환자의 증상과 질환이 어떤 역사적 배경의 영향을 받고, 어떤 고통의 과정을 통해 형성되었는지 모르다면 진료 현장은 언제나 불충분하다. 내 불편함의 원인은 조선족 환자들이 쏟아내는 수많은 증상의 나열에서 기인한 것이 아니었다. 그것은 그들의 질환에 얽힌 삶의 서사에 관심을 기울이지 않았던 나의 무지 때문이었다. 결국 그동안 나는 환자들에게 내가 묻고 싶은 것을 물었을 뿐이고 원하는 대답이 나오지 않자 화가 났을지언정, 이들의 이야기를 듣고 있지 않았다는 것을 확인하게 된 셈이다.
외노자들이 호소하는 수많은 증상들을 듣고 진단명에 대해 생각한다. 진단명에 맞지 않는 증상을 호소하는 목소리는 성가시다.
갑상선 암, 옴, HIV, 심부전..이들에게 내려진 최종적인 진단명은 딱 떨어진다. 하지만 이 진단명 뒤에는 수많은 서사가 있다.
같은 증상을 호소하고 있더라도 증상이 나타나게 된 맥락은 각각 다르다.
좋은 의료란 결국 다름 아닌 '돌봄'이라고
질병이 복수의 형태로 존재할 때 생기는 문제 중 가장 실질적인 것은 한 사람의 환자를 총체적으로 들여다보며 파악하는 관점, 즉 '돌봄'의 부재다.
의료 현장에서는 효율적이고 효과적인 개입을 위해 진단이 강조되고는 한다. 떄로는 진단이 너무 강조된 나머지 환자가 호소하는 증상이 아닌 진단에 의한 치료를 진행하기도 한다. 세상에는 수많은 사람이 존재하고 이들이 느끼는 고통 또한 무수히 많다. 같은 진단명을 가지고 있을지라도 증상은 다를 수 있다. 진단명에 담긴 수많은 서사를 이해하기 위해선 무엇보다도 '돌봄'이 필요하다.
돌봄에서 완전히 벗어난 인간은 존재하는가.
인간은 태어남과 동시에 돌봄을 받으며 생존하고 생을 이어간다. 어느 정도 자라난 후에도 수많은 돌봄을 통해 성장한다.
지속가능한 돌봄 의료를 진작시키기 위해서는 사회 구성원 사이에 신뢰가 전제되어야 하고, 동시에 보건 의료 정책에 관한 사회적 합의가 이루어져야 한다. 또 사회 전반에서 돌봄을 주제로 논의가 활발히 이루어져야 하고 신체와 질병을 대하는 사람들의 시선이 바뀌어야 한다.
"'돌봄 의료'는 결코 한 명의 의사가 열심히 한다고 가능한 것이 아니다."
지속가능한 돌봄 의료를 위해서는 사회적인 합의와 이를 주제로 한 논의가 활발하게 이루어져야 한다. 개개인의 노력으로 이룰 수 있는 것이 아니라 제도적인 개선이 필요하다.
첫댓글 연대와 사랑이 필요한 시기라고 생각해요..! 과학 발전에 따라 의학 기술도 전래없이 발전하고있지만 그럼에도 정말 ‘낫기’위해서는 마음의 아픔 역시 해결돼야 하니까요😭
돌봄의 중요성을 다시 한 번 깨달았어요. 같은 질병을 가지고있더라도 환자들의 배경에 따라 권장되는 치료방법도 다르고, 처방되는 약물들도 다른 것은 그만큼의 유연한 돌봄치료가 필요하다는 것을 시사한다고 생각해요. 이 돌봄이 평범한 사회 구성원 뿐 아니라 소외계층에게도 뻗어나갈 수 있었으면 좋겠네요!
박주영 판사님의 책에 ‘한 아이를 키우는 데 한 마을이 필요하듯, 한 아이를 학대하는 데도 한 마을이 필요하다. (p.149)’는 구절이 있었는데요. 책을 읽으며 이것이 비단 아이에게만 국한된 이야기는 아닌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한 사람이 병을 숨기고, 제대로 된 치료를 거부하게 되기까지는 우리 모두의 영향이 있지 않았을까라는 생각이 드네요. 바꾸어 말하면 이 상황을 해결하기 위해서도 온 마을의 관심이 필요하다는 거겠죠?
한 명의 의사가 열심히하는게 중요한게 아니라 제도적 개선이 필요하는 말 너무 공감해요ㅜㅜ현재 우리나라의 문제이기도 하구요
어제 독서모임에서 '돌봄의 기본권'에 대한 이야기가 온종일 제 머릿속을 맴도네요! 돌봄에서 완전히 벗어난 사람은 결코 없을텐데, 우리는 왜이렇게 스스로 혹은 내 주변 사람들에 의해서만 자랐다고 생각하게 될까요. 그리고 어느 정도의 독립심을 가진 시기가 되면 약했던 모습들을 홀라당 까먹어버리는 것 같아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