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 운 영
흙 담.
디오게네스가 허리를 곧추 세우고 학교 담벼락에 앉아있다, 아무도 주차 할 수 없는
곳에 그가 먼저 주차하고 있다, 멋진 차가 슬며시 차를 대려 하니까 그늘진다고 차를
빼란다,운전자는 그의 단호한 말투에 아무 말도 못하고 차의 꽁무니를 집어넣고
어디론가 가버린다,
그가 배시시 웃으며 도로를 베게 삼아 들어 눕는다, 생각의 차이일 뿐이다, 그가 얼마나
당당해 보이는지 타게한 길레스님을 생각하게 한다,
과거의 우직한 흙담과 하늘을 찌르는 요즈음의 단단한 콘크리트 담 편리한 세월을
만날수록 옛 추억 같은 것을 그리워하게 된다, 오두막집 같은 황토방이나 토속음식을 찾는
것은 어려운 시절에 대한 향수이며 마음의 고향을 잊고싶지 않아서일 것이다, 옛것에만
집착해서도 안되지만 새로운 것에 너무 심취해서도 곤란하다,
하여 비교도 되지 않는 것을 견주고 있지만 문명이 빠르게 달리는 지금 새롭고 편리한 것만
추구하는 시대가 아닌가,청빈하게 살던 농경시대의 한 많은 응어리가 굽실거리고 속이
깊을수록 어쩌면 겉이 더 허수록하게 보일지 모를 우리네의 키 낮은 토담을 보라,움직이지
않아도 움직이는 것보다 더 많은 것을 보고 보여준다, 기껏 백년도 채우지 못하는 잘난
사람들이 우습게 여기는 많은 것들 속에 내 땅이라고 줄을 긋는 행위가 바로 벽의
인색함이다, >
흙담, 죽담, 싸릿대, 탱자나무, 판자 등등 많긴 해도 요즈음은 `금송아지나 행운의 열쇠를
간직하고 있소`라고 온 집 둘레에다, 보안장치 해놓은 저택들이 어디 한 둘인가, 이러니 간
큰 양상군자들이 어찌 침을 삼키지 않으리,보안장치에다 사람 키의 몇 배나 높게 콘크리트
에 철조망의 이중장치까지 설치한 감호소의 무시무시한 담, 남과 북을 땅따먹기 식으로
너는 저기, 나는 여기까지라는 표시로 겹겹의 철조망들, 저쪽에서 넘어오나 여기서 넘어
가냐를 밤낮 없이 감시하는 인력낭비에 쏱아 붓는 경비만 해도 얼만가,
하늘과 바다에 거미줄처럼 보이지 않는 줄을 그어놓는 약속이행은 사고를 미연에 방지
하자는 좋은 구별도 있다,
거추장스럽지 않은 우리네의 흙담을 보라,거부의 몸짓도 없다,시원하기도 하고 푸근하고
때로는 따스하여 그냥 기대앉아 세상시름 다 풀어놓아도 투정 조차 근접하기 어렵다, 애써
다듬지 않아도 있는 그대로가 편한 자태다, 흐르는 세월에 이기는 자 없듯 부스러져 내리는
흙이 미세한 가루가 되어 기약없이 떠나가기도 한다, 누가 오라고 한적 없어도 뿌리내린
풀씨가 제집인양 생명의 등지를 들기도 한다, 비바람 몰아쳐도 좋다 싫다 한마디 없이
너르고 푸근한 가슴 펼쳐놓고 누구든지 와서 쉬고 싶으면 쉬어가라 한다, 흘러갈 곳 없는
물까지 다 머금는다, 쉴 곳 없는 바람을 만나면 고요히 잠재워준다, >
전통은 구속이 아니며 그 자체를 모른 채 미숙한 솜씨로 지어지는 건축의 일부분이
현대의 간편함과 견고해보이는 것에 밀려나는 것 같지만 결코 그것들보다 기술이 모자
라서 훼손 되는 것이 아니라 관리차원에 문제가있을 뿐이다, 좀 허술해 보이는 듯 하지만
삶의 따스함 을 어느 것보다 오래 간직 할 수 있다는 자긍심이 대단하다, 도심에 찌든
심장의 박동을 살래낼 수도 있는 유일한 안식처다,불규칙의 어설픈 솜씨지만 장인(匠人)
의 크고 작은 숨결이 스며 있기에 더욱 고향 같은 존재다,
진흙에 돌을 듬성듬성 엊는 여유, 앉은자리가 처음인양 오랜 세월동안 여유롭고 풍요롭게
지탱해온 것은 자연과 일치하는 순응의 너거러움 때문이다, 담은 안마당의 평온한 영역을
유지해주는 최대한의 경계다, 우주의 작은 모습이기도 한 가정의 보호자가 담벼락이다,
아버지의 가슴팍처럼 든든하다, 남을 헤치지 않으며 고통분담까지 혼자서 감내하는
여유를 보인다, 영역에 단호한 선을 그어놓는다는 것은 어쩌면 욕심일지 모른다, 흙담은
다만 경계선일 뿐 오고 가는 것을 막지 않으며 안과 밖을 단호하게 구분하지 않는다,
허리춤에 오는 흙담 밖으로 보이는 시야가 공간을 초월해 숨통을 틔어준다,
차가운 담이 몸에 닿는다, 뭇 세월의 흔적인지 몰라도 비바람이 들치지않는 곳에는 흙먼지
가 푸석거리고 햇살, 태풍, 장마가 무시로 와 닿는 곳에는 퍼어런 이끼가 예전부터 제자리
인양 수북하다, 무던함으로 풍상을 이겨온 흔적,소용없다 싶어도 인체의 중요한 동맥과
정맥만 있고 미세한 실핏줄이 없다면 사람은 어떻게 될까,
낮은 그림자가 한 뺌도 되지 않는 곳에서 온 곳이 확실하고 갈 곳이 확실한 미물들이 땀을
식힌다, 한 자리를 차지하고 앉으면 몇 세월을 지탱할까, 무심코 한 생명 다하는 인간도
보았을 테고 세기를 넘나들며 환난과 기쁨도 만끽했을 터인즉 세상사 이리저리 흔들리는
꼴을 보고도 입다물어 구업(口業)을 짓지않아 그나마 형태유지하며 여기까지 견디어 오지
않았는가, 어려운 가정 사 본 듯 아니 본 듯하고 담 넘어 오솔길 따라 기다림을 군데군데
뿌려놓아 애틋함을 더해놓는 심술 또한 수준 급이다,
외세의 침략을 저지하려고 선조들이 축성한 곳곳의 산성(山城)들을 보라 ,세월이 좋다한들
누가 이처럼 죽을 힘을 다해 돌 하나에 생명을 투자하겠는가,빈 몸으로 그곳을 오른다해도
`나 죽네` 헐떡거리는데 우리네 조상들은 어깨 죽지가 문드러지는 고통도 생명이상으로
감내 했으리라, 천년이 지난 절터애도 담장만은 시절을 거부하고 있다,
무심한 흙담에 기대 본다, 문드러져도 무너지리라는 불안감이 들지 않는다, 좋은 시대에
거창하게 하늘 뚫는 어마한 공법으로 우뚝 치솟는 담과 건물들이 왠지 불안하다,
비록 손대중하고 먹줄 틩겨서 맞추는 것이 고작이었지만 인명을 헤치며 무너지는 고향의
담들을 본적이 있는가, 시절을 이기다 못해 흙과 먼지 되어 삭아 내릴뿐이지 사람 사는
온기가 절로 느껴진다, 인기척 없는 담 너머에 머지 뿌옇게 앉은 대청마루라도 발견하면
두다리 주욱 뻗어 누워보고 싶은 충동이 일어난다,보호받고 싶은 그 무엇이 향상 도사리고
있듯 담이라는 것이 누구에게도 찜부럭 내지 않는 심성이다,
흙손도 필요 없고 길가에 뒹구는 돌과 황토 흙이면 완벽한 재료다, 손의예민한 감각만이
최고의 재산이다,사람들은 현대적인 것에 머물고 싶어한다,갈수록 최대한의 안락을 소망
하고 있을지도 모른다, 예전에는 가난했기 때문에 지천으로 깔린 것으로 가정을 돌보아
왔다, 정신적으로는 그래도 풍만을 알았던 부자엿다,
임자없는 공간을 잔눈치 보지않고 무심하게 끌어들이는 풍성함, 흙으로 만들어진 것이
많다만 변해가는 세월을 포근하게 감싸주는 흙담들이 곳곳에 건재해 있음이 얼마나 다행
인가, 미세한 금이 가기만 해도 달랑 나자빠지는 시멘트 담과는 비교 할 수 없는 은근과
끈기의 맵고 구수한 맛, 느긋하고 허술해 보이지만 결코 허술 하지 않는 멋스러움, 할말이
없는 긋 서있지만 아무하고도 속 잘 맞추는 잔정스러움,너와 나 가리지 않고 모두를 수용
하는 대범함, 낡고 시대에 뒤떨어진 것처럼 보이는 것이 어쩌면 첨단의 고 차원을 더
포용하고 더 앞서 가는 지도 모른다, 작은 관심 가지면 잊어버리지 말아야 할 것들이
우리 주위에 너무 많다는 사실, 어쩌면 행운이며 고마움이며 우리들의 영원한
고향이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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