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나를 배우면 열을 알아야 한다. 1+1은 아는데 2+2는 모르겠자면 아직 1+1을 아는게 아니다. 특수상대성은 아는데 일반상대성은 모르겠다면 아직 상대성이론을 모르는 것이다. 지구인 중에는 열역학을 제대로 아는 사람이 없다. 안다면 일반화 되고 응용되어야 한다.
열역학은 어디나 적용되는 보편원리다. 열이라는 특수한 영역에 갇혀 있을 이유가 없다. 구조론은 열역학의 일반화다. 열은 절대영도 이하가 없다. 열은 한 방향으로만 간다. 구조는 질, 입자, 힘, 운동, 량의 한 방향으로만 가고 그 반대는 없다. 연역은 한 방향으로만 간다.
엔트로피가 증가하는 이유는 밸런스의 균형점에서 지는 쪽의 압력은 0이고 0보다 낮은 압력이 없기 때문이다. 절대 0도보다 낮은 온도는 없다. 씨름선수가 동시에 맞배지기를 시도하여 한쪽이 다른 쪽을 들었다면 들린 사람이 상대방 선수에게 가할 수 있는 힘은 없다.
물에 빠진 사람이 지푸라기를 잡아서 얻는 이득은 0이다. 늑대에게 쫓기는 사슴이 방향을 꺾어 늑대를 따돌릴 여유는 0이다. 우사인 볼트가 100미터 경주를 하면서 아내와 잠자리를 할 확률은 0이다. 의사결정이 일어나는 계에서 꼬리의 머리에 대한 지배력은 0이다.
북극의 북쪽은 없다. 절대 영도보다 낮은 온도는 없다. 지는 쪽이 이기는 쪽에 가하는 힘은 없다. 극단의 법칙은 사고실험이다. 밸런스의 기준점을 0에 세우면 명확해진다. 북극에서 어디론가 갔다면 그는 무조건 남쪽으로 간 것이다. 다른 방향으로 갔을 확률은 전혀 없다.
우리는 현실에서 무수히 0에 도달해 있다. 가난한 사람의 통장 잔고는 늘 0원 근처에 있다. 극단의 법칙은 엔트로피 증가의 법칙과 같다. 계가 깨지면 압력은 0이 된다. 이기는 쪽은 계가 살아있고 지는 쪽 입장에서는 계가 깨진 것이다. 계가 깨져 압력은 0, 동력은 없다.
도처에 북극점이 있다. 안철수가 윤석열과 이재명 중에 하나를 선택해야 한다면 그는 북극점에 선다. 이재명을 잡아먹을 자신은 없고 윤석열을 잡아먹을 자신은 있다. 윤에 붙는다. 박근혜와 문재인 중에 누구를 잡아먹겠는가? 박근혜를 잡아먹을 능력은 정확히 0이다.
정몽준은 이회창과 노무현 중에 누구를 잡아먹겠는가? 정몽준이 이회창을 잡아먹을 가능성은 0이다. 당장 아버지 정주영이 김영삼에게 짓밟히는 꼴을 보지 않았는가? 선택의 여지는 애초에 없었던 것이다. 우리는 힘이 비등하다고 착각하지만 사실은 대부분 0에 선다.
줄다리기를 하면 초반에 팽팽하게 맞서지만 곧 어느 한 쪽이 일방적으로 끌려온다. 그때 버티는 힘은 0이다. 열역학은 확률로 따지지만 확률은 실험이 오염된 것이다. 오염의 피해를 줄이려고 대수의 법칙으로 물타기 한다. 확률론은 오염을 감수하는 꼼수에 불과하다.
훌라후프가 떨어지지 많는 원리를 이해한 사람은 비행기의 양력을 이해한 것이며, 영구기관이 작동하지 않는 이유를 이해한 것이며, 언제나 발이 바닥으로 향하는 고양이의 착지원리를 이해한 것이다. 계 안에서 두 힘이 맞설 때 지는 쪽의 힘은 이기는 쪽에 흡수된다.
훌라후프에 가해지는 지구 중력은 회전력의 관성에 밀려 0이 된다. 비행기에 가해지는 순간중력은 추력에 밀려 0이 된다. 물체에 끈을 달아 돌려보라. 회전하는 물체의 말단부에 가해지는 중력은 0이다. 왜? 중력은 코어가 가져갔다. 본질은 닫힌계를 이해하고 있느냐다.
'만유 닫힌계의 법칙'이다. 운동하는 것은 반드시 계가 만들어지며 계 내부의 의사결정이 외부작용에 선행한다. 내부와 외부 사이에 밸런스의 균형점이 있으며 이기는 쪽이 지는 쪽의 힘을 흡수한다. 공이 방망이에 맞으면 타자의 방망이가 이겨서 공의 힘까지 가져간다.
열역학 메커니즘 안에서 그것은 자명하다. 당연하다. 극단하다. 단순하다. 오컴의 면도날과 같다. 사고실험과 같다. 단순해서 실험할 필요가 없다. 판단기준을 0에 두고 논하기 때문이다. 0과 어떤 자연수 중에 어느 쪽이 큰 수냐다. 무조건 어떤 자연수가 0보다 큰 숫자다.
열역학은 지정학이다. 지정학은 자명하다. 약소국에게 선택의 여지는 없다. 원교근공은 알렉산더와 한니발의 장기인 망치와 모루 전술과 같다. 전투가 벌어지면 늑대에게 쫓기는 사슴이 되어 선택의 여지가 없다. 2차대전에서 추축국의 합종과 연합국의 연횡은 필연이다.
이집트가 수에즈 운하를 차지하려는 것이나, 미국이 서부를 차지하려는 것이나, 이스라엘이 골란고원을 차지하려는 것은 자명하다. 명백하다. 선택의 여지가 없다. 목숨이 빙점에 도달해 있기 때문이다. 물에 빠진 사람과 같다. 물이 턱밑까지 차올랐다. 입까지 차올랐다.
당신이 무엇을 하든 늑대에 쫓기는 사슴 신세고, 물이 턱밑까지 차올라 있고, 윤석열과 이재명 사이에 낀 안철수 신세고, 골란고원을 바라보는 이스라엘 입장이고, 서부를 바라보는 동부 이민자 신세이고, 그곳이 바로 빙점임을 알아야 한다. 당신이 선 곳이 기준점이다.
당신은 밸런스 기준점 0에 서 있으며 어디로 가든 엔트로피 증가다. 당면한 문제 앞에서 언제나 0이 된다. 문제가 없거나 0에 서거나 둘 중 하나다. 문제가 없는 경우는 부모나 상관에 의존하고 있는 경우다. 독립하는 즉시 의사결정의 단두대에 끌려가서 0에 처해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