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자 아난다
부처님 곁에는 가사와 발우를 들어드리고 찬물과 더운물을 준비하는 제자가 늘 있었다.
그 임무를 실천한 첫 번째 시자는 가장 먼저 깨달음을 얻은 안냐따꼰단냐였다.
이후 안냐따꼰단냐는 고향 도나왓투에서 교화를 펼쳤고, 그의 제자 가운데 가장 뛰어났던 이가 여동생 만따니(Mantani)의 아들 뿐나(Punna)였다. 사리뿟따가 그의 소문을 듣고 직접 찾아가 대론할 만큼 뿐나는 석하고 설법에 뛰어난 비구였다.
그가 연로한 스승 안냐따꼰단냐를 대신해 부처님을 시봉하였다. 그후 사까족 왕자 출신인 나가사말라(Nagasamala), 꼬살라의 바라문마을 잇차낭갈라에서 머물 때는 나기따(Nagita), 릿차위 왕자 출신인 수낙캇따(sunakkhatta), 사리뿟따의 동생인 쭌다(Cunda), 라자가하의 깃자꾸따에서 머물 때는 사가따(Sagata), 마가다국의 망꿀라에서 머물 때는 라다(radha), 짤리까에서 머물 때는 메기야(Meghiya), 사왓티에서 머물 때는 우빠와나(Upavana) 가 부처님을 시봉하였으며 이외에도 많은 제자들이 그 임무를 감당하였다. 하지만 그들 모두가 자신의 임무를 충실히 이행한 것은 아니었다.
특히 시문에 탁월한 재능이 있고 학식이 많았던 수낙캇따는 신통을 가르쳐주지 않고, 세상의 기원 등 형이상학적인 질문을 했을 때 부처님이 침묵한다는 이유로 니간타로 개종하기도 하였다. 그 후 수낙캇따는 거리를 돌아다니며 부처님을 비방하였다.
“고따마는 인간의 경지를 뛰어넘지 못했고, 거룩한 수행자가 갖추어야 할 특출한 지견도 없다. 고따마는 논리적 추리와 말재주만 가졌을 뿐이다.”
또 짤리까 인근 산에서 안거할 때였다. 메기야는 시중드느라 수행할 시간이 부족하고, 그래서 자신의 수행이 진척되지 않는다고 생각하였다. 메기야는 한발이나 나온 입으로 부처님에게 말했다.
“부처님, 끼미깔라 강변에 그늘이 짙은 망고나무숲이 있습니다. 그 망고나무숲에서 혼자 수행해보고 싶습니다.”
“메기야, 나 혼자 있구나, 다른 비구가 올 때까지 조금만 기다려라.”
“부처님, 부처님께서는 이미 할 일을 마치셨지만 저는 아직 할 일이 많습니다.”
그는 세 번이나 간청하였고, 결국 부처님도 허락하셨다. 메기야는 ‘나도 부처님처럼 깨달음을 얻기 전에는 저 숲에서 나오지 않으리라’ 맹세하고 망고나무숲으로 들어섰다. 그러나 하루도 채 지나지 않아 초췌한 얼굴로 돌아왔다. 부처님은 그런 메기야를 탓하지 않으셨다.
“메기야, 진리의 길을 가고 그 열매를 따도록 너를 차례차례 성숙시켜 줄 다섯 가지 법이 있다.
첫째, 훌륭한 벗을 가까이해야 한다.
둘째, 계율을 온전히 지켜야 한다.
셋째, 좋은 법문을 자주자주 들어야 한다.
넷째, 열심히 노력해야 한다.
다섯째, 예리한 지혜를 갖추어야 한다.
나가사말라 역시 시자의 임무를 수행하며 오점을 남긴 비구였다.
꼬살라를 유행할 때였다. 부처님의 가사와 발우를 들고 뒤를 따르던 나가사말라가 갈래길이 나오자 부처님께 말하였다.
“부처님, 왼쪽 길로 가시지요.”
“나가사말라, 오른쪽 길로 가자.”
나가사말라는 왼쪽 길로 가자고 세 번을 청하였고, 부처님은 세 번을 거절하셨다. 그러자 그는 부처님의 가사와 발우를 땅바닥에 내려놓고 자기가 원하던 왼쪽 길로 혼자 가버렸다. 얼마 후 헐레벌떡 돌아온 그의 몰골은 말이 아니었다. 찢어진 가사에 발우는 깨어지고 여기저기 상처투성이었다. 길에서 도적을 만났던 것이다.
깨달음을 얻으신 후 20년 기원정사에 머물던 여든 명의 장로가 모두 부처님이 계시는 향실로 모였다.
“어떤 비구는 나를 버려두고 가고, 어떤 비구는 발우와 가사를 땅바닥에 내려놓기도 한 일이 있다. 내 나이도 이제 적지 않다. 항상 나를 따르며 시중들어 줄 한 사람을 선출하는 것이 어떠하겠느냐.”
장로 사리뿟따가 자리에서 일어나 합장하였다.
“세존이시여, 제가 시중을 들겠습니다.”
“사리뿟따, 그만 두어라 그대 또한 누군가의 보살핌이 필요한 나이가 아닌가? 그대가 머무는 곳에선 법문하는 소리가 끊어지지 않는다. 그런 그대에게 이 일은 적당치 않다.”
장로들이 차례차례 시자가 되길 청했지만 부처님께서 모두 거절하셨다. 마지막으로 아난다에게 차례가 돌아왔다.
“그대는 왜 시자가 되길 청하지 않는가?”
부처님께서 물으셨지만 아난다는 침묵하였다. 아난다는 부처님께서 세 차례나 물은 뒤에야 일어나 합장하고 말하였다.
“부처님께서 보시 받은 옷을 저에게 주지 않으신다면 기쁜 마음으로 모시고 시중들겠습니다.
부처님 발우에 공양 받은 음식을 저에게 주지 않으신다면 기쁜 마음으로 모시고 시중들겠습니다.
부처님께서 거처하는 방에서 함께 지내자고 하지 않으신다면 기쁜 마음으로 모시고 시중들겠습니다.
부처님께서 초대받은 자리에 저를 데려가지 않으신다면 기쁜 마음으로 모시고 시중들겠습니다.
제가 초대받은 자리에 부처님께서 동행해 주신다면 기쁜 마음으로 모시고 시중들겠습니다.
먼 곳에서 사람이 찾아왔을 때 언제든 데려오도록 허락하신다면 기쁜 마음으로 모시고 시중들겠습니다.
제게 의심나는 것이 있을 때 언제든 질문하도록 허락하신다면 기쁜 마음으로 모시고 시중들겠습니다.
제가 없는 자리에서 하신 법문을 제가 돌아왔을 때 다시 설해 주신다면 기쁜 마음으로 모시고 시중들겠습니다.“
“훌륭하구나, 아난다. 너의 뜻대로 하리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