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 개요
1) 겉 사람의 마음(카르디아) 너머에 있는 ‘누스’가 열려야 비로소 ‘호라오’ 할 수 있다.
2) 그리스도 예수 자신은 살과 뼈들이 있다고 제자들에게 말씀하신다.
3) ‘호라오’는 내 안에 있는 그리스도 예수를 보고 만지고 체험하는 것이다.
나. 본론
‘이에 저희 마음(누스)을 열어(디에노이크센) 성경(그라파스 : 기록들)을 깨닫게(쉬니에미) 하시고(눅 24:45)’
번역된 내용은 원문에서 나타내고자 하는 의미를 전혀 나타내지 못하고 있다.
‘토테 디에노이크센 아우톤 톤 눈 투 쉬니에나이 타스 그라파스’
‘바른 번역은 이때 저희들이 그 누스(휘장 너머의 세계)를 온전히 열어 그 기록들을 깨닫게 하시고’다.
1) 겉 사람의 마음(카르디아) 너머에 있는 ‘누스’가 열려야 비로소 ‘호라오’ 할 수 있다.
‘성경’으로 번역한 ‘타스 그라파스’는 ‘그 기록들’이다. ‘그 기록들’은 문자가 아니라 원래부터 하나님 안에 있었던 진리다.
앞에 눅 24:45에서 그리스도 예수께서 제자들이 마음(카르디아) 너머의 세계(누스)를 열어 제자들 속에 원래부터 있었던 하나님의 그 기록들(그라파스)을 알게 하신다. 겉 사람의 마음(카르디아) 너머에 있는 ‘누스’가 열려야 비로소 ‘호라오’ 할 수 있다.
‘살’로 번역하고 있는 ‘사르카’는 육신의 눈으로 보고 만져지는 ‘살’이 아니다. ‘속사람’의 살이다. 살과 뼈들은 비유(파라볼레)다. 속사람의 살과 뼈들은 겉 사람의 눈으로 볼 수 없다(‘사르크스’를 다른 문장에서는 육 또는 육체로 번역하였다).
왜냐하면 ‘호 로고스(남성)’는 하나님이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여기 나오는 ‘너희가 보는’으로 번역한 ‘데오레이테’는 깊이, 심도 있게 보는 것을 이야기 하고 있다. 깨달음에 한 걸음 다가간 것이다. 그래서 귀신은 하나님(속사람)의 살과 뼈들이 없어서 보고 만질 수 없는 것이다(비유다).
2) 그리스도 예수 자신은 살과 뼈들이 있다고 제자들에게 말씀하신다.
귀신들은 ‘살과 뼈들’ 곧 ‘호 로고스’ 하나님이 없다. 그러나 그리스도 예수 자신은 살과 뼈들이 있다고 제자들에게 말씀하신다. 그리고 직접 만져 보라고 하신다. 즉 각자 ‘호라오’가 이루어져서 깨어나 만져보아야 한다고 말씀하신다.
눅 24:45절 이후에 제자들이 비로소 자세히 보고 만질 수 있게 된 것이다. 모두 비유(파라볼레)로 되어 있다. 그래서 사람의 눈으로, 세상적인 눈으로는 해석하기가 대단히 어렵다. 속사람의 눈이 열리지 않으면 종교에 빠지게 된다. 종교인들의 눈에 의해 이천년 간 하나님의 그 기록들을 해석하여 왔던 것이다.
3) ‘호라오’는 내 안에 있는 그리스도 예수를 직접 보고 만지는 체험이다.
‘호라오’는 내 안에 나타나 있는 그리스도 예수를 보고 만지고 체험하는 것이다. 바로 나 자신 안에 오신 것을 설명하고 있다. 바로 제자들 자신 안에 왔는데 제자들이 아직 정신을 차리지 못하고 있는 것이다. 몸 밖의 세상(공간)으로 오신 것이 아니다.
그리스도 예수가 바로 제자들의 모습으로 온 것을 제자들이 확실하게 깨닫지 못하고 있는 것이다. 아직까지 ‘데오레이테(심도 있게)’로 보는 것이다. 보긴 보는데 아직도 확실히 보고 만질 수 없는 것이다. 그래서 눅 24:45절에서 깨닫게 해 주시는 것이다. 이 일은 제자들이 마가의 다락방에서 확실하게 ‘호라오’가 이루어짐으로서 알게 된 것이다.
생명의 빛과 그 안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