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성비만큼, 어쩌면 가성비보다도 '시성비'를 따지는 세상. 하루를 얼마나 쪼개 살았는지가 '내가 열심히, 잘 살고 있는지'를 판단하는 기준이 되기도 한다. 분초 사회. 우리는 분과 초 단위로 인생을 살아간다.
"갓생과 과로는 한 끗 차이야"
분초 사회를 살아가는 현대인답게, 분초 인간의 면모를 선보이며 여느 때와 다름 없이 갓생 의지를 불태우는 내게 친구는 갓생과 과로의 차이를 물었다. "본인이 감당할 수 있으면 갓생, 감당할 수 없으면 과로 아닐까?" 순발력을 발휘해 대답한 것 치고는 제법 마음에 드는 대답이 나왔다. 그 날 우리의 대화는 '갓생과 과로는 한 끗 차이'라는 결론과 함께 일단락되었지만 '갓생과 과로의 차이가 무엇이냐'는 친구의 질문은 오래도록 내 머릿속에 머물렀다.
갓생. 부지런하고 타의 모범이 되는 삶을 뜻하는 '갓생'은 우리 삶 속 깊숙이 자리해 더 이상 낯설지 않은 개념이 되었다. 갓생 여부를 판단하는 명확한 기준이 존재하는 것은 아니지만, 대개 본업은 기본이요, 운동과 독서, 자신만의 취미생활, 소소한 일탈까지, 무엇 하나 빠지지 않고 달성해가는 이들에게 '갓생' 타이틀이 주어진다. 갓생은 육각형 인간이 되기를 갈망하는 현대인과 분초 사회가 결합한 결과물인 셈이다.
바쁘게 살면 뭔가 뿌듯한 게 있다. 생산성이 높고 삶에 적극적으로 있다는 자부심을 느끼기도 한다. 하지만 유의할 점도 적지 않다. 노출되는 정보량의 엄청난 팽창성과 정보가 들이닥치는 속도를 아무 대가 없이 얻는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도둑맞은 집중력'의 저자 요한 하리는 우리는 모든 차원에서 '깊이'를 희생하고 있다고 진단한다.
나 역시 갓생이라는 단어를 달고 살았다. '나 오늘부터 갓생 산다' 친구들에게 선언하는 것은 물론, 스스로 나태해졌다고 느낄 때면 열심히 사는 사람들의 일상을 엿보며 마음을 다잡았다. 시간이 무척 빠르게 흘러간다는 사실을 실감한 이후로는 앞으로 더욱 바쁘게 살아야겠다고 다짐하기도 했다. 그래서일까. 속도를 위해 깊이를 희생하고 있다는 저자의 이야기가 내게 여러 생각을 하게끔 했다.
시간이 무엇보다 소중한 자원이라고 할 때, 가장 아까운 시간은 '실패한 시간'일 것이다. 어떤 16부작 드라마를 끝까지 보게 됐는데 어정쩡한 결말로 재미없게 끝난다면 그보다 허무한 일은 없다. 무엇보다 16시간 넘게 들인 시간이 너무 아깝다.
하루를 촘촘히 살아가는 우리에게 '실패한 시간'은 너무도 아깝다. 줄 서서 사 먹은 빵이 맛 없을 때, 오래 고민해서 산 옷이 마음에 들지 않을 때, 큰 기대를 품고 신청한 수업에서 교수님이 정치 이야기만 들어놓을 때, 기껏 할애한 시간이 아까워진다. 내가 들인 시간 대비 만족스러운 결과를 얻지 못했을 때, 우리는 이 시간을 '실패한 시간'이라고 느낀다. 그래서일까? 열심히 작성한 기획안이 공모전에서 수상하지 못했을 때, 반쯤 감긴 눈으로 노트북 자판을 두드린 수많은 밤을 아깝다고 느끼는 사람들이 많아지고 있다. 그러나 눈에 보이는 성과만으로 성공과 실패를 가른다면, 삶의 절반은 실패한 시간일 것이다.
인생사 새옹지마. 본디 삶의 길흉화복은 쉬이 예측할 수 없다. 어제의 행운이 오늘의 불운이 될 수도, 오늘의 불운이 내일의 행운이 될 수도 있는 것이 인생 아닌가. 당장 눈 앞의 결과에 연연하기보다, 그 너머를 보아야 한다. 결과와 무관하게, 그 과정 속에서 얻을 수 있는 것들이 있기 때문이다. 삶의 매 순간을 꼭꼭 씹어 음미한다면, 실패는 더 이상 실패가 아닐 수 있다.
각종 소셜미디어를 통해 '만인이 만인과 비교되는' 시대를 그들은 살고 있다. 언제 어디서 나를 지켜볼지 모르는 익명의 타자들과 무한 경쟁을 벌여야 하는 젊은이들의 삶의 무게는 그 어느 때보다도 무겁다. 완벽해 보이는 타인과의 끊임없는 비교를 통해 육각형의 자아를 추구하는, 적어도 육각형으로 보이고자 노력하는 육각형인간 트렌드는 그 압박을 견뎌야 하는 활력이자 절망이면서 하나의 놀이다.
뒤처지고 싶지 않다는 불안감은 우리에게 깊이보다 속도를 택하게끔 만든다. 그러나 음식도 급하게 먹으면 체하기 마련이다. 결국 갓생의 목표가 내 인생을 잘 꾸려나가기 위함이라면,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내' 삶을 온전하게 향유하는 자세일지도 모른다. 타인과 비교하지 않는, 온전한 나만의 삶.
갓생과 과로는 한 끗 차이다. 깊이를 희생당한 갓생은 과로나 다름없다.
첫댓글 가영이의 고민점이나 생각지점은 유독 저와 닮은 구석이 많다고 느낄때가 있습니다. 조금 앞의 시간을 살아가기에 제가 이미 먼저 지나쳐간 것도 있지만요. 그래서 늘 글을 읽을 때면 반갑네요.
저는 스스로의 삶에 갓생을 붙이며 지내진 않았지만, 주변에서 갓생으로 불러 준 일들이 더 많았던 것 같아요. 예전엔 이정도는 별 것도 아니었기에 스스로 명칭하지 않았다면 이제는 삶의 여백을 많이 두는 편으로 바뀌었기 때문에 멀어진 단어인 듯 합니다.
올해는 저도 실패를 조금 더 해보도록 할게요, 의미있게:)
나.......................... 깊이를 희생당한 갓생을 살려는 사람 같아서 글을 읽는 내내 찔렸잖아...
뒤처지고 싶지 않다는 불안감을 멈출 수 없는데, 이걸 스스로 다룰 수 있을까? 싶었어요. 제도적인 변화가 어렵다면 타인과 비교하지 않는 마인드를 재정립해야 하는 것일까? 하는 지점에서요. 글에서 짚어준 모든 지점에 공감하지만, 그럼 이러한 제도와 세상 속에서 누군가는 그것에 편승해 앞서나가는데 혼자 뒤처지면서도 그런 스스로를 견딜 수 있을까? 싶기도 한 것 같아요. 으아아앙...... 다같이 휴식했으면.
실패한 시간이라는 게 있을까요. 내 의지대로 흘러가지 않고 제멋대로 흘러가는 시간인데 그게 성공인지 실패인지 뭐가 결정할까요. 전 실패한 시간은 없다고 생각해요. 결과를 보고 그 결과를 보기 전 시간을 되돌아보면 실패했다고 느낄 수도 있지만 그 과정을 생각해보면 마냥 실패하지는 않았을 걸요. 맛있는 빵을 기대하며 어린 아이같이 설레하고..무언가 기대하는 시간도 나름 소중하지 않을까요. 아무 것도 안 하고 시간을 낭비했다는 생각이 들지라도 온전히 나를 위한 휴식 시간이라고 생각하면 실패한 시간이 아닌 나름 값진 시간이었을 수도 있고요.
제멋대로 흘러간 시간인데 왜 실패했다는 절망감은 우리가 느낄까요. 우리가 통제할 수 없는 시간의 흐름에 그냥 몸을 맡기며 살아가는 것도......(근데 저도 이게 잘 안되긴 하더라고요^^ 시간아 조금만 천천히 가주면 안되겠니)
이전부터 ‘갓생’이라는 단어가 저는 마음애 들지 않았는데요. 어느 순간부터 ‘갓생’을 사는 것만이 의미 있는 삶이라고 규정된 것 같아 각 개인마다의 삶의 가치가 변질된 것 같아요. 갓생을 강요하는 사회가 나아가 육각형 인간을 요구하는 흐름은 어찌보면 자연스럽지만, 가영이 글처럼 갓생과 과로는 한 끗 차이가 될 수 있기에 삶의 온전하게 향유하는 개개인의 방법이 필요한 것 같아요
저도 사실 갓생러가 되고싶었는데요… 갓생러가 되고싶을수록 힘들어지는건 나 자신이고 배터리가 빨리 닳는다는 느낌을 받은적이 많았어요. 그래서 요즘에는 뭔가 많이 줄이려고 노력을 해봤는데, 또 그 불안감이 뭐라고 쉽게 놓여지지도 않더라고요🥲 갓생타이틀에 목매지 않고 저 스스로가 무너지지않을정도의 선을 빨리 찾아서그 안에서 일하고 놀고 공부하고싶어요ㅠ.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