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개요
가. 성경의 핵심은 ‘창조’가 아닌 ‘바라(개간)’로서 ‘아포 카타볼레스 코스무’다.
나. 처음 하늘과 처음 땅(겉 사람)에 빼앗겼던 근원(베레쉬트)을 다시 찾아서 하나님 나라를 회복하는 것이다.
다. '나'라고 주장하는 몸과 마음(휘장) 때문에 속사람의 지성소가 열리지 않는다.
2. 본론
가. 성경의 핵심은 ‘창조’가 아닌 ‘바라(개간)’로서 ‘아포 카타볼레스 코스무’다.
성경에서 말씀하는 십일조와 헌물은 우리의 본래 참마음(속사람)을 겉 사람(眼耳鼻舌身意)에게 빼앗긴 것을 되찾아 와서 하늘의 양식(레헴)을 먹고 포도주에 취해서 아들로 회복되어 자신을 하나님께 드릴 수 있게 된다. 이를 비사와 비유를 통해서 말씀하고 있다. 성경 전체의 핵심 내용이다.
양식(레헴)을 먹고 포도주에 취하려면 마음을 해체(개간)하여 그 속성을 알아야 한다. 번뇌 망상과의 전쟁이다. 이 전쟁에서 반드시 이겨야 양식과 포도주를 마실 수 있다. 아브람은 그의 전 생애를 통해 이 전쟁을 이어간 사람이다.
나. 처음 하늘과 처음 땅(겉 사람)에 빼앗겼던 근원(베레쉬트)을 다시 찾아서 하나님 나라를 회복하는 것이다.
이 내용은 창세기 1:1의 내용에서 시작하여 계시록까지 이어진다. 겉 사람인 처음 하늘(핫사마임)과 처음 땅(하아레츠)에게 빼앗긴 것을 이들로부터 근본(베레쉬트)을 되찾아 오는 내용이 창 1:1에서 부터 시작하여 계시록까지 말씀이 전개된다.
원래 나의 것을 이들로부터 빼앗아 와서 하늘의 양식(레헴)과 포도주를 먹여서 거듭나게 하는 것을 ‘창조하다’로 오역한 ‘바라(개간)’다. 성경 첫 구절부터 이 내용을 이야기하고 있으며, 새 언약에서는 십자가의 사건으로 마무리하신다. 성경 전체를 통틀어서 계시록까지 흘러가는 핵심 내용이다.
그러므로 ‘창조하다’로 오역한 ‘바라(개간)’는 ‘아포 카타볼레스 코스무’이며, 십자가에 달리심이다. 십자가 사건은 마음을 온전히 초월하는 내용이다.
우리의 본래 참마음(속사람)을 겉 사람(眼耳鼻舌身意)에게 빼앗겼던 것을 되찾아 오면 마음(휘장) 너머에 원래부터 있었던 ‘베레쉬트(근본)’가 드러나게 된다. ‘베레쉬트(근본)’가 원래부터 나(예수 차원)의 성품이며, 나의 근본이다. 베레쉬트(근본)가 온전히 드러날 때까지는 수많은 내면의 전쟁을 치르는 과정이 따르게 된다.
다. '나'라고 주장하는 몸과 마음(휘장) 때문에 속사람의 지성소가 열리지 않는다.
‘나’라고 주장하는 몸과 마음(휘장) 때문에 나(예수 차원) 자신의 속사람(지성소)이 열리지 않는다. 그러나 빼앗긴 속성을 되찾아 오면 ‘나’라고 주장하던 마음이 허상임을 깨닫게 된다. 허상인 마음(휘장)을 자세히 들여다보면 그 마음(휘장) 너머에 근원의 하나님이 보이기 시작한다.
이는 몸 밖에 있는 예수 그리스도를 기다리는 것이 아니라 내면의 몸과 마음을 개간해야 한다. 이를 계속 이어가려면 지성소로부터 나오는 양식(레헴)과 포도주를 마셔야 한다. 작은 것에서부터 이어가야 한다. 왜냐하면, 이것을 놓치는 일이 발생하기 때문이다. 이 이야기가 창세기를 비롯하여 바울 서신서에도 자세히 나온다.
단계별 과정을 거치면서 계속해서 떡(레헴)과 포도주를 마셔야 한다. 그러므로 계속하여 십일조와 헌물을 드리는 일은 쉬운 일이 아니다. 몸과 마음을 해체하고 자신을 자세히 드려다 볼 때만 이 마음이 허상임을 알게 된다.
그래야 참 십일조를 드리게 되는데 이것을 바치게 되면 온전한 하나님의 아들이 된다. 이렇게 되려면 반드시 수많은 과정이 따르게 되는데 길고도 험난한 여정이다. 예수 그리스도께서 마지막에 십자가 위에서 제물이 된 것처럼 ‘나’라는 것이 온전히 끝날 때만 완성되는 것이다.
어쨌든 아브람은 소득의 십일조를 드린 적이 없다. 그러나 아브람이 떡(레헴)과 포도주를 멜기세댁으로부터 받음으로서 아들로 변화되어 ‘아브라함’이 되면서 스스로 제사장이 되어 자신의 속(속사람)에서 나온 하나님의 것인 이삭(생명의 빛)을 번제로 드린 것이 아브라함 자신이다.
생명의 빛과 그 안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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