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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혼 조 정 신 청
신 청 인 aaa(남성)
피신청인 bbb(여성)
신 청 취 지
신청인과 피신청인은 이혼한다.
피신청인은 신청인에게 별지목록 기재 부동산중 공유지분권 10분의 7 지분에 관하여 이 사건 조정확정일자 재산분할을 원인으로 한 소유권이전등기절차를 이행하라.
피신청인은 현재의 주소지에서 퇴거한다.
라는 조정을 구합니다.
신 청 원 인
원고는 1997년10월10일 처와 1년이 안 되는 연애 기간을 거쳐 결혼을 하였습니다.
부친은 본인이 초등학교 입학 전 뺑소니 교통사고를 당하신 후 일주일 만에 의식불명 상태에서 깨어나셨으며, 머리를 심하게 다치셔서 2006년10월23일 돌아가실 때까지 30년 이상 투병 생활을 하셨습니다
1남3녀 중 둘째로 태어난 외아들 이지만 25년 전에 결혼을 한 후 투병중인 아버님 영향으로 부모님을 모시지 않고, 처의 직장 근처에 20,000,000원 전세를 구해 분가하여 신혼 생활을 하였습니다.
신혼 생활은 18평의 cc구 dd동 ee빌라 전세로 시작 하였습니다.
결혼 당시 저는 전세금을 마련하였고, 처는 가구와 일부 가전제품을 준비 하였습니다.
처가 별도의 지참금(현금)을 준비하지는 않았습니다.
결혼한 다음해에 처가 임신을 하였고, 1999년6월30일 첫째 딸이 태어났습니다.
첫째 딸이 태어난 후 산후조리를 위해 장모님이 내려 오셨었는데 일주일가량 계신 후 힘들어 하시며 처가로 돌아가셨습니다.
그 이후 처가에서도 그리고 본가에서도 갓난아이를 돌봐줄 형편이 되지 않아서 결혼 한 지 2년도 되지 않은 상황에서 처는 직장을 그만 두었으며, 첫째 딸을 돌보며 전업주부 생활을 시작 하였습니다.
결혼 4년 후인 2001년5월2일 20,000,000원을 모아서 22평대 저층아파트 (ff구 gg동 hh아파트)로 이사를 하였고, 또다시 2년이 지난 후인 2003년4월1일 35,000,000원을 더 모아서 25평대 고층아파트(ff구 gg동 ii아파트)로 옮길 수가 있었습니다. 2003년4월21일 둘째 아들이 태어났습니다.
결혼 전부터 신청인이 가입했던 주택청약저축으로 32평대 주공아파트에 청약 당첨이 되었고,
결혼 8년 만인 2005년11월21일 전세에서 탈출하여 꿈꾸던 내집(33평 주공아파트)을 마련하여 현재 살고있는 ff구 gg동 gggg타운으로 입주를 하였습니다.
결혼 8년 동안 저 자신을 위해서는 10원 하나라도 아끼며, 자린고비처럼 생활을 하였습니다.
결혼 초기 2년간의 맞벌이 시절부터 제 급여통장은 처에게 주었고 모든 경제권을 주었습니다.
제 명의의 청약통장으로 아파트에 당첨 되었으나 아파트 등기를 제 앞으로 하려다가 공동명의로 하여 등기를 하기로 하였는데, 처가 또 다시 자기 명의로 해주면 안되냐고 하여 처에게 100% 증여하여 처 명의로 아파트 등기를 하여 주었습니다.
그때 까지만 해도 이혼은 상상도 하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처가 아이의 육아문제로 전업주부 생활을 시작 한 후 첫째 딸아이가 유치원 들어가면서부터 지나칠 정도로 사교육에 매달리기 시작 하였습니다.
내 집을 장만한 이후에는 그 정도가 더욱 더 심해 졌습니다.
둘째 아들은 5살부터 사교육을 시작 했습니다.
5살에 사설 레고교육, 6살 사립유치원, 7살에는 타 지역의 사립 영어유치원...
아들이 7살에 들어간 비용은 대학 2년 공과금에 버금갔습니다.
첫째 딸의 청담어학원 및 기타 수없이 많은 사교육,
그 뒤를 똑같이 답습해서 시키는 둘째 아들의 사교육...
32평대 아파트에 입주하면서 첫째 딸의 초등학교 엄마들과 어울리면서 처의 사교육
열은 끝없이 커져만 갔습니다.
동네가 아닌 타 지역에서 사교육을 시켰으며, 생활형편은 무시한 체 아이들 케어를 위해 자동차를 사달라고 조르는 상황에 까지 이르렀습니다.
그 당시 저는 결혼식 때 맞춘 10년 넘어서 다 낡고 헤진 양복 한 벌이 유일한 정장 이었습니다.
안 쓰고 아껴서 집도 장만했고, 또 그렇게 해야만 딸과 아들의 교육에 충실 할수 있다는 생각에 거의 나 자신을 위한 용돈은 없는 생활을 하여왔습니다.
결혼 13년 만에 저에게 커다란 시련이 닥쳐왔습니다.
저는 결혼 전부터 보험회사에서 10여년을 근무하였고, 보험회사에서 퇴사 후 자동차 정비공장에서 관리자로 근무하여 창업을 위해 부단히 노력하며 오직 일만을 하여왔습니다.
지금 생각하면 왜 그렇게 살았는지 후회가 됩니다.
주위도 돌아보며 처와 자식들에게 어려운 이웃과 더불어 살아가며, 봉사와 배려의 미덕을 알려주지 못한 것이 천추의 한이 됩니다.
2010년10월초 자동차 정비공장 이사로 재직하던 중 hh화재 보상과 근무 당시 같이 근무했던 동료이자 중학교 동창이 kk그룹 본사(티알엠) TF팀 부장으로 가서 렌트사업을 추진하던 중 정비공장 사장이 후배와 렌트사업을 진행하다 연결을 부탁해서 중간다리 역할을 하게 되었습니다.
2010년 3월22일 ttssmm 종합관리(중계알선 서비스 사업 등록) 라는 회사를 설립후 티알엠과 업무 계약서도 없이 사업을 추진(현찰로 100대의 렌트 차량 출고) 하던 중 정비공장 사장의 후배가 티알엠과 사업제휴를 진행하며 담보로 넣기로 한 200,000,000원 가량의 부동산 담보를 넣을 수 없게 되자 잠적을 하는 사태가 발생 하였습니다.
(그때부터 문제가 시작 된 것 같습니다.)
친구인 티알엠의 TF팀 부장은 본인 실수 임에도 소개만 해준 저에게 책임을 전가
하며 욕설까지 하였고, 평소 티알엠 부장의 인성을 잘 알고 있는 저로서는 모든 보험회사 보상과 직원과 보험 영업사원을 상대로 자동차 정비공장 영업을 하던 저는 그 여파를 짐작 할 수 있는 상황이라 계획에도 없던 사업을 시작하게 되었습니다.
처에게 증여해준 처 명의의 아파트를 담보로 220,000,000원 근저당을 설정하여 주고 일단 눈앞의 불은 껏으나, 계획에도 없던 티알엠의 렌트카 사업을 시작하게 되었습니다.
2010년 4월27일 bb에서 “ttssmm 종합관리”로 사업자 등록을 하였습니다.
단순 렌트카 사업에 국한하지 않고 몇 몇 보험사 bb지역 쎈터장들과 면담후 “보험회사 현장 출동” 까지도 할 수 있게 되었습니다.
교통사고가 나면 현장 출동을 하여 사고 현장을 수습하고, 사고차량은 보험사 협력 정비업소에 입고시키고, 렌트카 차량도 협력업소인 제가 운영하는 회사에서 대여를 해주는 시스템 이었습니다.
그 당시 bb시는 불법 레트카 차량의 영업으로 문제가 심각하여 일부 보험사에서는 보험회사 보상과 출신인 저의 제안을 반기는 추세 였습니다.
신청인은 렌트카 사업, 현장 출동 사업, 우수 정비공장 네트워크 관리사업 등을 위해 계획에도 없던 사업의 시작 이었지만 정신없이 바뻤습니다.
약 500,000,000원의 위약금 소송에 휘말릴 뻔한 정비공장 사장은 임대된 사무실 보증금을 회수하지 않고 제가 사업이 안정되는 2~3년간 회사 운영 중 발생하는 손실을 정비공장에서 보존하여 주기로 하였고, 저는 정비공장에 고객 상대로 렌트 차량을 무상 대여 하여 주기로 하였습니다.
그런데, 정비공장 사장의 지나친 간섭(경험도 없는 아는 선배를 고임금에 낙하산 취업시킴, 낙하산 선배의 딸을 경리로 또 다시 취업시킴)과 그들의 잦은 지각 및 불성실한 업무 태만에 2개월 만에 결단을 내리게 되었습니다.
출 퇴근 카드 체크기를 구매해 사장인 저부터 출퇴근 카드를 찍기 시작했고, 개인적으로 신용 대출을 받아 정비공장 지원의 고리를 차단하고...
이러한 제 행동에 불만을 느낀 정비공장 사장은 제 친구인 ttt TF팀 부장과 공모하여 제 회사와 상호와 주소가 동일한 사업자등록을 만들어 티알엠 본사에 있는 제 계약 서류를 바꿔치기 하였습니다. 둘 사이의 공모 사실을 몰랐던 저는 영업수수료 결제가 차일피일 미뤄지는 과정에서 두달 가량이 지난 9월경 회사가 2010년 7월2일에 강탈되었음을 알게 되었습니다.
tt그룹 본사(티알엠)에 찾아가 항의하여도 친구인 ttm 부장은 “조금만 기다려” 라는 답변 뿐 이었습니다. 사업자등록에 필요하다고 요구해서 저에게 받아내었던 인감증명서를 가지고 위조된 인감도장을 만들고, 위조된 인감도장을 가지고 2010년 4월27일 신청인 앞으로 사업자등록을 한 당일에 “사업운영약정서” 라는 허위서류를 만들어 공증을 한 사실과 제가 사업자등록을 하기 이전 날짜로 “제 자신은 대표가 아닌 220,000,000원 담보를 제공하고도 바지 사장으로 되어 있는 계약서”를 만들었고, ttm에 가짜 서류를 첨부시켜 제 사업체를 강탈한 사실을 뒤늦게 알게 되었습니다.
hh의 변호사 사무실을 다 뒤져서 위조되어 공증된 “사업운영약정서”를 찾을 수가 있었고, 그 공증서류에 인감도장이 찍힌 사실을 발견했을 때는 하늘이 무너지는 것 같았고 10여일을 쓰러져서 움직일 수가 없었습니다.
다행히 인감도장이 위조란 사실에 대한 증거 자료를 찾아 낼 수가 있었고,
2010년11월11일 “법무법인 hh”에서 ttm 과 정비공장 사장을 피고로 한 손해배상 등의 형사. 민사 사건으로 변호사를 선임하였습니다.
제가 사업을 하게 된 상황과 회사운영 및 회사강탈 등의 상황들이 저 자신만이 이해할 수 있는 상황 이었기에 소송을 위한 자료들을 제가 거의 다 만들어야 하는 상황 이었습니다.
그 과정에서 ttm 과 정비공장을 하기 전에 bb에서 조폭 생활을 했던 정비공장 사장은 저를 협박하기 시작 하였습니다. 그 두려움에 낮에 밖에 나가서 다니는 것, 엘리베이터를 타는 것...
모든 삶에서 주위를 두리번 거리며 두려움과 불안. 공포 그 자체인 삶 이었습니다.
소송 서류를 만지려면 심한 두통과 전신 통증에 쓰러졌고, 반신마비 증상까지 보였습니다. 거의 일주일씩 쓰러져 있곤 하였습니다.
2011년1월25일 지인들의 염려 속에 제 스스로 정신병원 폐쇄병동에 입원을 하여 치료 및 각종 검사를 한 후 “외상후 스트레스 장애”및 “상세불명의 우울병 에피소드”라는 진단을 받았습니다.
그 후 3년가량은 심한 우울증, 공포, 자살충동 및 불면증 및 반신마비 증상을 보였으며, 각종 신경 안정제를 복용하였고 불면증으로 강한 수면제를 한 알로는 조치가 되지 않아 두 알 이상씩 복용도 하였습니다.
정신과 치료와 ttm과의 500,000,000원 계약해지 위약금 소송을 포기하고, 건강을 돌보는 삶을 위하여 새롭게 양봉을 배우기 위해 강원도로 2018년4월12일 내려갔습니다.
우리나라 제계 50위 안에 들어있는 태광그룹을 상대로 개인이 싸워야 하는 중압감 등으로 소송 준비는 제자리 걸음 이었고, 수시로 쓰러져 일어나지 못하는 상황이 반복 되었습니다.
본가와 처가 어디서도 도움을 받을 수가 없었고, 오직 혼자서 짊어지는 고통스런 나날 이었습니다.
보험 및 적금들을 해약하고, 결혼 예물과 자녀의 돌반지 등을 처분하고, 돈을 빌리러 다니고...
몸부림, 그 자체인 삶 이었습니다.
남편의 병증은 무시한 체 나가서 돈을 벌어오라고 요구만 하는 아내...
심신이 피폐 해지며 나날이 심각해지는 딸과 아들...
엄마의 난폭성 과 아이들의 폭력성, 남매간의 폭력과 욕설, 이상 행동들...
처는 아들에게서 저를 보는 것 같다며 심한 욕설까지도 하였고, 심지어 아들이 중학교 2학년 때는 엄마와 차마 입에 담기 민망한 욕설을 서로하며 싸우는 현장을 담임선생님에게 생중계 당하는 상황도 발생하였습니다. 어쩌면 “아동 학대” 그 자체 였던 것 같습니다..
그 일은 제가 사업 시작하고 쓰러진 후 발생한 아주 자그마한 한 조각에 불과합니다.
엄마의 지나친 사교육열과 기대심리, 그리고 아들과의 불화.
아들은 처가 돈을 쏟아 부어가며 사교육을 시키면 반항심에서 일부러 하지 않았고 더욱 더 삐뚫어 졌습니다.
그때마다 저는 두통과 마비 증상이 발현되어 쓰러지곤 하였고, 싸움을 진정 시키려고 관여하면 그 불똥이 저에게로 번져 집안의 다툼은 더욱 더 커졌기에 안절부절 못하고 있어야만 했습니다.
“아동학대로 신고할까?” 라는 생각도 이루 셀 수 없이 많이 했습니다.
가정에 검은 그림자는 끝없이 지속 되었습니다.
남편이 쓰러진 후 일 년 이상 전업주부로 놀고 있던 아내가 식당에서 알바를 하게 되었고, 일 년이 안 되어 허리에 심한 통증이 왔던 것 같습니다.
남편이 불필요한 존재이고 도움이 안 된다고 혼자서 병원을 다니다가 허리수술을 해야 하고 10,000,000원 이상의 수술비 및 3개월간 쉬어야 한다는 진단을 받은 후 뒤늦게 저에게 이야기를 하였습니다.
저는 여기저기 알아보고 해서 절개 수술이 아닌 비절개 수술 방법과 치료 병원을 소개받아 진료를 받게 하였고 3,000,000원이 넘게 든 치료비를 준비해서 2012년12월14일 서울에서 비절개 수술을 시켜 주었습니다.
그 후 잠시 동안 가정에 평화가 오는것 같았지만 꿈 이었습니다.
제가 쓰러진 이후 건강보험 등이 연체되고 생계가 막막해 주민센터를 방문하여 위기 가정지원을 받을수 있는지 알아보았으나 집이 있다는 이유로 거절 당하였으나 2년 반이 지난 후 우연히도 그 당시 위기가정 지원이 가능했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고 구청과 주민센터를 쫓아다닌 결과 2013년 1월15일 “차상위본인부담경감대상자”로 결정되어 의료비 및 아이들 교육에 있어 일부 지원을 받게 되었습니다.
그러나, 제 자신이 죽을 것 만 같은 고통을 견딜 수가 없어서 2013년1월16일 ii지방법원에 협의이혼(사건 :2013호304 협의이혼의사확인신청) 접수를 하였습니다.
2013년1월16일 협의이혼 접수 전에 인천지방법원 부천지원 과 인천지방법원에 사전 상담을 하였고, 사전 상담 결과 이혼전에 상처받은 처와 자녀에게 심리상담 치료를 해주어야 한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습니다.
2013년1월16일 협의이혼 접수 후 처와 자녀들의 문제로 인해 이혼을 철회하기로 마음먹었습니다
2011년5월 강원도에서 양봉을 하는 지인에게서 한통의 전화를 받았습니다.
남쪽지방으로 아카시아 꿀을 수확하기 위해 이동 양봉을 하러 내려가는데 기분전환도 하고 겸사 겸사 같이 내려갈 생각이 없냐고... 우연치 않게 처음으로 양봉을 접하게 되었고, 약 20일 동안 아카시아 꿀을 10드럼 가량 수확하는 경험을 하게 되었습니다.
소매가로 환산하면 채 한달도 안 되는 기간 동안 50,000,000원의 수확 이었습니다.
회사를 빼앗긴 후 20여 년간 해온 일들이 앞으로도 내가 할 수 있는 유일한 생업 이라고 생각하며 눈앞이 깜깜했던 저에게 다른 일을 할 수있다는 작은 희망을 갖게 해주었습니다.
이동 양봉을 경험하고 한 달을 생각한 끝에 양봉으로 전업하기로 결심을 하였습니다.
그 당시 저는 태광 그룹과의 민. 형사 소송을 준비하고 있었고,
“외상후스트레스장애”로 인한 우울증 및 자살 충동이 컸으며, 무기력 과 반신 마비 증상, 전신 통증, 머리를 후비는 듯한 심한 통증에 시달리고 있었습니다.
2012년 부터 5월에서 7~8월 까지 바쁠 때 만 도와주며 양봉을 배우기로 하였습니다.
모든 통증들을 잊기 위해 온갖 잡일들을 했습니다.
고된 노동에서 오는 또 다른 고통은 내가 살아 있음을 이야기 해주는 것 같았습니다.
한달에 겨우 1,000,000원을 받아 은행이자, 아파트 관리비 각종 공과금등을 해결
하였고, 약 3~4개월 양봉을 배우고 집에 돌아와서 소송 준비를 하면 또다시 쓰러져서 일주일간 누워있고 하는 상황이 반복 되었습니다.
책을 한 장만 봐도 심한 두통에 쓰러져야 했기에 양봉 공부와 소송 준비는 엄두도 내지 못하였습니다.
그렇게 3년을 강원도 지인에게서 양봉을 배우던 2013년 7월말 경 지인에게서 경제적으로 어려우니 다른 곳에서 양봉을 배우라는 통보를 받게 되었습니다.
2013년10월30일 강원도에서 더 크게 양봉을 하는 다른 농가에 양봉을 배울 수 있는 곳 소개를 부탁하기 위해 인사를 갔다가 가해자가 중앙선침범 사고로 사망하는 교통사고의 피해자가 되어 119 구급차에 실려 속초의료원에 입원을 하게 되었고, 일주일 입원을 한 후 인천으로 와서 3개 병원에서 입원 및 통원 치료를 하였습니다.
2015~2016년에는 일주일에 2회는 인하대병원에서, 4일은 한방병원에서 통원 치료를 받았습니다. 일주일에 6일을 하루에 4~6시간을 병원에서 생활을 하였습니다.
통원 치료를 하며 태광그룹과의 민.형사 소송을 계속해서 준비했습니다.
회사를 빼앗긴 후 진단 받은 “외상후 스트레스장애” 와 “우울병”...
그리고, 3년이 지나 찾아든 대형 교통사고. 교통사고로 인한 3년간의 기나긴 병원 치료... 2015년10월21일에는 교통사고로 인한 통증 증가시 발생되는 고혈압이 190을 넘으며 뇌출혈이 발생하기도 하였습니다.
2016년4월26일에는 교통사고로 인한 통증들은 호전되지 않고, 보험사는 치료 중단을 시도하는 상황에서 정밀검사를 하던 중 유전자검사 등을 통해 희귀난치병인 “강직성 척추염” 진단을 받고 현재 6년 동안 8주마다 “면역억제제” 치료를 받고 있습니다.
평생을 “면역억제제” 치료를 받아야 하고, 약물의 과다 복용으로 인한 추가 합병증을 주의하며 살아가야 하는 형편입니다.
악몽에서 깨어나기 위한 몸부림들, 그리고 제 자신의 심리상담 및 심리치료를 통해 뒤늦게 알게 된 가족들의 또 다른 상처들...
몸은 회복할 기회도 얻지 못 한 체 악순환을 반복 하였고, 자신들이 치료 받아야할 환자임을 모른 체 발버둥치는 가족들을 바라보면서 고통만 가중 되었습니다.
저 혼자서 감당하기에는 너무나도 큰 시련 이었고, 노력을 해도 관계는 더욱 더 악화 되어만 갔습니다.
처는 신청인만 집에서 사라지면 모든 문제가 해결 된다는 주장만을 하였습니다.
아들에게서 아빠의 모습이 보인다면서 딸과의 차별을 하였고, 아들에 대한 욕설과 폭언등의 학대는 나날이 심각해지고 있었습니다. 참다 참다 도저히 견디기 힘들고, 또다시 제가 죽을 것 같은 상황에 직면하게 되었습니다.
2018년1월29일 인천가정법원에 2번째 협의이혼 (사건 :협의이혼의사확인신청) 접수를 하게 되었습니다.
협의이혼 접수를 하고 미성년자 자녀로 인한 상담을 하는 과정에서 갑자기 처가 당시 중3 이던 미성년자 아들의 친권을 포기하라고 주장 하였습니다.
친권 포기하라는 이유는 학교에서 저에게 연락을 할 수도 있고, 보기 싫어도 아들의 학업 관련하여 얼굴을 대면하기가 싫다는 황당한 이유 때문 이었습니다.
저는 처의 친권포기 주장을 이해 할 수가 없었고, 친권포기 후 이혼을 선택할 경우 처가 “아빠의 친권포기”를 가지고 사춘기를 심하게 겪고 있는 아들에게 온갖 해괴한 짓 들을 할지를 짐작 할 수가 있었기에 저만 편히 살자고 이혼 할 수는 없었습니다.
다시 2번째 협의이혼을 도저히 결행할 수가 없었습니다.
저는 처에게 둘째 아들이 성인이 될 때까지 이혼을 해줄 수 가 없으며, 이혼사유가 나 보다는 당신(처)에게 더 많으니 정말로 이혼이 하고 싶으면 “이혼소송”을 통해서 하라고 한 후 현재까지 4년간을 지옥같은 삶을 살아오고 있습니다.
집에서는 투명 인간이었고, 아이들의 심리치료 목적으로 기르기 시작한 고양이 보다 못한 취급을 받으며 살고 있습니다. 각방을 쓰는 차원을 떠나 거의 7~8년을 안방에서 쫓겨나 거실 소파에서 살고 있으며, 처는 냉장고에 사다 놓은 반찬이 빨리 떨어지면 참기 힘든 말들을 저에게 하였고,
집에서 저는 냉장고 속 반찬이 상해서 버리기 직전에 비로서 버리기 아까워져야 겨우 먹을 수가 있었습니다.
2018년 2차 이혼을 포기한 후 태광그룹 과의 민.형사 소송의 소멸시효가 7년/10년
으로 손해배상 소송은 가능하였으나 변호사와의 상담시 제 건강 상태가 지금부터 소송을 시작할 경우 소송에서 승소하고 돈을 얻어도 건강이 악화되어 살아 남을 수 있다는 보장이 없고, 승소를 해도 가정이 온전히 치유 된다는 보장과 소송 기간이 얼마나 걸릴지 모른다는 결론을 알게되었으며, 앞으로 추가 되는 소송비용을 감당할 여력이 있는지에 대한 문제에 직면하게 되었습니다.
미성년자 아들이 성인이 되어 이혼할 때쯤 완쾌 및 부끄럽지 않은 아버지의 모습을 보여야 할 것 같아서 소송을 포기하기로 결심을 하였습니다.
2차 협의이혼 접수 전 7년 이상의 투병 생활 속에서 우연히 접하게 된 양봉(벌 키우는 일)을 통해 몸을 조금씩 회복하였으나, 직접 할 필요성에 대해 처와 이야기를 해보았으나 단호히 거절당한 사실이 있음에도 불구하고 소송포기 후 변호사로부터 돌려받은 변호사 수임료 5,000,000원을 재수하는 딸을 위해 딸이 보는 앞에서 처에게 주었습니다.
2018년5월1일 부터는 본격적으로 양봉을 배우기 위해 강원도 양구에서 숙식을 제공받으며 1,500,000원을 받으며 종업원 생활을 하였습니다.
매년 3월부터 11월까지 9개월씩 3년을 일하는 조건이었습니다
새벽 5시30분부터 저녁 7시~9시까지 중노동을 하였고, 휴일도 없이 일만 하였습니다.
8주에 한번씩 “면역억제제” 치료를 위해서 인하대병원에 올 때가 유일하게 쉬는 날 이었습니다.
간혹, 딸은 남동생과 싸운 후 전화를 해서 “혼자 집에서 도망가 있어서 좋으냐?”고 말하기 일쑤였습니다. 삶을 비관하는 내용의 문자를 보내기도 하였습니다.
중3인 아들은 엄마와 싸우고 나면 시도 때도 없이 전화를 하여 하소연을 퍼부었고,
제가 저녁 늦게까지 일을 하고 쓰러져 잠에 취해 있을 때 아들이 학교에서 돌아와 엄마와 싸운 후 자정 무렵 전화를 해서 제가 받지 않으면 딸처럼 삶을 비관하는 문자 폭탄을 보내곤 하였습니다.
소송을 포기하면서 일부 짊어진 짐을 덜어 놓았다고 생각했지만 제 착각 이었습니다.
2019년10월 중순 부터 2020년1월 중순까지 제주도 “귤 선과장”에서 단기 알바를 하였습니다.
월 2,500,000원에 숙식 제공받고, 새벽 4시30분부터 인부들 운송 및 귤농장에서 인부들 관리와 따놓은 귤을 선과장 까지 운반, 그리고 오후 7시까지 인부들 퇴근 시키는 일을 하였습니다.
벌이 월동 들어가는 겨울 동안 쉬지 않고 일을 할 수 있는 기회 였습니다.
2018년12월에 큰 딸이 재수를 한 후 결과가 좋지 않아 원서를 쓰지 않은 상태에서 3수를 시키기 위해서 4월에 준 5,000,000원은 다 썼고, 은행에서 대출을 받아야 하는데 대출조건이 까다로워져서 같이 은행에 가서 대출 신청을 하자고 하다가 대출은 받지 않았던 일이 있었습니다.
그러다가 1년이 지난 2019년12월11일 제주도에 내려가 단기 알바를 할 때 큰 딸의 3수한 수능 성적이 좋지 않아 원서를 쓰지 않고, 마지막 기회인 4수를 위해 기숙학원에 보내야 하니 은행 대출을 받자고 하면서도 처는 황당하게 이혼을 요구하고, 처 명의로 증여해준 아파트를 무기로 협박을 하였습니다.
아무 때나 수시로 일방적으로 이혼을 요구 하였습니다.
“이참에 정리해. 이혼도”, “집 팔고 튀어 버릴까? 생각도 여러번 했어..”, “집 내놓을 생각이니..” 등등등...
2019년12월31일에는 은행에서 대출을 알아보고 있는데 대출 동의를 안 하면 집을 정리 하자는 문자와 함께 혼자서 집안 살림을 꾸려가기 힘들다는 하소연이 담긴 문자를 보내 왔습니다.
그리고 아무 연락도 없다가 날벼락을 맞게 되었습니다.
2020년1월6일 오후12시16분 일을 하는 도중에 문자를 받았는데 황당, 그 자체 였습니다.
“나 급해... , 여짓껏 당신이 애들 위해 해준게 하나도 없잖아... , 집 팔을 꺼야,
애들 인생 망치지 말구” 등등등...
사무실이 아닌 귤 농장에서 일을 하다가 급히 사무실(선과장)로 달려가 외출을 신청 한 후 제주시에 하나뿐인 국민은행을 찾아가 겨우 대출동의서를 작성해서 대출을 정리 할 수 있었습니다.
대출금이 얼마인지는 이야기도 안하고, 이자와 원금 상환은 제가 책임지라고 하였습니다. 그렇지 않으면 당장 집 팔고 가버리겠다고 협박만 하고...
나중에 알고 보니 50,000,000원을 대출 받았고, 대출부대비용 20,325원도 제가 부담하게 처리를 하였습니다. 바로 시작되는 원금과 이자 동시 상환, 매월 원금 304,840원과 이자 23,010원(합계 327,850원)은 생색도 안나는 제 몫이 되었습니다.
2020년2월7일 생각지도 못한 일이 발생 했습니다.
50,000,000원 대출 후 첫 원금 및 이자 상환일이 지난 후 상환 미납 안내문이 은행에서 처에게 발송 되었습니다.
2020년1월 중순경 제주도에서 알바가 끝난후 양봉 일을 하기로 한 3월초까지 건축일 알바를 하러 강원도 속초에 있을 때 였습니다. 대출은 기 대출과 동일하게 처의 국민은행 통장에서 발생 하였고, 처는 7~8년 전에 본인의 급여가 들어오는 통장을 타 은행에 개설하고 혼자서만 본인 급여를 사용하였고 대출 관련된 처의 통장은 제가 관리 하였습니다.
처도 대출관련 본인 통장은 거래는 안하지만 인터넷으로 확인을 할 수가 있는 상황 이었습니다.
대출 당시 대략적으로 매월 상환 금액이 300,000원이라고 처가 이야기를 하였고 그에 맞추어 저는 통장에 기 대출 상환액에 추가하여 800,000원을 송금 하였는데,
상환금액이 처가 알려준 300,000원에서 30,000원 초과된 330,00원 이었고 대출당시 발생한 대출부대비용 20,325원도 처가 납부하지 않아 제가 관리하던 처의 통장에서 빠져나간 사실을 뒤늦게 알게 되었습니다.
통장 잔고에서 26,650원이 부족하여 대출 미납이 초래 되었습니다.
처의 잘못으로 발생된 일을 가지고 “단돈 26,650원”을 채워놓지 않으면 이혼을 하자는 황당스러운 여자... “지금 이라도 집 내 놓을께, 가족의 짐을 내게 떠 넘겨온지.. 수십년이야, 차라리.. 정리하자, 남편은 있으나 마나한 존재, 제발 정리하자” 등의 협박을 당하였습니다.
그 후 채 일년도 지나지 않은 2020년10월21일.
딸과 아들을 위해 제가 들어주고 부담했던 실비보험 계약 기간이 종료 된지 2년이 넘은 시점에서 또 다시 이혼 협박을 받았습니다.
보험이 끝난 상태에서 진료 받은거 청구하겠다고 보험사를 알려 달라고 해서
“몇 년전에 다 끝났어”라고 알려준 이틀 후에 황당한 문자를 받게 되었습니다.
경제적 여유가 없어 보험을 다시 들어주지 못했는데도 처는 막무가네로
“애들 것을 정리 했다구?, 이참에.. 차라리 집도 정리하자, 이렇게 사는 것도 아무 의미 없으니.. , 집팔고 나눠... , 올해안 도장 찍자.”
안하무인의 아내.
남편을 오직 돈 벌어오는 기계로만 생각하는 아내.
10년 이상을 투병 생활을 하며 수차례 병원에 입원을 했어도 한 번도 병원에 병문안을 와 준적이 없는 아내. 오직 돈 벌어오는 기계가 그 용도를 다해 폐기처분 해야겠다고 생각하며 이혼만을 요구하는 것 같은 아내.
처가 50,000,000원 대출을 받고 4수를 한 첫째 딸은 2021년 kk여대 컴퓨터공학과에 입학을 하였습니다. 2021년에 고3이 된 둘째 아들은 누나에게는 투자를 하면서 “늘 돈이 없다, 힘들다”고 말하는 엄마의 하소연에 대입 수능을 보지 않겠다고 선언하고 지방행정직 9급 공무원 시험을 준비 하겠다고 하였습니다.
첫째 딸의 4수를 위해 대출받은 50,000,000원은 코로나로 인해 기숙학원은 운영을 하지 않았고, 실제 4수에 들어간 비용은 10,000,00원도 들지 않았습니다. 둘째 아들 대학 준비할 수 있는 충분한 비용임에도 처는 1년 만에 생활비 등으로 대출금을 다 썼다고 주장을 하였습니다..
주말이면 집안은 쓰레기장으로 만들어 놓고 등산 및 여행을 다니는 아내.
지리산, 한라산, 전국 유명산들을 혼자 놀러 다니고...
수시로 장만하는 등산 장비(배낭, 등산복, 등산화, 각종 등산 장비)들...
처는 딸의 4수를 준비 한다며 대출받은 50,000,000원으로 여유로운 삶을 살고 있고, 최근에는 안하던 주식투자 까지도 하고 있습니다.
(주식 투자 금액 ; 확인된 자료로만 2건에 최소 12,000,000원)
삐뚤어진 아내의 교육열,
자신이 이루지 못한 꿈을 자식에게서 대리 만족을 느끼는 듯 한 이상 심리...
그로인해 4수로 kk여대 컴퓨터공학과에 입학한 첫째 딸은 고3 남동생이 첫 수능을 봤어야 하는 2021년 가을에 고3 남동생은 수능을 포기하였는데, 누나인 첫째 딸은 수의대에 도전 한다며 5수를 하였습니다. 2021년 1학기를 마치고 2학기를 휴학 한 후 5수를 준비하였지만 수의대를 도전했던 한 5수에서도 실패 하였습니다. 2022년 현재 고교 동창들은 4년제 대학을 졸업 하였는데 딸은 1학년2학기 복학을 하였습니다. 그러면서도 부모 탓을 하며 현실 도피 성향을 보이고 있습니다.
제가 사업을 시작 하자마자 회사를 빼앗기고 사경을 헤매던 2010년 8월말 경부터 법원에 1차 이혼을 접수했던 2013년1월16일 이후에도, 법원에 2차 이혼을 접수했던 2018년1월29일을 거쳐 12년이 경과된 지금까지 처는 줄 곳 저에게 은행 대출 상환금, 아파트 관리비 및 각종 공과금 과 세금, 처와 두자녀의 각종 보험료 까지도 저에게 요구하였고, 저는 그 모든 것을 해결 하였습니다.
불과 몇 년전 까지 처의 생명보험사 종신보험 까지도 제가 납부 하였습니다.
그럼에도 처는 제가 처 자식을 위해 십원 하나도 내놓지 않고 있다고 하소연하며 딸과 아들에게 세뇌 교육을 시키고 있습니다.
처는 월급을 받아서 남편의 병원비에도 10원 하나 댈 능력이 없다고 하면서도 늘상 저에게 돈을 요구하였습니다. 그러면서도 제가 가족을 방치했다고 주장합니다.
2차 이혼접수 10일전에는 그동안 메달려 왔던 티알엠과의 소송을 포기하고 양봉에 몰두할 생각을 하며 1~2천만원 이라도 대출을 받을수 있냐고 상의를 하였습니다.
그러자, “헤어지려는 마당에 대출 못해줘..”라고 답변만을 저에게 문자로 하였습니다.
이상의 내용처럼 혼인 관계가 파탄에 이르게 된 원인은 피신청인(처) 에게 있습니다.
부부는 기쁨과 노여움과 슬픔과 즐거움을 같이하며 살아가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서로 동거하며 부양하고 협조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남편의 외도도 아니고, 고의적인 사고도 아닌 불의의 사고 앞에서 피신청인은 “악의로 신청인을 유기”하였습니다. 정당한 이유없이 부부로서의 의무를 포기하고 일방적으로 남편을 버렸습니다.
불의의 상황에서 투병하는 남편을 유기 하였습니다.
투병 중에도 처와 자식의 생계를 책임져온 남편을 유기 하였습니다.
투병 중에도 처와 자식의 심적 상처를 느끼고, 그 상처의 치유를 위해 몸부림치는 남편을 유기 하였습니다.
그리고, 또다른 “기타 혼인을 계속하기 어려운 중대한 사유가 존재”하여 혼인 관계 파탄의 이유가 피신청인(처)에게 있습니다.
“성격의 차이로 인한 불화”
피신청인은 자신만이 피해자라고 생각하며, 남편을 정신적으로 학대를 하였습니다.
삐뚤어진 교육열로 두 자녀들을 무자비하게 학대 하였습니다. 자녀들의 심리 상담 치료를 방치 하였습니다.
저희 부부는 이미 7~8년 전에 제가 안방에서 쫓겨나면서 부터 별거 상태입니다.
아내의 물질만능주의는 혼인 관계 파탄의 씨앗이었습니다.
맹목적으로 달려가는 딸에 대한 비 상식적인 기대 심리 및 삐뚤어진 교육열.
7년 이상을 투병 생활을 하던 남편이 우연히 접하게 된 양봉을 통해 몸이 조금씩 회복되고, 7년의 양봉 경험으로 바탕으로 10,000,000원 ~20,000,000원 가량을 대출받아 직접 할 필요성을 부탁 할 때는 단호히 거절하던 아내가 딸의 4수를 위한 학원비를 대출 받겠다며 일방적으로 대출한 50,000,000원을 1년도 안되어 교육비 및 생활비로 사용했다고 하면서 그동안 하지도 않던 주식 투자를 하는 아내.
지금 이라도 협의 이혼으로 이혼을 할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그동안 아내는 남편을 돈 벌어오는 기계이고, 이제는 쓸모가 없어졌다고 생각하는 것 같았습니다.
남편의 노력으로 마련한 아파트(원고 기여도 70%: 피고 기여도 30%).
남편이 무상 증여로 피고 단독 명의로 해주었다고 본인 거라고 주장하는 아내.
그러면서도 12년을 은행 대출 상환금 및 재산세를 단 한 번도 납부하지 않은 아내.
남편이 객지 생활을 할 때도 재산세 고지서를 받고도 고의로 연체시켜 남편이 재산세와 연체료를 함께 납부하게 하였던 아내. 아파트가 자기 거니까 팔아서 도망갈 수 있다고 협박 하던 아내.
둘째 아들이 성인이 된 2022년4월21일 이후인 지난 4월25일 아내는 이혼하자며 “협의이혼의사확인신청서”와 준비서류인 “가족관계증명서”, “혼인관계증명서”등을 발급받아 주면서 빨리 이혼 하자고 하였습니다. 아파트도 매물로 내놓겠다고 하였습니다.
그러더니, 아내는 두 아이와 키우는 고양이 두 마리 포함해서 5식구가 살아야 하니 저에게는 방 한칸 얻을 돈만 가지고 나가라고 하였습니다.
신청인은 희귀 난치병으로 인해 죽을 때 까지 면역억제제 치료를 받아야 합니다.
그리고, 희귀 난치병 이외에 혈압약, 심혈관 및 심장약도 복용하고 있는 상태입니다.
과다 복용중인 약으로 인해 어떠한 합병증이 올지도 모르는 상황입니다.
첫 번째 협의이혼 접수 할 때는 아내가 말하지 않아도 미성년 자녀의 양육 문제로 그렇게 해주려고도 하였습니다. 그러나, 지금의 제 현실은 너무나도 참담하고 암울합니다.
그리고, 지금 아내의 가정을 외면하고 밖으로만 도는 현실(주말마다 등산 여행 다님) 과 지나친 사치(끝없이 구매하는 등산 관련 용품들), 현실성 없는 투기심리(주식투자)는 밑 빠진 독에 물을 붙는 것과 같습니다.
협의이혼으로 이혼 시 이혼 후에 아내 명의의 아파트를 매도하는 과정에서 발생하는 매각 대금을 아내가 은닉할 확률이 농후하고, 그로 인한 다툼으로 심리적으로 불안하고, 치료에서 방치되어 황폐화된 자녀들에게 평생 씻을 수 없는 상처를 줄 것이 자명합니다.
이혼 조정신청 과정에서 혼인의 파탄 이유가 아내에게 있어, 아내에게 위자료를 청구하여 받을 수도 있으나 두 아이를 낳아준 고마움에 대한 보답으로 위자료의 청구는 당분간 보류합니다.
이상의 진술 내용은 사실과 틀림이 없으며, 내용이 허위 일 경우 어떠한 법적 처벌이라도 받겠습니다.
신청취지와 같은 재판을 간절하게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