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밀양박씨(密陽朴氏)】 박씨의 대종이며, 시조는 신라 경명왕의 제1왕자인 밀성대군 언침(彦 )이다. 밀양박씨는 박씨 인구의 70~80 %를 차지하고 있으므로 그 계보도 상당히 복잡하다. 밀양박씨의 세계는 밀성대군의 7대손인 언부(彦孚:고려 문종 때 문하시중)를 중시조로 하는 문하시중공파(門下侍中公派)를 비롯하여 도평의사사사공파(都評議使司使公派) ·좌복야공파(左僕射公派) ·밀직부사공파(密直副使公派) ·판도공파(版圖公派) ·좌윤공파(左尹公派) 등으로 대별되고, 각 파는 아랫대로 내려오면서 또 여러 파로 분파된다. 예컨대 가장 규모가 큰 문하시중공파는 종파인 은산공파(銀山公派:永均) ·행산군파(杏山君派:世均)를 비롯하여 좌상공파(左相公派:尙禮) ·규정공파(糾正公派:鉉) ·사문진사공파(四門進士公派:元) ·밀성군파(密城君派:陟) 등으로 갈라지고, 이들은 또 여러 파로 나누어진다. 이 중에서 규정공파가 밀양박씨의 분파 중 가장 후손이 번창하다. 또 규정공파에서 나누어진 파 중에서 특히 낙촌공파(駱村公派:忠元) ·강수문도공파(江 文度公派:薰)가 주류를 이루고 있다. 밀양박씨는 조선에서 문과급제자 261명, 상신(相臣) 1명, 대제학(大提學) 2명, 청백리(淸白吏) 2명을 배출하였다. 밀양박씨의 대표적 인물을 열거하면 규정공파에서 강생(剛生) ·심문(審問) ·중손(仲孫) ·건(楗) ·훈 ·충원(忠元) ·계현(啓賢) ·승종(承宗) ·영(英) ·성원(聖源) 등이 있고, 사문진사공파에서 의중(宜中) ·거겸(居謙) ·종남(宗男)과 영신(榮臣) 부자 ·연(堧) ·열(說)이 있으며, 밀성군파에서 신규(信圭) ·이서(彛敍) 등이 있다. 상기 인물 중에서 충원은 명종 때 대제학을 지냈고, 승종은 광해군 때 영의정을 지내고 인조반정 후 자결하였으며, 열은 중종 때, 신규는 숙종 때의 청백리이다. 이 밖에 밀양박씨의 두드러진 인물로서 실학(實學)의 대가 제가(齊家)가 있다.
【반남박씨(潘南朴氏)】 시조는 고려 고종 때 반남현의 호장(戶長)을 지낸 응주(應珠)이다. 그의 현손 상충(尙衷)은 전교시판사(典校寺判事)를 역임하고 《사전(祀典)》을 저술하였다. 조선시대에 문과 급제자 215명, 상신 7명, 대제학 2명, 왕비 2명을 배출하여 박씨 중에서 벼슬 열력(閱歷)이 가장 화려하다. 대표적인 인물을 열거하면 은( ) ·숭질(崇質) ·세채(世采) ·종악(宗岳) ·종훈(宗薰) ·회수(晦壽) 등의 상신, 태상(泰尙) ·규수(珪壽) 등의 대제학, 세당(世堂) ·지원(趾源) 등의 뛰어난 학자가 있으며, 소(紹) ·응남(應男) ·응복(應福) ·태보(泰輔) 등의 인물이 있다. 규수는 대제학과 우의정을 역임한 인물이며, 정양(定陽) ·영효(泳孝) 등과 더불어 개화사상가로 알려져 있다. 반남박씨는 이 밖에도 조선 후기에 판서급(判書級) 인물을 많이 배출하였다.
【죽산박씨(竹山朴氏)】 8대군파 죽성대군의 정통 후손이며, 시조는 죽성대군의 아들 기오(奇晤)이다. 그는 고려 초에 삼한벽상공신(三韓壁上功臣)에 올라 죽산을 식읍(食邑)으로 하사받고 죽산에 관적(貫籍)하였다. 죽산박씨의 세계는 철성백파(鐵城伯派) ·찬성공파(贊成公派) ·태복경파(太僕卿派) ·문광공파(文匡公派)의 4파로 갈라지고, 다시 문광공파에서 죽산군파(竹山君派) ·문충공파(文忠公派) ·판서파(判書派) ·제학파(提學派) ·충현공파(忠顯公派) 등 5파로 나누어진다. 그런데 고려 왕조가 철성백파의 후손에게 음성(陰城)과 고성(固城)을 식읍으로 하사함으로써 음성박씨와 고성박씨가 철성백파에서 분파한 것이라고 한다. 조선시대에 39명의 문과 급제자와 2명의 상신을 배출하였다. 죽산박씨의 대표적 인물을 열거하면 서(犀) ·전지(全之) ·원형(元亨) ·홍구(弘耉) ·명현(名賢) ·명룡(命龍) ·문수(門壽) ·경신(慶新) 등이다.
【함양박씨(咸陽朴氏)】 8대군파 속함대군의 정통 후손이며, 시조(중시조)는 고려의 예부상서 선(善)이다. 고려시대에 많은 인물을 배출하였으며, 고종 때 이연년(李延年)의 난을 평정한 공으로 응천군(凝川君)에 봉해진 신유(臣 )의 여섯 아들에서 6파로 갈라졌다. 즉, 군기소감공파(軍器少監公派) 지문(之文) ·문원공파(文元公派) 지빈(之彬) ·판삼사사공파(判三司事公派) 지량(之亮) ·부사공파(副使公派) 지수(之秀) ·어사공파(御史公派) 지온(之溫) ·중랑장공파(中郞將公派) 지영(之穎)인데, 이 6형제파를 세칭 ‘육지파(六之派)’라고 한다. 이 중에서 문원공파와 부사공파가 가장 많은 인물을 배출하였다. 대표적 인물을 열거하면 충좌(忠佐) ·초(礎) ·습(習) ·대립(大立) ·세영(世榮) ·세무(世茂) ·세옹(世 ) ·민헌(民獻) ·헌(軒) 등이다. 조선시대에 69명의 문과 급제자를 배출하였다.
【순천박씨(順天朴氏)】 8대군파 강남대군의 후손이며, 시조는 고려의 개국공신 영규(英規), 중시조는 대제학 숙정(淑貞)이다. 조선시대에 문과 급제자 35명, 상신 1명을 배출하였다. 대표적 인물을 열거하면 중림(仲林), 사육신(死六臣) 중의 하나인 팽년(彭年), 계창(繼昌) ·원종(元宗) ·이장(而章) ·광일(光一) ·기정(基正) 등이 있다. 팽년의 둘째 자부가 낳은 비(婢) 소년의 일화는 유명하며, 간신히 이어진 그 일족이 오늘날의 ‘묫골박씨’이다.
【고령박씨(高靈朴氏)】 8대군파 고양대군의 후예로서 섬(暹) ·환(還) ·연(連)을 중시조로 하는 3파가 있다. 3파 중에서도 섬의 사인공파(舍人公派)와 환의 부창정공파(副倉正公派)에서 많은 인물이 배출되었다. 조선시대에 도합 56명의 문과 급제자, 1명의 상신, 4명의 청백리를 배출하였다. 사인공파의 대표적 인물은 은(誾) ·장원(長遠) ·문수(文秀), 상신(相臣) 영원(永元) 등이고, 부창정공파의 대표적 인물은 광순(光純) ·광우(光佑) ·우생(雨生) ·임종(林宗) ·만(蔓) ·처륜(處綸) ·영준(永俊) ·난영(蘭英) ·정번(廷 ) 등이다.
【무안박씨(務安朴氏)】 8대군파 완산대군의 후예로서 시조(중시조)는 고려 초에 공을 세워 무안을 식읍으로 받은 진승(進昇)이다. 조선시대에 21명의 문과 급제자를 배출했는데, 대표적 인물은 고려시대의 박승중(朴昇中), 조선시대의 의장(毅長) ·홍장(弘長) ·창하(昌夏) ·호(浩) 등이고, 현대인물로는 한글 점자(點字)의 창안자인 두성(斗星)이 있다.
【충주박씨(忠州朴氏)】 8대군파 사벌대군(沙伐大君)의 후예로서, 시조(중시조)는 고려시대 부정(副正)을 지낸 영(英)이다. 조선시대에 20명의 문과 급제자, 1명의 상신과 대제학, 1명의 청백리를 배출하였다. 대표적 인물은 청백리에 오른 상(祥), 대제학과 영의정을 역임한 순(淳), 그 밖에 우(祐) ·희수(希壽) 등이 있다.
【상주박씨(尙州朴氏)】 8대군파 사벌대군의 정통 후손이며, 시조(중시조)는 고려시대의 덕천창부사(德泉倉副使) 견(甄)이다. 대표적 인물은 광우(光佑) ·안신(安臣) ·세희(世熹) ·건중(建中) 등이다.
【창원박씨(昌原朴氏)】 의창박씨(義昌朴氏)라고도 한다. 시조는 밀성대군의 12대손이며 고려의 감문위대호군(監門衛大護軍) 평장사(平章事)인 유화(有華)이다. 손자 정빈(正 )은 전객시판사(典客寺判事), 증손 영(齡)은 공민왕 때 창원도호부사(昌原都護府使)를 역임하였다.
【음성박씨(陰城朴氏)】 시조는 고려의 공부상서(工部尙書) 자(梓)이다. 죽산박씨의 철성백파(鐵城伯派)에서 분적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그의 손자 순(淳)은 함흥차사(咸興差使) 이야기의 주인공으로서 고려 말기 요동정벌(遼東征伐) 때 이성계(李成桂) 휘하에서 종군하였으며, 조선 개국 후 상장군이 되었다. 그가 태종(太宗)을 미워하여 함흥에 머물고 있는 태조를 설득하고 돌아오다가 용흥강(龍興江)에서 피살되어 다시는 서울에 돌아오지 못하게 됨으로써 이 말이 유명해졌다. 역사적 인물로는 광옥(光玉)이 있다.
【영해박씨(寧海朴氏)】 시조는 신라 갈문왕(葛文王) 아도(阿道)의 손자이며 눌지왕(訥祗王) 때의 충신인 제상(堤上)이고, 중시조는 고려의 전법사판서(典法司判書)인 천명(天命)이다. 대표적 인물은 경(經) ·원계(元桂) ·자청(子靑) 등이다.
【영암박씨(靈岩朴氏)】 시조는 고려 인종 때의 좌정승 항(恒)이다. 평장사(平章事) 언인(彦仁)의 손자이고, 시중(侍中)을 지낸 찬행(讚行)의 증손이며, 그의 아들 통(通)은 영암군(靈岩君)이고, 손자 광(光)은 문하시중(門下侍中), 증손 성제(成濟)는 장군, 7대손 성찬(成贊)은 좌찬성(左贊成), 9대손 징(澄)은 예조판서를 역임하였다.
【진원박씨(珍原朴氏)】 구진박씨(丘珍朴氏)라고도 한다. 시조는 고려의 대장군 진문(進文)이다. 그의 현손 첨(瞻)은 고려 때 시중(侍中)이며, 첨의 증손 희중(熙中)은 예문관직제학 ·남원부사 등을 역임하였고, 명필로 이름났다.
【고성박씨(固城朴氏)】 시조는 죽산대군의 13대손이며 고려의 문하시중을 지낸 빈(彬)이다. 그의 손자 보로(普老)는 고려 우왕(禑王) 때 수차에 걸쳐 왜구를 격퇴하고 문하평리(門下評理) ·서북면도체찰사(西北面都體察使)를 역임하였다.
【울산박씨(蔚山朴氏)】 시조는 고려 예종 때의 대장군 익찬공신(翊贊功臣) 윤웅(允雄)이다. 신라 경명왕의 제9자 교순(交舜)의 6대손이다. 그의 후손 율( )은 조선 효종 때 문과에 급제, 장령(掌令)을지내고, 아들 규세(奎世) ·두세(斗世) 형제는 숙종 때 문과에 함께 급제하여 형은 군수, 아우는 목사를 거쳐 중추부지사(中樞府知事)에 이르렀다.
【운봉박씨(雲峰朴氏)】 시조는 고려 말의 도첨의찬성사(都僉議贊成事) 중화(仲華)이다. 그의 증손 신(信)은 정몽주(鄭夢周)의 문인으로 조선시대에 찬성사 ·이조판서 등을 역임하였다. 신의 아들 종우(從愚)는 태종의 부마가 되었고, 세조를 도와 정난공신(靖難功臣) 1등에 책록되었다.
【춘천박씨(春川朴氏)】 시조는 강남대군의 10대손이며, 고려 충렬왕 때의 찬성사 좌명공신(佐命功臣)인 항(恒)이다. 그는 삼중대광(三重大匡) 문하찬성사(門下贊成事)를 지냈으며, 문장이 뛰어나고 매사에 공명정대하였다. 그의 아들 원굉(元宏)은 평장사, 원비(元庇)는 판서를 지냈고, 원굉의 아들 안구(安具)는 대제학, 증손 의공(義公)은 병조판서를 지냈으며, 원비의 아들 광선(光先) ·여(旅) 부자는 다같이 직강(直講)을 지냈다.
【비안박씨(比安朴氏)】 시조는 고려의 문하시중(門下侍中) 우(瑀)이다. 그의 아들 일(逸)은 판도사판서(版圖司判書), 증손 징(徵)은 공조전서(工曹典書), 5대손 계오(繼五)는 판도사판서를 지내고, 계오의 증손 서생(瑞生)은 대사헌 ·집현전부제학 등을 역임하고 청백리에 녹선되었다. 또한 그는 수차(水車)의 사용을 건의하여 농사에 혁신을 가져왔다. 서생의 아들 효원(孝元)은 춘추관기사관(春秋館記事官)으로 《세조실록(世祖實錄)》을 편찬하고 장령(掌令) ·사간(司諫)을 역임하였다.
【강릉박씨(江陵朴氏)】 시조는 신라 파사왕(婆娑王)의 31대손인 순(純)이다. 그는 고려 명종 때 문과에 급제, 병부상서 겸 대장군으로 정국공신(靖國功臣)에 책록되고 좌복야(左僕射) ·중서시랑평장사(中書侍郞平章事)를 역임하였다. 그의 후손 수량(遂良)은 유일(遺逸)로 천거되어 용궁현감(龍宮縣監) ·사섬시주부(司贍寺主簿) 등을 역임하였다.
【월성박씨(月城朴氏)】 8대군파 월성대군의 정통 후손이며 시조는 인육(仁育)이다. 그의 후손 홍미(弘美)는 선조 때 문과에 급제, 창원부사(昌原府使)로 있을 때 선정을 베풀어 표리(表裏)를 하사받고 경주부군(慶州府君)에 봉해졌다. 제인(齊仁)은 선조 때 태릉참봉(泰陵參奉) ·왕자사부(王子師傅) ·제용감판관(濟用監判官) 등을 역임하였다.
【태인박씨(泰仁朴氏)】 시조는 고려 문종 때의 도평의사사사(都評議使司使) 언상(彦祥)이다. 중시조는 그의 후손 현손(賢孫)이고, 현손의 증손 수량(守良)은 조선 중종 때 문과에 급제, 좌찬성(左贊成) ·중추부지사(中樞府知事)를 역임하고 청백리에 녹선되었다.
【면천박씨(沔川朴氏)】 시조는 고려의 삼중대광(三重大匡) 대승(大丞) 득의(得宜)이다. 그의 아들 술희(述希)는 고려의 개국공신으로 936년(태조 19) 후백제를 칠 때 큰 공을 세웠으며, 왕이 죽을 때 군국대사(軍國大事)를 부탁받고 훈요십조(訓要十條)를 전수받았다. 중시조는 계(桂)이며, 그의 증손 인호(仁護)는 대장군, 6대손 대부(大富)는 공부상서(工部尙書)를 지냈다.
【삼척박씨(三陟朴氏)】 시조는 속함대군의 후손이며 고려 공민왕 때의 좌복야(左僕射)인 원경(元慶)이다. 그의 아들 준제(準提)는 참지정사(參知政事), 증손 방실(邦實)은 군수, 후손 현좌(賢佐)는 국자감의 관직을 역임하였다.
【문의박씨(文義朴氏)】 시조는 고려의 명신 의중(宜中)이다. 그는 1258년(고려 고종 45) 최의(崔 )를 죽이고 국권을 왕에게 돌린 공으로 위사공신(衛社功臣)에 책록되었다. 그의 손자 영(寧)은 고려 말 공조전서(工曹典書)로 두문동(杜門洞) 72현(賢)에 들었다. 영의 5대손 계운(啓運)은 조선 인조 때의 학자이며 효자로 이름났다.
【장성박씨(長城朴氏)】 시조는 밀성대군의 8대손인 효신(孝臣)의 둘째 아들 공발(公發)이다. 그는 고려 인종 때 대장군으로 공을 세워 삼중대광(三重大匡) ·좌명공신(佐命功臣)으로 이성부원군(伊城府院君)에 봉해졌다. 그의 6대손 세영(世英)은 양관대제학(兩館大提學)을 역임하고 홍건적(紅巾賊)과 탐라(耽羅)의 난을 평정하여 좌명정국공신으로 장성군(長城君)에 봉해졌으며, 고려가 망하자 두문동에서 충절을 지켰다. 조선 성종 때 홍중(洪中)이 이조좌랑을 지내고, 그의 아들 덕원(德源)은 임진왜란 때 금산(錦山) 싸움에서 7백의병의 한 사람으로 순사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