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의 시조인 박혁거세왕께서 탄강하신 곳이다.
[三國史記]와 [三國遺事]에 시조 박혁거세의 탄생 설화는 다음과 같이 기록 되어 있다. 기원전(紀元前) 69年 신라의 육부(六部) 촌장들이 어느날 알천(閼川) 언덕에 모여 나라를 다스릴 군장을 추대할 것을 의논하고 하늘에 제례를 올리던 중, 고허촌장 소벌도리(蘇伐都利)가 우연히 양산(陽山: 지금의 경주 남산) 밑의 나정(蘿井:위 사진)이란 우물이 있는 곳을 바라보니 울창한 숲사이에서 오색채운의 빛이 나서 그곳에 가보기 알 같기도 하고 박같기도 한 포(胞)가 있어 헤쳐보니 그 속에서 사내 아이가 나왔다. 그 아이를 받들어 동천(東泉)에 목욕시켜 길러 기원전 57年(전한 효선제 오봉원년)에 신라의 초대왕으로 삼아 위호(位號;작위와 명호)를 거서간(居西干)이라 하고, 이름을 혁거세(赫居世)라 칭했다고 전한다.
경주나정
이곳은 신라건국시조 박혁거세왕께서 태어난 전설을 간작하고 있는 유서 깊은 곳이다. 신라라는 나라가 되기전 경주 일대는 진한의 땅으로 6부촌장이 있어 6개 구역으로 나누어 다스리고 있었는데, 그 중 고허촌장인 소벌도리공이 기원전 69년에 이곳 나정 우물가에서 흰말 한마리(백마)가 무릎을 꿇고 있는 것을 발견하고 가서 붉은 빛이 나는 큰 알 하나를 얻게 되었다. 이 알속에서 사내아이가 태어나 하늘이 보낸 것으로 알고 잘 길렀다.
이 아이가 13살이 되던 해인 기원전 57년에 6부촌장이 모인 자리에서 추대되어 왕위에 오르게 되니, 이분이 곧 신라 제1대 임금이며, 나라이름을 서라벌이라 했고, 왕이 박과 같은 곳에서 나왔다는 점과 태양처럼 밝다는 뜻에서 성을 박이라 하였고 한자로는 朴으로 표기하였으며 아울러 밝게 세상을 다스린다는 뜻으로 이름을 혁거세라 하게 되었다고 한다. 이 곳에 세워져 있는 비는 조선시대인 1802년에 세운 것으로 박혁거세왕을 기리기 위해 그 내력을 새긴 유허비이다.
天馬가 오른 자리에 王이 내려리셨더라.
소설가 최수철의 작품에 『말(馬)처럼 뛰는 말(言)』이 있거니와, 말은 '뛰다' 동사와 밀접한 관계가 있는 짐승이다. '뛰기'에는 두 가지가 있다. '쾌주'와 '도약'이 그 것이다. 말은, 잔등에 탄 인간에게 쾌주와 도약의 경험을 가능하게 한 거의 유일한 짐승이다. 하지만 이 짐승에 대한 인간의 요구는 여기에서 멈추지 않는다. 쾌주(수평 이동)와 도약(수직 이동)을 가능하게 한 이 짐승을 통하여 인간은 비상(차원이동)을 꿈꾼다. 신화에는 그 꿈이 이렇게 그려져 있다. 우리 귀중한 『삼국유사』는 중국 삼황오제(三皇五宰) 신화를 이렇게 시작하고 있다. "제왕이 마침내 일어날 때는 반드시, 부명을 얻고 도록을 받게 되어 여느 사람고 다른 데가 반드시 있는 법이다. 그래서 하수에서는 하도, 즉 용마의 등에 그려진 그림이 나왔고, 낙수에서는 낙서(落書), 즉 진기하고 이상한 거북의 등에 씌어진 글이 나옴으로써 성인이 일어났던 것이다."
"용마"의 등에 그려진 그림(팔쾌) 이라는 표현이 우리 시선을 확 잡아 당긴다. 용마는 하늘을 나는 용, 하늘을 나는 말의 모습과 능력을 아우르는 천마다. 이 천마의 하강을 통한 예고, 그것이 바로 성인 태호복희씨의 천손하강(天孫下降)이다.
『삼국유사는 박혁거세 탄생 신화를 이렇게 전하고 있다. "진한 땅에는 옛날에 여섯 마을이 있었다... 기원전 69년 3월 초하루 6부 촌장들이 각각 자제들을 데리고 다 함께 알천 둑에 모여 의논했다. '우리들이 위로 백성 다스릴 만한 임금을 가지지 못하고 있어 백성들이 모두 방종하여 제멋대로 놀고 있으니 덕이 있는 사람을 찾내내어 임금으로 삼아 나라를 창건하고 도읍을 정해야 하는 것이 아닌가?' 그제서야 모두 높은 곳에 올라가 남쪽을 바라보니 양산 밑 '나정'곁에 이상한 기운이 번개처럼 땅에 드리우더니 웬 흰말 한 마리가 무릅을 끓고 절하는 시늉을 하고 있었다. 6부 촌장들이 달려가 살펴보니 보라빛 알 한개가 놓여 있었다. 말은 사람들을 보자 울음소리를 길게 뽑으면서 하늘로 올라갔다. 알을 쪼개니 형용이 단정하고 아름다운 사내아이가 있었다. 놀랍고도 이상하여 아이를 동천에서 씻기자, 아이 몸에서 광채가 나고 새와 짐승들이 춤을 추어 천지를 진동케 하고 해와 달이 맑고 밝았다. 그래서 이름을 '혁서세왕'이라고 하고 왕위의 칭호는 '거서간'이라고 했다."
경부고속도로를 통해 경주로 들어가면 탑정동 초입에 오릉이 나온다. 오릉으로 들어가지 말고 오른쪽으로 방향을 ?어 야트막한 구릉을 오르면 조그만 사당이 있다. 나정이다. 아득한 옛날에는 우물이 있어나 싶게 황량하다. 나정은 신라정이라고도 불린다. 신라정이라면 '나정(羅井)'이어야 할 터인데도 어찌된 일인지 지금가지도 '나정(羅井)'으로 불린다. '나(羅)는 댕댕이 덩굴.담쟁이 덩굴을 뜻하는 글자다. 다른 나무의 몸통을 감고 하늘을 향해 기어오르는 식물이다. 신화에 따르면, 이 샘가에는 "흰말 한 마리가 무릎을 꿇고 절하는 시늉을 하고 있었"고 말 앞에는 "보라빛 알 한개가 놓여 있었으며, 사람들을 보자 말은 울음 소리를 길게 뽑으면서 하늘로 올라갔다." 하늘로 날아올라간 말은 천마다. 바로 이 천마의 천계 상승으로 예고되는 것, 그것이 바로 혁거세의 천손하강이다.
이 대목에서 나는, 그리스 신화에 나오는 날개 달린, 따라서 하늘 날기를 자유자재로 하는 천마 페가소스를 연상하지 않을 수 없다. 페가소스는, 영웅 벨레로폰으로 하여금 불뿜는 괴물 키마이라를 죽이는데 결정적인 공로를 세운 천마다.
우리 신화에 등장하는 말의 샘, 하얀 말이 무릎을 꿇고 있는 샘.....이 대목에 이르면 나는 페가소스의 이름을 파자 풀이하고 싶다는 유혹을 견딜 수 없어진다. '페가소스'라는 이름은, '샘'을 뜻하는 고대 그리스 말 '페게'와 밀접한 관계가 있다. 페가소스가 발길질로 판 것으로 전해지는 샘은 '히포크레네'라고 불린다. '말의 샘'이라는 뜻이다. 히포크레네는 예술의 여신들, 즉 무사이(뮤즈들)의 본거지인 헬리콘 산꼭대기에 있다. 물이 어찌나 맑은지, 독사들이 마시면 독니가 삭아 없어진다는 샘이 히포크레네다. 히포크레네는 예술가들에게 염감의 원천이기도 하다. 말은 이렇게 심원하게 상징적인 동물이다. 경주에는, 하늘과 땅과, 예술적 염감을 아우르는 우리의 '히포크레네(말의 샘)'가 있다.
"2002.01.01, 2002 중앙일보 새해특집"에서 발췌 소설가 이윤기씨의 "신화속 말 이야기"중에서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