임보 시인의 시작 이론(2)

[doolee]

4. 옛날의 금잔디 동산에

옛날 어렸을 적 시골의 중학교에서 국어선생님이 계셨다. 그분이 나에게 미친 영향으로 지금 내가 여기 와 있다. 그는 햄릿, 테스, 죄와 벌, 부활, 젊은 베르테르의 슬픔 등 수많은 명작들의 아름다운 문학 세계를 간접적으로나마 접하게 해 주었고 선생님이 다른 학교로 가시고 난 뒤 주고받은 수많은 편지, 그리고 선생님이 말씀하신 그 후 일기쓰기를 통해 나는 조금씩 문학에 가까워지기 시작했다. 그때의 기초적 문장력이 오늘에 이르게 해 주었다.

그래서 나는 시를 쓰기에 앞서 산문 쓰는 것부터 시작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바른 산문을 쓸 수 있는 문장력을 갖춘 다음, 시에 들어가는 것이 이상적이다. 바른 문장을 구사할 수 있는 능력도 갖추지 못한 사람이 처음부터 추상화에 달려드는 경우와 다를 것이 없다.

따라서 시 쓰기를 하려면 기초적으로 매일 일기쓰기부터 시작해야 한다.

5. 시의 한 독자에게

글을 잘 쓸 수 있는 길은 중국 송나라의 문인 구양수가 일찍이 간파했던 삼다(三多)의 교훈을 능가할 만한 것이 없다. 즉 多讀, 多作, 多商量이다.

그러면 좋은 글을 어떻게 고를 것인가가 문제이다.

요즘 시들은 어렵다. 잘 이해할 수도 없는 골치 아픈 시들이 많다. 그런 시들은 읽지 마라. 당신을 괴롭히는 그런 글들은 그냥 팽개쳐라. 당신처럼 선량한 독자를 괴롭힌다면 이는 고약한 시인임에 틀림없다. 남은 거들떠보지도 않고 자기만의 아집에 사로잡힌 고집스런 자임에 틀림없다. 그들은 당신의 사랑을 받을 자격이 없다.

감미롭게 속삭이는 출판사의 화려한 광고에 현혹되지 마라. 그럴듯한 신문기사나 비평가의 서평에도 넘어가지 마라. 겉으로는 공정한 척하지만 그들은 어쩌면 당신의 편이 아니라 출판사의 편일 수도 있다.

베스트셀러에 너무 마음을 빼앗기지도 마라. 지나치게 달콤한 맛이 나는 작품들도 경계하라. 조미료와 설탕의 힘을 빌려 만든 음식에 잘못 길들면 우리의 미각을 잃고 드디어는 건강까지도 해를 입게 되지 않는가? 작품도 그렇다. 당신이 지불할 인세에 마음이 팔려 사탕발림의 글을 쓰는 자들도 적지 않다는 것을 명심하라.

유명한 시인의 작품을 골라 읽는다고? 그 방법도 별로 권장하고 싶지 않다. 세상 사름들을 보라. 유명한 사람치고 훌륭한 사람은 별로 많지 않다. 특히 살아생전에 이름을 얻은 사람 가운데 믿을 만한 사람은 더더욱 그렇다. 시인의 경우도 마찬가지여서 유명한 시인 가운데는 차라리 정치가가 되었더라면 더 어울리겠다 싶은 사람들이 적지 않다.

시와 시인에 대해 너무 부정적으로만 얘기해서 혼란스럽다고 할지도 모르겠다. 아무튼 세상을 떠들썩하게 하는 요란한 시인들의 작품은 읽지 마라. 그들의 작품을 읽어 주기엔 우리들의 생애가 너무 짧다. 그러한 작품들은 당신이 아니더라도 눈먼 독자들이 많이 읽어 줄 테니까 미안해 할 것도 없다. 세상에는 마치 흙 속에 묻혀 빛을 보지 못하는 보석처럼 소중한 작품들이 적지 않다. 그러한 작품들은 당신 같은 현명한 독자들이 찾아 읽어주기를 기다리고 있다. 차라리 선배나 친구가 읽고 권하는 시집을 읽어라. 가능하면 책방에 들러 스스로 읽어보고 믿을 만한 시인이 누군가를 찾아라.

예술은 결코 양이 아니라 질이 문제다. 세상이 필요로 하는 것은 천명의 잡다한 작곡가보다는 하나의 모차르트이다. 저질의 예술품들은 세계를 정화하기는커녕 지상을 어지럽히는 공해물에 지나지 않는다. 세상을 아름답게 변화시킬 수 있는 그런 양질의 시를 찾아 읽어라. 그런 시의 주인공 - 당신이 존경할 만한 시인은 아직 세상에 드러나지 않고 어딘가에 지금 묻혀 있을지도 모른다. 그를 찾아보라. 그는 그늘진 곳에서 혼자 외롭게 유서를 쓰듯 시를 쓰며 살아가고 있을 것이다. 그런 시인을 하나 찾아 그의 후원자가 되어라. 물질적으로 돕는 후원자가 아니라, 그가 용기를 잃지 않고 계속 시를 쓸 수 있도록 격려를 보내주고, 때로는 그의 외로움을 달래주는 후견인이 되어라. 그의 아름다운 시를 주위 사람들에게 소개도 하고 혹 그가 모처럼 소중한 시집을 만들어 냈다면 그의 시집을 몇 권 사서 가까운 이웃들에게 나누어 주기도 하라.

세상에 시가 사라지지 않고 존속될 수 있기를 바라는가? 시에 대한 당신의 사랑이 곧 시의 생명이다. 당신이 좋은 시를 찾아 읽는 한, 이 지상에서 훌륭한 시인은 사라지지 않을 것이다. 당신은 시의 수호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