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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리아 신심에 대한 지극히 개인적인 생각입니다.
짧고 얇게 공부한 마리아 신임에 대한 개똥철학입니다.
교리교사로 작은 사명과 레지오 평신도 사도직 3개월간 보고 느낀점과 생각들 입니다. 많이 부족한 마리아 신심의 내용입니다. 하지만, 가톨릭 신자로서 교리교사로서 가톨릭안에서의 마리아 신심에 대하여 한번쯤 생각해 볼 문제 같다고 생각하였습니다.
이 어설픈 글이 논란? 혹은 불편한 시선?은 없을 것이라 생각합니다. 이유는 읽으시는 분이 별로 없기도 하거니와 타자는 이런 것에 큰 관심 없기 때문이지요.
그럼에도 이렇게 글을 올리는 것은 마리아 신심이 정말 중요하다고 생각하기 때문입니다.
(참고로 관심 없는 분은 읽으시면 곤란합니다~ 😅)
만약 생각이 다르거나 비판이 있다면 교우님의 생각이나 말씀이 맞을 것이라 생각합니다.
다만, 자신만의 성모님 신심에 대해 생각해 볼 수 있는 기회 만으로도 만족하게 생각합니다.
1. 십계명의 부모공경.
(우상숭배 문제와 이해충돌이 발생 할 수 있으나 개인적으론 생각이 다르다. 그것은 우상의 정의에서 출발점이 다르기 때문이다. 아버지 하느님과 성령 하느님은 비물질적 존재로 영원하고 끝없는 존재이시나, 성자 하느님은 스스로 사람의 형상안에 갇힌 존재로서 구원의 새역사를 위해 물질로서 존재하셨고, 어머니 또한 물질로서 존재하셨던 실체이신 분이시다. 종교적으로 실체의 역사를 가지고 계시기에 십자가 상의 예수님이 존재하기 위해선 어머니 마리아의 형상 또한 불가피한 것이다. 물질로서 형상의 시작이시기 때문이다. 성령하느님은 실제 성경에 불혀나 비둘기의 형상으로 자신을 보여주셨고, 아버지 하느님은 형상이 아닌 말씀과 계시를 통하여 계시기 때문에 형상이 없는 전승과 글로써 존재 하시는 것이라 생각된다.)
2. 구약의 율법주의에서 나아가 신약의 보편적
종교의 발전. 하느님 믿음의 신심을 성경이란 틀안에서 제한 된 믿음의 신심으로 규정하는 것은 이율배반.
[가톨릭은 많은 기도문과 기적, 여러 표징들을 공식적으로 인정 하거나 과학적으로 여러해 사실 확인을 하기도 하였음.
특히, 개인적으로 가장 주목 하는 성모발현 역사를 보면...
최초의 성모발현은 기원후 40년으로 사라보사에서 야고보에게 나타나심 이고, 이후 가장 유명한 사건은 공교롭게도
* 프로테스탄트(Protestant; 저항하다), 마르틴 루터의 종교개혁 : 1517.10.31 95개조 반박문 발표 이후인
* 과달루페 성모발현(1531년)이다.]
3. 2번 사항 성경틀 밖의 하느님 신심을 어떻게 인정하는지 문제 직면 -> 문제의 해석으로...
하느님 신앙의 뿌리는 믿음의 선조인 아브라함으로 시작. 한 개인에서 씨족 단위로 발전한 하느님 체험과 전승의 역사, 종교안에서 신앙의 체험과 전례를 빼놓곤 사실 종교를 말할 수 없음.
4. 3번 체험과 전례에 대하여...
역사와 문화를 통하여 A.D 기원 후 마리아 신심은 전승, 기록, 교회의 다양한 문화유산 속에 남아 있음. 마리아신심의 2천년 역사를 간직한 가톨릭신앙에서 교회의 어머니 마리아 신심을 버리는 것은 교회의 머리이신 예수께서 세우신 신비체를 없애는 것과 같은 것임.
5. 구약의 선조와 신약의 메시아, 그리고 마리아 신심
: 창조주 하느님의 유일신 신앙의 개념이 정립된 것은 유다민족이 성전과 나라를 잃고 바빌론으로 유배된 이후임. 그 후 예수 그리스도까지 하느님은 자신의 대리자를 통하여 역사하심. 주께서 직접 알려주시지 않는 한 한 인간은 하느님의 섭리를 알 수 없음. 인간이 안다고 하지만 확실히 안다고 할 수 있는 것은 사실 없음. 단지, 안다고 착각 할 뿐임. 그리하여 주께선 대리자를 통하여 깨우쳐 주심. 성경은 그러한 주께서 하신 말씀. 그것은 체험과 전례의 역사임. 하느님의 섭리는 구약의 선지자들과 새로운 약속인 사람의 아들을 통해 알게 하셨음. 범심론적으로 보면 하느님는 모든 것을 통하여 인간과 소통하심. 이것과 관련 바오로 사도는 로마서 1,20 에 언급하심. 사람은 주께서 말씀해 주시지 않으면 깨닫기 힘든 존재. 따라서 하느님은 예언자를 통하여, 아드님을 통하여, 천사를 통하여, 마리아를 통하여, 사제와 수도자를 통하여 지금도 말씀해 주고 계십니다. 예수 그리스도를 통하여 아버지 하느님께 닿을 수 있듯, 어머니 마리아를 통하여 예수 그리스도, 교회의 신비체에 닿을 수 있습니다. 사실 교회의 신비체 자체는 예수 그리스도 성자 하느님 이시지만, 교회의 문을 여신분은 원죄없이 잉태되신 동정녀 마리아십니다. 우리 교회의 지체들은 마리아를 통하여 신비체안에 들어갈 수 있고, 머무를 수 있는 것입니다.
(마리아 신심을 버릴 경우 종교개혁으로 수 많은 분리를 거듭한 개신교와 같이 가톨릭은 구심점을 잃고, 조직이나 개인의 이익과 사상에 의하여 산산조각 될 것이다. 마리아 신심과 교황님은 가톨릭을 하나의 공동체로 묶어 주는 굉장히 중요한 구심점이라 생각한다.)
6. 제한적 존재와 초월적 존재, 삼위일체 하느님
천상에 계신 분들은 초월적 존재들 이십니다.
그것은 자신안에 머무르는 것이 아니라 타인을 향하여 나아갈 수 있기 때문입니다. 하느님은 하나이시면서 세분의 위격을 갖고 계시는 공동체 이십니다. 아버지는 아드님을 향하고, 아드님은 아버지를 향하여 기도하십니다. 성령 하느님은 성부, 성자 하느님을 위하여 우리 곁에 계십니다. 서로가 서로를 향하여 존재 하시지만, 하나이신 분이십니다. 성자 하느님은 하나 이면서 각 지체가 존재하는 교회이시기도 하십니다. 하느님의 속성은 타자를 향하고 계십니다. 인간은 하느님의 모상입니다. 인간은 서로가 서로를 위하여 기도할때 완전해질 수 있습니다. 우리는 이것을 통공이라 합니다. 마리아 신심을 향한 기도 또한 완전한 교회의 일치를 위해 나아가는 옳바른 방향일 것입니다. 나아가지 못하는 제한적 존재로 머무르는 것은 그리스도의 신앙이 아닌 것입니다.
7. 성경 속 삼위일체와 교회의 대리자, 성모신심
삼위일체론은 성경에 없습니다. 유대교는 유일신 입니다. 세분의 하느님은 없습니다. 그러나 가톨릭에는 삼위의 하느님이 계십니다. 삼위의 하느님 역시 율법주의적 해석으로는 많은 논쟁을 피할 수 없습니다. 랍비, 사제, 목사 등 종교인, 신의 대리자 또한 많은 논쟁이 있을 수 있습니다. 전례를 통한 신의 대리자로서의 권한이지, 성경 안에서의 해석만으론 역시 많은 논쟁을 피할 수 없습니다. 2번 사항에서와 같이 율법주의로 종교의 신앙과 믿음을 설명하는 것에는 한계가 따릅니다. 종교도 문화이고 전통이므로 자체로서의 가치를 존중하고 지키고 이어나가야 할 의무가 있습니다. 고유한 가치는 시대와 사람들에 의해 흔들리지 않는 가치입니다. 가톡릭 안에서 삼위의 하느님과 성모님의 가치는 변하지 않는 고유한 가치 입니다.
8. 역사의 과오와 마리아 신심
하느님은 완전하시고, 온전하신 존재이시지만, 인간은 그렇지 않다. 인간을 통하여 하느님께서 역사하시지만, 인간이기에 언제나 과오가 따랐다. 중세이후 인본주의 사상이 꽃피고, 현대의 민주주의 사상이 보편적 이념으로 정착하기까지 많은 충돌이 있었고, 그것은 현재 진행형 이기도 하다. 그러나 민주주의에 저항하여 탄생한 마르크스 이념을 지금 현대에 보편적 이념으로 받아들이기는 힘들다. 가톨릭 역시 역사적 과오가 있으나 그것은 인간의 과오이지, 마리아 신심과 연결되어질 순 없다.
또한 가톨릭의 타락으로 교회의 신비체 자체를 부정할 순 없는 것이다. 가톨릭의 교회는 예수님께서 직접 세우신 공동체이기 때문이다. 예수님께서는 서로 하나가 되기를 바라시지만, 악은 저항과 분리를 위하여 일한다. 교회의 잘못된 권위와 타락은 인본주의인 똘레랑스를 낳았고, 자유, 관용, 등에 비추어 봐도 현대의 종교는 자유와 타종교간의 소통과 이해를 기본으로 하고 있다. 물론 인본주의의 이중성이 있긴 하지만, 사상적 예로써 부적절 할 수도 있다. 허나 부족한 부분에 미루어 보아도 마리아 신심은 이해와 소통의 영역이지 공격의 대상이 될 수 있는 것은 아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