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순절의 신심과 신앙생활
◆사순절은 참회와 속죄로 우리의 신앙생활을 쇄신하고 그리스도의 부활을 준비하는 시기다,
이러한 사순절의 정신은 전례에서도 고스란히 드러나고 있다. 사순시기에는 기쁨을 표시하는 알렐루야, 대영광송, 사은 찬미가 등을 부르지 않고 제의는 자색으로 바뀐다. 또한 세속적 향락과 분심잡념을 멀리하고 종교적 신심과 신앙생활에 열중하도록 하기 위하여 성인들의 축일도 시기에는 삽입시키지 않았다. 그래서 오늘날에도 2월 중순부터는 성인들의 축일이 적고 평일이 대부분이며 또 의무 기념일이라도 들어오게 되면 자유로운 기념일로 급수가 떨어진다. 성상들을 가리는 관습도 이러한 이유에서 생겨났다.
로마교회는 사순시기 동안 특히 미사성제를 통하여 신자들에게 신앙을 심화시키도록 했고 이 미사와 더불어 행렬이 유행했다. 즉 순회미사를 지내면서 지정된 성당에 가기 전에 다른 곳에 모여 그곳에서부터 호칭기도를 하면서 속죄의 행렬을 하며 미사거행 장소로 갔다.
로마의 이러한 순회미사와 행렬의 관습이 중세 초기에서부터 중요 도시의 주교좌를 중심으로 널리 보급되었다. 사순절의 미사양식들은 5~8세기에 시행하던 순회미사를 답습한 것이다. 사순 제4주일 입당송 '예루살렘아 즐거워하라, 그를 사랑하는 자 모두들 모여라. 슬픔에 잠겼던 너희 즐거움에 넘치며 뛰놀며 그 위로의 젖을 흠뻑 마셔라'는 말에서 유래한
주일. 레따레 일요일(laetare sunday), 환희의 일요일이라고 부르는 이 주일은 제의를 장미색으로 입는다고 해서 장미주일이라고도 부르는데 사순 시기동안에 아무 것도 장식하지 아니한 제단을 꽃으로 꾸미고 오르간을 사용할 수 있었다.
참회시기 안에 이런 기쁨의 표시를 주는 주일이 들어오게 된 역사적 배경은 사도신경의 전수에 있다. 옛날 예비신자들은 사순 제3주일에서 5주일에 걸쳐 성서와 주의기도, 신경을 받는 데, 이러한 예식은 시험과 조사를 통해서 예비신자들이 교회에 입교하는 것이 합당한지를 입증하기 위한 마지막이고 결정적인 단계였다. 그러므로 교회 자녀들의 수가 증가함에 대하여 기쁨을 표시하는 전례적 표현인 것이다
후대에 와서 사순 4주일의 전례적 성격보다는 다른 이유들이 덧붙여지기도 했는데, 이에 대해 교황 인노첸시오 3세는 사순 4주일의 기쁨을 나타내는 것은 사순절의 엄격한 단식에서 해소되는 것이 아니고 세례자들의 수적 증가에 대한 기쁨의 표현이라고 말했다.
제2차바티칸 공의회의 어른 세례예식서에는 사순 제5주일 안에서 성서와 주의 기도 신경을 수여하도록하고 있는데 기쁨을 표시하는 사순시기 안의 전례가 사순 제5주일에 이루어 지고 있다고 볼 수 있다.
9세기 이래 사순 제5주일은 고난주일로 불렀다. 부활 대축일을 위한 최종적이고 성대한 준비로서의 고난시기인 이 주일은 교회가 단식의 시기로 사순시기를 설정한 것보다 역사가 깊다. 사순시기 4주간 동안 개인적 참회의 정신이 강조되었다면 부활대축일을 2주 앞둔 이 시기부터는 전적으로 그리스도의 수난을 묵상하게 된다.
따라서 고난주일 전야에는 십자가와 성상, 성화들을 애도의 표시로서 자색으로 가리웠다. 사순절 직전 3일이나 1주일간 단식에 들어가기 위해 잔뜩 먹고 마셨던 사육제(카니발)의 유흥적 과오에서 기도와 참회로 신자들을 인도하기 위한 신심행사.
1748년 베네딕도 14세 교황은 사순절 전 3일 동안을 특별한 신심기간으로 설정했다. 이 신심기간을 40시간 기도라고 불렀는데, 유럽과 아메리카 등 사육제가 일반화되고 오랜 전통이 있는 지방에서 실천되고 있다. 성체를 월, 화요일 동안 온종일 현시한 후 저녁에는 신심행사와 성체강복이 있었다.
가톨릭신문에서발췌
주님의 평화를 빕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