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가을의 유혹/미성 김필로
내가 웃으면
네가 그랬다
그리 웃지 마라
유혹하지 마라
이 작고 낮은 풀잎으로부터
저 크고 높은 미루나무 꼭대기
산등성까지
꽃물이 드는 계단에서
가을이 웃는다
노란 은행잎이 밤하늘 아래
낭랑하게 서 있다
벽을 타고 올라가던 담쟁이도
납죽납죽 너스레 손을 흔든다
황금벌판에 뒤치던 곡식이
수고로이 빛나고
척박한 땅에서 억새가 일어선다
어찌 보면 고달팠을
어찌 보면 명랑했을
자연이란 이름 그대로
그 자리를 가꾸고
그 자리를 지키고
단연코 세상은 혼미하다
가을이 웃으니
내가 그랬다
그리 웃지 마라
유혹하지 마라
2.빛의 통로/미성 김필로
얼음을 품고 있으면
물이 되는 그때
스물다섯 푸르렀다
겨우 스물다섯
벌써 스물다섯
결혼을 했고
한 생명이 필수처럼
몸속에서 고이 자라고
미워하고 사랑하고
또 한 생명이 당연하듯
열 달 동안 뱃속을
온실처럼 가꾸었다
어디서 왔냐고 물으면
다리 밑에서 주워왔다는
말 대신
사랑 타고 왔다고 말하는
두 아이의 입이 고왔다
사십 년이 훌쩍 빛났다
한 아이는 낯선 사람을
겁 없이 따라갔고
한 아이는 선한 사람을
믿음으로 따라갔다
한 사람을 택하여
터널에서 빛을 보았고
지금 여기 함께 있다
죽기를 기도했던 마음으로
살기를 기도했던 심령으로
앞으로 살아 갈 날들은
서운치 않기를 기도한다
담쟁이 잎새가
가을이 된 지금
육십 오의 숫자에 물든다
겨우 육십오
벌써 육십오
3.매미가 떠난 자리/김필로
네가 작사 작곡한 여름 노래로
사람들은 표절이라 웅성거렸고
네가 노래를 마치고 오선지만 남기고 떠나갈 무렵
사람들은 다시 웅성거렸다
세상 떼창으로 시끄럽더니
세상 조용하고 살만하다고
그런가 나는 그땐
와자지껄 평화롭더니
할 일 많은 지금
한량하고 시끄럽기만 한데...
삐툴삐툴 갈 깃자로
써 내려가는 귀뚜라미 소리를
너의 빈자리에 앉히고
소수 세 잔을 투명하게 마신다
애당초 껍데기는 누구이며
애당초 알맹이는 누구인가
소주보다 독한 그리움 남기고 떠난 사람들아
계절 따라 다시 오는
자연처럼 돌아오라
매미처럼 허물 벗고 그리하라
그리하라
첫댓글 샛노란 은행잎이 낙랑하게 웃듯이
세상도 낙랑했으면 좋겠다
구겨진 휴지조각
주름진 청바지일지라도
세상이야
그러든 말든
그댄 활짝 웃었으면 좋겠다
웃어도 좋다
유혹해도 좋다
그런 베짱이 있었으면 좋겠다
자연의 다채로운 모습을 너무도 멋있게 표현해주셨네요. 글이 멋있어요!!
가을의 전원을 잘 그려 저 그 안에서
잘 쉬었다 가요
다송님
노을님
그리고 들국화님!
감사합니다.
댓글은 또 하나의 작은 시로써 시의 온도를 높이고 시상을 찾게 하는 요소입니다.
제 맘이 참 기쁨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