그 사람을 생각해도 볼 수 없다면 그의 詩나 文을 읽고 외며
그 필적을 들여다보는 것도 또한 그 요령要領을 얻는 방법일 것이다.
그 시 된 것이 호탕浩蕩해서 밀물인 듯 썰물인 듯[朝夕], 연기인 듯, 구름인 듯, 바람을 몰고 비를 호령하며,
노하여 꾸짖고 기뻐 웃는 것이 모두다 시가 되었건만, 음운音韻에 구속되지 않으면서도 법칙이 문란하지 아니하고,
문구에 애쓰지 아니 하되 큰 보석처럼 더욱 아름다웠다.
天理·人欲과 性·命의 說에 이르기까지 짧은 싯귀로 표현하였지만
털끝만큼이라도 틀리는 것이 없었으니 자신이 경험해서 얻은 것이 아니라면 어찌 그 지경에 이를 수 있겠는가?
어른들에게 들으니 그 사람됨이 외모는 볼품없으며 민첩하고 간이簡易해서 위엄은 적었다.
스스로 이름남이 너무 일렀고 성격 또한 오활하여서 시대의 형편에 용납되기 어려웠던 까닭으로 멋대로 미친 듯이 농담과 익살을 부려가며 시속을 조롱하므로 사람들은 그 모양을 보고는 문득 “경망하고 조급하다.”고 지목하고서 업신여기고 조롱하며 함부로 욕하기를 꺼려하지 아니하였다.
아아! 이것이 그 사람의 낙樂으로 삼던 것인데도 사람들은 그 계획 속에 빠져 있으면서
도리어 그의 잘잘못을 따지려 하니 어찌 크게 우스운 것이 아니겠는가?
그 詩에서도 또한 그러하니 옹알거리고 중얼대는 무리들이
비방하고 헐뜯기를 적지 아니하였지만 그것이 어찌 청한자淸塞子에게 관계되겠는가?
생각하면 그가 발길을 禪門에 들여놓은 것도 또한 연유한 바가 있었던 까닭에 비록 궁한 산골에 깊이 들어가 있으면서도
세상일을 과감하게 잊어버리지 못하고 무릇 높을 지위에 임명된 자 있음을 들으면 곧 여러 날씩 통곡하며 말하기를
“이 백성이 무슨 죄가 있기에 그 사람이 그런 임무를 맡게 되었는가?” 하였다.
좋은 때나 좋은 날을 당할 것 같으면 明水와 향불을 갖추어 가지고 예전 賢人의 무덤을 찾아가 절하든가
►조석朝夕은 조석潮夕과 같은 말. 따라서 여기에서는 ‘그의 詩의 호탕함이 밀물・썰물[潮水]과 같다.'는 뜻.
►간이簡易 예의 범절을 간단히 하고 엄하지 아니한 것.
►명수明水
원래는 구리로 만든 거울에 수증기가 닿아서 물방울이 된 것을 모은 것’이라 하지만 여기서는 깨끗한 물을 말한다.
혹은 높은 석벽石壁위에 올라가 밝은 달을 맞이하여 눈물을 뿌리며 돌아오기를 잊어버리기도 하고
혹은 나무를 깎아 농삿군이 밭 갈고 김매는 형상을 만들었는데 많기가 1백여 벌이나 되었다.
그것을 책상 옆에 벌여 놓고 온종일 숙시熟視하다가 곧 통곡하고는 태워 버렸고 또 어느 산에 들어가 중들에게 火田 갈기를 권하여 가을 수확이 많게 되면 나무를 파서 통을 만들어 시냇가에 벌여 놓고 술을 빚어 넣었다가 바가지를 가지고 권해 마시게 하기를 두어 달이 지나서야 그쳤다.
그가 세상을 분개하고 시속을 미워하며 부지런하고 호방하기가 흔히 이와 같았다.
불경佛經도 또한 환하게 통해 막힘없이 정묘한 것을 발휘하였다.
하루는 東都(慶州)를 지나다가 명확하게 크게 깨닫고 말하기를
“선리禪理는 퍽 깊어서 생각한 지 다섯 해 만에 투명하게 열리는 것을 얻었으나 우리 도[吾道] 같은 것은 본래가 계급이 있어서 건강한 자가 사닥다리를 오르는 것같이 한 발을 들면 곧 한 층을 올라가는 것으로 문득 깨달아 시원하게 열리는 즐거움은 없지만 조용히 지내면서 젖어드는 맛이 있으니 그것은 그 마음속이 허명虛明하여 닿는 데마다 환하게 비추어 참과 거짓, 손과 주인의 분별이 진실로 이마 얼음처럼 녹고 구름처럼 풀리는 것이 있다.” 하였다.
슬프다!
예전에 이른바 이름 있는 중이라 하는 이는 혹 좋은 결과를 말하고 혹 글귀에 뜻을 두어 모두 當世에 이름이 드러나고 간책簡策에 빛을 내었거늘 하물며 우리 청한자淸寒子는 儒家의 행위로서 佛家의 길을 걸어 이치에 밝으면서 불교에도 해박하였고 또 그의 평생이 쓸쓸하고 고단하여 거친 시골에서 외롭게 지낸 것으로 덮어 놓을 수 없는 것이겠는가?
우리나라의 문헌文獻에 믿을 것이 없어서 비록 당세의 이름난 경卿이나 큰 공公으로 훈공과 사업이 빛나게 드러났어도 나라 역사[國乘]에 기재된 것이 아니면 모두 없어지고 남지 아니하였는데 하물며 세상에서 버림을 받아 살고 죽는 것을 기록하지 아니한 청한자淸塞子 같은 이야 말해 무엇하겠는가?
만일 10년이 지난다면 내가 오늘 기록한 것까지 함께 없어질 것이니 한탄하지 않을 수 있겠는가?
내 평생에 불행하게도 헛이름이 실상을 지났고 벼슬도 德보다 넘쳐서 어물어물 허황되게 지냈으니 조금도 쓸모가 없고 또 사기事幾를 먼저 살펴 처리하지 못하여 세상의 비평을 받았지만 다행히 하늘의 도움을 받아 물러나 농촌에 있으며 언덕과 구렁에서 수명을 마치게 되었으니 이것은 나의 전부터의 소원이었으나 남은 죄과罪過가 아직도 무거워 귀신의 침책侵責이 다단多端하여 오히려 남의 콧김을 우러러보고서 기쁘고 슬픈 것을 삼으니 그것을 청한자가 명교名敎의 밖에서 방랑放浪하면서 한가하게 놀며 세월을 보낸 것과 비교할 때 또 어떻겠는가?
정덕正德 신사辛巳 월月 초5일에 한산韓山 이자李耔 차야次野가 쓰다.
►오도吾道 유자儒者들이 유교의 道를 일컫는 말.
►이치에 밝다[明理] 함은 유교의 이치에 밝음.
►경卿 육판서六判書나 이에 준하는 높은 벼슬.
►공公 삼정승三政丞 같은 최고의 벼슬.
►정덕正德 명明나라 무종武宗의 연호年號.
►차야次野 이자李耔(1480~1533)의 자字. 조선조 중종中宗 때의 문신. 호는 음애陰崖·몽옹夢翁, 본관은 한산韓山,
대사간 이예견李禮堅의 아들. 1501년(연산군 7) 사마시司馬試를 거쳐 1504년 식년문과式年文科에 장원,
감찰監察을 지내고 중종반정中宗反正으로 다시 벼슬에 올라 우참찬右參贊까지 올랐으나 기묘사화己卯士禍로 파직되어 음성陰城·충주忠州 등지에서 학문을 닦으며 여생을 보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