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개요
가. 아그로스 마음 밭에 있는 그리스도 예수라는 보석은 각자 마음 너머에 있다.
나. 미완성 상태에서 내면에 계속해서 오고 있다는 말은 완료될 때까지 계속된다는 말이다.
다. 내면의 근본 하나님의 몸 된 성전은 그리스도 예수와 하나로서 살과 뼈(생명의 빛)다.
라. 술에 취한 겉 사람의 상태는 몸 밖을 향하고 있으므로 이를 개간해야 한다.
마. 근본 하나님의 진리는 내면의 마음 너머에 있는 그 생명의 그 빛(근본)을 깨닫게 한다.
2. 본론
가. 아그로스 마음 밭에 있는 그리스도 예수라는 보석은 각자 마음 너머에 있다.
“밭(아그로스)은 세상(코스모스)이요, 좋은 씨는 천국의 아들이요, 가라지는 악한 자의 아들들이요(마 13:38)”
(호-데 아그로스 에스틴 호 코스모스, 토-데 칼론 스테르마, 후토이 에이신 호이 휘오이 테스 바실레이아스, 타-데 지지니아 에이신 호이 휘오이 투 포네루)
“바른 번역은 그러나 그 밭(아그로스)은 그 세상(코스모스)의 마음 밭이다. 그 좋은 씨는 그 천국의 그 아들들이다. 그러나 그 가라지들은 그 악한 자(버려진 자)의 아들들이다.”
이 문장에서 ‘그 아그로스’ 마음 밭은 ‘그 코스모스’로서 마음 밭(길가 밭, 돌 밭, 가시덤불 밭)을 의미한다.
(호-데 아그로스 에스틴 호 코스모스 : ‘그러나 그 밭(아그로스)은 그 세상(코스모스)이다.’라는 말은 ‘그 아그로스’ 마음 밭은 ‘그 코스모스’의 마음 밭을 의미한다. 창세기 1:1에 등장하는 ‘그 하늘과 그 땅’은 마음 밭 안에 등장하는 일들이다.
하나님을 따라가는 자의 마음 밭을 개간하는 이유다. 그 아그로스 마음 밭을 드러내기 위함이다. 이 아그로스 마음 밭 안에 그리스도 예수라는 보석이 묻혀 있다. 우주를 창조하는 내용이 아니다. 그래서 비사와 비유의 관계를 알아야 참 뜻을 알게 된다.
나. 미완성 상태에서 내면에 계속해서 오고 있다는 말은 완료될 때까지 계속된다는 말이다.
“그가 세상(코스모스)에 계셨으며, 세상(코스모스)은 그로 말미암아 지은 바(기노마이, 하나 됨) 되었으되 세상(코스모스)이 그를 알지 못하였고(요 1:10)”
(엔 토 코스모 엔, 카이 호 코스모스 디아우투 에게네토, 카이 호 코스모스 아우톤 우크 에그노)
의미를 부여하자면 “그가 자녀들 마음 안에서 하나님의 나라를 계속해서(미완료) 나타내 주고 있다(시제 없음)”다.
‘그가 세상에 계셨으며’로 오역한 ‘엔 토 코스모 엔’은 ‘그가 그 코스모스(세상) 마음 안에 계셔왔으며(미완료)’다. 이 지구의 유대 땅에 오신 것을 말씀하시는 것이 아니다. 미완료 상태로 계속해서 내면에 오시고 있는 상태를 말씀하고 있는 것은 완료되지 않은 상태이기 때문에 완료될 때까지 계속해서 오고 계신다는 말이다.
‘세상(코스모스)은 그로 말미암아 지은 바(기노마이, 하나 됨) 되었으되’로 오역한 ‘카이 호 코스모스 디아우투 에게네토’는 ‘그리고 그 마음 세상(밭)은 그를 통하여 (속사람)하나 되었으니’라고 번역하여야 한다.
‘지은바 되었으니’로 오역한 ‘에게네토’는 과거 중간 디포넌트 동사다. 원형 ‘기노마이’는 하나 됨을 이야기한다. 속사람과 하나 됨을 이야기하며 근본 하나님에 의해 대상으로 지은 바 된 피조물이 아니다. 그러므로 몸 밖을 향하고 있는 모든 형태의 종교 행위는 장성해서는 버려야 할 것들이다.
다. 내면의 근본 하나님의 몸 된 성전은 그리스도 예수와 하나로서 살과 뼈(생명의 빛)다.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이생의 자랑, 안목의 정욕, 육신의 정욕으로 채워진 내면의 마음 밭을 해체하고 갈아엎어서 옥토 밭이 되게 하여 근본 하나님이 거하시는 몸 된 성전을 세우고 그리스도 예수와 하나 된 살과 뼈를 회복하는 것이다. 그리스도 예수가 됨을 말하는 것으로 그리스도 예수는 대상이 아닌 그 생명의 그 빛으로 하나 된 참 사람이다.
이 세상(공간)이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지어진 것을 공간 세상을 창조하는 이야기가 아니다. 모두 비사로 된 말씀이다.
나와 그리스도 예수가 하나 되는 것을 말씀한다. 이래서 문명사회에 사는 자들은 이해하기 어려운 것이다. 그렇다면 근본 하나님 차원의 그리스도 예수가 되었는데 돈과 권세와 세상, 지혜는 왜 주지 않는 것인가? 이런 질문을 할 것이다. 성경 말씀은 이 세상 속에 있는 개념에서 초월하는 것으로서 이 세상과 완전히 거꾸로 가는 세계다.
인간이 사는 마음 세상 바로 위의 초월의 세계는 인간 세상에 있는 개념이 하나도 없다. 늙고 병들고 하는 고통 또한 없다. 돈도 필요 없다. 거기에는 구더기가 좋아하는 배설물들은 존재하지 않는다.
‘세상이 그를 알지 못하였고’로 오역한 ‘카이 호 코스모스 아우톤 우크 에크노’는 ‘그리고 그 마음 세상이 그를 이해(인식)하지 못하였고’다. 내면에서의 일이기 때문이다. 그리스도 예수께서 속사람으로부터 겉 사람 안으로 오신 것을 마음(코스모스)이 전혀 모르고 있다는 것이다. 그리스도 예수가 이미 코스모스(마음) 세상으로 오신 것을 모르고 있다. 몸 밖의 세상(공간) 이야기와는 전혀 무관하다.
라. 술에 취한 겉 사람의 상태는 몸 밖을 향하고 있으므로 이를 개간해야 한다.
그리스도 예수께서는 마음 너머에 계시는 근본 하나님과 하나 된 것을 깨닫기 원하시나 겉 사람의 마음의 상태로는 그를 인식할 수 없는 상태에 놓이게 된다. 모두 술에 취해서 마음이 표면적인 몸 밖만을 바라보고 있는 것이다. 그래서 마음 밭을 해체하여 갈아엎어서 개간해야 하는 이유다.
이 내용이 창세기 1:1의 내용으로서 예수께서 말씀하신 ‘아포 카타볼레스 코스무’다. 속사람을 회복한 상태가 되면 몸 된 성전을 세울 수 있도록 아그로스(농사짓는 땅) 밭으로 개간하는 일을 한다. “천국은 좋은 씨를 제 밭(아그로스)에 뿌린 자와 같다(마 13:34).” 겉 사람이 그리스도 예수의 생명으로 깨어나야 아그로스의 밭에 씨를 뿌리고 가꾸어서 그 열매를 추수하게 되는 것이다.
마. 근본 하나님의 진리는 내면의 마음 너머에 있는 그 생명의 그 빛(근본)을 깨닫게 한다.
그리스도 예수는 내면의 마음 너머에 있는 근본 하나님과 한 몸, 한 생명이다. 이를 깨닫게 해주시는 말씀인데도 몸과 마음은 이것을 전혀 깨닫지 못하고 모두 대상 하나님만을 향하여 섬기고 있다.
대상 하나님은 없다. 만약 대상 하나님이 존재한다면 그를 당장 죽여야 한다. 이것이 십자가(장대) 사건이다. 숫처녀의 불꽃같은 가슴으로 존경하고 사랑하는 그를 죽여야만 한다. 그래야 진리의 말씀을 회복할 수 있다.
예수 그리스도께서는 아직 깨어나지 아니한 제자들에게 비유(파라볼레)로 말씀하실 수밖에 없는 이유다. 그러나 서기관들과 바리새인들에게는 처음부터 알아듣지 못하도록 비사(파로이미아)로 말씀하셨다(요 10:6).
그 생명의 그 빛(근본)
첫댓글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