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석마하연론(釋摩訶衍論) 제1권
釋摩訶衍論卷第一
용수(龍樹) 지음
벌제마다(筏提摩多) 한역
이인혜 번역
龍樹菩薩造 姚秦三藏筏提摩多奉 詔譯
원만히 깨달으신 분과 깨달음으로 증득하신 법장(法藏)과
논을 지으신 대사와 모든 성현들께 머리 숙여 절합니다.
격단문(隔檀門)을 열고
향해 나가는 지위[往向位]를 방편으로 보여 주고자 함은
모든 중생을 이롭게 하여
조금이나마 스승의 은혜에 보답하기 위함이네.
【釋】 지금 이 논을 지어 『마하연론(摩訶衍論)』을 해석하려는 목적은 다음과 같다.
첫째는 우리 스승의 도체(道體)는 매우 깊고 그가 도달한 궁극의 경지는
미묘하기 때문에 바르게 증득하지 못한 자는 삿된 수행을 면할 수
없을뿐더러, 그 경지가 막막하고 아득하여 사실상 엿볼 길이 없는
사유를 넘어선 영역에 있다는 사실을 보여 주기 위함이다.
둘째는 영리한 근기나 둔한 근기의 중생 모두에게 단번에 들어가는 문
[頓入門]을 열어 주는 한편, 점차로 닦아 나아가는 지위[漸進位]를
보여 주어 깊고 깊은 이치로 들어가게 해 주기 위함이다.
셋째는 독을 멎게 해 주신 스승의 은혜가 매우 중하므로
그 큰 은혜에 조금이나마 보답하기 위함이다.
넷째는 미래의 중생들이 백천 가지로쟁론을 일으켜
이 논의 종지를 훼손할 것임을 비밀스럽게 관찰하였기 때문이다.
다섯째는 아세야(阿世耶)를 직접 듣고 받자왔기 때문이다.
이상과 같은 인연이 있어 필연적으로 이 논을 짓게 되었다.
위에서는 논을 짓는 근본 취지를 말하였다. 이제부터는 많은 논이
어떻게 구별되는지 에 관해서 말하겠다. 논에는 몇 가지 부류가 있으며,
어떤 논들이 어떤 부류에 속하는가?
그 중에 이 『마하연론』은 어디에 들어가는가?
게송으로 말한다.
십만 구천 부(部)의 논은 모두 열 가지로 분류되니
마가라론과 발제론 오사마론과 사타론
별나제사론과 아부제론과 발마론
호가론과 마승나론 건파마가론에 속한다네.
【釋】 대대로 내려온 갖가지 논을 모으면 모두 십만 구천 부에 달한다.
이 논들은 모두 열 가지로 분류된다. 열 가지란 어떤 것들인가?
첫째는 『마가라론(摩訶羅論)』,
둘째는 『발제론(跋提論)』,
셋째는 『오사마론(鄔舍摩論)』,
넷째는 『사타론(闍他論)』,
다섯째는 『벌나제사론(筏那提舍論)』,
여섯째는 『아부제론(阿部帝論)』,
일곱째는 『발마론(跋摩論)』,
여덟째는 『호가론(呼呵論)』,
아홉째는 『摩僧那論)』,
열째는 『건파론(鍵婆論)』이상 열 가지다.
이 중에 『마하연론』은 여의론(如意論)에 속한다. 마명(馬鳴)보살이
지은 논에는 몇 가지가 있으며, 어떤 문장형태[文]로 되어 있으며,
어떤 내용[義]을 담고 있는가? 그 중에 『마하연론』은 어디에 속하는가?
게송으로 말한다.
부로 따지면 백 부요 문장형태로는 아흔 가지며
내용으로 보면 열 가지인데 이 논은 보책(寶冊)에 들어간다네.
【釋】 마명보살이 지은 논은 모두 백 부인데, 이 백 부 중에 아흔아홉
가지는 화문론(華文論)에 들어가며 나머지 열 가지는 섭의론(攝義論)에
속한다. 열 가지 섭의론이란 그 명칭이 어떠하며, 논에서 펼쳐 보이는
내용은 같은가, 다른가?
게송으로 말한다.
변만론과 귀진론 중장론과 미묘론 합일론과 삼매론
청정론과 본원론 현리론과 기신론 모두가 동일한 상을 건립하였네.
【釋】 무엇이 열 가지인가?
첫째는 『일심변만론(一心遍滿論)』,
둘째는 『융속귀진론(融俗歸眞論)』,
셋째는 『법계중장론(法界中藏論)』,
넷째는 『비밀미묘론(袐密微妙論)』,
다섯째는 『중명합일론(衆命合一論)』,
여섯째는 『진여삼매론(眞如三昧論)』,
일곱째는 『심성청정론(心性淸淨論)』,
여덟째는 『부동본원론(不動本原論)』,
아홉째는 『심심현리론(甚深玄理論)』,
열째는 『대승기신론(大乘起信論)』 이상을 열 가지 논이라 한다.
이 열 가지 논은 부류는 다르지만 건립하는 법상은 한 가지다.
이제까지는 논들이 어떻게 구분되는지[論差別]를 말하였으니,
이제부터는 장이 어떻게 구분되는지[藏差別]를 밝히겠다.
장(藏)에는 몇 가지 부류가 있으며, 어떤 장들이 어떤 장에 속하는가?
그 중 이 『마하연론』은 어디에 들어가는가?
게송으로 말한다.
오십일 장(藏)으로 나누기도 하고 경에서처럼
열 장에 한정하기도 한다네. 모두가 삼장(三藏)에 들어가는데
이 논은 모두에 공통되기도 하고 특수성을 갖기도 한다네.
【釋】 장을 쉰한 가지로 구분하는 것은 장의 인(因)과 과(果)가 그렇게
구분되기 때문이다. 또한 장이 가지고 있는 공덕이 그렇게 구분되는 것을 표현하기 위해서며,
수행하는 이를 이끌어 주기 위해서다. 『금강계경(金剛契經)』에서 “부처님께서 불자들에게,
‘내가 그대들을 위해 걸림 없는 언사로 오십 가지 인장(因藏)과 하나의 과장(果藏)을 열어 보이겠다’고
말씀하셨다”라고 설했기 때문이다.
장을 열 가지로 구분하는 경우도 있다. 무엇이 열 가지인가?
첫째는 하나의 장만을 건립하여 모든 법을 다 거두어들이는 것으로서,
법계법륜장(法界法輪藏)을 말한다. 『원만계경(圓滿契經)』에서,
“일체 중생이 하는 모든 말과 소리가 여래께서 굴리는
법륜의 소리에 다 들어간다”고 설했기 때문이다.
둘째는 두 가지 장을 건립하여 모든 법을 다 거두어들이는 것으로서,
즉 성문장(聲聞藏)과 보살장(菩薩藏)을 말한다. 『총지계경(摠持契經)』
에서, “한없는 법문이 있지만 두 가지 장을 벗어나지 않는다”고
설했기 때문이다.
셋째는 세 가지 장을 건립해서 모든 법을 다 거두어들이는 것으로서,
앞의 두 가지에 여래장(如來藏)을 더한 것이다. 『광명계경(光明契經)』
에서 “갠지스 강의 모래알보다 많은 부처님들이 말씀하신 베풀어 주신 것은
오직 성문법장과 보살법장과 여래법장뿐이며,
그 밖에 다른 도는 없다”고 설했기 때문이다.
넷째는 네 가지 장을 건립하여 모든 법을 다 거두어들이는 것으로서,
앞에다가 보특가라장(補特伽羅藏)을 더한 것이다.
『도품계경(道品契經)』에서, “불자여, 잘 들어라. 그대들을 위해 풀어서 설명해주겠다.
인의예지신장(仁義禮智信藏)과 성문장과 보살장과 대각법장(大覺法藏)이 있다.
어째서인가? 모든 행자들이 이 차례법에 의해 점차적으로 수승(殊勝)한
도에 나아가기 때문이다”라고 설했기 때문이다.
다섯째는 다섯 가지 장을 건립하여 모든 법을 다 거두어들이는 것으로서,
앞에다가 천장(天藏)을 더한 것이다. 『천자계경(天子契經)』에,
“부처님께서 야론(耶論)에게 말씀하셨다. ‘청정한 보공(報空)을 말로는
설명할 수 없다. 내가 대중을 위해 정장(淨藏)과 인장(人藏)과
이승장(二乘藏)과 모든 부처님의 대각법장을 널리 설하겠다”라고
설했기 때문이다.
여섯째는 여섯 가지 장을 건립하여 모든 법을 다 거두어들이는 것으로서,
앞에다가 나락가장(奈落迦藏)을 더한 것이다. 『포외계경(怖畏契經)』에,
“나는 앉은 자리에서 움직이지 않고 팔만 사천 나락가장을 분별해서
설하겠다”고 설했기 때문이다. 나머지는 앞에 설한 다섯 가지 장과 같다.
일곱째는 일곱 가지 장을 건립하여 모든 법을 다 거두어들이는 것으로서,
앞에다가 마라구다야장(摩羅鳩多耶藏)을 더한 것이다. 『반모계경(班母契經)』에,
“내 이제 반모(班母) 등 일억 칠만 삼천 대중을 위해 오만 천삼백두 가지 귀신도장(鬼神道藏)을
사실대로 분별해서 말해주겠다”고 설했기 때문이다. 나머지는 앞에 설한 여섯 가지 장과 같다.
여덟째는 여덟 가지 장을 건립하여 모든 법을 다 거두어들이는 것으로서,
앞에다가 건파타나발장(鍵婆陀那跋藏)을 더한 것이다.
『용왕계경(龍王契經)』에, “난타용왕(難陀龍王)이 여래께 팔천 가지 질문을 던지니
부처님께서는 십억 가지 방생도장(傍生道藏)을 열어 보이셨다”고 설했기 때문이다.
나머지는 앞에 설한 일곱 가지 장과 같다.
아홉째는 아홉 가지 장을 건립하여 모든 법을 다 거두어들이는 것으로서,
앞에다가 기세계장(器世界藏)을 더한 것이다. 『세계계경(世界契經)』에,
“이때 세존께서 수목(樹木)의 신에게 말씀하셨다. ‘훌륭하구나, 훌륭하구나.’
그대가 말한 대로, 듣고 싶어 하는 자가 있다면 내 그대를 위해 중생이 의지해
머무는 장을 분별해서 설해 주겠다”고 설했기 때문이다.
나머지는 앞에서 설한 여덟 가지 장과 같다.
열째는 열 가지 장을 건립하여 모든 법을 다 거두어들이는 것으로서,
앞에다가 잡란장(雜亂藏)을 더한 것이다. 『음성계경(音聲契經)』에,
“내 이제 여덟 가지 잡장을 열어 보여주겠다”고 설했기 때문이다.
나머지는 앞에서 설한 아홉 가지 장과 같다. 이것이 장을 열 가지로
구분한 것이다. 이와 같은 여러 가지 장이 십억 팔천 가지 법장을
다 거두어들인다.한편 근본이 되는 삼장[根本三藏]으로 이 열 가지를
통합하기도 한다.
무엇이 근본이 되는 삼장인가?
첫째는 소달람장(素呾嚂藏),
둘째는 비나야장(毘捺耶藏),
셋째는 아비달마장(阿毘達磨藏)이다.
이것을 근본이 되는 삼장이라 한다.
『마하연론』이 이 세 가지 모두에 속하는지, 아니면 아비달마장에만
속하는지가 의문이므로 위 게송에서 “공통되기도 하고 특수성을 갖기
도 한다네”라고 한 것이다. 공통된다는 것은 『마하연론』이 삼장(三藏)
각각에 대해 공통적으로 연관성을 갖는다는 뜻이고, 특수성을 갖는다는
것은 다른 것과는 구별되는 『마하연론』만의 특성을 갖는다는 뜻이다.
장(藏)이라 이름한 이유는 수행의 법도를 간직하여 그에 상응하는 것들을
잃지 않기 때문이다.이 장(藏)이 어떤 식으로 구분되는지를 살펴보았다.
다음으로 경(經)이 어떻게 구분되는지에 대해 설하겠다.
경에는 몇 가지 부류가 있으며, 어떤 경들이 어떤 부류에 들어가는가?
그 중에 『마하연론』은 어떤 경을 근거로 삼는가?
게송으로 말한다.
모두 백 낙차(洛叉)부의 경은 십이부경으로 통합된다네.
수다라와 기야 비가라나 가타와 우타나
그리고 니타나 아파타나경과 이제목다가 사타가와 비불략
아부타달마 우파제사경 중에 모두를
혹은 특정한 것을 소의로 삼는다네.
【釋】 대대로 내려온 갖가지 경들을 다 합해 보면 백억 부(部)가
되는데, 이 경들은 모두 열두 가지 부로 통합된다.
어떤 것들이 열두 가지인가?
첫째 수다라(修多羅),
둘째 기야(祇夜),
셋째 비가라나(毘伽羅那),
넷째 가타(伽陀),
다섯째 우타나(憂陀那),
여섯째 니타나(尼陀那),
일곱째 아파타나(阿波陀那),
여덟째 이제목다가(伊帝目多伽),
아홉째 사타가(闍陀伽), 열째 비불략(毘佛略),
열한째 아부타달마(阿浮陀達摩),
열두째 우파제사(優波提舍)다. 이것을 열두 가지라 이름한다.
이 『마하연론』은 모두에 공통되기도 하고, 하나에 국한되기도 한다.
공통된다는 것은 열두 가지에 다 관련된다는 뜻이고, 국한된다는 것은
다른 경과는 무관하게 특정한 경을 소의(所依)로 삼는다는 뜻이다.
『마하연론』은 얼마 안 되는 적은 문구에 매우 깊고 묘한 의미를 담고
있는데, 어떻게 바다같이 무량무변한 계경을 모두 소의로 삼을 수 있는가?
파살이가락(婆薩伊伽諾)과 같기 때문이며, 표다라달제(標多羅呾提)와
같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그 중에 하나도 놓치지 않는다.
특정한 소의가 되는 경에는 어떤 부류가 있으며, 몇 가지나 되는가?
어떤 명칭, 어떤 권속이 있으며 거기 속하는 것은 몇 개인가?
게송으로 말한다.
모두 백가지 소의경(所依經)이 있으니 광명대각경(光明大覺經) 등이네.
앞의 오십 가지에 각각 백 가지뒤의 오십 가지에 각각 천가지가 있네.
【釋】 『마하연론』이 특정하게 소의로 삼는 경은 모두 백 가지다.
무엇이 백 가지인가?
첫 번째 『광명대각경(光明大覺經)』,
두 번째 『심심순리경(甚深順理經)』,
세 번째 『금강삼매경(金剛三昧經)』,
네 번째 『제법무행경(諸法無行經)』,
다섯 번째 『수림설법경(樹林說法經)』,
여섯 번째 『무진일지경(無盡一地經)』,
일곱 번째 『청정여여경(淸淨如如經)』,
여덟 번째 『자성자체경(自性自體經)』,
아홉 번째 『대승동성경(大乘同性經)』,
열 번째 『아리야식경(阿梨耶識經)』,
열한 번째 『과원만경(果圓滿經)』,
열두 번째 『허공등경(虛空等經)』,
열세 번째 『삼삼매경(三三昧經)』,
열네 번째 『일심법경(一心法經)』,
열다섯 번째 『본성지경(本性智經)』,
열여섯 번째 『진법계경(眞法界經)』,
열일곱 번째 『섭무량경(攝無量經)』,
열여덟 번째 『최상극경(最上極經)』,
열아홉 번째 『유마힐경(維摩詰經)』,
스무 번째 『능가왕경(楞伽王經)』,
스물한 번째 『중실경(中實經)』,
스물두 번째 『무시경(無始經)』,
스물세 번째 『십인경(十因經)』,
스물네 번째 『윤전경(輪轉經)』,
스물다섯 번째 『자운경(慈雲經)』,
스물여섯 번째 『기심경(器心經)』,
스물일곱 번째 『무위경(無位經)』,
스물여덟 번째 『현성경(賢聖經)』,
스물아홉 번째 『은밀경(隱密經)』,
서른 번째 『화엄경(華嚴經)』,
서른한 번째 『대품경(大品經)』,
서른두 번째 『적멸경(寂滅經)』,
서른세 번째 『성궤경(聖軌經)』,
서른네 번째 『변연경(遍緣經)』,
서른다섯 번째 『훈습경(熏習經)』,
서른여섯 번째 『불성경(佛性經)』,
서른일곱 번째 『현리경(玄理經)』,
서른여덟 번째 『능가경(楞伽經)』,
서른아홉 번째 『본업경(本業經),
마흔 번째 『온고산경(蘊高山經)』,
마흔한 번째 『귀본경(歸本經)』,
마흔두 번째 진수경(眞修經)』,
마흔세 번째 『팔덕경(八德經)』,
마흔네 번째 『불혜경(佛慧經)』,
마흔다섯 번째 『연기경(緣起經)』,
마흔여섯 번째 『일체경(一體經)』,
마흔일곱 번째 『자불혜경(自佛慧經)』,
마흔여덟 번째 『대해경(大海經)』,
마흔아홉 번째 『무상경(無相經)』,
쉰 번째 『변진여경(遍眞如經)』,
쉰한 번째 『십종여래장경(十種如來藏經)』,
쉰두 번째 『삼신본유경(三身本有經)』,
쉰세 번째 『팔식통달연경(八識通達緣經)』,
쉰네 번째 『중생신등법경(衆生身等法經)』,
쉰다섯 번째 『제불무진장경(諸佛無盡藏經)』,
쉰여섯 번째 『찬탄불선품경(讚歎不善品經)』,
쉰일곱 번째 『제법동일상경(諸法同一相經)』,
쉰여덟 번째 『일체대비관경(一切大悲觀經)』,
쉰아홉 번째 『여여본지혜경(如如本智慧經)』,
예순 번째 『진진법계찰토경(塵塵法界刹土經)』,
예숩한 번째 『윤전본제경(輪轉本際經)』,
예순두 번째 『법계법륜경(法界法輪經)』,
예순세 번째 『대지본유경(大智本有經)』,
예순네 번째 『평등법계정(平等法界經)』,
예순다섯 번째 『사상상주경(四相常住經)』,
예순여섯 번째 『진여일상경(眞如一相經)』,
예순일곱 번째 『유전부동경(流轉不動經)』,
예순여덟 번째 『적정열반경(寂靜涅槃經)』,
예순아홉 번째 『통달음성경(通達音聲經)』,
일흔 번째 『여래자상경(如來自相經)』,
일흔한 번째 『부인경(夫人經)』,
일흔두 번째 『법문경(法門經)』,
일흔세 번째 팔유경(八喩經)』,
일흔네 번째 『중재경(中在經)』,
일흔다섯 번째 『총지경(總持經)』,
일흔여섯 번째 『부동경(不動經)』,
일흔일곱 번째 『양지경(兩智經)』,
일흔여덟 번째 『도지경(道智經)』,
일흔아홉 번째 『본각경(本覺經)』,
여든 번째 『대무량경(大無量經)』,
여든한 번째 『자연본과경(自然本果經)』,
여든두 번째 『심심법장경(甚深法藏經)』,
여든세 번째 『일도청정경(一道淸淨經)』,
여든네 번째 『십종망상경(十種妄想經)』,
여든다섯 번째 『법문현료경(法門顯了經)』,
여든여섯 번째 『경계원만경(境界圓滿經)』,
여든일곱 번째 『광명실지경(光明實智經)』,
여든여덟 번째 『인과동체경(因果同體經)』,
여든아홉 번째 『심신불공경(心神不空經)』,
아흔 번째 『진지무생행경(眞智無生行經)』,
아흔한 번째 『무애해탈경(無礙解脫經)』,
아흔두 번째 『수연증장경(隨緣增長經)』,
아흔세 번째 『법성실제경(法性實際經)』,
아흔네 번째 『광대허공경(廣大虛空經)』,
아흔다섯 번째 『본인연기경(本因緣起經)』,
아흔여섯 번째 『제법무위경(諸法無爲經)』,
아흔일곱 번째 『본래청정경(本來淸淨經)』,
아흔여덟 번째 『수행도지경(修行道地經)』,
아흔아홉 번째 『불수구덕경(不修具德經)』,
백 번째 『마하살운약경(摩訶薩雲若經)』이다. 이것을 백 가지 경이라 한다.
이와 같은 백 가지 부류의 경에서 앞 오십 권에 각각 백 가지 경이 속하고,
뒤 오십 권에 각각 천 가지 씩의 경이 속하는데,
경의 명칭만 들어도 논의 전체적인 요지가 어디에 속하는지를 알 수 있다.
자세한 내용은 아래서 문맥에 따라 그때그때 설명하겠다.
이제까지는 경이 어떻게 구분되는지를 설명하였다.
다음부터는 논을 지은 사람에 대해 논하겠다.
이 논을 지은 사람에 대해 경전에서 다르게 설하고 있는 것은
몇 가지이며,
여기서 말하는 마명논사(馬鳴論師)는 그 중 어디에 속하는가?
게송으로 말한다.
모두 여섯 분의 마명이 있으니
경에서 다르게 설하고 있기 때문이라네.
그러나 근기에 따라 응하신 것이기에
다른 분이라는 과실은 없으리.
【釋】 대대로 내려오는 경전에서 마명(馬鳴)논사에 관한 내용을
다 모아 보면, 모두 여섯 종류가 있다. 어떻게 해서 여섯인가?
첫 번째는 『대승본법계경(大乘本法契經)』에서 다음과 같이 설한다.
“더없이 높으신 대각존께서 열반의 인연에 들 것을 설하시자
마명보살이 자리에서 일어나 부처님의 발에 이마를 대고 절한 뒤
합장하여 공경을 표하고는 세존이신 부처님께 게송으로 아뢰어다.
대자비를 완성하신 더없이 존귀하신 분
바다같이 가없는 겁토록 만행을 구족하셨네.
다름 아니라 모든 부류의 중생에게 자비를 베푸시려고
부처님 스스로 열반에 드신다 말씀하시니,
나와 모든 대중들은
아득하고 막막하여 정신을 잃을 지경이라네.
대자비를 완성하신 높으신 세존께서
나와 불자들을 버리고 다른 세계로 가신다 하니
하물며 나는 자비를 완성하지도 못했거늘
부처님 따라 다른 세계로 간다한들 그 누가 비방하리.
이때 마명보살이 이 게송을 마치고 부처님의 눈동자를 보았는데,
부처님은 서서히 자연스럽게 명을 마치셨다.
두 번째는 『변화공덕계경(變化功德契經)』에서 다음과 같이 설한다.
“이때 세존께서 마명보살에게 말씀하셨다. ‘내가 멸도하고 나서
삼백 년이 지난 뒤, 너는 나의 가피력을 받아서 갖가지 방편법으로
말세의 중생들에게 이익을 주고 그들을 안락하게 하리라.
그런데 내가 가피력을 주지 않고서는 네 스스로 그런 능력을 갖지는 못할 것이다.’”
세 번째는 『마하마야계경(摩訶摩耶契經)』에서 다음과 같이 설한다.
“여래가 멸도하신 뒤 육백 년이 지나면 구십육 종의 외도들이 마치 경쟁이라도 하듯
사견을 일으켜 불법을 훼손하고 없애려 할 것이다. 이때 마명이라는 한 비구가 나타나
불법의 요지를 잘 설하여 모든 외도 무리들을 항복시킬 것이다.”
네 번째는 『상덕삼매계경(常德三昧契經)』에서 다음과 같이 설한다.
“부처님께서 멸도하신 뒤 팔백 년 쯤 되어서, 마명이라는 이름을 가진
지혜로운 이가 하나 나올 것이다. 그는 불가에 있든지 아니면 외도
무리 중에 있든지 간에 모든 외도를 무찌르고 불법을 세울 것이다.”
다섯 번째는 『마니청정계경(摩尼淸淨契經)』에서 다음과 같이 설한다.
“부처님이 열반에 드신 지 백여 년 쯤 되어서 마명대사가
세상에 나와서 정법을 지키고 보호할 것이다.”
여섯 번째는 『승정왕계경(勝頂王契經)』에서 다음과 같이 설한다.
“부처님께서 성도하신 지 열이레 째 되던 날 가라락구시마(迦羅諾鳩尸摩)라고 하는
외도가 하나 있었는데, 그는 자신의 몸에 변화를 부려 대용왕이 되었다.
그의 몸에는 팔만 육천 개의 머리와 팔만 육천 개의 혀가 달려 있었다.
그리고는 서로 모순되는[相違] 팔만 육천 가지 난문제를 들고 나와 여래께 물었다.
여래께서는 세 가지 다른 차원[三重]의 답을 가지고 용왕의 난제들을 회통시켜 끊어 주었다.
그러자 용왕은 다시 열 가지 다른 차원의 문제를 들어 여래께 물어왔다.
여래께서는 백 가지 다른 차원의 답을 가지고 난제들을 회통시켜 끊어
주었다. 이렇게 문답이 오간 뒤 부처님께서 용왕에게 말씀하셨다.
‘훌륭하고, 훌륭하다. 마명(馬鳴)사문이여, 불법의 성(城)을 지키려고 파괴하는
모습을 통해 불법을 세우는구나. 잘하고 잘하도다. 항상 이렇게 닦고 항상 이렇게 행하거라.
좁은 길로 가지 말고 부디 넓은 길로 다니거라.’
이때 용왕이 축생의 모습을 버리고 본래 모습으로 돌아와 더없이 존귀하신
세존께 이마를 대고 절한 뒤 합장하였다. 그리고는 기쁨에 찬 모습으로
세존이신 부처님께 게송으로 말하였다.
잘한다 잘한다 하신 말씀 내 귀에 스치고 지나갔는데
진짜인지 가짜인지 마음속에선 대단히 의심스럽네.
나는 축생의 몸도 아니요 외도의 무리도 아니지만
변화로 받는 생을 찬탄하여 이러한 형상으로 변화를 부렸는데,
세존께서는 거울에 비쳐본 듯 알아보시니 나는 이 용왕계를 떠나서
다른 세계에 태어나 가르침 받은 대로 넓은 길을 다니리.
그때 마명은 이 게송을 마치고 나서
선정에 들 때와 같이 적멸의 방에 들었다.”이상이 여섯 가지다.
이렇게 갖가지 경전에서 각기 다르게 설하지만 근기에 따라
응현 하신 것이므로 다른 분이라는 오류는 없다.
그러면 마명보살은 수행위중에 어느 위(位)에 해당하며,
어느 성(城)에서 탄생하셨으며, 무슨 이유로 이름을 ‘마명(馬鳴)’이라 부르는가?
게송으로 말한다.
본래는 대광명불(大光明佛)이요
인위(因位)로 치면 부동위(不動位)에 해당하네.
서천축(西天竺)에서 나시어 과거의 일로 이름을 지었네.
【釋】 마명보살은 그 근본을 따져보면 대광명불이며, 인위를 논한다면 제팔지(第八地) 안에 자리하신 보살이다.
노가(盧伽)를 아버지로, 구나(瞿那)를 어머니로 하여 서천축에서 탄생하셨으며, 함께 태어난 이들이 이익을
얻었다. 과거세에 윤타(輪陀)라는 대왕이 한 분 태어났는데,그때 천백 마리 새가 좋은 소리를 냈다.
새들이 소리를 내면대왕의 덕이 늘어났고 새들이 소리를 내지 않으면 대왕의 덕이 줄어들었다.많은 새들은 흰 말을 보면 아름다운 소리를 냈고 흰 말이 보이지 않을 때는언제나 소리를 내지 않았다. 그리하여 대왕은 흰 말을
찾아 이리저리 다녔으나 종일토록 찾지 못하고 이렇게 말하였다.
“만일 외도의 무리 중에 이 새 소리를 내는 자가 있으면 내가 불교를 몽땅 쓸어버리고
그 외도만을 받들어 믿겠으며, 반대로 불제자 중에 이 새 소리를 내는 자가 있으면
외도의 가르침을 몽땅 쓸어버리고 불교만 받들어 믿겠다.”
이때 보살이 신통력을 써서 흰 말 천 마리를 나타내 보여 천 마리
흰 새를 울게 함으로써 정법이 끊이지 않고 이어지도록 하였다.
이런 일로 해서 세존께서 ‘말로 새들을 울게 한 이[馬鳴]’라는 이름을 붙여주셨다.
이제까지는 논을 지은 이의 갖가지 특징을 설하였다.
여기서부터는 『마하연론』의 본문을 제시한 뒤에 해석을 붙이겠다.
【論】 이 하나의 게송은 두 부문으로 나뉜다. 무엇이 두 부문인가?
하나는 일체중생의 명을 다 아우르는 문[摠攝一切衆命門]이고,
또 하나는 원만하신 대각께 귀의하는 문[歸向圓滿大覺門]이다.
총섭문(摠攝門)을 시설한 이유는,
모든 시방의 계(界)에 있는 모든 중생 무리들의 명근(命根)을 다 아우른다는 뜻에서니,
본론에서 ‘명이 시방에 다하도록’이라고 한 것이다.
귀향문(歸向門)을 시설한 이유는
이토록 많은 명을 바쳐 대자비를 원만하게 성취하신 분께 귀의하여 그와 계합하고자 하는 뜻에서니,
본론에서 ‘업이 가장 수승하시고 변지를 갖추신 분, 걸림 없이 자재한 색을 갖추신 분,
대비로 세상을 구제하시는 분께 귀의한다’고 한 것이다.
논사는 몇 가지 덕을 들어 대각세존을 찬탄하고 있으며, 각각의 덕은 어떤 특성을 갖는가?
게송으로 말한다.
모두 팔만 사천 사십팔 가지 공덕이 있으니
최승업(最勝業) 등에 각각 열 가지와
지(智)와 무애(無礙)에 각각 네 가지
그리고 팔만 사천 가지로 색상(色相)이 차별되기 때문이라네.
공덕은 셀 수 없으나 결국 이 수를 벗어나지 않는다네.
【釋】 마명보살은 팔만 사천사십팔 가지 공덕을 모두 들어서 위없는 대각을 우러러 찬탄한다.
원만한 불과위(佛果位)에는 비록 한량없고 끝없는 청정한 공덕의 종류[品]가 있지만 결국은
이 수량을 벗어나지 않기에, 마명보살은 전체적인 특성[摠相]을 들어 찬탄한 것이다.
어떻게 해서 팔만 사천 가지 공덕이 되는가?
색의 특성[色相]이 그렇게 차별되기 때문에 팔만 사천 가지가 된다.
어떻게 해서 사십 가지가 되는가?
어디에나 두루하는 가장 뛰어난 업[最勝業遍]에 각각 열 가지가 있으므로 사십 가지가 된다.
어떻게 해서 여덟 가지가 되는가?
지(智)와 무애(無礙)에 각각 네 가지가 있으므로 여덟 가지가 된다.
가장 뛰어나다는 열 가지[十最]는 무엇인가?
첫 번째는 가장 잘 뛰어넘었다는 것[超過最]으로서
이승(二乘)의 지위를 멀리 떠났기 때문이다.
두 번째는 가장 잘 벗어났다는 것[出離最]으로서
삼계의 영역을 영원히 떠났기 때문이다.
세 번째는 가장 잘 대치했다는 것[對治最]으로서
사주지(四住地)를 단번에 끊었기 때문이다.
네 번째는 혐오와 근심을 가장 잘 했다는 것[厭患最]으로서
마치 취락처럼 모여 있는 오온(五蘊)을 이미 초월했기 때문이다.
다섯 번째는 애욕을 가장 잘 벗어났다는 것[離愛最]으로서
육도(六道)의 갈래를 영원히 이별했기 때문이다.
여섯 번째는 위엄스러운 덕이 가장 뛰어나다는 것[威德最]으로서
일곱 가지 악의 군대를 물리쳤기 때문이다.
일곱 번째는 가장 뛰어난 병사의 무리[兵衆最]라는 뜻으로서
여덟 가지 사견의 수풀을 다 베어 없앴기 때문이다.
여덟 번째는 지혜의 검이 가장 날카롭다는 뜻[智慧劍最]으로서
구결(九結)의 얽매임을 끊었기 때문이다.
아홉 번째는 가장 뛰어나게 해탈했나는 뜻[解脫最]으로서
십전(十纏)의 끈을 끊어 없앴기 때문이다.
열 번째는 가장 용맹스럽다는 뜻[勇猛最]으로서
아흔여섯 가지 외도를 모두 꺾었기 때문이다.
이를 가장 수승한 열 가지라고 한다.
경에서는 열 가지 으뜸가는 부처님의 공덕을 설한다.
무엇이 열 가지 수승함[十勝]인가?
첫 번째는 힘이 수승하다는 것[力勝]으로서
열 가지 힘[十力]을 갖추고 있기 때문이다.
두 번째는 두려움 없음이 수승하다는 것[無畏勝]으로서
네 가지 두려움 없음[四無畏]를 갖추었기 때문이다.
세 번째는 다른 것과는 공유하지 않는 특성이 수승하다는 것[不共勝]으로서
열여덟 가지 불공법[十八不共法]을 갖추었기 때문이다.
네 번째는 도를 닦기 위해 시설된 품계가 수승하다는 것[道品勝]으로서
서른일곱 가지 도품[三十七道品]을 갖추었기 때문이다.
다섯 번째는 변화가 수승하다는 것[變化勝]으로서
백 가지 천 가지 변화를 갖추었기 때문이다.
여섯 번째는 말과 음성이 수승하다는 것[言音勝]으로서
여든여덟 가지 성스러운 음성[梵音]을 갖추었기 때문이다.
일곱 번째는 가장 위엄 있고 단정하다는 것[端嚴勝]으로서
서른두 가지 장부의 모습을 갖추었기 때문이다.
여덟 번째는 가장 길하고 상서롭다는 것[吉祥勝]으로서
경계를 짓는 처소에 따라서 공덕이 될 선근(善根)을
만들고 증장하기 때문이다.
아홉 번째는 가장 성취하기 어렵다는 것[難得勝]으로서
삼계 가운데서 유일하게 높은 자리를 성취했기 때문이다.
열 번째는 머무는 처소가 가장 수승하다는 것[住處勝]으로서
머무는 궁전을 구만 팔천 가지 미묘하고 원만한 것들로
장엄하고 있기 때문이다. 이상이 열 가지 수승함이다.
경에서는 또 부처님의 열 가지 수승한 업[十種業]을 설한다.
무엇이 열 가지 업인가?
첫 번째는 자연업(自然業)으로서 무엇이든 자재하게 짓기 때문이다.
두 번째는 평등업(平等業)으로서 중생을 교화하고 이익을 주는 데 자별을 두지 않기 때문이다.
세 번째는 상응업(相應業)으로서 근기에 맞게 출현하기 때문이다.
네 번째는 구족업(具足業)으로서 복과 지혜 두 가지 밑천을 원만하게 갖추었기 때문이나.
다섯 번째는 무진업(無盡業)으로서 업이 끝 간 데가 없기 때문이다.
여섯 번째는 동생업(同生業)으로서취(趣)에 따라서 생(生)을 받기 때문이다.
일곱 번째는 무착업(無着業)으로서 연꽃과 같이 진속[塵]의 속박을 멀리 떠났기 때문이다.
여덟 번째는 의지업(依止業)으로서 귀의처가 되기 때문이다.
아홉 번째는 싫증을 내지 않는 무염업(無厭業)으로서 큰 바다와 같이 끝없이 중생을 거두어들이기 때문이다.
열 번째는 통달업(通達業)으로서 허공과 같이 아무런 막힘도 없기 때문이다. 이것을 열 가지 업이라 이름한다.
경에서는 또 부처님의 열 가지 두루하는 작용[十種作用]에 관해 설한다.
무엇이 열 가지 두루함[十遍]인가?
첫 번째는 근이 두루하다는 것[根遍]으로서 부처님의 갖가지
색근(色根)은 근 각각이 법계 전체에 두루해 있기 때문이다.
두 번째는 식이 두루하다는 것[識遍]으로서
부처님의 갖가지 심식은 가서 닿지 않는 곳이 없기 때문이다.
세 번째는 경계가 두루하다는 것[境界遍]으로서
대원경지[圓智]의 소연(所緣)에는 분할된 경계가 없기 때문이다.
네 번째는 수명이 두루하다는 것[壽命遍]으로서
부처님의 수명이 불가사의하기 때문이다.
다섯 번째는 권속이 두루하다는 것[眷屬遍]으로서
부처님의 권속을 다 헤아려 볼 수 없기 때문이다.
여섯 번째는 공덕이 두루하다는 것[功德遍]으로서
낱낱의 공덕이 모두 허공계와 같기 때문이다.
일곱 번째는 자비가 두루하다는 것[慈悲遍]으로서
부처님께서 자비를 베푸시는 데는 가리고 빼고 함이 없기 때문이다.
여덟 번째는 언설이 두루하다는 것[言說遍]으로서
부처님의 말씀과 음성은 어디든 가지 않는 곳이 없기 때문이다.
아홉 번째는 증득하신 경계가 두루하다는 것[證遍]으로서
궁극에 이르지 않는 것이 없기 때문이다.
열 번째는 다른 것과는 동등하지 않은 작용이 두루 미친다는 뜻[無等遍]으로서
부처님의 작용과 동등한 것은 아무 것도 없기 때문이다.
이것을 열 가지 두루함이라 이름한다.
경에서는 이와 같이 어디에나 두루하는 열가지 작용을 설한다.
무엇이 네 가지 지혜[四智]인가?
첫 번째는 광명이 무진장한 지혜[光明無盡藏智]로서 십억천 가지 지혜의 문을 낼 수 있기 때문이다.
두 번째는 한 맛, 한 모습을 갖는 지혜[一味一相智]로서 갠지스 강의 모래알만큼이나 되는
모든 법이 차별 없음을 통달하기 때문이다.
세 번째는 대비가 끝없는 지혜[大悲無邊智]로서 한 가지 교화를 일으키면 그 교화가
모든 시방세계에 가득 차기 때문이다.
네 번째는 무위적멸의 지혜[無爲寂滅智]로서 모든 일어남과 업 짓는 것을 멀리 떠났기 때문이다.
이것을 네 가지 지혜라 이름한다. 경에서는 이와 같이 네 가지 원만한 지혜를 설한다.
무엇이 네 가지 무애[四無礙]인가?
첫 번째는 법무애(法無礙)로서 모든 법의 실다운 모습과 모든 법의 실다운 성품을 분명히 알기 때문이다.
두 번째는 의무애(義無礙)로서 모든 법의 공상(共相)과 차별상(差別相) 및 생멸상을 분명히 알기 때문이다.
세 번째는 사무애(辭無礙)의서 가명(假名)을 허물지 않고 실상(實相)을 설하기 때문이다.
네 번째는 요설무애(樂說無礙)로서 끝없는 말로 바다 같은 계경을 설하여 차례차례 이어져
단절되지 않도록 하기 때문이다. 이것을 네 가지 무애라 한다.
경에서는 또 네 가지 해탈지[四種解脫智]를 설하는데, 자재한 언설이
위에서 든 것과 모두 공통되므로 여기서 따로 거론하지 않겠다.
부처님의 색상과 명칭의 의미는
『대총지경(大摠持經)』에서 자세하게 설한 바와 같다.
이제까지는 불보[覺寶]에 관해서 설하였고,
다음으로 법보(法寶)와 승보(僧寶)에 관해 설하겠다.
【論】 저들 신(身)의 체(體)와 상(相) 모두와 법성인 진여의 바다와
무량한 공덕장과 여실히 수행하는자들 모두에게 동등하게[等] 귀의합니다.
【釋】 이 하나의 게송은 다시 두 가지 부문으로 나뉜다. 무엇이 두 가지인가?
하나는 모든 중생의 몸[身] 전체를 포함하는 문 [體攝門]이고,
또 하나는 법장(法藏)과 승가(僧伽)를 모두 통괄하는 문[摠達門]이다.
체섭문이란 생멸하고 유전(流轉)하는 무량한 일체 중생의 항상됨이 없는 몸을
다 포함하기 때문이니, 본론에서 ‘저들 신의 체와 상 모두’라고 하였다.
총달문이란 이러한 중생의 몸으로 깊고 깊은 모든 법장과 여실하게 수행하는 모든 이들에 다 통하기 때문이니,
본론에서 ‘법성인 진여의 바다와 무량한 공덕과 여실하게 수행하는 자들께’라고 하였다.
‘등(等)’이라는 말은 귀의한다는 뜻을 총체적으로 표현한 것이다.
논사는 몇 가지 법과 승가를 두고 귀의하였는가?
또 어떤 모습으로 귀의한다는 말인가?
게송으로 말한다.
승가에 열 가지, 법장에 네 가지이므로 모두 열네 가지에 귀의하네.
혹은 위아래를 합해서 많은 부류의 승가 무리가 있기도 하다네.
【釋】 마명보살은 열네 가지 덕을 귀의처로 삼는다.
승가(僧伽)는 열 가지, 법장(法藏)은 네 가지로 차별되기 때문이다.
어째서 열 가지 승가가 되는가?
지위[地]가 열 가지로 차별되기 때문이다.
어째서 네 가지 법장이 되는가?
교(敎)ㆍ이(理)ㆍ행(行)ㆍ과(果)가 각기 차별되기 때문이다.
게송의 법성진여해(法性眞如海) 중에 법이란
위 네 가지 법 중에 교법(敎法)에 속하는 것으로서,
근기에 맞게 설해진 모든 경전의 바다를 말한다.
성진여란
위 네 가지 법 중에 이법(理法)에 해당하는 것으로서,
일체법 모두에 체성이 평등하여 가(假)라는 허망을 떠났고
실(實)이라는 집착을 끊었다는 뜻이다.
해란 네 가지 법 중에 과법(果法)에 해당하는 것으로서,
묘각(妙覺)의 과는 마치 큰 바다와도 같이
만 가지 덕이 원만하여 다함없다는 뜻이다.
무량한 공덕장이란
네 가지 법 중 행법(行法)에 해당하는 것으로서, 청정한 품에 속하는
육도만행(六度萬行)의 부류는 사유와 수량을 넘어섰다는 뜻이다.
여실수행(如實修行)에서 여란
열 가지 진여를 말하고,
실수행이란
열 가지 바른 지혜로 진여의 이치를 증득한다는 뜻으로서,
진실한 지혜에 입각해서 승(僧)이라는 명칭을 세운 것이다.
이(理)와 지(智)로써 능(能)과 소(所)를 화통하여 평등한 한 맛이
되게 하는데, 평등에는 쟁론이 없기 때문이다.
무슨 이유로 명(命)이란 말을 택하여 시방을 나타내는가?
거두어들이고자 하는 명근(命根)이 광대하고 원만하고
끝이 얼음을 드러내 보이기 위해서다.
무슨 이유로 신(身)이라는 말을 택해서 그 덕상을 표시하는가?
사상(四相)에 휘둘리는 모든 중생들을 다 섭수해서 그들로 하여금
항상하고 요동없는 금강(金剛)의 몸을 획득하게 한다는 뜻을 드러내
보이기 위해서다.
무슨 이유로 팔성(八聖)은 자신의 신명만을 다해 귀의하지 않고
무량한 중생의 모든 신명까지 다 해서 삼보에 귀의하는가?
그것은 일체 중생이 절대 평등해서 오직 진여 하나일 뿐 다름이 없다는 것을 확실히 알기 때문이며,
중생의 신명과 나의 신명이 서로 분리될수 없는 한 가지 맛, 한 가지 모습임을 확실히 알기 때문이다.
이런 까닭에게 송에서 ‘모두에게 동등하게[等]’라고 하였다.‘등’이라는 말은 지극히 깊은 뜻을 담고 있다.
무슨 이유로 일체 중생의 무량한 신명을 다 거두어 삼보에 귀의하는 모습을 성립시키는가?
시방삼세에 계시는 모든 부처님께서 다 기뻐하시기 때문이며,
시방삼세에 계시는 모든 보살들이 다 찬탄하기 때문이며,
시방삼세의 모든 법장이 끊이지 않고 항상 널리 퍼지기 때문이다.
마명보살은 부동지(不動地)를 증득하신 분으로서 부동지 이하의 공덕을 이미 다 만족하고 계신데,
부동지에 못 미치는 지위에 있는 승들에게까지 다 귀의하는 이유는 무엇인가?
귀의하는 자를 중심으로 놓고 보면 그 지위가 다 같지는 않기 때문이다.
만일 자신과 일치하는 분께만 귀의한다면 응당 부동지를 만족한 이와 그 위의 두 가지
[二地:第九 善慧地 第十 法雲地]에 국한해서 귀의해야 할 것이다.
만일 그렇다면 어째서 지전보살(地前菩薩)은 치지 않는가?
귀의할 사람이 없는 것이 아니므로 따로 열거하지 않았다.
마치 물체에 그림자가 저절로 따라오듯 윗자리를 들어서 아랫자리까지 나타내고자 한 것이다.
그렇다면 법운지(法雲地:十地 滿位) 보살이 귀의라는 자가
되었을 경우는 어느 승(僧)을 상대로 삼는가?
묘각지(妙覺地)에는 그야말로 진실된 승이라 알 자가 있으므로아무 문제가 되지 않는다.
만일 그렇다면 어째서 게송에서는 따로 언급하지 않았는가?
마치 물체에 그림자가 저절로 따라오듯 윗자리를 들어서 아랫자리까지
나타내고자 한 것이다. 그러므로 송에서 ‘혹은 위아래를 합해서
여러 부류의 승가 무리가 있기도 하다네’라고 하였다.
【論】 중생들로 하여금 의심을 없애고 삿된 집착을 버려
대승에 대한 바른 믿음을 일으켜 부처님의 종자자 끊기지 않도록 하기 위함이네.
【釋】 이 하나의 게송에도 두 가지 부문이 있다. 무엇이 두 가지인가?
하나는 장애와 속박을 끊는 문 [斷絶障縛門]이고,
또 하나는 해탈을 계속 이어지게 하는 문 [連續解脫門]이다.
장애와 속박을 끊는 문은 다시 네 가지로 나뉜다.
첫 번째는 확고한 신김을 일으키는 문[決定信心門]으로서,
한량없는 일체 중생으로 하여금 의혹의 마음을 끊고 견고한 신심을
일으켜 지극히 깊은 대승의 바른 길로 확고하게 나아가게 하기 때문이다.
두 번째는 혐오심을 버리고 떠나는 문[遠離捨心門]으로서,
한량없는 일체 중생으로 하여금 세간에 대한 혐오심을
멀리 떠나 즐겁고 의욕적인 마음을 북돋아 주어 지극히 깊은
대승의 비른 길로 나아갈 수 있도록 하기 때문이다.
세 번째는 삿된 이론들을 다스리는 문[對治邪論門]으로서,
아흔여섯 가지 각종 큰 외도와 그에 딸린 구만 삼천 외도,
그리고 네 가지 큰 마(魔)와 그에 딸린 삼만 이천 마의 무리에 맞서
그들을 다스리고 세상에 떠도는 일억 사만 육천 가지 논란들을 끊어
없앰으로써 깊고 깊은 대승의 바른 길로 접어들 수 잇도록 하기 때문이다.
네 번째는 집착을 떨쳐버리는 문[除遣執着門]으로서,
한량없는 일체 이생(異生) 및 이승(二乘)과 모든 보살들로 하여금
다섯 가지 인견[五種人見]을 끊어 없애 다섯 가지 대치[五種對治]를 증득케 하며,
두 가지 법집[二種法執]을 끊어 없애 두 가지 대치[二種對治]를 증득케 함으로써
방향을 돌려 깊고 깊은 대승의 바른 길로 향하게 하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본론에서 ‘중생들로 하여금 의심을 없애고 삿된 집착을 버려 대승에 대한
바른 믿음을 내게 하고자 함’이라고 한 것이다.
해탈을 계속 이어지게 하는 문은 다시 세 가지로 나뉜다.
무엇이 세 가지인가?
첫 번째는 대각을 끊지 않는 문[不斷大覺門]으로서,
인(因)이 되는 만행을 다 모으고 대각이라는 과(果)를 장엄하여
위없는 법왕(法王)이 끊어지지 않게 하기 때문이다.
두 번째는 법장을 끊기지 않게 하는 문[不斷法藏門]으로서,
수승하고 묘한 범음[梵響]을 내서 바다 같은 계경을 널리
설함으로써 팔만 사천 법장이 끊기지 않게 하기 때문이다.
세 번째는 승가를 끊기지 않게 하는 문[不斷僧伽門]으로서,
지전(地前)이나 지상(地上)의 대도를 닦는 이들로 하여금 진여법계의
궁전을 지어 정법과 후법시대에 머무는 승가를 끊기지 않게 하기때문이다.
그러므로 본론에서 ‘부처의 종자가 끊기지 않도록 하기 위함이네’라고
한 것이다. 본론의 게송에 나오는
중생이란 말은 어디까지를 두고 하는 말인가?
또 ‘대치하기 위해서’라는 말은 어떠한 것들을 끊는다는 말인가?
게송으로 말한다.
삼취(三聚)의 사람들을 다 포함하니 아직 원만을 얻지 못했기 때문이며네
가지 끊음[四種斷]을 대치하여 세 가지 끊지 않음[三不斷]을 건립한다네.
【釋】 마명보살은 삼취 중생 전체를 연하여 경계로 삼는다. 어째서 그런가?
아직 원만한 과를 증득하지 못했기 때문이다. 그런데 삼취로 분류하는 데에도
세 가지 이설이 있다. 무엇이 세 가지인가?
첫 번째는 우선 십신(十信)에 이르기 전까지는 업을 지은 대로 과보를 받는다는
이치를 믿지 못하기 때문에 이들을 사정취(邪定聚)로 분류하고,
삼현(三賢)과 십성(十聖)은 더 이상 물러남이 없는 지위에 확고히 안립하기 때문에
정정취(正定聚)로 분류하며, 십신의 지위에 있는 이는 나아갈지 물러날지가 확실치
않기 때문에 부정취(不定聚)로 분류한다.
두 번째는 우선 십신에 이르기 전과 십신의 마음을 갖는 자들에게는
선근(善根)이 없기 때문에 사성취로 분류하고, 위없는 대각의 과위를
성취하신 분은 인(因)이 되는 만행을 이미 다 채웠기 때문에 정정취(正定聚)로
분류하며, 삼현과 십성은 아직 구경(究竟)에 이르지 못했기 때문에 부정취(不定聚)라고 한다.
세 번째는 우선 십신에 이르기 전에는 도에 대한 기꺼운 욕구가 없기 때문에
이들을 사정취로 분류하고, 십성은 이미 진여를 증득했기 때문에 정정취로 분류하며,
십신과 삼현은 바른 증득을 얻지 못했기 때문에 부정취로 분류한다. 이상이 세 가지 설이다.
마명보살은 이 셋 중에 첫 번째 설을 빌어 네 가지 끊음을 대치함으로써
삼보가 끊어지지 않게 만다는 뜻을 건립하고자 하였다.
무엇이 네 가지 끊음인가?
첫 번째는 의혹이 부처의 종자를 끊는 것[疑惑斷]이다.
이럴까 저럴까 하는 마음이 있으면 그것을 빌미로 결단을 하지 못하여
삼보의 종자를 끊어지게 하기 때문이다.
두 번째는 혐오심 때문에 버리는 마음이 부처의 종자를 끊는 것[厭捨斷]이다.
유(有)에 애착하는 마음이 있으면 그것을 빌미로 법을 좋아할 능력을
잃게 되어 삼보의 종자를 끊어지게 하기 때문이다.
세 번째는 사견이 부처의 종자를 끊는 것[邪見斷]이다.
망상심이 있으면 그것 때문에 정견을 갖지 못해서 삼보의 종자를
끊어지게 하기 때문이다.
네 번째는 있다고 고집하는 견해가 부처의 종자를 끊는 것[定執斷]이다.
실유한다고 고집하는 마음으로는 집착을 떠날 수 없으므로 삼보의
종자를 끊게 하기 때문이다. 이것을 네 가지 끊음이라고 한다.
이제까지는 논의 근본 취지를 설하였다.
이제부터는 총론에 해당하는 부분을 전개하겠다.
【論】 어떤 법이 있다. 이 법이 대승[摩訶衍]에 대한
신근(信根)을 일으키므로 응당 설해야겠다.
【釋】 위 본론은 두 부문으로 나뉜다. 무엇이 두 가지인가?
하나는 능입문(能入門)이고 또 하나는 소입문(所入門)이다.
능입문이란 말로 펼치려는 이치[所詮理]에 잘 들어갈 수 있게
해준다는 뜻에서 들어가게 한다[能入]는 표현을 썼으며,
소입문이란 저 능입의 법에게 훌륭한 의지처가 되어 준다는
뜻에서 들어갈 바[所入]라는 표현을 쓴 것이다.
어떤 법이 있다고 한 것은, 한 법으로 열여섯 가지 능입문 전체를 나타낸 것이다.
신근을 일으킨다고 한 것은 능입문이 업을 일으키는 양상을 전체적으로 나타낸 것이다.
대승[摩訶衍]이란
열여섯 가지 소입법의 체(體)와 아울러 불이(不二)의 관계에 있는 대승의 체 전부를 나타낸 것이다.
신(信)이란 확고하게 나아가는 마음이며 근(根)이란 행법을 낳고 자라게 하는 것이다.
만일 이(理)에 들어가고자 한다면 이 두 가지를 벗어나서는 방법이 없으므로 신관이라 말한 것이다.
한편으로 신(信)은 십신(十信)을 말하고
근(根)은 초발심주(初發心住)에서 법운지(法雲地)까지 모두를 말한다.
왜냐하면 신위(信位) 초반에 근이 없다면 마치
반다가이마화(班多伽伊摩華)처럼 연(緣)을 따라 나아가기도 하고 물러나기도 하기 때문이며,
신위 후반에 근이 있다면 마치 건구아미례수(鍵鳩阿彌禮樹)처럼
점점 갈수록 견고해져서 흔들림이 없기 때문이다.
신근(信根)에는 몇 가지 뜻이 있으며, 각각 어떤 양상인가?
게송으로 말한다.
신(信)과 근(根) 각각에 열 가지 뜻이 있으니
마음을 맑힌다는 등과 아래로 향한다는 등이다.
【釋】 신(信)에 열 가지 뜻이 있다. 무엇이 열 가지인가?
첫째는 마음을 맑힌다는 뜻으로서,
믿음이 심성을 맑고 깨끗하게 하기 때문이다.
둘째는 마음을 확고히 해준다는 뜻으로서,
믿음이 심성을 순수하게 해서 확고한 자리에 이르게 하기 때문이다.
셋째는 마을을 기쁘게 한다는 뜻으로서,
믿음이 갖가지 근심과 번뇌를 끊어 없애 주기 때문이다.
넷째는 마음을 지칠 줄 모르게 한다는 뜻으로서,
믿음이 풀어지고 나태한 마음을 끊어 없애 주기 때문이다.
다섯째는 따라 기뻐하게 한다는 뜻으로서,
믿음이 있으면 다른 사람의 훌륭한 행에 대해 동화되려는 마음을 일으키기 때문이다.
여섯째는 존중하는 마을을 갖게 한다는 뜻으로서,
믿음이 있으면 덕 있는 이를 보고 가볍게 여기지 않기 때문이디.
일곱째는 따르는 마음을 낸다는 뜻으로서,
믿음이 보고 들은 법을 어기지 않고 그대로 따르게 해주기 때문이다.
여덟째는 찬탄케 한다는 뜻으로서,
믿음이 있으면 남들이 수승한 행을 할 때 진심으로 찬탄하는 마음을 내기 때문이다.
아홉째는 무너지지 않게 한다는 뜻으로서,
믿음이 있으면 오로지 한 마음에 집중하여 그것을 놓치지 않게 하기 때문이다.
열째는 좋아하고 기꺼워하게 한다는 뜻으로서,
믿음이 자비스런 마음을 성취하게 하기 때문이다. 이것이 믿음이 갖는 열 가지 공덕이다.
근(根)에도 열 가지 뜻이 있다. 무엇이 열 가지인가?
첫째는 아래로 향한다는 뜻으로서 근이 교만(憍慢)을 없애 주기 때문이다.
둘째는 은밀하다는 뜻으로서 근이 깊고 깊은 이치를 잘 설명해 내기 때문이다.
셋째는 낳게 한다는 뜻으로서 근이 갖가지 공덕을 낳고 자라게 하기 때문이다.
넷째는 견고하게 한다는 뜻으로서 관이 모든 것을 잘 갈무리하고 붙들어서 빠지거나
유실되지 않도록 하기 때문이다.
다섯째는 이어지게 한다는 뜻으로서 근이 갖가지 공덕을 점점 늘려서 끊어지지 않게 하기 때문이다.
여섯째는 벗어나게 한다는 뜻으로서 근이 각각의 지(地)를 더욱
수승하게 만들고 염법(染法)을 점점 멀리 떠나게 하기 때문이다.
일곱째는 모은다는 뜻으로서 근이 갖가지 도품의 법을 다 모아서 닦게 하기 때문이다.
여덟째는 무성하게 한다는 뜻으로서 갖가지 행을 닦은 공덕으로
장엄된 것에 대해서는 근이 좋아하는 마음을 내게 하기 때문이다.
아홉째는 구족하게 한다는 뜻으로서 등각위(等覺位)에서는 인행(因行)이 원만하기 때문이다.
열째는 높고 수승하다는 뜻으로서 묘각(妙覺)의 과에 이르면 가상 수승하고 광대하여
아무것도 이를 능가할 것이 없기 때문이다. 이상이 근의 열 가지 특성이다.
능입(能入)과 소입(所入)도 갖가지로 구분되는데,
이에 대해서는 입의분(立義分)에서 자세히 설명하겠다.
이제까지는 총론에 해당하늘 부분을 설하였고,
이제부터는 이 논의 체제[建立]에 대해 밝히겠다.
【論】 내용은 다섯 단원[分]으로 구분된다. 무엇이 다섯인가?
첫째는 이 논을 짓게 된 동기를 밝히는 단원[因緣分],
둘째는 이 논의 취지를 표방하는 단원[立義分],
셋째는 이 논의 내용을 해석하는 단원[解釋分],
넷째는 신심수행을 밝히는 단원[修行信心分],
다섯째는 수행을 통해 얻는 이익을 보여 주어
닦기를 장려하는 단원[勸修利益分]이다.
【釋】 무슨 이유로 위와 같은 순서로 정했는가?
교법이 출현한 체제가 그렇기 때문이다. 무슨 뜻인가?
다스릴 질병과 장애가 있어야 그를 상대로 뛰어난 맛을 가진 훌륭한 약이 출현하듯이,
능화(能化)의 교법도 반드시 대치할 근기가 있어야 일어나는 것이다. 병을 앓기 전에는
약이 필요치 않듯이 근기에 앞서 교법이 선행하는 경우는 없기 때문이다.
인연분(因緣分)을 맨 처음에 건립한 이유는,
여의보주(如意寶珠)가 비록 하나이기는 하지만 모든 보물의 근본이 되므로
대단한 위력을 가진 용왕이라야 지니고 쓸 수 있듯이, 마하연의 법도 하나이기는 하지만
갠지스 강의 모래알만큼이나 되는 법문의 체성이 되므로 영리만 근기를 지닌 지혜로운
자리야 이해할 수 있다는 사실을 보여 주고자 하기 때문이다.
입의분(立義分)을 두 번째로 건립한 이유는,
마니보장이 비록 한량없는 만 가지 보배를 갖추고 있다고는 하나 천 겹의
문을 활짝 열어 모든 용들이 알 수 있게 하는 것처럼, 근본이 되는 대승법도
한없는 천 가지 뜻을 원만히 갖추고 있지만 분별하고 해석하고 이리저리
설명함으로써 근기가 둔한 자들도 알게 해준다는 사실을 보여 주고자 하기 때문이다.
세 번째로 해석분(解釋分)을 건립한 이유는 다음과 같다.
보석 비처럼 내리는 미묘한 법[術]을 눈과 귀로 보고 들으며 무진장한 원만한
덕을 사려하는 마음[思心]으로 이해했다 하더라도 혀의 위력을 출현시켜 다투듯
문에 들어가서 나아갈 방향을 열어 주지 않는다면 진여[隔檀]에 접근할 수 없고
여의보장을 얻었어도 연화대 궁전에 올라갈 길이 없다. 마찬가지로 입으로는
높으신 말로 설해진 교의(敎義)를 늘 읊고 다니며 마음속에서는 자세하게
또는 간략하게 설한 깊은 이치를 관찰한다 해도 가행(加行)을 부지런히 닦고
승진도[勝進] 더해야 비로소 금강(金剛)의 지위에 이르니, 견고한 신심을일으키지
않는다면법계의 보장(寶藏)을 얻었다 해도현묘한 도리에 계합할 길이 없기 때문이다.
네 번째로 수행신심분(修行信心分)을 건립한 이유는 다음과 같다.
자세하게 혹은 간략하게 법을 열어서 들어가는 문을 보여주더라도, 겁이 많고 약한 중생들은
광대하게 설해진 법문을 듣고 닦아 나아가는 일을 감당하지 못하며 근기가 둔한 중생은
요약된 법문을 듣고는 이해하지 못해서 멀어지려는 마음을 낸다. 이런 부류의 중생들은 장려하는
인연을 만나면 점진적으로 닦아 나아가 인(因)이 되는 백 가지 행을 갖추어 결국은 만 가지
덕을 갖춘 과위[果]에 이르지만, 만일 권하고 채찍질하는 인연을 만나지 못하면 점점 더 멀어지고
물러나 항하강의 모래알만큼 많은 번뇌에 휩싸여 부처가 될 가능성이 전혀 없는[無性] 종자에
이르게 된다. 마명보살은 이러한 이점을 보았기 때문에 이익을 제시하면서 수행을 독려하였다.
이런 이유에서 맨 뒤에 권수이익분(勸修利益分)을 배치한 것이다.
무슨 이유로 더도 아니고 덜도 아니고 딱 오분(五分)으로 건립하는가? .....한문뒤에 계속이어집니다
頂禮圓滿覺 覺所證法藏 幷造論大士 及諸賢聖衆。
欲開隔檀門 權顯往向位 利益諸衆生 分報師恩故。
論曰:今造此論,重釋摩訶衍,爲欲顯示自師其體深玄,其窮微妙,未得正證,未出邪行,
漠漠冥冥實絕窺▼(穴/(烈-歹+(跳-兆)))莫昉反域超思惟境故或爲欲令利鈍衆生,
開頓入門,顯漸進位,趣入甚深所詮理故。
或由師亭毒極深重故,
小分爲報師大恩故,或祕觀察當來衆生,起百千諍壞論宗故,或親聽受阿世耶故,
有如是等因緣,所以須造論。已說本趣,次說論差別。論有幾數幾論,
所攝摩訶衍論何所攝耶?
頌曰:
十萬九千部 摠十論所攝 摩迦羅跋提 鄔舍摩闍他。
筏那提舍論 阿部帝跋摩 呼呵摩僧那 鍵婆摩迦攝。
論曰:凡集一代種種諸論,摠有十萬九千部焉。
如是諸論摠十所攝,云何爲十?
一者 摩迦羅論,
二者 跋提論,
三者 鄔舍摩論,
四者 闍他論,
五者 筏那提舍論,
六者 阿部帝論,
七者 跋摩論,
八者 呼呵論,
九者 摩僧那論,
十者 鍵婆論。
是名爲十摩訶衍論如意論攝。馬鳴菩薩所作之論,其數幾有,幾文幾義,摩訶衍論何所攝耶?
頌曰: 摠有一百部 九十九種文 十種義所攝 斯論寶冊攝。
論曰:馬鳴菩薩所作諸論,摠一百部,於百部中,九十九種華文論攝。
餘十種論,攝義論攝。斯論寶冊。十種攝義論其名字云何?
所其開示同耶異耶?
頌曰:
遍滿及歸眞
中藏與微妙
合一幷三昧
淸淨本原論。
玄理起信論
建立同一相。
論曰:云何爲十?
一者一心遍滿論,
二者融俗歸眞論,
三者法界中藏論,
四者祕密微妙論,
五者衆命合一論,
六者眞如三昧論,
七者心性淸淨論,
八者不動本原論,
九者甚深玄理論,
十者大乘起信論。
是名爲十。
如是十論其數雖別,而建立相同一種焉。
已說論差別次說藏差別。
藏有幾數,幾藏。
所攝摩訶衍論何所攝耶?
頌曰:
或五十一藏
或唯十如經
摠三藏所攝
論或通或別。
論曰:五十一者,
別因果故,
表功德故,
引行者故,
金剛契經中,作如是說:佛告佛子,我當爲汝無㝵言詞,宣說開示五十因藏及一果藏。
故或有十藏,云何爲十?
一者 唯立一藏,摠攝諸法。謂法界法輪藏。圓滿契經中,作如是說:一切衆生所有言音,莫非如來法輪聲攝故。
二者 立二藏,摠攝諸法。謂聲聞藏及菩薩藏。摠持契經中,作如是說:法門雖無邊,不出二種藏故。
三者 立三藏,摠攝諸法。謂加如來藏。光明契經中,作如是說:過於恒沙一切諸佛,
唯當宣說聲聞法藏、菩薩法藏、如來法藏,更無餘道故。
四者 立四藏,摠攝諸法,謂加補特伽羅藏。道品契經中,作如是說:佛子,諦聽。爲汝解說仁藏、
義藏、禮藏、智藏及與信藏幷聲聞藏及菩薩藏、大覺法藏。所以者何?
一切行者漸次轉勝次第之法故。
五者 立五藏,摠攝諸法。謂加天藏。天子契經中,作如是說:佛告耶論:不可言說淸淨報空,
我爲大衆廣大宣說淨藏、人藏幷二乘藏、一切諸佛大覺法藏故。
六者 立六藏,摠攝諸法。謂加捺落迦藏。怖畏契經中,作如是說:我不動坐,
分別宣說八萬四千捺落迦藏,如前所說五種藏故。
七者 立七藏,摠攝諸法。謂加摩羅鳩多耶藏。班母契經中,作如是說:我今實言爲班母等一億七萬三千大衆,
分別宣說五萬一千三百二種鬼神道藏,如前所說。六種藏故。
八者 立八藏,摠攝諸法。謂加鍵婆陁那跋藏。龍王契經中,作如是說:難陁龍王發八千問,問於如來,
佛開十億傍生道藏,如前所說七種藏故。
九者 立九藏,摠攝諸法。謂加器世界藏。世界契經中,作如是說:爾時,世尊告樹神言:善哉善哉!
如汝所說,若欲聞者,我今爲汝分別演說所依止藏。如前所說八種藏故。
十者 立十藏,摠攝諸法。謂加雜亂藏。音聲契經中,作如是說:我今開示八種雜藏,
如前所說九種藏故。是名爲十。
如是諸藏摠攝十億八千法藏。根本三藏或攝十藏。云何爲三?
一者素呾㘕藏,
二者毘捺耶藏,
三者阿毘達摩藏。是名爲三摩訶衍論,或諸藏攝,或唯阿毘達摩藏攝。
是故頌曰:
或通或別,
通謂摠通,
別謂簡別,
持其行法,
隨應不失。
所以立名曰藏焉也。已說藏差別,次說經差別。經有幾數,幾經?
所攝今摩訶衍論何等經爲依?
頌曰:
摠百洛叉數 十二部經攝
修多羅祇夜 及毘伽羅那。
伽陁優陁那 幷與尼陁那
阿波陁那經 伊帝目多伽。
闍陁伽佛略 阿浮陁達摩
優波提舍經 依或通或別。
論曰:凡集一代種種諸經,有一百億部。如是諸經摠十二部攝。云何十二?
一者修多羅,
二者祇夜,
三者毘伽羅那,
四者伽陁,
五者優陁那,
六者尼陁那,
七者阿波陁那,
八者伊帝目多伽,
九者闍陁伽,
十者毘佛略,
十一者阿浮陁達摩,
十二者優波提舍。是名爲十二。
摩訶衍論所依本經,或通或別,通謂摠通,別謂簡別。摩訶衍論文狹句少,甚極微少,何故無量無邊契經之海,
通爲依耶?如婆薩伊伽諾故,如標多羅呾提故,是故無失。別所依經其數幾有,何等名字,
眷屬各幾?頌曰:
摠一百契經 光明大覺等
初五十各百 後五十各千。
論曰:摩訶衍論別所依經,摠有一百。云何爲百?
一者 光明大覺經,
二者 甚深順理經,
三者 金剛三昧經,
四者 諸法無行經,
五者 樹林說法經,
六者 無盡一地經,
七者 淸淨如如經,
八者 自性自體經,
九者 大乘同性經,
十者 阿梨耶識經,
十一者 果圓滿經,
十二者 虛空等經,
十三者 三三昧經,
十四者 一心法經,
十五者 本性智經,
十六者 眞法界經,
十七者 攝無量經,
十八者 最上極經,
十九者 維摩詰經,
二十者 楞伽王經,
二十一者 中實經,
二十二者 無始經,
二十三者 十因經,
二十四者 輪轉經,
二十五者 慈雲經,
二十六者 器心經,
二十七者 無位經,
二十八者 賢聖經,
二十九者 隱密經,
三十者 花嚴經,
三十一者 大品經,
三十二者 寂滅經,
三十三者 聖軌經,
三十四者 遍緣經,
三十五者 熏習經,
三十六者 佛性經,
三十七者 玄理經,
三十八者 楞伽經,
三十九者 本業經,
四十者 蘊高山經,
四十一者 歸本經,
四十二者 眞修經,
四十三者 八德經,
四十四者 佛慧經,
四十五者 緣起經,
四十六者 一體經,
四十七者 自佛慧經,
四十八者 大海經,
四十九者 無相經,
五十者遍 眞如經,
五十一者 十種如來藏經,
五十二者 三身本有經,
五十三者 八識通達緣經,
五十四者 衆生身等法經,
五十五者 諸佛無盡藏經,
五十六者 讚歎不善品經,
五十七者 諸法同一相經,
五十八者 一體大悲觀經,
五十九者 如如本智慧經,
六十者 塵塵法界剎土經,
六十一者 輪轉本際經,
六十二者 法界法輪經,
六十三者 大智本有經,
六十四者 平等法界經,
六十五者 四相常住經,
六十六者 眞如一相經,
六十七者 流轉不動經,
六十八者 寂靜涅盤經,
六十九者 通達音聲經,
七十者 如來自相經,
七十一者 夫人經,
七十二者 法門經,
七十三者 八喩經,
七十四者 中在經,
七十五者 摠持經,
七十六者 不動經,
七十七者 兩智經,
七十八者 道智經,
七十九者 本覺經,
八十者 大無量經,
八十一者 自然本果經,
八十二者 甚深法藏經,
八十三者 一道淸淨經,
八十四者 十種妄想經,
八十五者 法門顯了經,
八十六者 境界圓滿經,
八十七者 光明實智經,
八十八者 因果同體經,
八十九者 心神不空經,
九十者 眞智無生行經,
九十一者 無㝵解脫經,
九十二者 隨緣增長經,
九十三者 法性實際經,
九十四者 廣大虛空經,
九十五者 本因緣起經,
九十六者 諸法無爲經,
九十七者 本來淸淨經,
九十八者 修行道地經,
九十九者 不修具德經,
百者 摩訶薩雲若經。是名爲百。
如是百經眷屬如次初半各百,後半,各千,擧經之目,屬論之綱,下當隨文開示現說。已說經差別。
次論當造人,契經異說其數幾有?今馬鳴師何所攝耶?
頌曰:摠有六馬鳴 契經異說故 然隨機應故無有相違失。
論曰:凡集一代諸契經中,種種異文摠有六種。
云何爲六?
一者大乘本法契經中,作如是說:無上大覺尊說入涅盤緣,馬鳴菩薩卽從坐起,頂禮佛足,合掌恭敬,
向佛世尊而說偈言:大慈滿足無上尊 無邊劫海備萬行唯慈悲群生類故 而佛自言入涅盤。
我及一切諸大衆 冥冥而亂失心神大慈滿足世尊尚 棄自子等往異界。況我慈悲未滿足 隨佛往異界誰謗。
爾時,馬鳴說此偈已,睹佛眼睛,徐自命終。
二者變化功德契經中,作如是說:爾時,世尊告馬鳴言:我滅度後三百餘歲,汝當承我加力,
以種種方便,法,利益安樂末代衆生。若我不加力,汝當不能自。
三者摩訶摩耶契經中,作如是說:如來滅後六百歲已,九十六種諸外道等邪見競興,毀滅佛法。
有一比丘名曰馬鳴,善說法要,降伏一切諸外道輩。
四者常德三昧契經中,作如是說:佛滅度後八百歲中,有一智人,名曰馬鳴。或外道衆,
或佛家衆,破諸外道,建立佛法。
五者摩尼淸淨契經中,作如是說:佛涅盤後一百餘歲,馬鳴大士出現於世。守護正法,安立佛幢。
六者勝頂王契經中,作如是說:如來成道第十七日,有一外道,名曰迦羅諾鳩尸摩。變化其身,
作大龍王,出現八萬六千頭、
八萬六千舌,一時發起八萬六千相違難問,問於如來,如來卽作三重答說,通彼切難。
於是龍王又作十重問,問於如來。
如來卽作百重荅說,通彼切難。如是問荅已,佛告龍王言:善哉,善哉!馬鳴沙門爲護法城故,
以破壞相,建立佛法。耐也,耐也。常如是修,常如是行,勿小遊行,普遍遊行。
於是龍王以其本形,捨畜生相,無上尊前, 頂禮和南,歡喜之貌,
向佛世尊而說頌言:善哉善哉言 經聽於我耳 假耶實耶自極疑於我心。
我非畜生身 我非外道衆而贊化爲生 變化如是形。
世尊如鏡知我沒於是界 出於餘世界 如教普遊行。爾時,馬鳴說此偈已,如入禪定,入於寂室,
是名爲六。如是諸經各各別說,隨機現應無相違過。馬鳴菩薩當何位人,何城誕生,何因馬鳴?
頌曰:本大光明佛 因不動位中 西天竺出現從過去立名。
論曰:馬鳴菩薩若剋其本,大光明佛。若論其因,第八地內住位菩薩。西天竺誕生,
盧伽爲父,瞿那爲母,同生利益。過去世中,有一大王,名曰輪陁。有千白鳥,皆悉好聲。
若鳥出聲,大王增德;若不出聲,大王損德。如是諸鳥若見白馬,
卽出其聲;若不見時,常不出聲。爾時,大王遍求白馬,終日不得。
作如是言:若外道衆,此鳥鳴者,都破佛教,獨尊獨信。
若佛弟子此鳥鳴者,都破外道教,獨尊獨信。爾時,菩薩用神通力,
現千白馬鳴,千白鳥,紹隆正法,令不斷絕?
是故世尊名曰馬鳴。已說人別相,次唱本作釋本曰‘歸命盡十方 最勝業遍智 色無㝵自在救世大悲者。
’論曰:此一頌中,則有二門。云何爲二?
一者摠攝一切衆命門,
二者歸向圓滿大覺門。
摠攝門者,通攝一切十方界中所有衆生,衆命根故,如本命盡十方故。
歸向門者,用如是衆命,歸契於滿足大慈悲人故。如本歸最勝業遍智色無㝵自在救世大悲者故,
論師擧幾德,讚歎大覺尊?各其相云何?
頌曰:摠八萬四千 四十八種德 最勝等各十智無㝵各四。 及八萬四千 色相差別故功德雖無量 終不出此數。
論曰:馬鳴菩薩摠擧八萬四千四十八種功德,奉仰讚歎無上大覺佛,果滿位中,功德淨品。雖有無量無邊,
而終不出此數量。是故馬鳴摠相讚歎。
云何爲八萬四千功德?色相差別故成八萬四千。
云何爲四十?最勝業遍各十種故,成四十數。
云何爲八?智及無㝵,各有四種故,成八種。
云何爲十最?
一者超過最遠離二乘地故,
二者出離最永離三界域故,
三者對治最頓斷四住地故,
四者厭患最已過五蘊聚落故,
五者離愛最永別六道歧故,
六者威德最退,
七惡軍故,七者兵衆最皆盡八邪林故,
八者智慧劍最決斷九結絆故,
九者解脫最斷除十纏繩故,
十者勇猛最摧伏九十六種諸外道故。
是名爲十最。於契經中,十種第一,
云何爲十勝?
一者力勝具足十力故,
二者無畏勝具足四無畏故,
三者不共勝具足十八不共法故,
四者道品勝具足三十七道品故,
五者變化勝具足百千種變化故,
六者言音勝具足八十八梵音故,
七者端嚴勝具足三十二種丈夫相故,
八者吉祥勝隨作境界處出生增長功德善根故,
九者難得勝於三界中獨尊一故,
十者住處勝所居宮殿以九萬八千微妙圓滿而所莊嚴故。
是名爲十勝。於契經中,
十種殊勝,云何爲十業
一者自然業,所作自在故;
二者平等業,教化利益無差別故;
三者相應業,隨機出現故;
四者具足業,圓滿福智二資糧故;
五者無盡業,無邊際故;
六者同生業,隨趣受生故;
七者無著業,遠離塵累如蓮花故;
八者依止業,作歸依處如大地故;
九者無厭業,攝生無窮如大海故;
十者通達業,無有障㝵如虛空故。
是名爲十業。於契經中,十種作用,
云何爲十遍?
一者根遍,佛諸色根各各一一根周遍法界故;
二者識遍,佛諸心識無所不達故;
三者境界遍,圓智所緣無分界故;
四者壽命遍,不可思議故;
五者眷屬遍,不可測量故;
六者功德遍,一一功德等虛空界故;
七者慈悲遍,無簡擇故;
八者言說遍,佛言音聲無所不至故;
九者證遍,無所不窮故;
十者無等遍,無與等故。
是名爲十遍。於契經中,
十種周遍,
云何爲四智?
一者光明無盡藏智,能出生十億一千智慧門故;
二者一味一相智,通達恒沙一切諸法無差別故;
三者大悲無邊智,隨起一化遍滿一切十方世界故;
四者無爲寂滅智,遠離一切起動作業故。
是名爲四智。於契經中,四種圓滿智云何爲四無㝵?
一者法無㝵,了知諸法實相實性故;
二者義無㝵,了知諸法共差別相及生滅相故;
三者辭無㝵,不壞假名而說實相故;
四者樂說無㝵,發無邊言說,契經海次第不斷絕故。是名爲四無㝵。於契經中,四種解脫智自在之言,
皆通於上故,不別釋。色相名義,如大摠持中廣顯說。已說覺寶,次說法僧。
本曰:‘及彼身體相 法性眞如海 無量功德藏如實修行等。
’論曰:此一頌中,復有二門。云何爲二?
一者體攝一切衆身門,
二者摠達法藏僧伽門。體攝門者,
盡攝一切無量衆生生滅流轉無常身故,如本彼身體相故。摠達門者,以如是衆身,摠達於諸甚深法藏,
一切如實修行者故,如本及法性眞如海無量功德藏,如實修行故,等言摠通和南之意,論師依幾法僧,
而和南耶?其相云何?
頌曰:摠歸於十四 僧十法四故 或兼上下故有多類僧衆。
論曰:馬鳴菩薩摠歸依於十四德處,十僧四法各差別故。
云何爲十僧?
十地差別故。云何爲四法?教理行果各差別故。法謂教法,所謂隨順機根,一切契經之海,性眞如謂理法。
於一切法,體性平等,離虛妄之假,絕執著之實故。海謂果法,於妙覺果,萬德圓滿,無有窮盡,如大海故。
無量功德藏謂行法。六度萬行淨品眷屬,不可思議超過數量故。如謂十種眞如,實修行謂十種正智。證眞如理,於眞實智,建立僧名。理智和通,能所一味平等,平等無諍論故。
何故取命標十方耶?爲欲顯示所攝命根,廣大圓滿,無邊際故。
何故取身標其相耶?爲欲顯示四相所亂,一切衆生皆悉攝取,
欲令獲得金剛常住不動身故。何故八聖唯不歸自身命,乃通取一切無量衆生所有身命,
歸於三寶?由明了知一切衆生平等平等,唯一眞如,無有別異,衆生身命及我身命,一味一相不相離故。
是故頌言等,等言極甚深。
何故攝取一切衆生無量身命,歸於三寶,成和南相?由十方三世一切諸佛,皆悉歡喜;十方三世一切諸菩薩,
皆悉讚歎,十方三世一切諸法藏,常恒流布不斷絕故。馬鳴菩薩證不動地,
下地功德悉已滿足。何故下位諸僧皆悉和南?由能歸人,皆非同於自得位故。若自歸依,
唯應和南不動地滿幷上二地。若爾,何故不取地前,非無歸人故,不別擧。以上兼下,影顯示故。
法雲地菩薩能歸人時,當依何僧?於妙覺地,有眞實僧故,無過失。
若爾,何故不別擧耶?以下兼上,影顯示故。是故頌曰:或兼上下故,有多類僧衆。已說法僧,次說本趣。
本曰:‘爲欲令衆生 除疑捨邪執 起大乘正信佛種不斷故。
’論曰:此一頌中,則有二門。云何爲二?
一者斷絕障縛門,
二者連續解脫門。
斷絕門中,有四差別。云何爲四?
一者決定信心門,爲令一切無量衆生,斷除疑惑,心發起堅固信,決定於甚深大乘正道故;
二者遠離捨心門,爲令一切無量衆生,遠離厭捨心,增長欲樂意,精進於甚深大乘正道故;
三者對治邪論門,爲令對治九十六種諸大外道、
九萬三千眷屬外道、四種大魔、三萬二千眷屬魔衆,
斷除一億四萬六千種諸世論,趣入於大乘甚深正道故;
四者除遣執著門,爲令一切無量異生及諸二乘一切菩薩,斷除五種人見,
證得五種對治斷除二種法執證得二種對治迴向於甚深大乘正道故。
如本,爲欲令衆生除疑捨邪執,起大乘正信故。
連續門中,有三差別,云何爲三?
一者不斷大覺門,爲令集成萬行之因,莊嚴大覺之果,無上法王不斷絕故;
二者不斷法藏門,爲令出現勝妙梵響,宣說一切契經之海,八萬四千法藏不斷絕故;
三者不斷僧伽門,爲令修地前,地上之大道,建立眞如法界之宮殿,住正後二僧而不斷絕故,
如本佛種不斷故。故頌衆生言分際云何?爲欲對治何等斷故,建立三寶不斷耶?
頌曰:通攝三聚人未得圓滿故對四種斷故建立三不斷。
論曰:馬鳴菩薩通緣三聚,而爲境界。所以者何?由未證得圓滿果故。然三聚門有其三種,云何爲三?
一者十信前,名爲邪定聚,不能信業果報等故,三賢及十聖,名爲正定聚,
決定安立不退位故,十種信心名爲不定聚,或進或退,未決定故;
二者十信前幷十信心,名爲邪定聚,皆無善根故,無上大覺果,名爲正定聚,已滿足故,
三賢及十聖,名爲不定聚,皆未究竟故;三者十信前名爲邪定聚,無樂求心故,
十聖名爲正定聚,已得眞證故,十信三賢名爲不定聚,未得正證故。
是名爲三。馬鳴菩薩須彼初門,爲欲對治四種斷故,建立三寶,不斷之義。
云何爲四?
一者疑惑斷,由猶豫心,不能決定,斷三寶種故;
二者厭捨斷,由愛有心,不能樂法,斷三寶種故;
三者見邪斷,由妄想心,不能正見,斷三寶種故;
四者定執斷,由實有心,不能離著,斷三寶種故。
是名爲四斷。已說本趣,
次開摠體。本曰:‘ 有法能起摩訶衍信根,是故應說。
’ 論曰:此文中有二門,云何爲二?
一者能入門,
二者所入門。能入門者,於所詮理,善趣入故。所入門者,善爲彼法,作依止故。有法者,
摠標十六,能入門法。能起信根者,摠標門法,作業之相。
摩訶衍者,摠標十六所入法體,幷及不二摩訶衍體,信決定進心,根生長行法。若爲入理,
無超此二故,曰信根。復次,信謂十信根,謂從初發心住,乃至法雲地。所以者何?
初信無根,隨緣進退,譬如班多伽伊摩華故,後信轉勝堅固不動,
譬如鍵鳩阿彌禮樹故。信根有幾義,各其相云何?
頌曰:各有十種義 澄淨下轉等。
論曰:信有十種義。
云何爲十?
一者澄淨義,能令心性淸淨明白故;
二者決定義,能令心性淳至堅固故;
三者歡喜義,能令斷除諸憂惱故;
四者無厭義,能令斷除懈怠心故;
五者隨喜義,於他勝行,發起同心故;
六者尊重義,於諸有德,不輕賤故;
七者隨順義,隨所見聞,不逆違故;
八者讚歎義,隨彼勝行,至心稱歎故;
九者不壞義,在專一心,不忘失故;
十者愛樂義,能令成就慈悲心故,
是名爲十。根有十種義,
云何爲十?
一者下轉義,能除憍慢故;
二者隱密義,能詮甚深理故;
三者出生義,生長種種諸功德故;
四者堅固義,皆悉攝持,不闕失故,
五者相續義,轉轉增長,無斷絕故;
六者出離義,地地轉勝,漸漸遠離故;
七者集成義,修集種種道品法故;
八者茂榮義,以諸行德而所莊嚴,甚可愛樂故;
九者具足義,等覺位中圓滿因行故;
十者高勝義,於妙覺果最勝廣大無能超過故。是名爲十。
能入所入種種差別立義分中,自當顯說。已說摠體,次明建立。本曰:‘說有五分,
云何爲五?
一者因緣分,
二者立義分,
三者解釋分,
四者修行信心分,
五者勸修利益分。’
論曰:何故次第如是?教法出現法如是故。
此義云何?爲欲顯示上味妙藥,當由所對疾障出現,能化教法定,
由所治機根發起。疾前無藥,機先無教,故初立因緣分,爲欲顯示如意寶珠,雖唯是一,而爲一切諸寶根本,
摩訶衍法雖唯是一,而爲恒沙法門體性。重威大龍乃所受用,利根智者乃所領解故。第二立立義分,
爲欲顯示摩尼寶藏,雖備無量萬寶,而開千重門,群龍所了知,大乘本法雖圓無邊千義,
而別釋散說鈍根所分明故;第三立解釋分,爲欲顯示雖眼耳中,見聞寶雨之妙術,思心中解知無盡之圓德,
而出現舌威,不競入門,開通往向,不近隔檀#得如意寶藏,無由蹬臺宮,雖口語中,
誦持教義之尊辭,思心中觀察廣略之深理,而勤加行,添於勝進,方於金剛,
不起堅固信,得法界寶藏,而無由契玄理故;
第四立修行信心分,雖開廣略之法,示進入之門,而怯弱衆生聞廣說法門,不堪進修,行鈍根衆生,
聞略說法門,不能解故,生厭離心。如是等衆類,若値勸請緣,漸漸進修,備百行因,
至萬德果。若不得勸策緣,彌彌遠退,將恒沙煩惱,而及於無性。馬鳴菩薩見是利故,
顯示利益,勸請修行。是故後立勸修利益分。有何因緣,不增不減,唯立五分
게송으로 말한다.
저 대총지론을 모두 하면 오십 가지 법문이 되기 때문에
더할 수도 뺄 수도 없이 정확히 오분(五分)을 건립하였네.
【釋】 마명보살은 십만 온타남(嗢拖南) 온타남은 범어의 udāna로서,
우타나(優陀那)`오타남(烏陀南)`오타남(鄔陀南)`우단나(優檀那)`
울타나(鬱陀那) 등으로 음역한다. 십이부경 가운데 무문자설(無問自說)의 형식을 취한 것이다.
의 대총지론(大摠地論)을 오십 문(門)으로 종합해서 그 모든 교리를 해석하였다.
지금 이 논의 5분(分)법문은 각각 저 오십 문 중에서 십 문씩을 포함하고 있다.
그러므로 더도 아니고 덜도 아니고 정확히 오 분을 건립한 것이다. 무슨 말인가?
저 총지론 중에서
건립(建立)ㆍ소화(所化)ㆍ원만(圓滿) 등의 십 문은 여기의 인연분(因緣分)에 해당하고,
백육십 마하연(摩訶衍) 등의 십 문은 입의분(立義分)에 해당하며,
안립(安立)ㆍ수순(隨順)ㆍ결택(決擇) 등 십 문은 해석분(解釋分)에 해당하고,
수습(修習)ㆍ결정(決定)ㆍ취입(趣入) 등 십 문은 수행신심분(修行信心分)에 해당하며,
권청(勸請)ㆍ가책(呵責)ㆍ인도(引導) 등 십 문은 권수이익분(勸修利益分)에 해당한다
이제까지는 건립문(建立門)에 관해 설하였다.
이제부터는 각각의 장을 제시하고 해석하는 문[唱章判說門]으로 들어가겠다.
【論】 첫 번째로 인연분(因緣分)을 설하겠다.
【문】 무슨 인연이 있기에 이 논을 짓는가?
【답】 이 논을 지은 인연에 여덟 가지가 있다.
무엇이 여덟 가지인가?
첫째는 인연의 전체상[因緣摠相]으로, 중생들이 모든 고통을 떠나
구경(究竟)의 즐거움을 얻게 하기 위함이지
세간의 명리나 공경을 얻고자 함이 아니기 때문이다.
둘째는 여래의 근본 뜻을 해석하여 모든 중생들이 오류 없이 정확히 이해하게 하기 위해서다.
셋째는 선근(善根)을 성취한 중생들이 마하연의 법을 감당하여 신심에서 물러나지 않게 하기 위해서다.
넷째는 선근이 적고 미약한 중생들에게 신심을 닦게 하기 위해서다.
다섯째는 방편을 보여줌으로써 악업의 장애를 녹이고 그들의 마음을 잘 보호하여
무명[癡]과 아만[慢]을 멀리 떠나게 하기 위해서다.
여섯째는 지관(止觀) 익히고 닦는 것을 보여주어 범부의 허물과 이승(二乘)의 허물을 대치하기 위함이다.
일곱째는 방편에 전념하는 것을 보여 줌으로써 부처님 계신 곳에 나서 신심에서
결코 물러나지 않도록 하기 위해서다.
여덟째는 이익을 보여주어서 수행을 권하기 위함이다.
이상과 같은 인연이 있기 때문에 논을 짓는다.
【釋】 이 여덟 가지 인연 중에,
처음의 하나는 입의분(立義分)에 해당하는 것으로서 근본인연[正因緣]이 된다.
그 뒤의 두 가지는 해석분(解釋分)에 해당하며 근본인연이 된다.
그 다음에 이어지는 네 가지는 수행신심분(修行信心分)에 해당하며 근본인연이 된다
. 마지막 한 가지는 권수이익분(勸修利益分)에 해당하며 근본인연이 된다.
처음 하나의 인연은 네 가지로 나뉘며, 뒤의 일곱 가지 인연은 각각 세 가지로 나뉜다.
무엇이 첫 번째 인연에 속하는 네 가지인가?
첫째는 교화의 공능을 갖는 법이 일어나는 문[能化敎法出興門]이요,
둘째는 교화의 대상이 되는 중생을 구분하는 문[所化衆生分際門]이요,
셋째는 작업을 일으켜 훌륭하게 교화하는 문[出興作業善巧門]이요,
넷째는 쟁론과 비방을 떨쳐버리는 문[除遣諍論誹謗門]이다.
무엇이 일곱 가지 인연에 속하는 세 가지인가?
앞의 삼 문(三門)을 이제부터 상(相)을 제시하면서 차례대로 해석하겠다.
인연총상이란 교화의 공능을 갖는 법이 일어나는 문을 전체적으로 든 것이다.
즉 여덟 가지 근본 총제에 근본인연이 되기 때문에 인연 총상이라고 하며,
스물네 가지 서로 다른 별상에 근본인연이 되기 때문에 인연상이라 한다.
서른두 가지 총상 및 별상의 법에게 근본인연이 되는 것은 입의분(立義分) 중에서 분명하게 설명하겠다.
‘중생들이 ~하게 하기 위해서’라는 말은 교화의 대상이 되는 중생을 구분하는 문을 전체적으로 거론한 것이다.
즉 십억 팔만 육천 종류의 사정취 중생과 삼십 종류의 부정취 중생과 백이십 종류의 정정취 중생을 모두 대상으로 하고 있기 때문이다. ‘모든 고통을 떠나 구경의 즐거움을 얻는다’고 한 것은 작업을 일으켜 훌륭하게 교화하는
문을 전체적으로 거론한 것이다. 즉 삼취(三聚) 중생을 소연의 경계로 삼아 묘한 법요를 설해서 열어 보인다는 것은 셀 수 없는 모든 중생들에게 무상하게 생멸하는 고통을 멀리 떠나 근본이 되는 총상의 즐거움을 얻도록 한다는 뜻이다.
‘세간의 명리나 공경을 구하는 것이 아니기 때문’이라고 한 것은
쟁론과 귀방을 떨쳐버리는 문을 전체적으로 거론한 것이다. 왜냐하면 어리석은 중생은 이런 의심을 품기 때문이다. ‘마명보살은 부동지(不動地)의 지위에 거처하시는 분으로 아직 법운지(法雲地)에 이르지는 못했으므로 상지(上地)의 보살 등을 연해서 소화(所化)의 경(境)으로 삼을 것이니, 그것은 자신의 수승함을 과시해서 명리를 구하기 위한 것이 아니겠느냐?’고, 그러나 이들에게는 헛된 말만 있을 뿐, 실다운 내용이라고는 없다.
어떻게 하지(下地)의 보살이 상지(上地)의 보살을 교화의 대상으로 삼을 수 있단 말인가?
그러므로 마명보살은 이러한 불신과 의심을 없애주기 위해 스스로 말하였다.“나는 먼 오래 전의 겁에 정각을 완선하게 얻어 교화에 조력해서 중생들을 이롭게 하였다. 그러나 본원(本願)을 다 채우기 위해 방편으로 수행위를
유람하는 모습을 보여주었을 뿐, 명리 따위나 구하기 위해 논을 지은 것은 아니다.”이렇게 말하고 나서
첫 번째 인연을 설했다.
두 번째 인연으로 ‘여래의 근본 뜻을 해석한다’고 한 말은 교화의 공능을 갖는 법이 일어나는 문을 전체적으로
거론한 것이다. 즉, 이 인연이 바른 뜻을 밝히고[顯示正義] 삿된 집착을 대치하는[對治邪執] 데 근본인연이
되기 때문이다.
여래의 근본 뜻이라고 한 이유는 무엇인가?
시방삼세의 모든 여래 중에서 근본 일심이문(一心二門)과 일곱 가지 대치를 통하지 않고 정각을 이룬 여래는
한 분도 없기 때문이다. ‘모든 중생들이……’라고 한 것은 교화의 대상이 되는 중생을 구분하는
문을 전체적으로 거론한 것이다. 즉 십억 팔만 육천 가지 사정취(邪定聚) 중생을 모두 대상으로 삼기 때문이다.
오류 없이 정확히 이해하게 하기 위해’라는 말은 작업을 일으켜 훌륭하게 교화하는 문을 전체적으로 거론한 것이다. 미친 듯이 혼란스러운 사정취 중생들을 소연(所緣)의 경계로 살아 바른 뜻을 보여주고 삿된 집착을 대치하는 깊은 법을 열어 보여줌으로써 갠지스 강의 모래알만큼 많은 잘못된 이해를 바로잡고 티끌 수만큼의 거꾸로 된 견해를 꺾어서, 믿음을 갖지 못하는 천제(闡提)들의 장애를 없애 십신(十信)의 대도로 들어가게 하기 때문이다.
이상이 두 번째 인연에 대한 설명이다.
세 번째 인연은 도를 향해 나아가는 상을 분별하는[分別發趣道相] 데 근본인연이 되는 것으로 능화(能化)의 교법이 일어나는 문에 해당하며, 세 가지 발심을 이른다. ‘선근을 성취한 중생’이란 교화의 대상이 되는
중생을 구분하는 문을 전체적으로 거론한 것이니,
십신(十信) 중에 상품(上品)과
십해(十解) 중에 삼 품(三品),
십행(十行) 중에 삼 품,
십회향(十廻向) 중에 삼 품,
십지(十地) 중에 삼 품을 모두 교화의 대상으로 삼기 때문이다.
‘마하연의 법을 감당하여 신심에서 물러나지 않는다’고 한 것은 작업을 일으켜 훌륭히 교화하는 문을
전체적으로 든 것이다. 즉, 이정취(二定聚:正定聚와 不定聚) 중생을 소연의 경계로 삼아 세 가지
발심[三種發心]을 열어 보여 자신의 한계를 넘어 승진도(勝進道)를 획득하게 하기 때문이다.
이상이 세 번째 인연에 대한 설명이다.
네 번째 인연은 수행신심분(修行信心分)에서설한 네 가지 신심과 네 가지 수행의 근본인연이 되며,
교화의 공능을 갖는 법이 일어나는 문에 해당한다. 선근이 적고 미약한 중생이란 교화의 대상이 되는
중생을 구분한 문을 전체적으로 거론한 것이니,
십신(十信) 중 전오심(前五心)과 중품 중생을 교화의 대상으로 삼기 때문이다.
전오심을 이미 획득해서 선근이 전혀 없는 것은 아니므로 적고 미약하다고 하였으며,
후오심(後五心)은 아직 획득하지 못해서 선근을 다 갖추지는 못했으므로 성취했다는 말은 쓰지 않았다.
신심을 닦게 하기 위해서라고 한 것은 작업을 일으켜 훌륭하게 교화하는 문을 전체적으로 거론한 것으로서,
뒤의 다섯 가지 신심을 성취시켜 주기 때문이다. 이상이 네 번째 일연에 관한 설명이다.
다섯 번째 인연은 수행신심분(修行信心分) 중에서 진문(進門) 끝까지에 해당한다.
다시 말해 어떤 사람이 신심을 수행하면 결국에 가서는 갖가지 장애를 벗어나 선근이 자라나기 때문에 근본인연이 되어 준다는 것이다. 이는 능화의 교법이 일어나는 문에 해당한다. 여기서는 십신위의 조심을 얻은 중생부터 밑으로 하품 중생까지를 교화의 대상으로 삼는다. 이는 교화의 대상이 되는 중생을 구분하는 문에 해당한다.
악업의 장애 등을 녹인다는 것은 작업을 일으켜 훌륭하게 교화하는 문을 전체적으로 거론한 것이다.
즉, 예배와 참회 등의 방편을 보여서 바다같은 악법의 장애를 녹여 없애기 때문이다.
이싱이 다섯 번째 인연에 대한 설명이다.
여섯 번째 인연에서 ‘지관을 익히고 닦는다’고 한 것은 능화의 교법이 일어나는 문을 전체적으로 든 것이다.
즉, 수행신심분에서 지관을 수행하는 문에 근본 인연이 되기 때문이다. 범부와 이승이란 교화의 대상이 되는
중생을 구분하는 문을 전체적으로 거론한 것이다. 여기서는 십신위의 이심(二心)과 하품의 중생을 모두 교화의
대상으로 삼는다. 모든 이승은 사정취에 들어가기 때문이다. 마음의 허물을 대치한다고 한 것은 작업을 일으켜
훌륭하게 교화하는 문을 전체적으로 거론한 것이다. 두 바퀴[兩輪]로 그릇된 견해와 집착을 갖는 범부와 이승의 허물을 대치해 주기 때문이다. 이상이 여섯 번째 인연에 관한 설명이다.
일곱 번째 인연은 수행신심분의 끝까지에 해당한다. 디시 말해 중생이 이 법을 처음 공부해서 결국에는
정정취(正定聚:三賢ㆍ十聖)에 나서 머물게 하는 데 근본인연이 되기 때물이다. 이는 능화의 교법이 일어나는
문에 해당한다. 이 인연에 해당하는 중생으로는 십신위 중 전 사심(四心)과 거기서 더 이상 향상하지 못하는
하품 중생이 속한다. 왜냐하면 이 세계에 머무는 자들은 신심을 성취하는 일에 대해 극도의 두려움을 갖기
때문이다. 이는 교화의 대상이 되는 중생을 구분하는 문에 해당한다. 신심에서 결코 물러나지 않도록 하기
위해라고 한 것은 작업을 일으켜 훌륭하게 교화하는 문을 전체적으로 거론한 것이니, 수승한 인연력으로
정정취에 확고하게 들어가기 때문이나. 이상이 일곱 번째 인연에 대한 설명이다.
여덟 번째 인연은 권수이익분(勸修利益分)에 근본인연이 되는 것으로,
이는 교화의 공능을 갖는 법이 일어나는 문을 전체적으로 든 것이다.
이 인연에 해당하는 중생에는 십억 팔만 육천 가지 사정취 중생이 모두
들어간다. 이는 교화의 대상이 되는 중생을 구분한 문에 해당한다.
이익을 보여 수행을 권하기 위해서라고 한 것은 작업을 일으켜 훌륭하게 교화하는 문을
전체적으로 거론한 것이다. 수행의 공덕을 잘 설하여 도에 대한 욕구와 즐거운 마음을
자리게 하고 허물과 근심을 보여 주어 싫증을 내고 떠날 것을 각성케 해주기 때문이다.
이상이 여덟 번째 인연에 대한 설명이다.
능화의 교법은 입의분(立義分)에서 남김없이 설명했고소화의 근기는 첫 번째 인연분(因緣分)에서 다 설명했는데,
무슨 이유로 삼 분(三分)을 더 열어서 따로 해석을 붙이며, 일곱 가지 인연을 건립해서 산만하게 설하는가?
근기에 날카롭고 둔한 차이가 있고, 교법에 자세하고 간략한 차이가
있으며, 법문에 총론과 별론이 구분됨을 보여 주기 위해서다.
무슨 이유로 이승인(二乘人)들을 네 곳에서 중복해서 다루었는가?
이승의 중생은 하열하고 협소해서 보리심을 내어 무상도로 향하는 데 있어
다른 중생들에 비해 지극히 어렵다는 점을 보여 주려고 했기 때문이다.
무슨 이유로 그 밖의 사정취(邪定聚) 중생들은 세 곳에서만 다루었는가?
그 밖의 다른 중생들은 이승의 경우와 닮았고, 그 허물에 대해서는 그다지 중시하지 않았음을
보여주려고 했기 때문이다.
무슨 이유로 부정취(不定聚:十信) 중생들은 삼 품(三品)을 따로 구분해서 다루었는가?
부정취 중생은 신심이 엷고 근기가 둔해서 결정심(決定心)을 내어 무상도로 향하는 데 있어
정정취 중생보다 훨씬 어렵다는 점을 보여주려 했기 때문이다. 무슨 이유로 정정취(正定聚) 사람들은
삼 품으로 구분하지 않고 합해서 논하는가? 정정취 중생은 부정취의 경우와 비슷하고 그 허물에 관해서는
그다지 중시하지 않았음을 보여주려고 했기 때문이다. 무슨 이유로 더도 아니고 덜도 아닌
여덟 가지만을 세웠으며, 무슨 이유로 순서를 이와 같이 하였는가?
게송으로 말한다.
대종지론에 나오는 것을 다 들면 팔십 가지 인연이 되기 때문이며
수행을 통해 점점 향상하는 법은 순서가 그러하기 때문이라네.
【釋】 마명보살은 십만 온타남의 대총지론 가운데 모두 팔십 가지 인연을 세워 논을 지은 동기로 삼았다.
지금 이 논의 여덟 가지 인연이 각각 저들 논에서 말한 팔십 가지 중 열 가지씩을 포함하므로 더도 아니고
덜도 아니고 딱 여덟 가지를 든 것이다. 이러한 이유가 있기 때문에 저 앞의 본론에서 ‘이러한 등[如是等]’
이라고 하였으니, ‘등’이라는 글자가 팔십 가지 인연을 다 포함한다는 뜻이다. 여덟 가지 인연이 위와 같은
순서로 정해진 이유는 닦아 나아가는 법의 차례가 본래 그렇기 때문이다. 즉, 믿음을 갖지 못하는 천제(闡提)의
장애를 없애서 십신(十信)의 마음을 얻고, 아(我)에 집착하는 장애를 없애서 십주(十住)의 마음을 얻으며,
고(苦)를 두려워하는 장애를 없애서 십행(十行)고, 버리고 떠나는 장애[捨離障]를 없애서 십향(十向)의 마음을
얻으며, 이생성(異生性) 등 열 가지 장애를 끊어 환희지(歡喜地) 등 열 가지 지위(地位)를 증득하기 때문이다.
이제까지는 여덟 가지 인연에 관해서 설명하였고,
다음부터는 네 가지 근(根)에 관해서 설하겠다.
【論】 【문】 경[修多羅]에 이 법이 다 갖추어져 있는데 무엇 하러 중복해서 설하는가?
【답】 수다라 중에 이 법이 있기는 하지만 중생의 근기와 행[根行]이
같지 않고, 받아들이고 이해하는 연(緣)이 다르기 때문이다. 무슨 말인가?
여래께서 세상에 계실 때는 중생들의 근기도 영리하고 법을 설하는 사람의 색업(色業)과
심업(心業)이 수승해서 원음(圓音)으로 한번 연설하면 갖가지로 다른 부류의 중생들이 똑같이
이해했으므로 논을 지을 필요가 없었다. 그러나 여래께서 멸도하신 후에는,
어떤 중생들은 자력(自力)으로 널리 듣고 이해하는 자들도 있고,
또 어떤 중생은 자신의 힘으로 적게 듣고 많이 이해하는 자들도 있으며,
또 어떤 중생은 자신의 심력(心力)은 없으나 광론(廣論)을 통해서 이해를 얻는 자도 있고,
또 어떤 중생들은 광론에 나오는 문장들이 번거롭다고 여기고 적은 문장으로 많은 뜻을 담고 있는
요약된[摠持] 법을 좋아하여 그것에서 이해를 얻는 자들도 있다. 이와 같이 이 논으로 광대하고
깊은 법이 담고 있는 무변한 뜻을모두 다 포함하고자 하기 때문에 이논을 지었다.
【釋】 위 문장들은 두 부문으로 나뉜다. 무엇이 두 가지인가?
첫 번째는 경에서 설한 내용이나 이 논에서 설하는 내응이나 다를 것이 얼지 않느냐고 질문하는 부분
[所說無異難問門]이다.
두 번째는 시간의 차이[分位]를 들어 의심을 풀어주는 부분[擧時分位決疑門]이다.
‘경에 이 법이 다 갖추어져 있는데 무엇 하러 중복해서 설하는가?’라고 물은 구절은 질문[難問門]에 해당한다.
『광명대각경(光明大覺經)』 등 백 가지 경에서 무량한 법장을 열어보여서 근기의 정도에 따라 빠짐없이 이익을
얻는데, 중사(中士:馬鳴)는 무엇 하러 번거롭게 이 논을 지어서 저 경에서 설한 법을 중복해서 전하는가?
그래봐야 더 이상 아무런 도움[加顯力]도 없지 않은가? 지금 이 논을 지어 저 법을 중복해서 설하는 이유가 다분히 칭찬이나 듣자고 하는 것이 아닌가? 결국 존경과 믿음을 받는다 해도 그 이치를 다할 수는 없을 것이다.
이상이 ‘경에서 설한 내응과 다를 바가 없지 않느냐는 질문’이다.
‘수다라 중에 이 법이 있기는 하지만 중생의 근기와 행[根行]이 같지 않고, 받아들이고 이해하는 연(緣)이 다르기 때문이다’라고 대답한 구절은 의심을 풀어 주는 문[決疑門] 전체에 해당한다. 마명보살은 다음과 같이 해명한다. 삼세제불이 설하신 모든 교리는 원래가 평등한 일미(一味)에 상주하여 다른 곳으로 옮겨가거나 일어났다 꺼졌다 하는 일이 없다. 그러므로 제목이 서로 다르고 권수가 같지 않지만 교법(敎法)은 오직 한 맛으로 평등하다
혹은 나누지 않고 구분하지도 않지만 중생의 근성(根性)이 서로 다르면 영리하고 둔함이 같지 않으며,
심행(心行)이 서로 다르면 자세함과 간결함이 같지 않다. 교화 받을 대상의 근기가 다르면, 교화를 펼치는 사람도 저절로 같아질 수는 없다. 교법을 받아들일 때 그 명칭과 개념[名字]들이 다 다르고, 문맥과 내용을 이해하는 인연이 각기 다르다.
다시 말해 어떤 중생은 부처님의 가타수리비라(伽陀修梨毘羅)에 의지해 이해하는 자도 있고,
또 어떤 중생은 보살의 차타시수리비라(遮陀尸修梨毘羅)에 의지해야 비로소 이해를 하는 자도 있다.
이런 이들을 위해 논을 지어야 하는 것이다. 한편, 여래께서 세상에 계실 때는 교화의 대상이 되는
중생도 청정했고 교화를 펼치는 사람은 팔만 사천 가지 색(色)과
네 가지 마음에서 나오는 두루한 지혜[四種心遍智]와
열 가지 작업[十業]과
열 가지 수승함[十勝]을 갖추어
예순여덟 가지 범음(梵音)과
여든여덟 가지 묘음으로 전후 없이 한 번에 법을 펼쳤다.
갖가지로 다른 무량무변한 중생들 중에
어떤 중생은 부처님의 묘한 색신을 보고 이해하기도 하였고,
또 어떤 중생은 부처님의 심품(心品)을 사유함으로써 이해하기도 하였고,
또 어떤 중생은 여래의 십업(十業)과 십승(十勝)을 관찰함으로써 이해하기도 하였고,
또 어떤 중생은 성스럽고 원만하고 묘한 부처님의 음성을 듣고 이해하기도 하였다.
이렇게 누구나 똑같이 명료하게 통달했으므로 논이 필요치 않았다.
그러나 부처님께서 멸도하신 후에는, 교화의 대상이 되는 중생의 근기도 잡되게
섞이고 교화를 펼치는 법에도 빠지고 부족한 점이 생기게 되었다. 기(機)에 따라서
경이냐 논이냐가 구별되고 근(根)에 따라서 광론이냐 약설이냐가 구별된다.
근에는 네 가지가 있고 기에는 세 가지가 있다. 무엇이 네 가지 근인가?
첫째는 광론에 의해 자력으로 이해하는 근 [廣自力根]이고,
둘째는 악설에 의지해 자력으로 이해하는 근 [略自力根]이며,
셋째는 자력이 없어 광론에 의지해 남의 힘을 빌어 이해하는 근(廣無力依他根)이고,
넷째는 자력이 없어 약설에 의지해 남의 힘을 빌어 이해하는 근[略無力依他根]이다.
이 네 가지 근 중에 일의 두 가지는 경[修多羅]에 의지하는 중생이고
뒤의 두 가지는 우파제야(優婆提耶)에 의지하는 중생이다. 무슨 이유로
인연문(因緣門) 중에서는 교화의 대상이 되는 근기들을 빠짐없이 설하고,
근성문(根性門) 중에서는 적게 거론하는가?
청정한 승나아세야(僧那阿世耶)는 한없음을 보여 주기 위해서며,
가르침을 받아 실제로 수행하는 중생의 무리는 한정이 있음을 보여주기 위해서다.
무슨 까닭에 광론과 약설 두 겹으로 교법을 일으키는가?
그리고 그들의 특성은 어떠한가?
게송으로 말한다.
본원(本願)에 매여 있기 때문에 이 법문을 일으켰으니
『능가왕계경(楞伽王契經)』에서 분명하게 설하고 있기 때문이라네.
【釋】 본원(本願)에 매이는 인연력 때문에 두 겹으로 깊고 깊은
법문을 일으킨다. 어째서인가? 계경에서 분명히 설하고 있기 때문이디.
즉, 『능가왕계경』에서는 다음과 같이 설한다.
“이때 세존께서 문수사리에게 말씀하셨다. ‘바다같이 한량없는
과거의 겁을 생각해 보니, 나는 오백 세 동안 인욕선인(忍辱仙人)으로 산림에 머물며
욕심을 줄이고 자족할 줄 아는 사성(四聖)의 무리가 닦는 청정한 법을
수행하는 데 전념하고 있었다. 그때 뱀 한 마리가 산꼭대기에서 내가 있는 곳까지 내려와,
내가 독송하는 소리를 듣고는 몸을 던져 절하고 참회했다. 몸을 던져 예배를 마치고 나서는
자기 머리로 땅을긁어서 구구절절 문장을 지어 게송으로 말하였다.
나는 과거세에 인욕선인으로이 산에 머물며
하루 여섯 차례 도를 행하다가
그 중에 한번 화[瞋]를 냈었네. 이런 인연력으로
지금 뱀의 몸을 얻어 언제나 큰 고통을 받는다네.
이 목숨이 끝난다면 사람의 몸[同分]을 얻어
나는 제자가 되어그대의 수행을 따르리.
그대가 독송한 대로 나도 항상 따라서 독송하리.
이런 까닭에 나는 지금 크게 부끄러운 마음을 낸다네.
이 게송을 하고 나서 바로 목숨을 마쳤고, 뒤에 사람의 몸을 얻어 나의 제자가 되었다.
그때 서로 간에 발원을 해서 그 발원에서 자유롭지 못했는데, 나의 발원은 다음과 같은 것이었다.
‘내가 만일 무상도를 증득하면 구십 낙차(落叉)의 광대하게 설한 경을 널리 설하여 광대함을 좋아하는
중생에게 이익을 주겠으며, 십 낙차의 간략하게 설한 경을 널리 설하여 간략함[摠持]을 좋아하는
중생에게 이익을 주겠다.’ 또 나의 제자는 발원하기를,
‘스승이 멸도하신 뒤 나는 구십 부의 광설 우파제야(優婆提耶)를 짓고 설하여 광론을 통해
이해를 얻는 중생에게 이익을 주겠으며, 십 부의 약설 우파살제야를 짓고 설하여 총지(摠持)를 통해
이해를 얻는 중생에게 이익을 주겠다’고 하였다. 이러한 인연으로 나는 지금 바다 같은 계경을 설하는 것이며,
이러한 인연으로 내가 멸도한 뒤에 나의 제자가 현재 논의 가르침을 짓는 것이다.”
이제까지는 인연분(因緣分)을 설하였으므로 다음은 입의분(立義分)을 설하겠다.
입의분에서 시설하는 법문의 명칭에는 몇 가지가 있으며, 그 특성은 어떠한가?
게송으로 말한다.
서른세 가지가 있으니 열여섯 가지 소입법과
열여섯 가지 능입문과 그리고 불이문으로 나뉘기 때문이라네.
【釋】 입의분(立義分) 중에서 시설하는 법문의 명칭 수는
모두 서른세 가지로 차별된다. 무엇이 서른세 가지 차별인가?
즉, 소입(所入)이 되는 열여섯 가지 본법(本法)과 열여섯 가지
능입문(能入門), 그리고 불이(不二)의 마하연이 각각 차별되기 때문이다.
어떻게 해서 마하연이 열여섯 가지가 되는가?
근본 마하연에서 여덟 가지가 벌어지기 때문이며,
일심법계(一心法界)와 삼대의(三大義)에서 각각 두 가지씩 벌어지기 때문이다.
어떻게 해서 능입문이 열여섯 가지가 되는가?
일심법계와 삼대의에서 각각 두 가지씩이 벌어지기 때문이다.
또 다르게는 각각에서 두 가지 문이 벌어지기 때문이다.
이것이 입의분에서 시설하는 법문의 근본 수이다.
이제까지는 법수를 말했다. 이어서 본문 각각을 해석하겠다.
【論】 마하연(摩訶衍) 전체를 두 가지로 말할 수 있다. 무엇이 두 가지인가?
하나는 법(法)이고
또 하나는 뜻[義]이다.
법이란 중생심(衆生心)을 말한다. 이 중생심이 세간과 출세간의
모든 법을 포괄하므로 이 마음에 의지해서 마하연의 뜻[義]을 드러낸다.
무슨 까닭인가?
이 심의 진여상[心眞如相]이 마하연의 체(體)를 나타내며, 이 심의 생멸인연상[心生滅因緣相]이
마하연의 자체(自體)와 상(相)과 용(用)을 나타내기 때문이다.
뜻[義]에는 세 가지가 있다. 무엇이 세 가지인가?
첫 번째는 체대(體大)니,
일체법의 진여는 평등하여 늘어나지도 않고 줄어들지도 않기 때문이다.
두 번째는 상대(相大)니,
여래장(如來藏)은 무량한 성품의 공덕을 구족하고 있기 때문이다.
세 번째는 용대(用大)니,
세간과 출세간의 모든 착한 인과를 내기 때문이다. 모든 부처님이 본래부터 이에 의지했기 때문이며,
모든 보살들도 이 법을 수레처럼 타고서 여래의 지위에 도달했기때문이다.
【釋】 위 글은 세 가지 문으로 나뉜다. 무엇이 세 가지인가?
첫째는 깨달아 들어갈 바의 근본법을 총체적으로 설한 문 [所入根本總體門]이며,
둘째는 능의에 의해 깨달아 들어가는 별상을 설한 문 [能依趣入別相門]이며,
셋째는 어김없는 법칙을 통달하여 요동이 없는 문 [通達軌則不動門]이다.
처음 두 문에는 다시 두 가지[兩重]가 있으니 사유에 머물러 관찰해야 한다.
마하연 전체라고 한 구절은 깨달아 들어갈 바의 근본법을 총체적으로 하여 설한 문을 이르는 것으로서,
근본 마하연은 여덟 가지로 차별된다. 무엇이 여덟 가지인가?
첫째는 일체일심마하연(一體一心摩訶衍),
둘째는 삼자일심마하연(三自一心摩訶衍),
셋째는무량무변제법차별부증불감체대마하연(無量無邊諸法差別不增不減體大摩訶衍),
넷째는 적정무잡일미평등부증불감체대마하연(寂靜無雜一味平等不增不減體大摩訶衍),
다섯째는 여래장공덕상대마하연(如來藏功德相大摩訶衍),
여섯째는 구족성공덕상대마하연(具足性功德相大摩訶衍),
일곱째는 능생일체세간인과용대마하연(能生一切世間因果用大摩訶衍),
여덟째는 능생일체출세간선인과용대마하연(能生一切出世間善因果用大摩訶衍)이다.
이상이 여덟 가지 근본 마하연이다.
이 여덟 가지 마하연의 법은 능입(能入)을 두고 건립한 명칭이다. 무슨 말인가?
하나의 체(體),
하나의 심(心)을 문으로 삼아서 들어가기 때문에 ‘일체일심마하연’이라 하며,
(중략) 출세간의 모든 선인과를 내는 용대(用大)를 문으로 삼아 들어가기 때문에 ‘
능생일체출세간선인과용대마하연’이라고 이름한다.
이를 전륜성왕에 비유할 수 있다. 즉, 전륜성왕이 그 윤상(輪相)에 따라 이름이 붙듯,
마하연법도 마찬가지로 그 문(門)의 상에 따라 명칭을 붙인다.
『대각계경(大覺契經)』에서는 다음과같이설한다.
“부처님께서 문수사리에게 말씀하셨다. ‘잘 듣고 잘 생각하여라.
내가 그대를 위해 신법(身法)을 여덟 가지로 분별해서 설해주겠다.
무엇이 여덟 가지인가?
첫째는 일체취입신법(一體趣入身法)이고,
둘째는 삼자취입신법(三自趣入身法)이며,
셋째는 제법차별부증불감체대취입신법(諸法差別不增不減體大趣入身法)이고,
넷째는 순정일상무잡부증불감체대취입신법(純淨一相無雜不增不減體大趣入身法)이고,
다섯째는 여래장공덕현료대취입신법(如來藏功德顯了大趣入身法)이고,
여섯째는 원만성공덕현료대취입신법(圓滿性功德顯了大趣入身法)이며,
일곱째는 출생세간인과자재무애대취입신법(出生世間因果自在無礙大趣入身法)이고,
여덟째는 출생출세간묘인과자재무애대취입신법(出生出世間妙因果自在無礙大趣入身法)이니,
이것이 여덟 가지 신법이다.”
그리고는 이에 대해 자세히 설하셨다.
마명보살은 이 경문을 그대로 받아들여 마하연의 총상을 설한 것이다.
여기서 총(摠)이란 말은 두 가지 처(處)에 걸리기 때문에 총체라고 한 것이니,
상품을 향[望上]하고 하품에까지 이른다[下臨]는 뜻이다.
『대총지론(大摠地論)』에서는 여든 가지 문을 열어서 근본 마하연법을 자세하게 해석하고 있는데,
여기서는 열 가지를 하나로 모아서 여덟 가지만을 건립하였다.
무슨 연유로 여덟 가지가 되는지를 응당 알아야 하는가?
능입(能入)의 별상(別相)에 여덟 가지,
소입(所入)의 총체(摠體)에 여덟 가지가 있음을 알아야 한다.
능입과 소입의 여덟 가지 법상 중에 무엇이 우수하고 무엇이 하열하며,
무엇이 넓고 무엇이 좁은지,그 상(相)은 어떠한가?
게송으로 말한다.
평등하고 평등한 하나여서 모두 다름이 없으며
각각 모든 법을 포괄하기 때문이나 끝내 뒤섞이지 않는다네.
【釋】 위에서 설한 능입과 소입의 열여섯 가지 법상은 어디에나 두루하고
절대 평등하여 아무 차별 없는 한 가지 맛, 한 가지 모습이다. 어째서 그런가?
각각이 모든 법을 남김없이 포괄하기 때문이다. 만일 그렇다면 근본과 지말[本末],
그리고 총체와 개별[摠別]이 혼동되어 뒤섞이지 않겠는가?
본과 말을 끝까지 다하기 때문에 뒤섞이는 일이 없다.
총별문에서는 처음과 끝이 없는 것은 아니나 각각은 개별성을 가지므로 그 양에 있어서
동등하다는 뜻에서 평등하다는 것이지, 전체가 다 똑같다는 뜻에서 평등하다고 한 것은 아니다.
이제까지 본문을 삼 문(三門)으로 나누고 처음 두 가지 문을 다시 두 가지로 나눈 가운데
첫 번째를 설명하였다. 두 번째는 네 가지로 나뉜다.
그 중에는 각각 삼 문(三門)씩을 갖추고 있다. 무엇이 삼 문인가?
첫째는 근본법이 결정적으로 무엇을 소의로 삼는지를 밝히는 문[本法所依決定門]이며,
둘째는 근본 일심이 지말인 세간ㆍ출세간 법을 포괄하는 분제를 밝히는 문 [根本攝末分際門]이며,
셋째는 두 가지 마하연을 건립하는 문 [建立二種摩訶衍門]이다.
‘법이란 중생심을 이른다’는 구절은 근본법이 결정적으로 무엇을 소의로 삼는지 밝히는 문에 해당한다.
이제 온타남의 게송을 빌어 총지(摠持)로써 분명히 설명하겠다. 그 내용[相]은 어떠한가?
게송으로 말한다.
중(衆)은 사연의 무리[四衍衆]를 이르고
생(生)은 사종의 생[四種生]을 이르네
이는 하나의 법계장(法界藏)으로서 저 팔처(八處)에 두루하다네
【釋】 중(衆)에는 네 가지가 있다. 무엇이 네 가지인가?
첫째는 모든 여래중(如來衆)이며,
둘째는 모든 보살중(菩薩衆)이며,
셋째는 모든 성문중(聲聞衆)이며,
넷째는 모든 연각중(緣覺衆)이다. 이상이 사 중(四衆)이다.
생(生)에도 네 가지가 있다. 무엇이 네 가지인가?
첫째는 난생(卵生)이며,
둘째는 태생(胎生)이며,
셋째는 습생(濕生)이며,
넷째는 화생(化生)이다. 이상이 사 생(四生)이다.
헤아릴 수 있는 정도의 수를 넘어섰으므로 중(衆)이라 하고, 생명을 받으므로 생(生)이라 한다.
일법계심(一法界心)은 저 팔처(八處:사 중과 사 생) 어디에나 두루하고 원만하여 나뉠 수도 없고 흩어질 수도
없는, 오직 하나의 체(體)이며 하나의 상(相)이다. 네 가지 중으로 모든 성인을 남김없이 포괄하며,
네 가지 생으로 모든 범부를 남김없이 포괄한다. 마명보살은 일심(一心)이 이렇게 광대하고 원만하다는
사실을밝히기 위해 ‘중생’이라는 표현을 쓴 것이다.
『순리계경(順理契經)』에는 다음과 같이 설한다.
“이 때 세존께서 커다란 광명을 놓아 신통한 힘을 보이신 뒤 불자들에게 말씀하셨다.
‘자세히 듣고 갈 생각하여라. 내 이제 그대들을 위해 일법계장(一法界藏)을 분별해서 설명해 주겠다.
선남자여, 일법계장이란 모든 여래와 모든 보살과 모든 성문과 모든 연각과 모든 범부[異生]에 어디나
통하지 않는 곳이 없고 이르지 않는 곳이 없고 해당하지 않는 곳이 없기 때문에 일법계장이라 한다.’”
이 논에서는 위 경문의 뜻을 취해 중생을 해석하였다. 마명보살은 이에 대해 육만 온타남
본장론(本藏論) 중에서 열 가지 문을 열어 별도로 해석하고 이런저런 설명을 붙였는데,
여기서는 요지만을 취했으므로 단지 중(衆)과 생(生)을 간략히 든 것이다.
이제까지 근본법이 결정적으로 무엇을 소의로 삼는지 밝히는 문[本法所依決定門]에 관해 설명하였다.
‘이 중생심이 세간 출세간의 모든 법을 다 포괄한다’고 한 구절은 근본 일심이 지말인
세간ㆍ출세간법을 포괄하는 분제를 밝히는 문[根本攝末分齊門]에 속한다.
그 내용[相]은 어떠한가?
게송으로 말한다.
이 일법계심(一法界心)이 두 가지 문을 다 포괄하므로
세간ㆍ출세간을 포괄한다 하였고 법계가 되기에 법이라 하였네.
【釋】 일법계심이 일체 생멸문(生滅門)의 법을 다 포괄하므로 ‘세간법을 섭한다’고 하며,
일체 진여문(眞如門)의 법을 다 포괄하므로 ‘출세간의 법을 섭한다’고 한다.
이 심 전체가 그대로 법계가 되기에 법이라고 이름한다.
『자체계경(自體契經)』에서는 다음과 같이 설한다.
“광대신왕(廣大神王)이 갖가지 모든 무명(無明)과 갖가지 모든 염법(染法)과 갖가지
모든 정백품(淨白品)의 법을 다 포괄하고,
또 모든 청정법과
모든 무애 법과
모든 해탈법과
모든 절리법(絶離法)과
모든 만족법(滿足法)과
모든 적정법(寂靜法)을 다 포괄한다.
그런데 이 광대신왕은 세간법도 아니고 출세간법도 아니다.”
여기서는 위 경문을 취했기 때문에 포괄[攝]한다는 말을 쓴 것이다.
마명보살은 팔만 온타남 귀종론(歸宗論)에서 열두 가지 문을 두어 이 내용을 자세히 밝히고 있는데,
여기서는 간략히 내용을 취했으므로 위와 같이 말했을 뿐이다. 이상이 일심이 지말인
세간ㆍ출세간법을 포괄하는 분제를 밝히는 문[根本攝末分齊門]에 관한 설명이다.
‘이 마음에 의지해서 마하연의 뜻을 드러낸다’고 하는 등은
두 가지 마하연을 건립하는[建立二種摩訶衍門] 것에 해당한다. 그 내용은 어떠한가?
게송으로 말한다.
두 가지 문을 전체적으로 나타내기에 이 마음에 의지한다 하였고
두 가지 근본법을 전체적으로 나타내기에 마하연을 드러낸다고 하였네.
【釋】 두 가지 능입문(能入門)을 전체적으로 나타내기 때문에 ‘이 마음에 의지해서’라 하였고,
두 가지 소입문(所入門)을 전체적으로 나타내기 때문에 마하연의 뜻을 드러낸다’고 하였다.
무엇이 두 가지 문인가?
첫째는 심진여문(心眞如門)이고,
둘째는 심생멸문(心生滅門)이다.
무엇이 두 가지 본법(本法)인가?
첫째는 체(體)의 마하연이고,
둘째는 자체(自體)마하연과
자상(自相)마하연과
자용(自用)마하연이다.
이와 같은 두 가지 소입의 본법은 능입에 의해 명칭을 그렇게 건립한 것이다.
진여의 체를 문으로 삼아 들어갈 바를 삼기 때문에 체(體)라 하였고,
자상의 본각심(本覺心)을 문으로 삼아 들어가기 때문에 자(自)라 하였다.
능입의 문이 두 가지로 구별되기 때문에 소입의 본법도 두 가지가 됨을 알아야 한다.
‘무슨 까닭인가?’라고 한 것은 스스로 질문하여 대답을 유도하는 말이다. 즉, 무슨 뜻이 있길래,
‘이 마음에 의지해서’라는 구절에 두 가지 문을 갖추고, ‘마하연의 뜻을 드러낸다’는 구절 중에
두 가지 본법을 갖추느냐는 질문이다. 답은 다음과 같다.
일법계심의 진여문이 되어 일체 마하연법을 드러내 보이고 일법계심의 생멸문이 되어
자체마하연과
자상마하연과
자용마하연의 법을 나타내 보인다. 이러한 뜻에서 각각이
두 가지 문과 두 가지 법을 갖춘다는 것을 알아야 한다.
『대각계경(大覺契經)』에서는 다음과 같이 설한다.
“그리고 문수사리여, 매우 깊고 묘해서 헤아릴 수 없는 두 가지 법이 있다. 무엇이 두 가지인가?
첫째는 평등한 체상의 마하연[體自相自用摩訶衍]이고,
둘째는 자연의 자상마하연[自相自然摩訶衍]이다.
만일 이 두 가지 법을 증득하고자 한다면 두 가지 문을 닦아야 한다.
무엇이 두 가지 문인가?
첫째는 끊을 것도 없고 속박도 없는 문[無斷無縛門]이고,
둘째는 끊을 것도 있고 속박도 있는 문[有斷有縛門]이다.”
그리고는 계속해서 자세히 설하셨다. 논에서는 위 경문을 취했으므로 위와 같이 설한 것이다.
『대총지론(大摠持論)』에서는 이 내용을 여덟 가지 문으로 분명하고 자세하게 설했다.
이제까지 두 가지 마하연을 건립하는 문에 관해 설명했다.
삼대(三大)의 뜻에서는 각각 처음의 두 가지 문을 요약하여 뒤의 한 문을 건립한다.
마명보살이 뜻을 두어 기꺼이 펼치려 했던 근본취지가,
마지막 한 문을 들어 처음과 가운데 문을 포함하는 데 있었기 때문에 위와 같이 말한 것이다.
또한 이상과 같은 차례를 시설해야 뜻이 분명하게 드러나기 때문에,
위 두 게송에서의 본법(本法)에서 여기까지 온 것이다.
‘첫 번째는 체대(體大)이니’란 두 가지 소입(所入)의 본법을 전체적으로
나타낸다. 무엇이 두 가지인가?
첫째는 한량없고 끝없는 갖가지 법으로 차별되지만 늘어나지도 줄어들지도 않는 마하연이고,
둘째는 적정하여 잡됨이 없고 한 가지 맛으로 평등하여 늘어나지도 줄어들지도 않는 마하연이다.
‘일체법의 진여는 평등하여 늘어나지도 않고 줄어들지도 않는다’란 두 가지 능입(能入)의 별문(別門)을
전체적으로 나타낸다.
무엇이 두 가지인가?
그것은 본법의 명칭을 그대로 띠라서 문을 그렇게 구분하기 때문이다.
‘두 번째는 상대(相大)이니’란 두 가지 소입의 본법을 전체적으로 나타낸다. 무엇이 두 가지인가?
첫째는 여래장공덕의 마하연이고,
둘째는 성품의 공덕을 구족한 마하연이다.
‘여래상은 무량한 성품의 공덕을 구족하고 있기 때문’이라고 한 구절은
두 가지 능입의 별문을 전체적으로 나타낸다.
어떻게 해서 두 가지인가? 본법의 명칭을 따라 문을 그렇게 구분하기 때문이다.
‘세 번째는 용대(用大)이니’란 두 가지 소입의 본법을 전체적으로 나타낸다. 무엇이 두 가지인가?
첫째는 세간의 모든 인과를 출생하는 마하연이고,
둘째는 출세간의 모든 착한 인과를 출생하는 마하연이다.
‘세간과 출세간의 모든 착한 인과를 내기 때문’이라고 한 구절은
두 가지 능입의 별문을 전체적으로 나타낸다. 어떻게 해서 두 가지인가?
본법의 명칭을 따라서 문을 그렇게 구분하기 때문이다.
삼대(三大)의 뜻은 『총지론(摠持論)
「본지품(本地品)」 중에서 조목조목 분석해서 분명하게 설하고 있다.
무슨 이유로 불이(不二)의 마하연법에는 인연(因緣)이 없는가?
이 법은 지극히 묘하고 지극히 깊으며 유일하게 존귀하여 기근(機根)과는 무관하기 때문이다.
어째서 기근과 무관한가?
마하연법에는 기(機)와 근(根)이 없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무엇 때문에 건립(建立)을 필요로 하는가?
건립이 아니기 때문이다.
이 마하연의 법은 모든 부처님께서 얻으신 바인가?
모든 부처님으로부터 얻어 지는 것이지 모든 부처님이 얻는 것이 아니다.
보살과 이승과 모든 범부중생[異類]도 마찬가지다.‘바다와도 같이 성품의
공덕이 원만하다’는 말이 바로 이를 지칭한다.
무엇 때문인가?
기(機)와 근(根)을 떠났기 때문이며, 교설(敎說)을 떠났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여덟 기지 본법(本法)은 어떻게 인연으로부터 일어나는가?
기(機)에 응하기 때문이며, 설(說)에 순응하기 때문이다.
어째서 기에 응한다고 하는가?
근이 있고 기가 있기 때문이다.
이상 여덟 가지 본법은 모든 부처님께서 얻으신 바인가?
모든 부처님께서 얻으신 바이지 모든 부처님에게서 얻어지는 것이 아니다.
보살과 이승과 모든 범부도 마찬가지다.
‘수행의 종자인 연이 바다 같다’는 말이 이를 지칭한다. 어째서인가?
기와 근이 있기 때문이며, 교설이 있기 때문이다.
무슨 이유로 진여문(眞如門)에 의지하여 향해 들어가는
마하연의 법에는 체(體)라는 명칭만을 건립하며, 생멸문(生滅門)에
의지하여 향해 들어가는 마하연의 법에는 자(自)라는 명칭을 건립하는가?
진여문 중에는 자신 이외의 상[他相]이 없기 때문이며
생멸문 중에는 자신 이외의 상이 있기 때문이다.
타(他)란 모든 불선품(不善品)의 법을 말하고
자(自)란 모든 청정품(淸淨品)의 법을 말한다.
만일 대치할 대상으로서의 타가 없다면 능히 대치하는 자도
없기 때문에 체(體)만을 들고 자(自)에 대해서는 언급하지 않았다.
그런데 대치할 상대로서 타가 있으면 능히 대치하는 자도 있으므로
체에 국한하지 않고 자까지 언급한 것이다.
또 한편으로는 일법계의 체는 절대 평등하여 사사로움을 용납치 않으며,
타력을 빌리지 않아도 무량한 성품의 공덕이 자연스럽게 본디 갖추어져
있음을 나타내 보이고자 하기 때문이다.
또 한편으로는 경우에 따라 안립하는 데에는 따로 정해진 바가 없기 때문이다.
무슨 이유로 별설문(別說門)에서는 일심(一心)을 별도의 하나로 치고
삼대(三大)를 합해서 하나로 지되 각각 동등하게 두 가지 마하연을 설명하는가?
삼대의 뜻이 합해져야 비로소 두 가지 마하연을 설명할 수 있기 때문이다.
대(大)라는 개념은 세 가지에 공통되기 때문에 합해서 하나의 뜻으로 삼은 것이지 별다른 의도는 없다.
지금 열어 보인 열여섯 가지 법문 중에 우수하고 열등하고 넓고 좁은 상(相)은 어떠한가?
게송으로 말한다.
평등하고 평등한 하나이니 이 모두에 다름이란 없네.
각각이 모든 법을 다 포괄하되 결코 뒤섞이는 일은 없다네.
【釋】 능입과 소입 각각의 열여섯 가지 법문은 절대 원만하고 절대 평등하여 아무 차별 없이 법계 어디에나
두루하다. 어째서 그런가? 법문 각각이 모든 법을 남김없이 포괄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본말이나 능소가
결코 뒤섞이는 일은 없다. 이제까지 총별 두 가지 문에 관해 설명하였다.
‘모든 부처님께서 본래부터 이에 의지했기 때문이며,
모든 보살들도 이 법을 타고 수레처럼 타고서 여래의 지위에 도달했기 때문이다’라고
한 구절은 통달궤칙부동문(通達軌則不動門)에 해당한다.
즉, 티끌같이 많은 과거의 모든 부처님과 티끌같이 많은 현재의 모든 부처님과 티끌같이
많은 미래의 부처님께서 모두 깊고 깊은 이 서른세 가지 법문의 안락한 수레를 타고
청정하고 더없이 높은 지위에 도달하셨기 때문이다.
시방삼세의 모든 보살들도 마찬가지다. 여기서 보살이란 말은
삼취(三聚)의 모든 중생을 다 포함한다. 무엇 때문인가?
여래의 지위에 이르지 않는 중생은 하나도 없기 때문이다.
頌曰攝彼大摠地 五十法門故 是故不增減唯建立五分。
論曰:馬鳴菩薩十萬嗢拕南大摠地論中,摠立五十門,
判釋諸教理。今此論中,五分法門,各攝彼十門。
是故不增減,唯立五分。所謂彼論建立所化圓滿等十門,
因緣分所攝。百六十摩訶衍等十門,
立義分所攝,安立隨順決擇等十門,
解釋分所攝,修習決定趣入等十門,
修行分所攝,勸請呵責引導等十門,
勸修分所攝。已說建立門,次說唱章判說門。
本曰:‘初說因緣分。
問曰:有何因緣而造此論?
荅曰:是因緣有八種。
云何爲八?
一者因緣摠相,所謂爲令衆生,離一切苦,得究竟樂,非求世閒名利、恭敬故;
二者爲欲解釋如來根本之義,令諸衆生,正解不謬故;
三者爲令善根成就衆生,於摩訶衍法,堪任不退信心故;
四者爲令善根微少衆生,修習信心故;
五者爲示方便,消惡業障,善護其心,遠離癡慢,出邪網故;
六者爲示修習止觀,對治凡夫二乘心過故;
七者爲示專念方便,生於佛前必定不退信心故;
八者爲示利益勸修行故。有如是等因緣,所以造論。
’論曰:是八因緣中,初一爲立義分,作正因緣;
次二爲解釋分,作正因緣;次四爲修行信心分,
作正因緣;後一爲勸修利益分,作正因緣。初一因緣中,
卽有四門;後七因緣中,各具三門。云何爲四?
一者能化教法出興門,
二者所化衆生分際門,
三者出興作業善巧門,
四者除遣諍論誹謗門。
云何爲三?謂前三門,今當擧相,隨次別釋。因緣摠相者,摠擧能化教法出興門,謂爲八種根本摠體,
作正因緣故。言因緣摠爲二十四種,分離別相,作正因緣故,言因緣相。三十二種#摠別法相,
立義分中自當顯說。爲令衆生者,摠擧所化衆生分際門,
謂攝邪定聚十億八萬六千種衆生、不定聚三十種衆生、正定聚一百二十種衆生故。離一切苦,得究竟樂者,
摠擧出興作業善巧門,謂緣三聚,而爲境界,宣說開示妙法要者,欲令一切無量衆生,遠離生滅無常之苦,
獲得根本摠相之樂故。非求世閒名利恭敬故者,摠擧除遣諍論誹謗門,謂愚衆生,
作如是疑:馬鳴菩薩居位不動地,未及法雲地,而緣上地諸菩薩等,爲其所化之境界者,
唯顯自殊勝,爲求名利等。有其虛言,無有實義。豈下地菩薩應得教化上地菩薩?
是故馬鳴爲遣如是不信疑故,自通而言:我夂遠劫,成正覺訖,而助教化利益群生,
爲滿本願故,權示藍修位。非謂欲求名利等故,作如是說。已說初因緣,
第二因緣言解釋如來根本之義者,摠擧能化教法出興門,
謂是因緣能爲顯示正義,對治邪執,作正因緣故,言如來根本之義。所以者何?
十方三世一切如來,無有一佛不爲根本一心、二門、
七種對治,成正覺故。令諸衆生者,摠擧所化衆生分際門,
謂攝十億八萬六千種邪定聚衆生故,正解不謬故者,摠擧出興作業善巧門,
謂緣邪定聚狂亂衆生,而爲境界,宣說開演顯示正義,
對治邪執甚深法者,正恒沙之謬邪解,摧塵數之逆亂見,斷除其闡提不信障,而爲令趣入於十信大道故。
已說第二因緣,第三因緣爲分別發趣道相,作正因緣。是名爲能化教法出興門。
謂三種發心善根成就衆生者,摠擧所化衆生分際門,
謂攝上品十信、三品十解、三品十行、三品十向、三品十地#諸衆生故,於摩訶衍法,
堪任不退信心故者,摠擧出興作業善巧門,謂緣二聚衆生,而爲境界,
宣說開示三發心者,爲令超過自分,獲得勝進故。已說第三因緣,第四因緣爲修行信心分,
四種信心、四種修行,作正因緣,是名爲能化教法出興門。
善根微少衆生者,摠擧所化衆生分際門,
謂攝得十信位前五心中品衆生故,已得前五故,非都無善根名,言微少。
未得後五故,不能具足,不名成就。修習信心故者,摠擧出興作業善巧門,
謂爲能令成就後五信心故,已說第四因緣。第五因緣爲修行信心分進門之終。
復次,若人雖修行信心,乃至得免諸障,善根增長故,作正因緣。是名爲能化教法出興門,
此中衆生攝得十信位,初心下品衆生故,
是名爲所化衆生分際門。消惡業障等者,摠擧出興作業善巧門,
謂示禮拜懺悔等方便,而爲消除種種業障海故。已說第五因緣,第六因緣言修習止觀者,
摠擧能化教法出興門,謂爲修行信心分,修行止觀門,作正因緣故,凡夫二乘者,摠擧所化衆生分際門,
謂攝得十信位二心下品衆生,邪定聚攝一切二乘故。對治心過者,摠擧出興作業善巧門,謂以兩輪通,
爲對治凡夫二乘見執過失故。已說第六因緣,第七因緣爲修行信心分之終,復次,
衆生初學是法,乃至畢竟得生住正定聚故,作正因緣,是名爲能化教法出興門。
此中衆生攝得十信位前四心,更不能勝進下品衆生。謂住是世界,信心成就極怖畏故,是名爲所化衆生分際門。
必定不退信心故者,摠擧出興作業善巧門,謂以勝緣力,而爲安立正定聚故。已說第七因緣,
第八因緣爲勸修利益分,作正因緣,是名爲能,化教法出興門。此中衆生,
攝十億八萬六千種邪定聚諸衆生故,是名爲所化衆生分際門,
爲示利益勸修行故者,摠擧出興作業善巧門,
謂爲欲令宣說功德增長#欲樂,顯示過患覺,悟厭離故。已說第八因緣。一切諸教法皆盡於立義分,一切諸所化之機,皆盡於初因緣分。何故開三分,而別釋立七因緣,而散說耶?爲欲顯示利鈍廣略,摠別不同故。
何故二乘人重取於四處?爲欲顯示二乘衆生下劣狹小,發菩提心,向無上道甚極切難,超過於餘類衆生故。
何故所餘邪定衆生,唯取於三處?爲欲顯示所餘衆生形於二乘,輕其過失故。
何故不定人別取三品耶?爲欲顯示不定衆生#微薄暗鈍,發決定心,向無上道,甚極切難,超過於正定衆生故。
何故正定人不別三品,通摠攝耶?爲欲顯示正定衆生,形於不定,輕其過失故。有何因緣,不增不減,
唯立八種?何故次第如是?
頌曰:摠攝大摠地 八十因緣故 修行轉勝法次第如是故。
論曰:馬鳴菩薩十萬嗢陀南大摠地論中,摠立八十因緣,以爲論緣由。今此論中,八種因緣,
各攝彼論十種因緣。故不增減,唯立八種。由是義故,言如是等。等字摠攝彼八十故,因緣次第行法法爾故,
謂除闡提不信障,得十信心,除著我障,得十住心,除畏苦障,得十行心,除捨離障,得十向心,
斷異生性等十種障,證歡喜等十種地故。已說八因緣,次說四種根。
本曰:‘ 問曰:修多羅中,具有此法,何須重說?
答曰:修多羅中,雖有此法,以衆生根行不等,受解緣別,所謂如來在世時,衆生利根,能說之人,色心業勝,圓音一演,異類等解。則不須論。若如來滅後,或有衆生,能以自力,廣聞而取解者;或有衆生,亦以自力,
少聞而多解者;或有衆生,無自心力,因於廣論而得解者;自有衆生,復以廣論文多爲煩,
心樂摠持少文而攝多義,能取解者。如是此論爲欲摠攝如來廣大深法無邊義故,應說此論。
’ 論曰:此文中有二門。
云何爲二?
一者所說無異,難問門;
二者擧時分位,決疑門。問曰:修多羅中,具有此法,何須重說者,則是難問門。謂光明大覺等一百契經中,
開示一切無量法藏,隨機根量,攝取利益,無所闕失。中士何用煩造此論?重傳彼法,更無加顯力。今造此論,重說彼法者,頗不求稱讚等事耶?畢竟尊信,不盡其理,是名爲所說無異難問門。
荅曰:修多羅中,雖有此法,以衆生根行不等,受解緣別者,摠擧決疑門,所謂馬鳴自通,
而言三世諸佛一切教理,自然常住一味平等,無有移轉,無有起滅。是故雖題牓差別,翰牘不同,
而其教法唯是一味,唯是平等,或不分,或不別,然而衆生根性差別,利鈍不等,心行差別,廣略不同。
旣所化之機異,能化之人,不能自同。令受教法,名字各別,令解文義,因緣各別,謂或有衆生,
依佛伽陁,修梨毘羅,而得解者;或有衆生,依菩薩遮陁尸,修梨毘羅,方得解者,故爲是人,
當須造論。復次,如來在世時,所化淸淨,能化圓滿八萬四千種色相、四種心遍智、十種作業、十種殊勝,
六十八梵圓、八十八妙音,無有前後,一時敷演,無量無邊種種異類,或有衆生見佛妙色,而得解者;或有衆生思惟佛心品,而得解者;或有衆生觀察如來十業、十勝而得解者;或有衆生聽聞佛梵圓妙音,而得解者。
如是平等明了通達,則不須論。若佛滅後,所化雜亂,能化少闕。經論機異廣略根別。根謂四種根,
機謂三乘機。
云何爲四?
一者廣自力根,
二者略自力根,
三者廣無力依他根,
四者略無力依他根。如是四種根性中,
初二是修多羅衆,後二是優婆提耶衆。何故因緣門中,所化圓滿;根性門中,所化微少?爲欲顯示淸淨僧那阿世耶無有邊際故,爲欲顯示受教實行衆生之類,有其分際故。以何因緣,出興兩重廣略教法?其相云何?
頌曰:本願繫屬故 出興此法門 楞伽王契經分明顯說故。
論曰:繫屬因緣之力故,出興兩重甚深法門。所以者何?於契經中,明顯說故。所謂楞伽王契經中,
作如是說:爾時,世尊告文殊師利言:我念過去無量劫海,
於五百世,忍辱仙人在山林中,專心修行少欲知足四聖衆種淸淨之法。於時,有一大蛇,從山頂下來,詣我所,聞我所誦,則投其體,禮拜懺悔。投體已訖,以頭攢地,區區作文,而說偈言:我過去世忍辱仙人住於此山六時行道。而一時瞋因緣力故今得蛇身常受大苦。若命終後得人同分我當弟子隨汝修行。
汝所讀誦常我所誦是故我今發大慚愧。說是偈已,卽便命終,後得人身,則我弟子。爾時,互相發願繫屬,
謂作如是願!我若證無上道,宣說九十落叉廣說修多羅,利益意樂廣大衆生,宣說十落叉略說修多羅,
利益意樂摠持衆生。卽我弟子作如是願。我當師滅後,造作九十部廣說優婆薩提耶,利益意樂廣大衆生,
造作十部略說優婆薩提耶,利益意樂摠持衆生。以此因緣,我今宣說諸契經海。以此因緣故,我滅度後,
我弟子現造作論教。已說因緣分,次說立義分。立義分中,法門名字其數幾有,其相云何?
頌曰:有三十三種 十六所入法 十六能入門及不二別故。
論曰:立義分中,法門名數摠有三十三種差別。
云何爲三十三差別?所謂十六所入本法、十六能入門及不二摩訶衍,各差別故,
何故摩訶衍成十六種?根本摩訶衍中開八種故,一心法界三大義中,各開二種故。
何故能入門成十六種?一心法界及三大義各二種故。或各開二種門故,是名爲本數。
已說法數,次當別釋。本曰:‘摩訶衍者,摠說有二種。
云何爲二?
一者法,
二者義。所言法者,謂衆生心。是心則攝一切世間法、
出世閒法,依於此心,顯示摩訶衍義。何以故?是心眞如相,
卽示摩訶衍體故,是心生滅因緣相,能示摩訶衍自體相用故。所言義者,卽有三種,
云何爲三:
一者體大,謂一切法眞如平等不增不減故;
二者相大,謂如來藏具足無量性功德故;
三者用大,謂能生一切世閒、出世閒善因果故。
一切諸佛本所乘故,一切菩薩皆乘此法,到如來地故。
’論曰:此文中,有三門。云何爲三?
一者所入根本摠體門,
二者能依趣入別相門,
三者通達軌則不動門。
初二種門,有其兩重,住思應觀摩訶衍者,摠者,卽是所入根本摠體門。
卽是根本摩訶衍中,有八差別。云何爲八?
一者一體、一心摩訶衍,
二者三自一心摩訶衍,
三者無量無邊諸法差別不增不減體大摩訶衍,
四者寂靜無雜一味平等不增不減體大摩訶衍,
五者如來藏功德相大摩訶衍,
六者具足性功德相大摩訶衍,
七者能生一切世閒因果用大摩訶衍,
八者能生一切出世閒善因果用大摩訶衍。是名爲八。
如是八種摩訶衍法,皆從能入建立其名,謂以一體一心而爲其門所趣入故,名爲一體一心摩訶衍,
乃至以能生一切出世閒善因果用大,而爲其門,所趣入故,名爲能生一切出世閒善因果用大摩訶衍。
譬如轉輪聖王,謂如輪王,隨其輪相,建立名字。摩訶衍法亦復如是,隨其門相,建立名故。
大覺契經中,作如是說:佛告文殊師利言:諦聽諦聽,善思念之。我當爲汝分別開說八種身法。
何等爲八?
一者一體趣入身法,
二者三自趣入身法,
三者諸法差別不增不減體大趣入身法,
四者純淨一相無雜不增不減體大趣入身法,
五者如來藏功德顯了大趣入身法,六者圓滿性功德顯了大趣入身法,
七者出生世閒因果自在無㝵大趣入身法,
八者出生出世閒妙因果自在無㝵大趣入身法。是名爲八。
乃至廣說,馬鳴菩薩正攝彼文。
是故說言摩訶衍者,摠此中,摠言於兩處中,是摠體故。所謂望上及下臨故,大摠地論中,開八十門,
廣釋根本摩訶衍法。今各攝十成一種故,唯立八法。由何義故,有八應知?
能入別相有八種故,所入摠體有八應知。能入所入八種法相,勝劣、廣狹其相云何?
頌曰:平等平等一 皆無有別異 各攝諸法故然終不雜亂。
論曰:如是能所十六法,相,遍滿遍滿平等平等,
一味一相,皆無差別。所以者何?各攝諸法,畢竟盡故,
若爾,本末及與摠別,皆悉渾同,應雜亂耶?終其本末,不相雜亂,其摠別門,
初後不無。然各各別皆悉等量故,曰平等。非謂一法,故稱平等。
已說初重,第二重四種法中,各具三門。云何爲三?
一者本法所依決定門,
二者根本攝末分際門,
三者建立二種摩訶衍門。
所言法者,謂衆生心者。卽是本法所依決定門。今當須嗢拕南頌,摠持顯說。
其相云何?頌曰:衆謂四衍衆 生謂四種生 是一法界藏遍於彼八處。
論曰:衆有四種。云何爲四?
一者一切如來衆,
二者一切菩薩衆,
三者一切聲聞衆,
四者一切緣覺衆。
是名爲四衆生。有四種,云何爲四?
一者卵生,
二者胎生,
三者濕生,
四者化生。是名爲四生。過數故衆,受生故生,是一法界心,彼八處中,周遍圓滿,不可分析,不可離散。
唯是一體。唯是一相,以四種衆,攝諸聖盡,以四種生,攝諸凡盡。馬鳴論師爲顯一心廣大圓滿,名爲衆生。
順理契經中,作如是說:爾時,世尊放大光明,顯神力已,
告佛子言:諦聽諦聽,善思念之。我當爲汝,分別解說一法界藏。善男子,一法界藏者,所謂遍於諸如來衆、
諸菩薩衆、諸聲聞衆、諸緣覺衆及諸異生無所不通,無所不至,無所不當。是故名爲一法界藏。今攝此文故,
名衆生。馬鳴菩薩六萬嗢拕南本藏論中,開十種門,別釋散說。今略攝故,唯言衆生。已說本法所依決定門。
是心卽攝一切世閒法、出世閒法者,
卽是根本攝末分際門。其相云何?頌曰:是一法界心 摠攝二種門 名攝世出世作法界名法。
論曰:一法界心摠攝一切生滅門法,是故名爲攝世閒法。摠攝一切眞如門法,
是故名攝出世閒法,皆作法界,故名爲法。
自體契經中,作如是說:廣大神王卽攝一切種種無明、一切種種染法、一切種種淨白品法,
又攝一切淸淨法、一切無㝵法、一切解脫法、一切絕離法、一切滿足法、一切寂靜法,
而廣大神王非世閒法,非出世閒法。今攝此文故,名爲攝。馬鳴菩薩八萬嗢拕南歸宗論中,
開二十門,分明顯說。此中略故,如是而已。已說根本攝末分際門。
依於此心,顯示摩訶衍義等者,卽是建立二種摩訶衍門,其相云何?
頌曰:摠標二種門 言依於此心 摠標二本法顯示摩訶衍。
論曰:摠標能入二種門故,言依於此心,摠標所入二種法故,言顯示摩訶衍義。云何爲二門?
一者心眞如門,
二者心生滅門。
云何爲二本法?
一者一體摩訶衍,
二者自體自相自用摩訶衍。如是所入二種本法,或從能入,建立其名。
所謂以眞如體,而爲其門,所趣入故,名言爲體。以自相本覺心,而爲其門所趣入故,名言爲自,
由能入門二種別故,所入本法有二應知。何以故者,卽請問辭。謂由何義,依於此心句中,
具二種門,顯示摩訶衍義句中,具二種本法者焉?
荅曰:作一法界心眞如門,卽顯示一體摩訶衍法,作一法界心生滅門,能示自體自相自用摩訶衍法。
由此義故,當知。各具二門、二法,
大覺契經中,作如是說:復次,文殊師利,有二種法,甚深微妙,不可思議。何等爲二?
一者體相平等摩訶衍,
二者自相自然摩訶衍。若欲證得是二種法,當行二門。
何等爲二?
一者無斷無縛門,
二者有斷有縛門,乃至廣說。今攝此文,作如是說:大摠地中,開八種門,
分明散說。已說建立二種摩訶衍門。三大義中各略初二門立後一門馬鳴菩薩本趣意樂,擧後攝初中故,
如是而已。復次,比來次第分明顯了故,以上二頌本流,應至於此。一者體大者,摠標所入二種本法,
云何爲二?
一者無量無邊諸法差別,不增不減摩訶衍,
二者寂靜無雜一味平等,不增不減摩訶衍。
謂一切法眞如平等,不增不減故者,摠標能入二種別門。
云何爲二?
所謂如本法名。門亦爾故。
二者相大者,摠標所入二種本法,
云何爲二?
一者如來藏功德摩訶衍,
二者具足性功德摩訶衍。
所謂如來藏具足無量性功德故者,摠標能入二種別門。
云何爲二?所謂如本法名,門亦爾故。
三者用大者,摠標所入二種本法,
云何爲二?
一者能生一切世閒因果摩訶衍,
二者能生一切出世閒善因果摩訶衍。
謂能生一切世間、出世間善因果故者,摠摽能入二種別門。
云何爲二?所謂如本法名,門亦爾故。
三種大義別別分釋,如摠地論本地品中,分明顯說。
何故不二摩訶衍法,無因緣耶?是法極妙甚深,獨尊,離機根故。
何故離機根?無機根故。
何須建立?非建立故。
是摩訶衍法諸佛所得耶?能得於諸佛。
諸佛得不故,菩薩、二乘、一切異生亦復如是。性德圓滿海是焉。
所以者何?離機根故,離教說故。
何故八種本法從因緣起?應於機故,順於說故。
何故應機?有機根故,
如是八種本法諸佛所得耶?諸佛所得。於諸佛得不故,菩薩、二乘、一切異生亦復如是。修行種因海是焉。
所以者何?有機根故,有教說故。何故依眞如門,所趣入之摩訶衍法,
唯立體名;依生滅門,所趣入之摩訶衍法,
立自名耶?眞如門中,無他相故,生滅門中有他相故。他謂一切不善品法,自謂一切淸淨品法。
若所對治他無,能對治自無故,唯言體不說自焉。若所對治他有,能對治自有故,名言自,不唯體焉。
復次,爲欲顯示一法界體平等平等,無有其私。無量性德自然本有,非得他力故。
復次,隨宜安立,無有定故。何故別說門中,
一心別爲一,三大摠爲一,而等同各詮二摩訶衍?
三大義合,方應得詮二摩訶衍?大義之名通於三種故,摠爲一義,無別意趣。今所開示十六法門,
勝劣廣狹其相云何?
頌曰:平等平等一 皆無有別異 各攝諸法故然終不雜亂。
論曰:能入所入十六法門,圓滿圓滿,平等平等,周遍法界,無有差別。所以者何?各攝諸法,
畢竟盡故。然終不雜本末能所。已說摠別二門。一切諸佛本所乘故,一切菩薩皆乘此法,到如來地故者,
卽是通達軌則不動門。謂微塵數過去諸佛,微塵數現在諸佛,微塵數未來諸佛,
皆悉乘此三十二種甚深安車,達於淸淨無上地故。十方三世一切菩薩亦復如是。
此中菩薩言通取三聚一切衆生。所以者何?無有衆生而不通達如來地故。釋摩訶衍論卷第一
▼(玨/(冗-几+(樂-白+〡)))胡釘切簾也 ▼(断-斤+下)羅暗切水也 ▼(穴/(烈-歹+(跳-兆)))
莫昉切見也丙午歲高麗國大藏都監奉勅雕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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