祭亡妹歌(제망매가)
月明師
譯 : 金相憲
1구 生死路隱此矣有阿(생사로은차의유아)
생사 길은 여기의 있다. 아
삶과 죽음의 길은 여기에 있다. 아
2구 米次肹伊遣(미차힐이견)
쌀 차 소리흘릴 이견
쌀 차 소리흘리는 사람이구나
3구 吾隱去內如辭叱都(오은거내여사질도)
나은 가내여 말소리도
나는 가내여 말소리도
4구 毛如云遣去內尼叱古(모여운견거내니질고)
모여운견 가내니 소리고
모여 울견 가내니 소리고
5구 於內秋察早隱風未(어내추찰 조은풍미)
보다 안추 살피 이르은 바라미
보다 안쪽 살피니 이르은 바람이
6구 此矣皮矣浮良落尸葉如(차의피의 부량 낙시엽여)
이리 저리 부량 떨어질 시 낙엽 같아.
이리 저리 부량 떨어질 때 낙엽 같아.
7구 一等隱枝良出古(일등은지량출고)
한 무리은 가지량 나고
한 무리는 가지에서 벗어나고(갈 곳이 정해짐)
8구 去奴隱處毛冬乎丁(가노은처모동호정)
가노은 곳 모동 부르정
가노은 곳 모동 부르정(삶과 죽음이 결정됨)
9구 阿也彌陀刹良逢乎吾(아야미타찰량봉호오)
아야! 미타찰량 만나부를 나
아야! 미타찰 잠시 만나부를 나
10구 道修良待是古如(도수량대시고여)
도 닦아량 기시고여
도 닦아량 기시고여
삼국유사 도솔가 편에 보면 월명사는 "신라의 왕에게 자신은 범패(불교음악)는 잘 모르고 향가를 할 줄 안다." 아뢰어 도솔가를 지어 두 개의 용오름을 잠재운 부분이 있으므로 월명사는 불교의 승려이기 보다는 선교(우리나라토속신앙)의 박수(남자 무당)임이 증명되고, 본 원문 2구 " 米次肹伊遣(미차힐이견) "을 양주동, 김완진 등은 "예 있으매"에서 "매" 한 글자로 축소해석하거나 아예 해석하지 않는 오류를 범한 것으로 보인다. 쌀 차 소리를 흘리는 사람은 바로 박수이거나 무당이다. 그러므로 월명사는 무당이 순장을 당하거나 당하지 않는 삶과 죽음의 결정이 쌀점으로 결정되는 순간을 보고 이를 안타깝게 여겨 "제망매가"라는 시를 지은 것으로 자신이 박수임을 드러내었다. 양주동과 김완진 등이 월명사를 불교의 승려로 인식한 고정관념의 오류로 인하여 본 원문 2구 " 米次肹伊遣(미차힐이견) "을 양주동, 김완진 등은 "매" 한 글자로 축소해석하거나 아예 해석하지 않는 오류를 범한 것이다. 아니면 조금 비겁하여 불교의 눈치를 보느라고 고의적으로 2구를 다르게 해석하거나 누락시킨 것으로 보인다. 후학들도 이를 추종하는 오류를 범한 것으로 보인다.
향가, 신라의 노래를 음차와 훈차 이두식 조사 등 가장 기본적인 방법으로 쉽게 읽기가 가능한데, 이전의 연구자들이 조선말까지 지방 공문서에서 공식적으로 향찰이 사용되었음을 간과하여 지나치게 어렵게 해석한 것이다. 불교계의 큰 스님은 내가 알기로는 지방향리의 후손으로 향찰로 지방공문서를 작성하던 조선 후기의 사람이다. 정조께서 향찰의 표기가 너무 다양하여 이를 개선하도록 지시한 것으로 보아서 조선말까지 지방 공문서에서 공식적으로 향찰이 사용되었음을 알 수 있다.
이 제망매가의 현대적 해석은 향가, 신라의 노래를 음차와 훈차 이두식 조사 등 가장 기본적인 방법으로 쉽게 읽으며 해석한 것이다. 신라인들도 쉽게 자신의 말과 시를 향찰 문자로 기록하였을 것이므로 현대에서도 쉽게 기록된 향찰을 음차와 훈자, 이두식 조사로 읽으면 되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