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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봉축구회의 역사 1996년 가을 가양중학교에서 저녁6시에 안병일,호해영,박준모,김상길,김재건,모여 단순 미니게임 으로 진행하다 정청희,김태영,조영석,장윤창,성인모,임병연,조진태,오광수,김현,김동수 의 참여로 당시 비래동 모임인 구름 다리회의 회비로 1997년2월 초도 유니폼 18벌을 내려 입음으로서 축구팀의 형태를 갖춤. *당시 구름다리회 회원(챠타멤버) 안병일,박준모,호해영,장윤창,임병연,조진태,성인모,김상길.
2.유랑의세월 1997년2월부터 축구팀의 형태를 갖추고 타팀과의 친선게임과 더불어 초대총무 1명만 뽑아(안병일) 운영하던중 평일에는 저녁6시에 모이고 일요일은 운동장이 없어 오후 2시에 가양중학교 에서 모여 운동하거나 명석고등학교,등 비어있는 운동장을 찾아 전전함,
3.도약기 1997년5~10월, 송기섭,김선민,김성남,김덕영,호해권,백덕주,송우영, 현해구,이창원,노한성,등 많은 회원 확보로 회원수 40여명 확보 하지만 운동장이 없어 유랑 세월은 지속,전용운동장이 간절히 요구됨, 구름다리 축구회란 명칭을 공식 처음 사용
4.정착의시발 1997년 겨울 송촌동 주변의 개발로 학교 건축에 따른 운동장 자원 발생, 따라서 각학교 관계자들 과 긴밀한 접촉. 그결과 5단지앞 송촌고교 사용 승낙받음,그곳에서 두번 모일때쯤 ,장학금 지급을 조건으로한 타팀 으로인해 승낙 취소 처분
5.인고의시간 낙동강 오리알 신세로 또다시 시합 위주로 배회 하던중 매봉중학교 강태문 체육부장님(안병일회원의선배)을 연결고리로 지속적인 설득 끝에 1998년2월 무조건적 운동장 사용승낙 받음. 비로서 매봉축구회의 전용구장 마련,이전과함께 축구회의 명칭을 구름다리 축구회에서 학교이름을따 "매봉축구회"로 변경
6.매봉 축구회의 개막 1998년3월 매봉중학교 운동장에서 첫발을 내딪으며 매봉중학교 시대의 개막을 알림과 동시에 이웃팀 초정 친선축구대회,신입회원 영입활동. 임우빈,조승상,박영진,이주노,박태권,권태수,이순기,방진영등 20여명 추가 회원가입
7.매봉 축구회 공식 창단 선포식 1998년6월31일 정회원 50명 준회원13명 합63명으로 매봉축구회 공식 창단식 개최,3개조로나뉘어 체육대회겸 창단행사 개잡고,닭잡고 신나는 정 나눔 행사,선후배간 화합 초대회장:김성남, 부회장:송기섭, 초대총무:안병일 선출
8.제1회 매봉 축구팀 회장배 4개팀 친선축구대회 매봉축구팀,부성축구팀,서정대팀,대양축구팀,참여 지역내 선후배간 화합의 장에 의미부여 오늘날 서정대팀의(서정대,이종진) 매봉에 합류,대양축구팀의 일부멤버(원종각) 매봉에합류,부성 축구팀 일부 멤버(최봉운.엄호용) 매봉팀 합류.
9.도전기 *1999년도 제2기 임원 선출 *1998,12.둘째주: 회장 송 기섭,부회장:김선민,총무:안 병일, 감독:정청희 *1999,7월:선비1단지의 도전 막창단된 선비1단지 신생 축구팀이 지역 연고지와 자금력을 앞세워 매봉중학교 관계자와 상의, 기존 매봉 축구팀의 점유 사실을 알면서도 우리의 뜻은 무시한체 일방적인 통보와 함께 운동장을 사용하겠다고함
또한 매봉중학교 운동장은 자신들의 전용 구장임을 외부에 알리기위해 허락도 없이 선비1단지 회장배 축구대회를 매봉 팀은 빼고 주변 2단지 5단지,송촌축구회,기타 주변4개팀 초청형식으로 진행.
당시 우리 팀 형편이 회원수 늘리기에 급급 하다보니 회비미납자가 속출,또한 한달에 한번 나오는회원이 부지기 수여서 년평균 매 주말 나오는 사람이 불과 15명 내외,
이에 반해 선비 1단지팀은 지역 구의원 스폰서에 50여명의 참석회원 규모로 보면 상대가 되지않음, 운동장이 없던 선비1단지가 운동장을 빼앗기위해 6시전후 30여명이 나와 운동을 하고 있는 반면 우린 고작
7시전후 3~4명,8시나 되어야 15명내외,40여명이 볼을 차고 있는데 15명내외인 우리 매봉 축구팀이 기득권을 내세워 운동장을 내놓으라 하니 매주 다툼의 연속,회원이 많은것 처럼 가장하기위해 그부족한
인원 보충은 부성축구회,대양축구회,송촌축구회를 찾아가 친선축구 대회를 가장 한팀처럼 보일수 있도록 부탁하고 연극을 자주 펼침.하여 매봉중학교 관계자나 ,선비1단지 팀은 우리가 늦게 모일뿐 인원이 매우 많은 줄알음
5개월의 실랑이 속에 매봉 중학교 교장님 포함 관계자가 다 1단지로 넘어가 운동장을 내어줄 판국이었는데 당시 체육부장 강태문(안병일 회원 선배)님이 최종 승인은 매봉 축구팀과상의해서 정하라고 떠 넘겨
줌으로서 일단락,그대까지만해도 우리조기회의형편상 학교를 위해 10원 한푼 주지못하고 있을때라 그 고마움 지금도 잊기 어려움, 생각해볼때 그때 운동장을 빼앗 겼드라면 오늘의 매봉은 존재하기 어렵지 않았나 여겨짐,
결론인즉 , 월~토요일 아침은 선비1단지 팀이운동장 사용, 주말포함 모든휴일은 매봉 축구회가 운동장 사용키로함 한 운동장에 2개팀의 동거가 시작됨
10.발전기 *1999.12.2째주 제3기(2000년도 임원선출) *회장:김선민,부회장:안병일,총무:박준모,감독:정청희, *상조회 결성:1대 상조회장:송기섭 선출 *고문제도신설 :초대고문:고명학 위촉
*제1회 춘계 야외 체육대회(2000.4.말) 장소:충북 문의면 잔디구장(50여명참석,가족동반) 고명학 고문님 양반고을 갈비50인분 찬조,가족 게임,청주 토개공사와 축구시합,즐러운 한나절,회원간의 후호증진에 한목 *무연고 회원가입 1호:권성경(1단지 축구팀 인줄알고 왔다가..) 11.성숙기(2001.1~2001.12) * 임병연 회원 장인 상(지리산 피아골),정적회원41명중 5명빼고 전원참석 저녁8시에 출발하여 자정넘어 문상하고 새벽2시반 대전으로출발 돌아오는길 ,휴게소에서 선후배와 커피한잔에 나누는 정담한마디.
몸은 비록 피곤 하였지만 마음만은 쁘듯,매봉이 더욱더 하나된 계기 불참 벌금은 비록 3만원 밖에 아니었지만,자발적인 참여로 이어짐. (3월말)
*체육대회(매봉중학교) 많은 회원의 참석속에 가족과 나누는 정겨운 한마당 점심에 옹기 종기모여 까먹는 도시락 회원님의 찬조로 이어지는 상품타기 행사 가족간 하나될수 있는 뜾깊은 시간들.....
* 년말 신현태 회원 의 찬조로 비래동 "미워도 다시한번"에서 치룬 망년회 70년대 풍의 딱 우리 스타일 선술집 부어라 마셔라,먹고죽자,에고고...
망년회후 고명학 고문님이 쏜 단란주점 2차 먹고 놀긴 잘했는디 고명학 고문님이 그후 파산으로 공부하다말고 앵벌이 를 나갔다나 어쨌다나...소문(감사 했습니다) 12.완숙기(2002.1~2002.12) *4월말체육대회 많은 회원의 참여속에,문동면 체육공원 가든에서 펼친 체육대회 아이들의 풍선 머리매달고 달리기,아내들의 세수대야 농구게임,수영 장 물놀이,점심식사때의 바베큐 파티,......
청주직장팀과 벌인 운동장 점유다툼,한3배의 숫적열세 에도 불구 단합된 매봉의 힘으로 운동장 독점 점유 사용 *5월 말부터 불어닥친 월드컵 열풍 대한민국 짝짝짝 짝짝,게임이 있는 날이면 송촌동 ,비래동,호프집 이나 교회의 대형 스크린 앞에 삼삼 오오 모여 목터져라 부른 대한민국,그리고 마시는 맥주한잔,아옛날이여! 아내들의 축구사랑이 시작된계기 그동안 일요일 아침 축구하러 간다 핀잔주던 아내들 ,그로인해 다소 생각이 바뀌었다나... *12월 망년회 비래동 왕릉 갈비에서 노래와 안무로 시작해 배 터져라먹고 찬조 인삼주까지 바닥내고.... 매봉중 김샘(김왕균)의 일화,먹고죽자더니 결국 까무러칠 정도로 기냥 퍼져버림, 13.또다른 시련기(2003.1~2003.12) *7월의 악몽이 다시 되살아 났을까? 선비 1단지 팀이 자금력과 바뀐 교장 선생님을 앞세워 또다시 매봉 운동장을 빼앗고자 함, 등나무 제공과 장학금을 무기로 교장선생님의 중제하에 매봉임원진과 선비1단지 임원의 만남을 주선하였고 그결과
평일 포함 매달 첫주를 선비 1단지 팀에게 내주라는 불합리한 결론도달 하여 매달 첫주만 되면 부득이 타팀과 시합하러 가야하는 유랑아닌 유랑자 신세, *5월초 체육대회 매봉운동장에서 뷔페로 점심식사,그리고 이어지는 게임들 즐거운 한때 보냄 *12월 망년회 왕릉갈비에서 2번째 망년회 이어 송촌동 노래방 2차,어라 어느세 새벽이네... 14.시련의 연속과 해방(2004.1~2004.12) *3월. 대체구장의 필요성이 절실이 요구되던 시기 시청 하천관리과에 안병일 회원의 지인이 있어 시청의 묵시적인 허락하에 안구말리 잔디 구장의 사용승낙을 2년여의 시간을두고 얻어냄.
박광철님의 중고파이프 알선 운반과 박종래회원의용접및도색,그리고 골대밑 미장공사까지.또한 심경찬님의 시멘트 찬조,차진우님의 공사 감독 ,호해영님의 터파기공사,박구영님 ,최연묵님,기타 회원의 자갈
퍼오기,박준모님이하 회원의 마사토 깔고 수평잡기,김왕균님이하 회원의 선치기작업,이동화장실의 도매값 구매운반까지.... 모든 회원의 땀과 노력덕에 제2의 잔디구장소유 *운동장 원상회복과1단지 몰아내기 4월.안병일회원의 1단지 임원단과 담판,그리고 기능대운동장의 알선 회유로 그동안(7년간) 의 숙원해결,매달 첫주 내어주던것의 원상회복은 물론 체육교실 사물함마져 내보내고,이젠 더이상 운동장 뺏기 행동은 못할듯 *5월 ...........체육대회 신입회원의 많은 참여속에 매봉 중학교에서 체육대회 *9월...........송촌동 정수장에서 송촌상가 축구회와 친선 축구대회 *12월..........용운동 이창원 회원의 가게에서 망년회
15.변화의 시기(2005.1 ~ 2005.12) *현재 진행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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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댓글 참으로 인고의 세월이었군요. 더욱 힘찬 매봉FC가 되리라 의심의 여지가 없네요. 매봉FC 파이팅....
아직작업중입니다
정말 대단 하쉽니다 ... 노고에 감탄 ㅉㅉㅉ
아참! 병일 성님 옛날 울팀이름 "서정대팀"이 아니고 "파랑새"라고 혹시 기억을 하실런쥐;;^^
그렇구나,이름이 기억 나지 않아서....꽤 되었구나 널 처음만난지가
우리 매봉이 이런 역사가 있었는줄 몰랐씀다. 더욱발전하는 매봉이 되었음 좋겠습니다.
정대야...파랑새가 아니라 대구팀으로 이름 개명하자..ㅎㅎ
병일 형님 정말 고생 마니 하셨습니다.제가 돈 있으면 '빵사드릴께여..ㅎㅎㅋㅋ
선배님들의 그동안 많은 수고 감사드립니다..꾸벅
참 재미있게 읽었습니다. 2005년이후 스토리도 올려주세요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