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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마서 12장
제 12 장 산 제사
(대 지)
一. 산 제사를 드리라 (1-2)
二. 각자의 본분을 지키라(各守本分) (3-8)
三. 악은 미워하고 형제는 사랑하라 (9-13)
四. 선으로써 악을 이기라(以善勝惡) (14-21)
(본문강해)
一. 산 제사를 드리라(1-2)
. 12:1 그러므로 형제들아 내가 하나님의 모든 자비하심으로 너희를 권하노니 너희 몸을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거룩한 산 제사로 드리라 이는 너희의 드릴 영적 예배니라
그러므로 앞에서 말한 교리적 부분 전체를 두고 하는 말인데 즉 하나님께서 우리를 긍휼의 그릇으로 택하여 주시고, 불러 주시고, 하나님의 의를 입혀 주시고, 그리스도와 연합하여 영혼이 중생하고, 새 생명을 받아 양자가 되게 하셨으므로 성도가 어떻게 하여야 되겠는가 하는 뜻이다.
내가 하나님의 모든 자비하심으로 너희를 권하노니 우리의 구원은 행함으로 받은 것이 아니고 하나님의 무한하신 자비와 은혜로 말미암아 얻은 것이므로 성도는 항상 그 은혜에 감격하여 그 사랑 안에서 권면을 받아 모든 믿는 일을 하여야 한다(고후 5:14).
너희 몸을 성도의 몸은 성령의 전이므로(고전 6:19) 몸으로 하나님을 섬기고 몸으로 제사를 드리고 몸으로 하나님께 영광을 돌려야 한다. 여기 몸은 육신적인 몸만 가리키는 것이 아니고 성령과 중생한 영에게 이용된 마음과 몸을 가리킨다(살전 5:23). 그 이유는 하나님께서 영과 마음을 드리지 않는 물질(육신)만을 받지 않으시기 때문이다(사 29:13). 하나님께서는 성도가 몸으로 산 제사 드리기를 원하고 계신다.
산 제사로 드리라 산 제사는 생명적인 제사요 영이 새롭게 살아나고 자라나는 제사요 그리스도의 생명에 더욱 참예하는 제사이다. 제사에는 산 제사와 죽은 제사가 있다. 가인의 제사는 죽은 제사요 아벨의 제사는 산 제사였다. 아벨은 그 아버지 아담에게서 하나님께 제사드릴 때는 희생의 피를 가지고 제사를 드려야 된다는 하나님의 말씀을 배워서 그 말씀대로 양의 피를 가지고 제사를 드렸기 때문에 하나님께서 받으셨고, 가인은 그 말씀대로 하지 않고 농작물로 제사를 드렸기 때문에 하나님께서 받지 않으셨다. 그러므로 산 제사의 첫째 요건은 하나님의 말씀대로 제사를 드려야 한다. 아무리 값진 제물을 많이 바치고, 굉장한 제사를 하나님께 드렸다고 해도 성경에 맞지 않는 제사는 죽은 제사요 하나님께서 받지 않으시는 제사이다. 그러므로 우리는 성경을 바로 배워서 그 진리대로 하나님께 예배를 드려야 한다. 산 제사의 또 한가지 요건은 영적으로 드리는 것이다. 본 절 하반부에 "이는 너희의 드릴 영적 예배니라"고 하셨다. 요한복음 4:24에도 "하나님은 영이시니 예배하는 자가 신령과 진정으로 예배할지니라"고 했다.
이사야 1:13에 "헛된 제물을 다시 가져오지 말라 분향은 나의 가증히 여기는 바요 월삭과 안식일과 대회로 모이는 것도 그러하니 성회와 아울러 악을 행하는 것을 내가 견디지 못하겠노라"고 했다. 이사야시대 사람들이 양이나 소의 피를 가지고 제사 드림으로 성경에는 맞는 제사를 드렸으나 그 피가 상징하는 그리스도를 믿지 않고 그리스도와의 영적 교통이 없이 의식적으로만 드렸기 때문에 하나님께서 기뻐하지 않으신 것이다. 오늘날에도 성도들이 하나님께 예배드릴 때에 성경에 맞는 예배를 드려야 되고, 또 영적으로 드려야 참 예배가 된다. 산 제사는 하나님께서 기뻐 받으시고, 죽은 제사는 기뻐하지 않으시고, 받지도 않으신다.
. 12:2 너희는 이 세대를 본받지 말고 오직 마음을 새롭게 함으로 변화를 받아 하나님의 선하시고 기뻐하시고 온전하신 뜻이 무엇인지 분별하도록 하라
이 세대를 본받지 말고 산 제사를 드리려면 이 세대를 본받지 말아야 한다. "이 세대"란 진리에 맞지 않는 모든 세상적인 생활 상태를 가리킨다. 이 세대를 가리켜 빌립보서 2:15에는 "어그러지고 거스리는 세대"라고 했으며 마태복음 16:4에는 "악하고 음란한 세대"라고 했고 사도행전 2:40에는 "패역한 세대"라고 했다.
요한일서 2:16에 "이는 세상에 있는 모든 것이 육신의 정욕과 안목의 정욕과 이생의 자랑이니 다 아버지께로 쫓아온 것이 아니요 세상으로 좇아온 것이라"고 했다. 그러므로 이 세대를 본받는 자는 하나님께 산 제사를 드릴 수 없다. 바울은 "세상이 나를 대하여 십자가에 못 박히고 내가 또한 세상을 대하여 그러하니라"고 하셨다(갈 6:14). 바울은 세상을 십자가에 못박고 십자가만 바라보고, 자랑하며 달음박질한 것이다.
오직 마음을 새롭게 함으로 이상근 목사는 "마음(νο ζ)은 영(πνε μα)과는 달리 선악의 분별력·사고력들을 표시한다"고 하셨다. 마음은 영에 속한 것이 아니고 영과 별개의 기관인데 영이 사용하는 기관이다. 마음을 새롭게 하려면 새로운 결심을 한다고 되는 것이 아니고, 성령의 인도를 따라 중생한 영으로 살아야 한다. 또 진리와 영감으로 영적 새 생명의 역사가 있을 때에 마음이 새로워진다. 영의 새로운 역사가 마음에 이루어질 때에 마음이 새롭게 되고 그 영으로 진리의 역사가 있을 때에 마음이 더욱 새로워진다. 데살로니가전서 5:19-20에 "성령을 소멸치 말며 예언을 멸시치 말고"라고 했다. 이것을 멸시하는 자는 마음이 새로워 질 수가 없다. 그러므로 성도는 이 세대를 본받지 말고 영감과 예언의 말씀(진리)을 따라서 날마다 마음이 새로워지며 그 새로운 마음으로 하나님을 섬겨야 하나님께서 기뻐하는 자가 된다.
변화를 받아 이것은 근본적이고 내부적인 변화를 가리킨다. 성도의 변화는 심령으로부터 변화를 받아 전인격과 외부적 생활에까지 변화가 일어나야 된다. 그리고 모든 면에 변화의 역사가 일어나야 한다. 성도가 마음이 새롭게 되어 변화를 받은 후에야 하나님의 뜻을 분별할 수 있다. 성도가 이 세대를 본받으면 마음이 새로워지지 못하고 하나님의 뜻을 분별치 못한다.
하나님의 선하시고 하나님의 뜻은 선하시다는 의미이다.
기뻐하시고 하나님께서 기뻐하실 만한 하나님의 뜻을 찾으라는 것이다. 하나님의 뜻을 바로 찾아서 그대로 행하면 하나님께서 참으로 기뻐하시고 그 사람이 하나님께서 기뻐하시는 자가 된다.
온전하신 뜻 하나님의 뜻은 절대 완전하기 때문에 털끝 만한 결함도 없으시고 영원히 변함이 없으신다. 성도가 그 하나님의 온전하신 뜻을 찾아서 그대로 걸어가야 하나님의 온전하심을 점점 닮아가게 된다(마 5:48).
분별하라 원어 (도키마조)는 시험하여 갈라놓는 다는 뜻인데 우리는 참진리와 비진리를 시험하여 갈라놓고 비진리는 떠나고 참진리를 따라가야 된다. 하나님의 뜻을 찾는 법은 다음과 같다.
첫째, 성경에서 찾아야 된다.
둘째, 신앙 양심에서 찾아야 된다.
셋째, 성령의 감동으로 찾아야 된다.
넷째, 하나님의 섭리에서 찾아야 된다.
이상의 방법으로 하나님의 뜻을 찾지 못할 경우에는 바로 인도할 수 있는 신앙의 선배에게 문의하여서 찾을 수 있다. 성도는 범사에 하나님의 선하시고 기뻐하시고 온전하신 뜻이 무엇인지 잘 찾아서 옳은 것이면 어디든지 따라가되 희생을 각오하고 몸을 바쳐 나가야 된다.
二. 각자의 본분을 지키라(3-8)
. 12:3 내게 주신 은혜로 말미암아 너희 중 각 사람에게 말하노니 마땅히 생각할 그 이상의 생각을 품지 말고 오직 하나님께서 각 사람에게 나눠주신 믿음의 분량대로 지혜롭게 생각하라
바울이 큰 은혜를 받았고 바른 진리를 깨달았으므로 사도의 권위로서 권면하는 것이다.
마땅히 생각할 그 이상의 생각을 품지 말고 모든 성도는 교회 생활에 있어서 자기 분량과 직무와 위치를 바로 알고 그 이상의 생각을 품지 말아야 된다. 그 이상의 생각을 품는 것은 교만이며 교만한 자는 망한다(잠 18:12). 성도가 높은데 마음을 두지 말고 낮은데 처해야 한다. 예수님은 낮아져서 겸손하였고 섬기는 자리에 있었다(마 20:25-28). 시편 131:1에 다윗은 "여호와여 내 마음이 교만치 아니하고 내 눈이 높지 아니하오며 내가 큰 일과 미치지 못할 기이한 일을 힘쓰지 아니하나이다"라고 하셨다. 높은데 뜻을 두고 큰 일하겠다는 생각은 욕심에서 나온 것이요, 허영심이며 교만이다. 그러므로 이러한 사람은 영적 신앙의 자리에서 떠나게 된다.
하나님께서 각 사람에게 나눠주신 믿음의 분량 은사는 자기가 원해서 받은 것이 아니고 하나님의 필요에 따라서 주권적으로 나눠주신 것이다. 그러므로 각 성도가 은사도 다르고 직임도 다르다. 그러므로 겸손한 마음으로 하나님이 자기에게 주신 은사와 분량을 바로 깨달아 그 일에만 충성하고 전체에 대한 일비지역(一臂之力)을 감당하여야 한다. 이것이 지혜 있는 성도이다. 이에서 지나친 생각은 교만이요 마귀의 시험이다. 하나님께서 각 사람에게 은사를 나눠주신 목적은 모든 성도가 서로 협력하고 봉사하여 교회가 장성해 나가도록 하기 위함이다.
. 12:4-5 우리가 한 몸에 많은 지체를 가졌으나 모든 지체가 같은 직분을 가진 것이 아니니 이와 같이 우리 많은 사람이 그리스도 안에서 한 몸이 되어 서로 지체가 되었느니라
바울이 교회에 대한 성도 각 사람을 몸의 지체에 비유하셨다. 한 몸에 많은 지체가 있으나 다 같은 것이 아니고 맡은 바 직임도 다르다. 여러 지체가 다 귀하고 그 모든 지체가 몸을 위하여 다 필요하다.
고린도전서 12:22-24에 약하게 보이는 지체가 오히려 요긴하고, 덜 귀히 여기는 것들을 더욱 귀한 것들로 입혀주며 아름답지 못한 지체는 더욱 아름다운 것을 얻도록 하여 몸을 고르게 한다고 하셨다. 이와 같이 그리스도의 몸 된 교회에 있어서도 필요 없는 성도는 한 사람도 없다. 여기서 한 가지 알아야 될 점은 몸이 지체를 위하여 있는 것이 아니고 지체가 몸을 위하여 있는 것이다. 즉 성도 각자가 전체를 위해서 존재한다. 그러므로 모든 성도는 교회를 위하여 겸손히 자기 분량을 잘 감당하여 몸을 세우도록 힘써야 한다. 하나님께서 성도에게 감당할 만한 사명과 은사를 주셨다. 만일 한 지체가 자기 할 일을 감당하지 못하면 몸이 병이 나거나 불구자가 된다. 또 한 지체가 자기 할 일을 하지 않고 다른 지체의 일을 하려고 하면 제 기능을 발휘하지 못하고 몸에 이상이 생긴다. 그러므로 각 지체가 자기 할 일만 하고, 서로 협력하여 몸을 세워나가는 일에 충실해야 한다. 교회에서도 각 성도가 지기 할 일만 하고 협력하고 희생하여 교회를 세워나가야 한다.
. 12:6 우리에게 주신 은혜대로 받은 은사가 각각 다르니 혹 예언이면 믿음의 분수대로
은사가 각각 다르니 은사의 원어 (카리스마)는 은혜로 주신 선물이라는 뜻이다. 이 은사는 하나님께서 은혜로 주신 것인데 각 자에게 다르게 주셨다.
예언은 하나님의 말씀을 대언하는 것을 가리킨다.
디모데전서 1:18에 "아들 디모데야 내가 네게 이 경계로써 명하노니 전에 너를 지도한 예언을 따라 그것으로 선한 싸움을 싸우며"라고 하였는데, 이 예언은 성경 말씀을 가리킨다. 요한계시록 1:3에 말한 예언도 성경 말씀을 가리킨다. 그릇된 신비주의자들은 자신이 직접 하나님으로부터 계시를 받아 예언한다고 하여 사람의 앞일을 점치는 식으로 말하는데 그것은 자주 잘못된 것이다. 신구약 성경만이 유일한 예언의 말씀이다. 이 외에 더하는 것은 성경에 기록한 재앙을 받는다고 했다(계 22:18-19). 어떤 사람이 예언한 대로 맞았다고 해도 그것을 따라가서는 안된다(신 13:1-3 참조).
믿음의 분수대로 믿음에 맞추어서 하라는 뜻인데 예언, 즉 하나님의 말씀을 증거할 때에 믿음으로 하라는 것이요, 신앙 교리(敎理)에 맞추어서 하라는 것이요, 성령의 인도를 받아서 하라는 것이다.
. 12:7 혹 섬기는 일이면 섬기는 일로 혹 가르치는 자면 가르치는 일로
섬기는 은사를 받은 사람은 낮아져서 섬기는 일을 잘하고 가르치는 은사를 받은 사람은 부지런히 가르치는 일을 충성되이 하여야 한다.
. 12:8 혹 권위하는 자면 권위하는 일로 구제하는 자는 성실함으로 다스리는 자는 부지런함으로 긍휼을 베푸는 자는 즐거움으로 할 것이니라
권위하는 자면 권위하는 일로 교회에서 약한 자나 병든 자, 시험에 든 자를 권위(勸慰)하는 일은 중요하다. 권위하는 은사와 직책을 맡은 자(전도 부인이나 집사나 권찰 등)는 부지런히 권위하는 일을 하여야 한다. 또 거역하는 자를 온유함으로 권면하는 것은 더욱 귀하다(딤후 2:25-26). 권위하는 자는 성령으로 하나님의 말씀을 가지고 권면해 주고 위로해 주며 자기 자신도 말씀으로 권면을 받으면서 하여야 한다.
구제하는 자는 성실함으로 구제하는 자가 불성실하게 성의 없이 하면 마귀가 틈타게 된다. 자기 명예나 유익을 위하여 구제하지 말고 순전한 마음으로 구제하여야 된다는 뜻이다.
다스리는 자는 부지런함으로 하나님의 교회는 다스리는 일과 권징을 부지런히 해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교회가 어지러워지고 마귀가 틈탄다. 그러므로 다스리는 자는 그 일을 부지런히 하여 교회의 순결을 지키고 복음이 발전되며 하나님께 영광이 돌아가도록 해야 한다.
긍휼을 베푸는 자는 즐거움으로 할 것이니라 남을 불쌍히 여기며 도와주는 자가 인색한 마음으로나 부득이(不得已)하여 도와주면 상대방을 불쾌하게 한다. 그러므로 즐거움으로 긍휼을 베풀어 하나님께서 기뻐 받으시도록 해야 한다. 친구에게 인색한 마음으로 떡을 주면 떡도 잃고 친구도 잃어버린다.
三. 악은 미워하고 형제는 사랑하라 (9-13)
. 12:9 사랑엔 거짓이 없나니 악을 미워하고 선에 속하라
성도의 참사랑은 중생한 영에서부터 나온다. 중생한 영의 본질이 진리와 영감으로 되었고, 선하기 때문에 영적 사랑은 진실하며 거짓이 없다(벧전 1:22 참조). 성도가 영적 신앙으로 살 때에 악을 미워하고 선을 좋아하며, 선을 행하게 된다. 그러나 성도가 방심부주의 하여 육신의 정욕대로 살 때에는 선을 떠나서 악을 행하게 된다. 그러므로 성도는 항상 육신의 부패성을 쳐서 복종시키고 영으로 살기를 힘써야 한다. 하나님을 사랑하는 자는 악을 미워한다고 하셨다(잠 8:13, 시 97:10). 또한 악은 모든 모양이라도 버려야 한다(살전 5:22). 사랑의 원인도 선이어야 하고, 방법도 선하여야 하고, 그 결과도 선하여야 된다.
. 12:10 형제를 사랑하여 서로 우애하고 존경하기를 서로 먼저 하며
우애는 형제애(兄弟愛)를 가리키는데 모든 성도는 한 피로 중생한 영적 생명에 이끌려 서로 사랑한다. 그러므로 사랑은 형제애와 같이 친밀한 사랑이다. 성도는 영적 본능에서 나오는 아가페( ) 사랑과 형제 우애적인 필로스톨고이( )의 사랑도 있어야 한다.
존경하기를 서로 먼저 하며 다른 사람이 내게 인사하지 않는다. 나를 멸시한다 할지라도 내가 먼저 인사하고 존경하라는 것이다. 마태복음 7:12에 "그러므로 무엇이든지 남에게 대접을 받고자 하는 대로 너희도 남을 대접하라 이것이 율법이요 선지자니라"고 하셨다.
. 12:11 부지런하여 게으르지 말고 열심을 품고 주를 섬기라
성도가 하나님의 일을 게을리 하는 것은 악한 것이다. 게으른 자는 은혜도 못 받고 자기 직무도 잘 감당하지 못하므로 하나님께 책망을 받게 된다(마 25:26-28 참조).
열심을 품고 주를 섬기라 하나님은 하나님의 일을 위하여 열심 있는 성도와 전심으로 하나님을 순종하려는 성도를 붙들고 당신의 뜻을 다 이루신다(왕상 19:10; 14:8 참조). 성도가 성령을 힘입어 중생한 영으로 살 때에는 하나님의 뜨거운 사랑을 깨달아 하나님께 감사하며 뜨거운 사랑으로 주를 섬기게 된다.
. 12:12 소망 중에 즐거워하며 환난 중에 참으며 기도에 항상 힘쓰며
성도의 소망은 보이는 소망이 아니고(롬 8:24) 보이지 않는 소망, 즉 하나님의 영광에 도달하는 소망이다(롬 5:2). 이 소망이 있는 자는 환난 중에서도 즐거워하고, 거기에서 인내를 배우고 연단을 받아 그리스도의 형상을 이루고 하나님의 영광에 도달하게 된다(롬 5:3-4).
기도에 항상 힘쓰며 기도에 힘쓰지 않으면 기도할 시간과 모든 여건과 환경을 다른 일에 빼앗기게 된다. 마귀는 성도의 신앙과 열심과 봉사와 충성하는 것을 빼앗으려고 하지 않고 기도 시간을 빼앗으려고 한다. 성도가 기도시간을 빼앗기면 참된 신앙과 봉사와 충성은 자연히 상실되고 만다. 기도하지 않고는 마귀를 이길 수 없다(막 9:29). 성도가 기도를 항상 힘써 하지 않으면 자신과 세상과 마귀를 이길 수 없고, 신앙의 달음박질을 하지 못하며 신앙의 진보가 없다. 그러므로 우리는 무엇보다도 기도시간을 귀중히 여기고 시간을 많이 들여서 기도해야 한다. 루터는 하루 두 시간 이상 기도하지 못한 날은 마귀에게 지는 날이라고 했다고 한다. 기도시간에 회개하고 자신을 부인하며 하나님을 앙망하는 자라야 주님이 가까워지고 새 힘을 얻어 독수리처럼 신령한 세계로 올라간다(사 40:30-31). 그 사람은 영적 세계가 점점 발견되고 거기에서 모든 것을 밝히 보고 분별하며 빛 가운데로 걸어가게 된다.
. 12:13 성도들의 쓸 것을 공급하며 손 대접하기를 힘쓰라
성도를 여러 면으로 도와주는 일과 궁핍한 자를 물질로 구제하는 일은 아름다운 일이다. 고린도후서 9:9에 "기록한바 저가 흩어 가난한 자들에게 주었으니 그의 의가 영원토록 있으니라 함과 같으니라"고 했다.
손 대접하기를 힘쓰라 초대 교회 당시는 신앙 문제로 핍박을 받아 사업과 직장을 빼앗기고, 혹은 축출을 당하여 유리하는 성도가 많았다고 한다. 그러한 성도들을 손님으로 영접하는 것은 예수님을 영접하는 것이요, 그들을 영접치 않는 것은 예수님을 영접치 않는 것이 된다(마 25:33-45). 히브리서 13:2에 "손님 대접하기를 잊지 말라 이로써 부지중에 천사들을 대접한 이들이 있었느니라"라고 했다.
四. 선으로써 악을 이기라(14-21)
. 12:14 너희를 핍박하는 자를 축복하라 축복하고 저주하지 말라
핍박하는 자를 축복해 주는 자는 하나님의 나라에서 사는 자요 하나님의 아들의 자격을 만들어 가는 것이 된다. 그러나 원수를 사랑하지 못하고 미워하는 것은 하나님과의 영적 교통이 끊어지고 흑암을 만나게 된다. 스데반이 돌에 맞아 순교할 때 원수 사랑하는 기도를 하지 않았다면 열렸던 하늘 문이 닫혔을 것이요, 천사와 같은 그의 얼굴이 고통과 괴로움의 얼굴로 변하였을 것이다.
마태복음 5:44-45에 "나는 너희에게 이르노니 너희 원수를 사랑하며 너희를 핍박하는 자를 위하여 기도하라 이같이 한즉 하늘에 계신 너희 아버지의 아들이 되리니 이는 하나님이 그 해를 악인과 선인에게 비취게 하시며 비를 의로운 자와 불의한 자에게 내리우심이니라"고 했다.
. 12:15 즐거워하는 자들로 함께 즐거워하고 우는 자들로 함께 울라
성도는 서로 동고동락(同苦同樂)해야 한다. 왜냐하면 성도는 그리스도의 피로 한 몸이 되었기 때문이다. 다른 성도가 당한 일을 자기가 당한 일같이 여기는 체휼(體恤)의 정신을 가져야 한다(히 4:15). 다른 성도가 즐거워할 때에 같이 즐거워하고 울 때 같이 울어주는 것이 성도의 체휼이요 사랑이며 그를 진정으로 도와주는 것이다.
. 12:16 서로 마음을 같이 하며 높은 데 마음을 두지 말고 도리어 낮은 데 처하며 스스로 지혜 있는 체 말라
이 사람의 마음대로 해도 같은 마음이 되지 않고 저 사람의 마음대로 해도 같은 마음이 될 수 없다. 마음을 같이 하는 방법은 피차가 자기 마음대로 하려는 것을 버리고 예수 그리스도의 마음을 품어야 한다. 그리스도 예수의 마음은 자기 영광과 존귀와 권세와 지위를 다 내어놓고 낮아져서 종살이하는 마음이다(빌 2:5-8 참조). 피차 종의 자리에서 상대방을 존경하고 섬기면 마음이 하나로 될 수밖에 없다. 가정에서 부부간에 마음이 하나 되는 것도 같은 원리이다. 부부가 서로 낮아져서 종살이하면 마음이 하나가 되어 화목하고, 다툼이 일어나지 않을 것이며 모든 일이 잘 되어 나갈 것이다.
높은 데 마음을 두지 말고 낮은 데 처하며 낮은 데 처하는 마음이 예수의 마음이요 낮은 데 처하기를 배우는 것이 예수님을 배워 나가는 것이다(마 11:29). 높은 데 마음을 주는 것은 마귀의 시험에 든 것이다(마 4:8-9, 유 1:6). 높은 데 마음을 두는 것은 욕심이요 허영심이다. 욕심 때문에 고통이 들어오고 시험이 들어온다. 그로 인해서 믿음에서 떠나게 되고, 모든 사고가 나게 되고 육신의 병도 생기게 된다. 그러므로 성도는 항상 낮은 데 처해서 자기가 마땅히 행할 바 본분을 다하는 것으로 만족해야 된다.
스스로 지혜 있는 체 말라 마태복음 11:25에 "이것(하나님의 일)을 지혜롭고 슬기 있는 자들에게는 숨기시고 어린아이들에게는 나타내심을 감사하나이다"라고 했다. 또 고린도전서 3:19-20에 "이 세상 지혜는 하나님께 미련한 것이니 기록된바 지혜 있는 자들로 하여금 자기 궤휼에 빠지게 하시는 이라 하였고 또 주께서 지혜 있는 자들의 생각을 헛것으로 아신다 하셨느니라"고 했고, 고린도전서 8:2에 "만일 누구든지 무엇을 아는 줄로 생각하면 아직도 마땅히 알 것을 알지 못하는 것이요"라고 했다.
그러므로 자기가 스스로 아는 것으로 판단하고 자기 지혜로 무엇을 하려고 하면 오히려 하나님의 하시는 일을 거역하는 경우가 많다. 성도는 누구나 겸손하여 하나님의 말씀을 순종하고 많은 기도 중에 하나님의 인도를 받아 자기의 직무를 감당하며 다른 사람을 존경하고 사람을 통하여 하나님께서 하시는 일을 귀히 여길 줄 알아야 한다.
. 12:17 아무에게도 악으로 악을 갚지 말고 모든 사람 앞에서 선한 일을 도모하라
악으로 악을 갚으면 이 세상에 악이 점점 많아지게 되고 자기도 악하게 됨으로 믿음에서 떠나고 하나님이 죄악을 심판하실 때에 다 같이 망하게 된다.
모든 사람 앞에서 선한 일을 도모하라 모든 사람 특히 악으로 자기를 대적하는 자에게까지라도 선을 도모하는 것이 성도의 참 사람이다.
도모하라 미리 생각하고 미리 준비하라는 뜻이다. 마귀의 나라는 악으로 이루어지고 하나님의 나라는 선으로 이루어진다. 그러므로 성도는 모든 사람 앞에 선을 이루기를 힘써야 한다.
. 12:18 할 수 있거든 너희로서는 모든 사람으로 더불어 평화하라
하나님의 나라는 화평의 나라이다. 그러므로 화평케 하는 자는 하나님의 아들이요(마 5:9), 불목(不睦)케 하는 자는 마귀의 자식이다. 성도는 할 수 있는 대로 모든 사람으로 더불어 평화하기를 힘쓰며 원수까지도 화목하여 복음을 전하고 하나님의 나라를 확장해 나가야 한다.
. 12:19 내 사랑하는 자들아 너희가 친히 원수를 갚지 말고 진노하심에 맡기라 기록되었으되 원수 갚는 것이 내게 있으니 내가 갚으리라고 주께서 말씀하시니라
성도가 원심(怨心)을 품거나 원수를 갚으려고 하면 영감(靈感)을 받는 온유한 마음을 상실케 되며 믿음에서 떠나게 된다. 원수는 하나님께서 갚아 주실 것이니 성도는 모든 사람에게 선을 베풀고 화목하기를 힘써야 한다.
원수 갚는 것이 내게 있으니 이것은 신명기 32:35절의 인용이다. 사람이 원수를 갚지 않아도 공의로우신 하나님께서 죄악을 가차없이 징벌하신다.
. 12:20-21 네 원수가 주리거든 먹이고 목마르거든 마시우라 그리함으로 네가 숯불을 그 머리에 쌓아 놓으리라 악에게 지지 말고 선으로 악을 이기라
그리스도께서 원수 되었던 우리들을 위해 죽으심으로(롬 5:8) 하나님의 나라를 이루어 놓으셨다. 성도들도 원수를 사랑하여 원수가 주릴 때에 먹을 것을 주고 목마를 때에 마실 것을 주면서 복음을 전하여 하나님의 나라를 건설해 나가야 한다. 선지자 엘리사 때에 엘리사를 잡으러 온 아람 군대가 이스라엘 군대에게 포위 당하여 도리어 죽게 되었을 때에 아람 군대들을 죽이지 않고 도리어 떡과 물을 주어 그 나라로 돌려보냈다. 이로부터 아람 군대가 다시는 이스라엘 땅에 들어오지 못하셨다(왕하6:14-23). 이스라엘이 선으로써 악한 아람 나라를 이긴 것이다. 선으로써 악을 이기는 것은 그들과 그 가족과 그 민족의 마음을 정복한 것이 된다. 이것이 참으로 승리한 것이다. 선으로 승리하면 진자도 감심(甘心)으로 승복할 것이다. 악을 악으로 갚으면 둘 다 악해진다. 그러면 이 세상에 악이 점점 더 많아지게 되고 죄악이 들어차면 하나님이 심판하신다. 옛 글에 악이 들어차면 하나님이 반드시 죽인다고 했다(惡 諾滿天必誅之 : 악관약만천필주지). 그러나 선으로써 악을 이기면 악이 점점 없어지고 악이 없어지면 하나님께 복 받는 세상이 된다. 성도가 항상 악을 악으로 대항하지 말고 악한 자라도 어떻게 하든지 그 사람을 잘 대접하고 사랑하여 선으로 악을 이기는 자가 되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