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연은 자연수다. 사과는 한 알씩 열리고 돌은 한 개씩 굴러다닌다. 달이 1.2개 있다거나 책상이 0.3개 있다는 식의 존재는 자연에 없다. 정수는 인간이 만들어낸 숫자다. 물물교환을 하려는데 사과 하나에 밤은 몇 개를 주랴? 정수가 만들어진 배경이다. 과연 세상은 자연수로 되어 있을까? 아니라는 것을 우리가 알잖아. 왜 세상이 숫자로 되어 있다고 믿지? 식으로 되어 있으면 안되나?
자연수는 존재의 단위다. 자연은 어떤 단위로 존재한다. 단위는 외부와의 관계다. 사과가 한알씩 열리는 것은 한 그루의 나무에서 영양분을 공급받기 때문이다. 돌이 한 개씩 굴러다니는 것은 사람이 돌을 발로 찼기 때문이다. 외부와 상호작용하는 단위가 자연수다. 존재한다는 것은 외부로부터의 에너지 작용에 맞서 자신을 방어하고 유지한다는 것이다. 외부와 에너지 교환이 하나다.
원자 개념도 같다. 원자론은 우주가 자연수로 되어 있다는 전제를 깔고 들어간다. 과연 그럴까? 자연수는 자연의 의사결정 단위다. 원자는 인간의 관측 단위다. 낱개의 원자로 되어 있어야 헤아리기에 좋다. 사실은 에너지의 연결과 단절이 1회다. 결혼을 하는데 1.2명과 결혼한다거나 0.3번 결혼했걸랑요 하는 것은 없다. 자연수는 자연의 존재방식이 아니라 외부 에너지의 연결방식이다.
1은 어떤 둘이 만나는 접점이다. 만나서 에너지를 전달한다. 에너지는 연결과 단절 뿐이므로 2는 필요가 없다. 원자는 변화의 단위다. 공간에 장이 있고 장의 밸런스 중심점이 원자다. 무엇인가? 자연수든 원자든 의사결정의 단위, 변화의 단위, 방향전환의 단위로 존재하는 것이다. 수는 궁극적으로 에너지의 성질이다. 인간의 관찰은 에너지를 놓친다. 에너지는 낱개로 존재하지 않는다.
세상이 자연수로 되어 있거나 원자로 되어 있다는 것은 관측자가 외부에 있다는 말이다. 내부는 자연수가 없다. 우주는 원자가 아니라 장이고, 자연수가 아니라 집합이다. 내부에서 보면 그렇다. 원소를 집합하는 것은 사건이다. 내부에서 보면 우주는 사건이다. 그런데 왜 우리가 외부에서 보기로 규칙을 정했지? 이상하지 않나? 인과법칙도 마찬가지다. 인과는 외부 관찰자 시점이다.
내부에서 보는 눈을 얻어야 한다. 내부에서 보면 인과 대신에 기능이 있다. 하나의 사건은 외부에서 관측되는 원인과 결과 둘로 이루어지는 것이 아니라 내부에서 작동하는 하나의 기능으로 이루어진다. 자연수개념, 원자개념, 인과개념이 다 이상하다. 우리는 애초에 사유의 출발점을 잘못 찍었다. 모르고 외부에서 보기로 규칙을 정해버렸다. 내부에 있는 집합과 장과 기능은 무시했다.
내부 의사결정 논리 – 사건, 집합, 장, 기능
외부 관측자 논리 – 자연수, 원소, 원자, 인과법칙
무의식적으로 암묵적인 약속을 해버렸다. 폐해가 고쳐지지 않고 지금까지 이어졌다. 초등학생이 생각해도 이상하다. 왜 실수를 지적하지 않나? 이것은 필자가 초등학생 때 알아낸 벌거숭이 임금님이다. 임금님 하나만 그런게 아니다. 인류가 다 이상하다. 당연하다는듯이 외부에서 보는 사고를 발전시켜 왔다. 우주의 절반을 외면했다. 동전은 양면이 있는데 일면만 본다면 이상하다.
외부지향적 사고를 버리고 내부지향적 사고를 얻어야 한다. 답은 내부에 있다. 조절장치는 내부에 있다. 에너지를 전달한다. 의사결정은 닫힌계 내부에서 일어난다. 구조는 내부구조다. 문을 열고 사건 안으로 들어오지 않으면 안 된다. 내부에는 기능이 있다. 밸런스의 균형점이 있다. 축을 이동하여 의사결정한다. 밸런스의 복원력 형태로 관성력이 작동한다. 질, 입자, 힘, 운동, 량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