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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하반야초경_04. 선권품(善權品)
그때 미륵보살이 수보리에게 말하였다.
“만약 어떤 보살마하살이 중생들을 돕고 권유하여 복되게 하고 세간에 출입하면서
보시와 지계로 스스로를 지킨다면, 상등(上等)의 그 복덕이 더욱 존극(尊極)하여질 것이니
보살마하살의 권조(勸助:권유하여 돕는 것)하는 복덕보다 더 높이 이를 초과할 복덕은 없을 것입니다.”
수보리가 미륵보살에게 말하였다.
“그밖에 또 다른 어떤 보살마하살이 아승기 국토의 모든 부처님 계신 곳에서 공덕을 짓고,
그 국토마다 열반에 드시는 헤아릴 수 없는 부처님을 따라 발심한 후에 스스로 아뇩다라삼야삼보(阿耨多羅三耶三菩)의
경지에 이르러 아유삼불의 경지에 이르고, 마침내 무여니원계(無餘泥洹界)의 세계에 이르러 열반에 드는 사람이 있어서
그렇게 된 후에야 법이 다하는 경지에 이르게 되며,
이 가운데서 공덕을 짓게 되면 그 공덕으로 제도하는 중생은 극한이 없게 됩니다.
이것이 곧 모든 성문승들이 짓는 보시와 지계로 스스로를 지켜 복되게 하고
번뇌가 남아 있는 세계에서의 공덕으로 스스로 번뇌의 남음이 없는 세계에서
열반으로 옮겨지는 경지를 이루게 되는 과정입니다.
부처님께서는 그 가운데서 짓는 공덕으로
정계신(淨戒身)과 삼매신(三昧身:定身)과
지혜신(智慧身:慧身)이 있게 되며
이탈신(已脫身:解脫身)과
탈혜소견신(脫慧所見身:解脫知見身)으로 이룩하시는
불법은 지극히 광대하나 슬프게도 그러한 부처님을 다 헤아릴 수가 없습니다.
천중천께서 설법하시는 법은 그 법 가운데서
다시 가지고 있는 모든 공덕을 배워서
곧 모든 열반에 든 세계에서 불법으로 짓는 공덕을 모두 헤아리고,
모두 합쳐서 중생들을 도우시고 권유하시어 존귀하게 하시니,
온갖 공덕 가운데서 최고의 공덕이며
부처님의 권조(勸助)라 하는 것은 여기에 해당됩니다.
이것을 간직함으로써 아뇩다라삼야삼보의 경지를 짓게 되며
이로써 아뇩다라삼야삼보를 이루게 됩니다.
이러한 보살의 경지에 이른 사람은 그렇다 치고, 마음만 간직하면
능히 이 아뇩다라삼야삼보를 구하는 마음을 지을 수 있으며,
곧 이 마음이 생겨 작용하며 얻는 것이 있기를 바라게 됩니다.”
미륵보살이 수보리에게 말하였다.
“혹 이 구하는 마음을 짓지 아니하고도
능히 얻는 사람이 있으니 이러한 생각을 짓는 사람은 생각하기를,
지혜가 없어도 이런 뜻이 생길 수 있다고 생각하게 되어
생각과 상상(想像)의 후회가 작용하여 제 자리로 되돌아가게 되고,
이 작용으로 믿음에 후회가 생겨 제 자리로 되돌아가게 됩니다.
오직 작용에 지혜가 없는 까닭에
제 자리로 되돌아가서 4전도(顚倒)에 떨어지게 됩니다.
그리하여 무상(無常)을
유상(有常)이라 생각하고,
고통을
즐거움이 존재한다[樂]라고 생각하고,
빈[空] 것을
알맹이가 있다[實]라고 생각하고,
몸이 없는[無身] 것을
몸이 존재한다[有身]라고 생각하게 됩니다.
이 때문에 생각과 상상(想像)의 후회로 제 자리에 되돌아가게 되고,
마음의 후회로 제 자리에 되돌아가게 되고,
믿음의 후회로 제자리에 되돌아가게 됩니다.
보살은 이런 마음을 짓지 아니하고도 구하는 바가 있으며
그 구하는 바에는 일정한 처소가 없는데 어떻게 아뇩다라삼야삼보를 구하겠습니까?”
미륵보살은 다시 수보리에게 말하였다.
“새로 배우는 보살마하살들 앞에서는 앞에서 말한 이런 말을 해서는 안 됩니다.
왜냐 하면 사람에 따라서는 혹 믿는 바를 잃게 되고
즐기는 것이 없어지고 기뻐하는 것이 없어지고
수행할 바를 잃게 되니,
이는 곧 4전도에 떨어지는 길을 따르는 결과를 초래하기 때문입니다.
마땅히 이러한 보살마하살들을 위하여 설법하여 듣게 하여야 할 것은
거룩한 스승 옆에 있는 사람일 경우에는 곧 보살마하살들에게는 설법하여 듣게 할 수 있으니,
그렇게 하면 무서워하지 아니하고 겁내지 아니하고 두려워하지 아니하게 될 것입니다.
이러한 보살마하살은 능히 중생들을 돕고 권유하여 복되게 할 수 있고 살운야(薩芸若:일체지)를 짓게 할 수 있습니다.
만약 마음에 간직하여 이 권조(勸助)를 하게 된다면,
마음도 모두 멸(滅)하여
아무 것도 존재하지 아니하고[無所有]
아무 것도 보는 것이 없는데[無所見],
어떤 마음으로 당장 아뇩다라삼야삼보를 짓겠습니까?
당장 어떤 마음으로 마음을 짓겠습니까?
두 개의 상대적인 마음이 없는 것이
마음의 자연이며
이 자연의 마음이라야 능히 아뇩다라삼야삼보를 지을 수 있는 것입니다.”
그때 석제환인이 수보리에게 말하였다.
“새로 배우는 보살마하살들은 이 말을 듣게 되면
혹 무서워하고 두려워할 것이니,
보살마하살이 공덕을 짓고자 하는 사람에게는
마땅히 어떻게 그들에게 권조(勸助)해야
그 복덕으로 아뇩다라삼야삼보를 지을 수 있겠습니까?”
수보리가 미륵보살에게 말하였다.
“마땅히 모든 부처님 계신 곳을 보호하여 모든 악을 허물고 타파하여서
근심과 욕망 등의 행동을 끊어, 가령 한 가지 악마가 하는 일을 항복시키게 되면
무거운 짐을 버린 것과 같이 될 것이니 곧 스스로 그가 갖고 있는 마음에 따라
알뜰하고 고되게 노력하게 될 것이며,
그렇게 하면 모든 악마의 일이 다함으로써이 악마의 일에서 벗어나게 될 것입니다.
그리하여 마음이 곧 헤아림을 따르게 되고 아승기의 국토에서
모든 열반에 들게 되는 사람들이 그 가운데서 짓는 공덕으로 모든 성문들을 복되게 할 것이고,
그 가운데서 다시 공덕을 지어 이를 모두 헤아려 이를 합쳐 권조(勸助)로 삼는 것이 존귀한 권조가 될 것이며,
온갖 공덕 가운데서 이 권조의 공덕을 넘어설 공덕은 없을 것입니다.
그 권조라 하는 것은 주관적으로 권조를 하는 것이며
권조로써 아뇩다라삼야삼보를 지키고 짓게 되는 것이니,
어디에서 보살들이 제 자리로 되돌아가지 아니하는 일을 생각하고,
어디에서 믿는 바를 후회하며 제 자리로 되돌아가지 아니하는 일을 생각하게 될 것인가?
바야흐로 이는 보살마하살들로 하여금 마음을 간직하여
아뇩다라삼야삼보를 짓게 하는 것이며, 그 마음에는 상상(想像)하는 것이 없게 됩니다.
이것이 보살마하살의 마음에서 얻는 아뇩다라삼야삼보입니다.
이것이야말로 마음의 염원을 스스로 환하게 알게 하며
그것이 생각해서 후회하고 되돌아가거나 마음으로 후회하여
되돌아가거나 믿는 바를 후회하여 되돌아가는 사람을 위하여
바야흐로 마음속으로 불도를 염원하게 하는 일이며,
또한 이 마음을 알게 되면 이 마음의 작용으로 이것이 생각해서
후회하며 제 자리로 되돌아가는 사람이나[想悔還],
믿음을 후회하여 제 자리로 되돌아가는 사람들을[信悔還] 위하여
바로 보살마하살들로 하여금 마음을 간직하여 진리를 환하게 알게 하는 길입니다.
곧 이 깨달음을 짓게 되면 알음알이가 다하여 어떤 것도 존재하지 않는 무소유(無所有)의 경지를 이룹니다.
알아야 하나니, 알음알이가 다한 사람에게 무슨 마음의 작용이 있겠습니까?
곧 환하게 마음의 본체를 알게 되는데 어디 무슨 마음의 법이 법에서 작용하는 것이 있겠습니까?
여여(如如)한 법이란 법을 따라 이미 작용해서 진여(眞如)를 이룬 것이며,
이 작용을 하는 것은 잘못된 작용[邪作]이 아닙니다. 이것은 보살마하살이 짓는 작용입니다.
만약 어떤 보살마하살이 과거와 미래와 현재의 부처님 계신 곳에서 짓는 공덕이나,
또는 모든 성문에서 아래로 범인에 이르기까지 그들이 짓는 공덕이나,
또는 축생으로서 법문을 들은 축생 및
모든 천신과 열차(閱叉)와
건다라(乾多羅)ㆍ
아수륜(阿須倫)ㆍ
가류라(迦留羅)ㆍ
진타라(眞陀羅)ㆍ
마후륵(摩睺勒)이나
모든 사람이나
사람 아닌 것[人若非人]들로서
법문을 들은 것들이
발심하여 짓는 공덕 및,
처음 보살도를 배우는 사람들이 짓는 공덕을
모두 헤아려 합쳐서 쌓아올려,
그 위에서 하는 그 권조(勸助)야말로
능히 진실한 권조가 될 수 있으며,
이 지극히 존귀한 권조로서 온갖 공덕 가운데
이 권조의 공덕을 넘어설 공덕은 없을 것입니다.
그런 까닭에 이 권조에 해당하는 권조는 능히 권조의 복덕이 되며,
이것이 작용하여 아뇩다라삼야삼보를 짓게 되는 것입니다.
바야흐로 다시 이와 같이 하게 하면 이것이 법이 다하는 경지이며,
이 법에서는 태어나는 법도 없고 소멸되는 법도 없고 법이 존재하는 곳도 없어집니다.
법이 태어나는 것이 없어지면 그 법으로 아뇩다라삼야삼보를 얻게 됩니다.
이 법을 깨닫지 못하여도 법에 반작용이 있어 아뇩다라삼야삼보를 짓게 됩니다.
그런 까닭에 이것이 생각으로 후회하여 되돌아가는 일이 없게 되고
또한 마음도 후회하여 되돌아가지 아니하게 되고 믿는 것도 후회하여 되돌아가지 아니하게 됩니다.
이는 구하는 것이 없는 경지여서 대중들은 이 경지에 미치지 못하고
이는 아뇩다라삼야삼보의 마음이 짓는 경지입니다.
만약 어떤 보살마하살이 밝고 환하게 진리를 알지 못하더라도 복덕을 짓는 사람이 있다면,
그 이유는 무엇일까요?
그 보살마하살은 자기 몸에서 황홀한 경지가 이룩되면 권조하는 복덕에 있어서도
역시 황홀한 마음이 이룩됩니다. 이 보살은 황홀한 경지에서는 존재하는 것이
아무 것도 없다는 것을 환하게 알게 되고,그런 까닭에 보살마하살의 반야바라밀이
만약 모든 열반에 드신 모든 부처님 계신 곳에서 공덕을 짓고 이 공덕을 간직하여
그가 구하는 바를 짓고자 한다면,그는 자연히 아뇩다라삼야삼보가 될 수 있음을 알게 됩니다.
모든 불천중천(佛天中天)께서는 집착하는 것은 과거는 소멸하였기에 과거에 집착하지 아니하고,
또한 상상(想像)이 없고 상상하지도 아니하며,혹 상상을 하게 된다면 그것은 공덕이 아닙니다.
보살마하살은 마땅히 구화구사라(漚和拘舍羅:선교방편)를 배워야 하나니,
아직 반야바라밀을 얻지 못한 사람은 부처님의 경지에 들어갈 수가 없으며,
이미 반야바라밀을 얻은 사람이라야 곧 부처님의 경지에 들어갈 수가 있습니다.
그러므로 몸으로 인식 작용을 지어서는 안 됩니다.
이를 작용하면 생멸이 있게 되므로
몸이란 존재하지 않는 것입니다.
몸에 공덕이 있는 사람은 상상이 있게 되고
이것이 곧 장애물이 되어 반대로 고통 속에 머물게 됩니다.
그러나 달살아갈아라하삼야삼불은
이 공덕으로 권조(勸助)를 지니는 일을 배우지 아니합니다.
왜냐 하면 그 작용이 바르지 않기 때문이니,
열반에 드신 부처님을 바라보면서 도리어 상상하는 일이 있게 된다면,
이 일 때문에 이것이 장애물이 되어
그가 짓는 공덕은 진실한 공덕에 미치지 못하고 반대로 고통 속에 머물게 됩니다.
그 생각을 하지 않는 것이 달살아갈아라하삼야삼불의 공덕이며
거기에서 상상을 하는 것은 비유하면 독이 섞인 음식과 같습니다.
왜냐 하면 설사 맛있는 밥이라도 그 가운데 독이 붙어 있다면,
빛깔은 매우 좋고 향기를 좋아하지 아니하는 사람이 없다고 하더라도,
밥 속에 독이 있다는 것을 모르면 어리석고 눈이 어두운 사람이
이것을 먹고 포만하게 배가 부르다가 음식이 소화되려 할 때가 되면
오래도록 몸이 편안하지 못하게 될 것이기 때문입니다.
공덕의 행(行)을 알지 못하는 사람이 이를 매우 어렵다고
생각하여 이를 간직하고 수호하는 방편을 깨닫지 못하고,
공덕에 해당하는 일을 깨닫지 못하여 이를 해득하고 알 수가 없으면서
이것을 공덕에 해당하는 일이라 생각하는 것이
마치 독이 섞인 음식을 먹는 것과 같다고 말하게 되는 것입니다.
선남자여, 과거와 미래와 현재의 부처님들께서
지계신ㆍ
삼매신ㆍ
지혜신ㆍ
이탈신ㆍ
탈혜소견신을 이루고서
성문 가운데서 짓는 공덕도 불천중천께서 설하신 것입니다.
만약 다시 벽지불이 있는 곳에서 공덕을 짓게 될 경우
그것도 모두 이를 권조하게 되며, 이 권조로써 이 복덕을 짓게 하고
이로써 아뇩다라삼야삼보를 지어 이를 지니고 이것으로 짓는 것이
부처님의 생각의 작용에 해당합니다.
그런 까닭에 비유하면 독이 섞인 음식과 같은 보살마하살들이
당장에 배움을 짓는다면 어디에서 과거와 미래와 현재의
부처님의 공덕을 이루겠으며 어떻게 권조하여 복덕을 지어
아뇩다라삼야삼보를 이루겠습니까?
이 보살은 달살아갈의 가르침을 따르는 것이 곧 지혜를 이루는 것이며
부처님의 공덕으로 생기는 자연의 법칙 및 그 생각하는 법이 갖고 있는 것을
간직하는 것이 곧 복덕을 지어 권조하는 일이 됩니다.
그 권조로 인연하여 스스로 아뇩다라삼야삼보를 이루게 되는 것이니,
보살마하살이 이러한 베풂을 짓는 사람은 허물이 없으며
끝내 달살아갈아라하삼야삼불의 곁을 떠나지 아니하게 됩니다.
부처님께서 말씀하신 것은 모두 지성으로 하신 말씀입니다.
또 보살마하살이 곧 이러한 시행을 하게 되면,
여여한 정계신(淨戒身)을 지니게 되고,
여여한 삼매신를 얻게 되고,
여여한 지혜신을 지니게 되고,
여여한 이해탈을 하게 되고,
여여한 탈해소견신을 얻게 됩니다.
그리하여 세상에 나타나는 몸에는
욕계도 없고
색계도 없고
무색계도 없으며,
또 과거와 미래와 지금 현재의 세계도 없고,
아무 것도 존재하지 아니한
번뇌의 테두리를 벗어난 세계이며
이 번뇌의 테두리를 벗어난 세계에서의 베풂 또한 무소유의 베풂인 것입니다.
혹 이 무소유의 베풂을 짓는다면 그 세계의 여여한 법 때문에 법도 역시 무소유(無所有)가 됩니다.
이러한 베풂을 짓는 사람은 그 베푸는 것을 이루게 되고 거기에는 독소가 없고
혹 이와 다른 베풂을 짓는다면 베풂과 반대되는 결과를 이루게 됩니다.
이러한 보살마하살이 베푸는 일은 그것이 여여한 법인 까닭에 불천중천께서 아시는 일이고,
이것이 곧 베풂으로 얻는 아뇩다라삼야삼보를 짓는 일에 해당되는 것입니다.”
부처님께서 말씀하셨다.
“훌륭하고도 훌륭하도다. 수보리여, 그 작위(作爲)하는 바는 부처의 작위와 같다.
이것이 보살마하살이 베푸는 일이며 삼천대천세계의 국토 안에 사는 사람이
모두 염원하는 자비와 애처로운 마음이며, 평등하게 불법을 수호하는 마음이다.
이 마음에 허물은 없다.
이는 보살마하살이 첫 번째로 베푸는 일이며 이것이 곧 지극히 존귀한 베풂인 것이다.
또 수보리야, 삼천대천세계의 국토 안에 사는 사람이 모두 아뇩다라삼먁삼보리심을 지어,
항하의 모래알처럼 많은 부처의 국토 안에 사는 사람으로 하여금 모두가 공양드리게 하는 일이다.
이 보살이 행하는 보시는 의복과 음식ㆍ침상ㆍ와구(臥具)와 병들고 여윈 사람에게 주는
의약품의 범위를 넘어서서 항하(恒河)의 모래알처럼 많은 영겁의 세월 동안 공양을 받게 되고,
자기 뜻이 원하는 바에 따라 이 보시를 하게 될 것이다.
수보리여, 그대는 어떻게 생각하는가?
그 복덕이 많다고 생각하는가? 그렇지 아니하다고 생각하는가?”
수보리가 대답했다.
“매우 많을 것입니다, 매우 많을 것입니다, 천중천이시여.”
부처님께서 말씀하셨다.
“권조(勸助)하는 공덕으로 얻는 복덕은 그 범위를 넘어서 헤아릴 수가 없다.”
수보리가 부처님께 아뢰었다.
“부처님을 대신하여 권조한 공덕으로 얻는 복덕은 항하의 모래알처럼 수많은
부처님 국토의 사람들도 그 모두를 받아들일 수 없습니다.”
부처님께서 말씀하셨다.
“훌륭하고도 훌륭하도다. 수보리야, 만약 어떤 보살이 반야바라밀을 간직하고 있다면,
그가 짓는 보살의 행위는 그의 본래 베푼 것 위를 넘어서게 되지만,
이것으로도 권조로 보시하는 공덕을 넘어설 수는 없으며,
권조로 보시하는 공덕은 그위 백 배ㆍ천 배ㆍ만 배ㆍ억 배ㆍ거억 배(巨億倍)나 되는 공덕이다.”
그때 사천왕과 하늘 위의 2만 명의 하늘 나라 사람들이 모조리
이마가 땅에 닿게 절하고 부처님의 발에 엎드려 모두가 부처님께 아뢰었다.
“지극히 큰 보시입니다. 천중천이시여,
보살마하살의 구화구사라는 곧 이 보시를 지어 그 공덕이 매우 크고 존귀합니다.
왜냐 하면 이 보살마하살은 반야바라밀을 배워서 그 가운데서 권조하기 때문입니다.”
또 도리천 위의 모든 천인들은
천화(天華)ㆍ
명향(名香)ㆍ
도향(擣香)ㆍ
잡향(雜香)ㆍ
택향(澤香)ㆍ
소향(燒香)ㆍ
천증(天繒)ㆍ
화개(華蓋)ㆍ
당번(幢幡)ㆍ
기악(伎樂)을 가지고 공양에 쓰며
오락으로 부처님께 공양드리고
이를 마친 다음 모두가 부처님께 아뢰었다.
“지극히 큰 보시입니다. 천중천이시여, 보살마하살의 구화구사라라야
마침내 이 보시를 할 수 있으며, 지극히 큰 보시의 공덕을 얻게 됩니다.
왜냐 하면 이 보살마하살은 반야바라밀을 배워서 그 가운데서 권조하기 때문입니다.”
염천(鹽天) 위의 천인들도 모두 천화ㆍ명향ㆍ도향ㆍ잡향ㆍ택향ㆍ소향ㆍ천증ㆍ
화개ㆍ당번ㆍ기악을 가지고 공양을 올려 부처님을 즐겁게 한 다음 모두가 부처님께 아뢰었다.
“지극히 큰 보시입니다. 천중천이시여, 보살마하살의 구화구사라라야 마침내
이 보시의 지극히 큰 공덕을 짓게 됩니다.
왜냐 하면 이 보살마하살은 반야바라밀을 배워서 그 가운데서 권조하기 때문입니다.”
도솔천 위의 모든 천인들도 천화(天華)ㆍ명향(名香)ㆍ도향(擣香)ㆍ잡향(雜香)ㆍ
택향(澤香)ㆍ소향(燒香)ㆍ천증(天繒)ㆍ화개(華蓋)ㆍ당번(幢幡)ㆍ기악(伎樂)을
가지고 공양을 올려 부처님을 즐겁게 한 다음 모두가 부처님께 아뢰었다.
“지극히 큰 보시입니다. 천중천이시여, 보살마하살의 구화구사라라야 이 보시의
지극히 큰 공덕을 지을 수 있습니다.
왜냐 하면 이 보살마하살은 반야바라밀을 배워서 그 가운데서 권조하기 때문입니다.”
또한 니마라제천(尼摩羅提天:化樂天) 위의 모든 천인들도
천화ㆍ명향ㆍ도향ㆍ잡향ㆍ택향ㆍ소향ㆍ천증ㆍ화개ㆍ당번ㆍ기악을 가지고
공양을 올려서 부처님을 즐겁게 한 다음 모두가 부처님께 아뢰었다.
“지극히 큰 보시입니다. 천중천이시여, 보살마하살의 구화구사라는
이 보시의 지극히 큰 공덕을 지을 수 있습니다.
왜냐 하면 이 보살마하살들은 반야바라밀을 배워서 그 가운데서 권조하기 때문입니다.”
바라니밀화야발치천(波羅尼蜜和耶拔致天:他化自在天) 위의 모든 천인들도 천화ㆍ
명향ㆍ도향ㆍ잡향ㆍ택향ㆍ소향ㆍ천증ㆍ화개ㆍ당번ㆍ기악을 가지고 공양을 올려
부처님을 즐겁게 한 다음 모두가 부처님께 아뢰었다.
“지극히 큰 보시입니다. 천중천이시여, 보살마하살의 구화구사라라야 이 보시의
지극히 큰 공덕을 지을 수 있습니다.
왜냐 하면 이 보살마하살들은 반야바라밀을 배워서 그 가운데서 권조하기 때문입니다.”
또한 범천(梵天)인
범가이천(梵迦夷天)과
범복루천(梵福樓天)과
범파리산천(梵波利産天)ㆍ
합천(廅天)과 파리타천(波利陀天)ㆍ
합파마나천(廅波摩那天)ㆍ
아피회천(阿陂言會天)과
수하천(首訶天)의 파리수하천(波利首訶天)ㆍ
아파마수천(阿波摩首天)ㆍ
수하가천(首訶迦天)과 비이반천(比伊潘天)ㆍ
아비야천(阿比耶天)ㆍ
수타시천(首陀施天)ㆍ
니천(尼天) 내지 아가니타천(阿迦膩吒天) 등에 이르기까지의
모든 천신들도 모두 이마를 부처님의 발에 닿게 절하며 말하였다.
“매우 거룩하십니다. 천중천이시여,
보살마하살이 반야바라밀을 배워 지극히 큰 보시의 공덕을 베푸십니다.
왜냐 하면 이 보살마하살은 반야바라밀을 배워서 그 가운데서 권조하기 때문입니다.”
이에 부처님께서 수타위(首陀衛)의 모든 천인들에게 말씀하셨다.
“삼천대천세계 국토의 보살마하살과 항하의 모래알처럼 수많은 불국토의 사람들이
모조리 아뇩다라삼야삼보를 짓는 일은 그만두더라도, 다시 이 밖에 항하의 모래알처럼
수많은 불국토의 사람들이 모두 함께 이들 보살들에게 공양드려서 그 떨침이 의복과
음식의 거래나 와구(臥具), 병들고 여윈 사람에게 의약품으로 공양하는 범위를 뛰어넘어
항하수의 모래알처럼 수많은 영겁의 세월에 걸쳐서 이들이 즐기고 기뻐하는 곳에 따라
이 보시를 지어 공양하거나 또 이 보다 더한 공양을 드린다 하더라도,
그것이 보살마하살이 권조(勸助)하고 보시하는 일에 미치지 못한다.
과거와 미래와 지금 현존하는 부처님들께서 정계신ㆍ삼매신ㆍ지혜신ㆍ이탈신ㆍ
탈혜소견신과 모든 성문신 가운데서 짓는 공덕을 모두 함께 헤아려
이를 합친다 하더라도 권조하는 공덕에 미치지 못한다.
권조라는 것은 이렇기 때문에 지극히 존귀하며 이를 넘어설 수 있는 공덕은 없다.
이 권조를 지어서 이를 간직함으로써 아뇩다라삼야삼보를 이루게 되는 것이다.”
그때 수보리가 부처님께 아뢰었다.
“천중천께서 설법하신 일에 속하는 모든 것을 함께 헤아려 이를 합쳐도
지극히 존귀하여 더 넘어설 것이 없으니 모두가 바꾸어가며 권조하고,
권조를 마친 보살마하살은 이 가운데서 어떠한 법을 얻게 됩니까?”
부처님께서 수보리에게 말씀하셨다.
“도덕(道德)을 지닌 사람은 알지어다.
과거와 미래와 지금 현존하는 법은
취하는 것도 없고
버리는 것도 없으며
아는 것도 없고 얻는 것도 없다.
그 법이란
생겨나는 것이 없는 법이며
소멸하는 것도 없는 법이고,
어디서 생겨나는 것도 없는 법이며 무엇을 따라 멸하는 것도 없는 법이다.
이 법 가운데는 아무 것도 생겨나는 것이 없고, 존재하는 것을 따라 멸하는 일도 없다.
이것이 법이 법으로 삼는 근본이며
내가 대신 이를 권조(勸助)한다.
이것이 권조가 되는 것이며 이 보시를 짓는 사람은
빠른 시간 안에 아뇩다라삼야삼보를 이룰 수 있다.
그런 까닭에 수보리야,
보살마하살에게는 권조의 공덕을 존귀하게 여기는 것이다.
또 수보리야, 보살마하살은
과거와 미래와 지금 현존하는 부처님 계신 곳에서
부처님을 대신하여
보시를 하는 사람이며,
권조하여 부처님을 대신하여
계율을 지키고 욕된 일을 참고
정진하여 한마음의 지혜를 지니고
이것으로 중생들에게 권조한다.
또한 부처님을 대신하여 이탈신으로 이를 권조하고,
부처님을 대신하여 탈혜소견신으로 이를 권조한다.
이 부처님을 대신하여 권조하는 사람에게는
그의 해탈이란
그것이 곧 보시가 되고,
그 해탈이 곧 인욕이 되고
그 해탈이 곧 정진에 해당하며
그 해탈이 곧 선정이 되며
그 해탈이 곧 지혜에 해당된다.
그 해탈은 곧 해탈의 지혜가 되며
그 해탈은 곧 탈혜소견신이 되고
그 해탈은 곧 그런 까닭에 해탈이며,
그 해탈은 부처님을 대신하며 권조하며 그 해탈이 곧 법이다.
그런 까닭에 미래의 세계에서도 그와 같은 해탈은 없을 것이며
아승기의 국토에 있는 모든 부처님으로 하여금 현재 현존하게 하는 것이다.
그 해탈은 곧 모든 부처님의 제자들이며
그 해탈은 과거의 모든 부처님의 제자로서
그 해탈은 지금 현존하는 모든 부처님의 제자이기도 하다.
이 법 가운데는
속박도 없고
집착도 없고
해탈도 없다.
이와 같은 법을 지님으로써
아뇩다라삼야삼보를 이루고 이로써
보시하는 가운데는
이를 넘어설 수 있는 공덕은 없으며 이를 허물 수 있는 사람도 없다.
수보리야, 이것이 보살마하살의 권조가 존귀하다는 이유이다.
항하의 모래알처럼 수많은 부처님의 국토 안에 사는 보살들은 모조리
그 수명이 항하의 모래알처럼 헤아릴 수 없는 영겁의 세월 동안 유지될 것이며,
항하의 모래알처럼 수많은 부처님의 국토에 사는 사람들이
모조리 여러 보살마하살에게 공양드릴 것이며,
그 떨침은 의복과 음식과 침상과 와구(臥具)와 병들고
여윈 사람들에게 주는 의약품의 범위를 뛰어넘을 것이다.
수보리야, 그리하여 마침내는 항하의 모래알처럼
헤아릴 수 없는 영겁의 세월 동안 모두가 계율을 지키고,
욕된 일을 참고 정진에서 게으르지 아니하고,
선정에서 모두 삼매를 얻어 그 정도가
백 배ㆍ천 배ㆍ만 배ㆍ억만 배 혹은 거억만 배(巨億萬倍)에 달하더라도
권조의 공덕만 못할 것이며,
권조의 공덕은 그 복덕이 가장 존귀하며 그 위에 우뚝 벗어나게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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