숨어있는 설득자 2
김민효
부릅뜬 두 눈과 핏기 없이 눌린 두 손바닥이 불쑥 N의 눈앞에 나타났다. 눈빛은 복잡했다. 극에 달한 절망과 고통 그리고 원망이 더해진 눈빛이었다. 급기야 실핏줄이 툭툭 터져 피눈물이 고였다. 게다가 핏기 없이 눌린 두 손바닥이 차장을 뚫고 나왔다. 두 손이 노리는 것은 N의 목이었다. N은 고개를 가로저으며 두 손을 허우적거렸다. 용케 피했다 싶은 순간 가늠할 수 없는 캄캄한 낭떠러지로 미끄러지기 시작했다. 바닥이 느껴지는가 싶더니 옆구리에 충격이 가해졌다. 헉, 터지려는 비명은 N은 재빨리 삼켰다. 통증 때문에 저절로 눈이 떠졌다.
N은 재빨리 오른손으로 자신의 왼쪽 가슴 위를 더듬었다. 동시에 왼손을 뻗어 백팩도 끌어당겼다. 거의 본능적인 움직임이었다. 티셔츠 안쪽 포켓에는 주민등록증과 신용카드가 백팩에는 맥북과 비상약품과 에너지 바 몇 개 그리고 신변 보호용 장비 두어 가지가 들어 있다. 만약의 경우 자신을 증명해 줄 신분증이자 생존을 위한 도구들인 셈이었다. 신분증과 신용카드를 넣은 티셔츠 포켓은 입구를 단단히 꿰맸다. 탄성이 강하고 질긴 소재로 만들어진 티셔츠는 또 다른 피부처럼 몸에 착 달라붙었다. 분실 가능성을 염려해 N은 샤워할 때도 티셔츠를 벗지 않았다. N은 가슴을 지그시 눌렀다. 오른손바닥으로 요동치는 심장박동이 느껴졌다. 아직은 살아있다는 증거였다.
N은 두 발로 주변을 더듬었다. 순찰용 랜턴이 발에 걸렸다. 침대 밑으로 떨어지면서 그것에 옆구리가 받친 모양이었다. N은 온몸의 촉각을 세우고 귀를 기울였다. 염소들의 뒤척임과 되새김질 소리가 간간이 들리고 비질란테가 몸을 흔들어 터는 소리가 잠깐 들렸다.
비질란테는 주인인 안토니오의 반려견이자 염소 몰이 개다. 안토니오는 염소들의 보안관이자 충실한 지킴이이란 뜻이라고 일러주었다. 하지만 N은 감시자라는 뜻으로 해석했다. 녀석이 자신을 열세 번째 염소 정도로 여긴다고 느꼈기 때문이었다. 안토니오의 거실, 목초지, 축사 하다못해 돌담 밑에 몸을 낮추고 있을 때도 녀석의 시선은 끈질기게 N에게 달라붙었다. 불쾌했지만 한편 위안이 되기도 했다. 감시당하는 동시에 보호받는 느낌! 그렇다고 녀석이 자신의 역할에 소홀함이 있다는 말은 아니다. 늙은 데다 다리까지 다친 안토니오를 호위하고, 언덕 아래 샛길로 빠지지 않도록 염소 열두 마리를 감시하며, 외부인이나 침입자에 대한 경계까지. 녀석이 열 몫을 하고 있다고 해도 결코 지나친 표현은 아니다.
N은 천천히 눈을 떴다. 그리고 방안을 둘러보았다. 염소우리 쪽으로 나 있는 창 너머 푸르스름한 빛이 희미하게 비쳐 들었다. 그는 비로소 참았던 숨을 내쉬었다. 깊게 숨을 들이마시고 천천히 내쉬기를 반복했다. 숨을 쉴 때마다 옆구리가 결렸다. 몇 차례 심호흡을 더한 뒤 그는 악몽을 한 장면씩 되짚었다.
한여름의 더운 바람과 진초록의 기름진 나뭇잎들의 팔랑거림과 낡은 자동차 안으로 차오르던 연기 그리고 차창 아래로 무겁게 미끄러지던 머리통. 나머지 장면들은 정지된 영상으로 펼쳐졌다. 그래선지 장면 하나하나가 모두 선명했다. 문득 뭔가가 달라졌다는 것을 N은 뒤늦게 알아챘다. 지금까지와 달리 자동차 안의 인물은 C가 아니었다. 누구지? N은 두 팔로 머리를 감싼 채 그가 누군지 알아내려 애를 썼다. 일단 팀원들의 얼굴을 한 사람씩 떠올렸다. 팀장, 선배 D, E, 선임 F, 동기 G와 H. 그는 고개를 가로저었다. 급기야 무소불위의 국장의 얼굴까지. 순간 등짝으로 소름이 쭉 끼치면서 온몸의 근육이 오그라들었다. N에게 국장은 죽음과 동의어였다. 하수인인 팀장을 앞세워 희생자를 지목하거나 자살을 설득하는 자. 거부할 경우 가족 모두는 물론이고 주변인들의 삶까지 철저하게 망가뜨린다는 것은 이미 증명된 사실이었다. 선배 A와 B의 죽음 이면에 그런 설득과 압박이 있었으리라는 것은 동료들 사이에 돌고 있는 비밀 아닌 비밀이었다. C의 자살 역시 그런 과정을 거쳤을 터였다. 포기할 여지를 완전히 차단하기 위해 N을 감시자로 출동시켰던 것이고.
물론 경찰에서 내놓은 그들의 사인은 모두 달랐다. A는 휴가 중 교통사고, B는 우울증으로 인한 약물 과다 복용, C는 도박 빚을 감당하지 못해. 경찰은 의심할 수 없는 증거도 내놓았다. 증거가 조작되었을 거라는 정황을 제시한 언론사가 있긴 했으나 가짜뉴스라는 으름장에 대중의 관심은 이내 수그러들었다. 다만 국장과 관련한 문제가 사회적 파문을 일으킨 시점에 모두 벌어졌음을 보도한 기사가 한 건 있었고, 보도 직후 그 언론사들은 다른 이유로 고발당했다.
아무것도 하지 않으면 아무 일도 없을 거야.
팀장의 경고가 귓가에 쟁쟁거렸다. 하지만 N은 아무것 중 두어 가지를 이미 저질러 버렸다. C가 죽어가는 영상과 팀장의 지시 사항을 녹음한 통화 내용을 클라우드에 저장했던 것이다. 그리고 그 파일을 후배 기자의 이메일로 예약 전송을 걸어놓았다. 팀장은 이 파일의 존재를 알고 있을 것이다. 그날 회수해 간 핸드폰에서 그 흔적을 모두 찾아냈을 테니까.
그날 팀장이 지시한 임무는 아주 단순했다. 표정은 덤덤했고 말투도 예사로웠다. 마치 잠깐 바람이나 쐬고 오라는 뜻으로 여겨질 만큼. 목적이 무엇인지, 무엇을 보고하라는 것인지 살짝 궁금증이 일었던 것은 사실이었다. 하지만 말해주지 않는 것을 물을 수는 없었다. 의도가 있건 없건, 의미가 크든 작든, 그것은 불복종에 해당하는 중대 도전으로 간주 되기 때문이었다. 몇 가지 주의 사항이 덧붙여진 것은 현장에 도착한 다음이었다. 지켜보되 절대 개입하지 말 것, 상황이 종료될 때까지 자리를 이탈하지 말 것, 상황 종료 후 결과를 즉각 보고하고 영상은 삭제할 것, 보고 즉시 현장을 떠날 것.
그곳이 동료가 죽어가고 있는 현장이란 사실을 알았다면 거부했을까? 자살시도자가 C인 것을 알았더라면 적극적으로 구조에 나섰을까? 미리 알았든 몰랐든 갈등은 길지 않았다. N이 자동차로 다가가는 순간 팀장으로부터 전화가 걸려 왔다. 마치 옆에서 지켜보고 있었던 것처럼. 그가 내지른 말은 차에서 떨어지라는 호통이었고 즉시 이동할 것을 명령했다.
의외였다. 다음 지정 장소인 출국 게이트 부근에 팀장 혼자 서 있었던 것이다. N은 팀장의 모습을 재빠르게 훑었다. 한쪽 어깨에는 백팩을 걸쳤고 다른 손에는 티켓이 끼워진 여권을 들고 있었다. 드디어 악명 높은 팀장이 해외로 튀는군. 팀장 역시 국장에게 손질을 당한 걸까? 어떤 말로 배웅을 하지? N은 그럴싸한 작별 인사를 궁리하며 팀장의 얼굴을 바라보았다. 그때 N이 들고 있는 핸드폰을 팀장이 낚아챘다. 순식간이었다. 그는 씩 웃으며 말했다.
이건 회사 물품이니까 반납해야겠지?
이어 자신이 들고 있던 핸드폰을 N의 손에 쥐어줬다. 출근과 동시에 개인 사물함에 넣어두었던 자신의 핸드폰이었다. N은 온몸에서 힘이 쭉 빠져나가는 걸 느꼈다. 팀장은 지시를 내릴 때처럼 단호하게 말했다.
연락할 때까지 조용히 쉬고 있어. 지시한 대로 따르면 아무 일도 없을 거야. 명심해.
아무 일도 없을 거라는 말에 N은 숨이 턱 막혔다. 아무 일이 일어날 거라는 말로 들렸기 때문이었다. 형언할 수 없는 두려움이 온몸으로 번졌다. N은 팀장이 건넨 백팩과 티켓이 끼워진 여권을 순순히 받았다, 목적지를 확인하지도 못한 채. 팀장이 출국 게이트 쪽으로 N의 등을 떠밀었다. 출국 게이트 안으로 들어가기 전 N은 뒤를 돌아보았다. 팀장이 팔짱을 낀 채로 지켜보고 있었다.
N은 벌떡 일어났다.
바짓단을 잘 여며 넣고 워커 끈을 단단하게 조였다. 안쪽 포켓에 넣어둔 여권과 현금을 확인한 다음 재킷을 입었다. 핸드폰의 충전 상태도 확인했다. 핸드폰을 백팩 주머니에 넣고 등에 멨다. 백팩의 안전띠도 바짝 조여 등에 안착시켰다. 그는 야전침대를 정리하고 담요도 각 잡아 개켜 놓았다. 랜턴 불빛을 구석구석 비추어 가며 창고 안을 살폈다. 머리카락 한 올도 남겨 놓지 않으려 샅샅이 살폈다. N은 점검을 끝낸 뒤 랜턴을 끄고 담요 위에 올려놓았다. 시계를 보았다. 채 두 시도 되지 않은 한밤중이었다. 첫 페리 출항까지는 아직도 시간이 많이 남아 있었다.
N은 벽에 등을 기댄 채 쪼그려 앉았다. 순간 옆구리에 통증이 느껴졌다. 랜턴에 받쳤던 곳이자 칼에 찔린 흉터가 살아있는 부위였다. N은 벽에서 등을 살짝 뗀 뒤 백팩 사이드포켓에 넣어둔 재크나이프를 가장자리로 밀어냈다. 그러자 심하게 배기지는 않았다. 다시 벽에 등을 기댄 채 눈을 감았다. 악몽은 생생하게 되살아났다. 비로소 낯익은 인물의 정체를 알아차렸다. 차창을 뚫고 나오려던 그는 바로 N 자신이었다. 자신이 고통스럽게 죽어가고 있는 모습을 자신이 촬영하고 있는 악몽. N은 석 달여의 평온이 끝이 났다는 암시로 여겼다. 이제 앉은 채로 죽음을 맞을 것인가, 저항하다가 죽어갈 것인가, 하는 선택만 남은 것 같았다.
여느 새벽처럼 N은 축사 주변을 청소한 다음 안토니오를 도와 염소젖을 짰다. 염소젖을 짜는 동안 안토니오는 몇 차례나 N의 행색을 흘깃거렸다. N은 무심한 척 염소젖을 운반용 통에 붓고 트럭에 실었다. 팔순인 안토니오만큼 낡은 소형트럭이었다. 트럭은 비질란테만큼이나 불편하지만 익숙해진 존재였다. N은 통이 흔들리지 않도록 상자를 결박한 다음 짐칸의 걸쇠를 채웠다. 아직 완쾌되지 않은 안토니오의 다리가 마음에 걸렸다. 그렇다고 조반니의 치즈 작업장으로 옮겨주기에는 아직 이른 시간이었다. N은 마음을 다잡았다. 미련은 짧게, 행동은 단호하게.
N은 시계를 보았다. 항구로 달려간다면 페리에 승선하는 데는 문제가 없을 것 같았다. 첫 페리를 타고 추적자가 들어오지 않았다면 말이다. N은 꼬리를 흔들어 대는 비질란테를 끌어안았다, 꽤 오래. 비질란테의 심장박동이 가슴으로 전해지자 울컥했다. 그는 얼굴을 핥아대는 녀석의 엉덩이를 두어 번 토닥인 다음 몸을 일으켰다. 차마 안토니오는 바라보지 못했다.
N이 막 차고 밖으로 한 발을 내딛는 순간 안토니오의 외마디 비명이 들렸다. N이 트럭 옆으로 몸을 틀었고, 비질란테의 몸이 허공을 가로질렀다. 퍽, 몇 분의 일 초를 두고 염소젖 운반용 통 하나에 무언가가 박혔다. 재빨리 안토니오를 돌아보았다. 그의 시선은 비질란테가 폭주한 담장 쪽을 향하고 있었다. 동양인 남자와 비질란테가 숨 막히는 격전을 벌이고 있었다. 비질란테는 두 다리로 괴한의 가슴을 짓누른 채 어깨를 물어뜯고 있었고, 괴한은 주먹으로 비질란테의 얼굴을 가격하며 다른 손으로 놓친 권총을 더듬어 찾고 있었다.
괴한이 권총을 집어 들려는 순간 N은 슬라이딩으로 몸을 던졌다. 그 순간 아침햇살이 번쩍 퉁겨지며 난반사를 일으켰다. N의 손에 들린 재크나이프가 퉁겨낸 빛살이었다. 괴한의 손목에서 피가 솟구쳤다. N은 권총을 걷어찬 뒤 괴한의 발목을 한 번 더 찍었다. 와중에도 괴한은 자신의 허리춤을 더듬어 칼을 빼 들었다. N은 그 손을 걷어찬 다음 비질란테를 떼어냈다.
트럭의 시동 소리와 함께 안토니오가 다급하게 소리쳤다.
피캅.
N은 담장 구석에 처박힌 권총을 일별한 채 트럭에 올라탔다. 비질란테는 계속해서 짖어대며 남자를 경계했다. 트럭의 속도가 불자 안토니오가 휘파람을 불었다. 비질란테가 트럭 짐칸으로 올라탔다. 트럭은 염소젖을 길바닥에 흘리며 항구를 향해 내달렸다. 저만치 페리의 램프가 보였다. 막 드리려는 순간이었다. 안토니오가 자동차 경적을 연거푸 누르자 신호수가 멈칫했다. 그 바람에 전속력으로 달려간 트럭은 페리의 승선 램프를 간신히 통과할 수 있었다. 이윽고 램프가 닫혔고 안토니오가 숨을 길게 토해냈다. N도 참았던 숨을 내쉬며 안토니오를 돌아보았다. 주름살이 깊게 잡힌 안토니오의 눈꺼풀이 심하게 떨렸고 얼굴 근육들이 제각각 경련을 일으켰다. 특히 겨우 아물기 시작한 그의 다리근육이 마구 꿈틀거렸다. 석 달여 동안 자신에게 평온한 일상을 보장해 주었던 다리였다. N은 정신 없이 안토니오의 다리근육을 주물렀다. 안토니오가 N의 등을 토닥이며 낮게 말했다. 빠진 잇새로 발음이 샜으나 말뜻은 충분히 이해할 수 있었다. 알아들은 단어를 조합하면 대충 이랬다.
어때, 내가 시칠리아 패밀리 출신이었다는 것을 이제는 믿겠나?
그가 진짜 하고 싶은 말이 따로 있다는 것을 N은 이미 알고 있었다. 해낼 수 있을지 자신할 순 없지만. N은 고개를 끄덕이며 허탈하게 웃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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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민효 『작가세계』 등단. 소설집 『검은수족관』, 『그래, 낙타를 사자』, 『빛나는, 완전범죄』,『WHERE IS OUR HOME』 등. 함께 엮은 소설집 미니픽션 『술集』 외 9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