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경북 칠곡군 가산면 학산 1동 555번지에서 태어났다. 내 위로 형님 2분과 누님3분이있고 나는 막내로 태어나서 우리가정에서는 최고로 귀염을 받으면서 살았다..
1950년 6.25전쟁이 발방해 온 동네가 피난을 나가는데 나는 아무것도 모르고 좋아했다. 동네를 떠나면서 모두가 울면서 생필품을 안고. 길을 떠났다. 우리는 진목도에서 하루밤을을 자고 나니 또 가라고 해서 도착한곳이 팔달 교위 쪽 조야이다 거기서 3일을 자고 나니 또 가라고 해서 도착한 곳이 달 성군 가창 초등학교에서 짐을 풀었다. 2일이 지나니 학교에서 나가라고 해서 학교 옆 냇가에서 지냈다. 얼마간 시일이 지나던중 6.25 전쟁이 휴전되었다고 고향으로 가라고 했다. 기쁜마음에 하루 종일 걸어서 고향 오니 동네 앞에 또는 들판에 시체가 참으로 많고 냄새는 말도 못 할 지경이었다. 그래도 배가 고우니 밥은 먹겠더라. 얼마 있다가 학교를 가는데 도로변에 시체가 있는 곳은 무서워서 비가 오고 날씨가 흐리면 그곳을 지나면 큰소리를 지려면서 뛰어가고 혼자서는 다니기가 힘들었다. 어릴 때 본 것이 어른이되어도도 그런 생각 난다. 지금에 와서는 그래도 고향 좋고 그립다. 고향은 버릴 수 가없다. 참으로 그리운 고향 잊어서는 안된다.
내가 태어났던 곳은 유학산 밑 첩첩산중에서 태어나서 아무것도 없는 농가에서 참으로 어렵게 살아서 아무것도 모르고 자랐다. 학교는 우리 동네에서 4k 가 넘어서 못 가고 있으니 마침 가산면 다부동에 처음으로 입학생을 모집하는데 형님과 함께 입학하려고 가니까 내 출생신고를 하지 않아서 입학할 수가 없었다. 그때 내 나이는 9살인데 출생신고를 하니까 1살로서 어쨌든 입학하고 학교에 다니는데 나보다 더 많은 학생 몇 명이 있어 석 이래 도조 금은 어를 수가 있었다. 6년이란 세월이 가고 나는 대구의 대건중학교에 입을 해서 학교에 다니니 하숙비가 많이 들어 나보다 한 해 선배와 함께 자취생활을 했다. 처음은 서로가 의견이 맞아서 잘 지냈는데. 언젠가 서로가 말다툼도 하고 하면서도 학교를 졸업한 선배는 고등학교 입학을 하고 나는 학교에 갈 형편이 안 돼 친구 부친께서 동인 파출소에 급사로 일하고 저녁에는 대구 중앙 상고 야간부로 학교에 가도록 하라는 말씀대로 서류를 맞추어 시 하교에도 나서 며칠 있다가 학교에서 공부하다니 너무나 힘이 들어서 도저히 이겨낼 수가 없어 그만두고 나서 내가 길을 찾다가도 경대 다리 밑에서 경북 자동차 학원 모집을 하기에 입학을 해서 2주도 못 대서 혐의 것이 잡혀서 고향에서 학창 시절 마치였다. 지금 생각하니 영화에 필름 같다. 한세월 잘 보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