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1편 정보통신의 흐름
제1장 정보통신의 여명기 – 한국 정보통신의 시작
19세기 후반, 조선은 오랜 세월 의존해오던 봉수제와 파발 체계에서 벗어나 근대적 정보통신기술을 받아들이기 시작했다. 이는 단순한 기술의 수입이 아니라, 국가 운영과 사회 구조에 심대한 영향을 미친 전환점이었다. 조선은 ‘전신’과 ‘전화’라는 새로운 통신 수단을 통해 근대 정보통신 시대의 문을 열었고, 이는 오늘날 대한민국 정보통신 강국의 기반이 되었다.
1.1 근대 통신의 시작, 전신 – “말보다 빠른 소식”
1885년, 조선은 일본의 기술 지원을 받아 한성전보총국과 제물포 간에 최초의 전신선을 개통하였다. 이는 봉수나 파발과는 비교할 수 없는 속도와 정확성으로 정보를 전달할 수 있는 혁신적인 기술이었다. 전신은 전류의 흐름을 끊고 잇는 방식으로 문자를 부호화해 전달하는 시스템으로, 대표적으로 **모르스 부호(Morse Code)**가 사용되었다.
전신은 국가 소통 방식에 근본적 변화를 가져왔다. 정부는 전신망 확장에 속도를 냈고, 한성~의주, 한성~부산 등 주요 거점을 연결하는 노선이 잇달아 개통되었다. 1888년까지는 전국 주요 도시를 연결하는 장거리 전신망이 형성되었고, 이는 외교, 군사, 내정 등 국가 핵심 기능을 지원하는 중추적 인프라로 자리잡았다.
특히 **청일전쟁(1894)**과 같은 국제적 갈등 상황에서는 정보의 신속성이 곧 전략적 우위로 이어졌고, 전신은 전쟁 지휘와 국가 대응의 중요한 도구로 활용되었다.
1907년에는 무선전신 기술이 시범 도입되었다. 대한제국 해군은 월미도 등대사무소와 군함 광제호 간에 무선전신 시험 통신을 성공적으로 수행하며, 해상 통신망 확장의 가능성을 열었다. 이는 통신의 영역이 육지를 넘어 바다로 확장되는 계기가 되었다.
이러한 변화는 단지 외국 기술을 받아들이는 데 그치지 않았다. 조선은 전신 기술 운영에 필요한 인력을 양성하고 전신국을 자체적으로 운영함으로써, 향후 통신기술 자립과 발전의 토대를 마련하였다.
1.2 음성 통신의 출현, 전화 – “소리를 나누는 시대”
전신에 이어, 조선은 1886년 자석식 전화기를 도입하며 다시 한 번 커다란 도약을 이루었다. 고종 황제의 명에 따라 궁내부(현 덕수궁)에 전화기가 설치되었고, 이는 곧 고위 관료 간의 통화 수단으로 활용되기 시작했다. 전화는 사람의 음성을 실시간으로 전달할 수 있다는 점에서, 정보 소통의 방식뿐 아니라 인간관계의 형성에도 획기적 변화를 가져왔다.
1902년에는 한성~제물포 간의 시외전화선이 개통되었고, 이듬해부터는 한성 시내에서 전화 교환 업무가 본격 운영되었다. 초창기에는 자석식 수동교환기가 사용되었으며, 이후 가입자 수 증가에 따라 공전식 수동교환기로 전환되어 통화 안정성과 확장성이 크게 향상되었다.
초기의 전화는 궁중과 고위 관리층, 외국 공사관 등 제한된 범위에서 사용되었지만, 점차 행정기관과 상업 부문으로 확대되었고, 민간으로도 서서히 보급되었다. 전화는 ‘즉시 응답’이라는 새로운 소통 문화를 만들어내며, 전신보다 더욱 직접적이고 인간적인 소통 도구로 자리 잡았다.
백범 김구 선생은 자서전 『백범일지』에서, 자신이 사형을 선고받고 형 집행을 기다리던 중, 고종 황제가 전화로 사면 명을 내렸다는 일화를 소개한다. 이는 전화가 단순한 편의성을 넘어, 사람의 생명을 좌우할 수 있는 위력 있는 수단이었음을 상징적으로 보여주는 사례다.
1.3 식민지기 통신 – “통제 속의 기술, 살아남은 인프라”
전신과 전화는 일제강점기를 거치면서 조선총독부의 통제 아래 재편되었다. 일본은 통신망을 식민지 지배의 핵심 수단으로 활용하였고, 주요 통신 시설과 노선을 자국의 행정·군사 목적에 맞게 정비하고 운영하였다.
민간인의 자유로운 통신은 크게 제한되었고, 모든 통신은 조선총독부의 철저한 검열과 통제 아래에 놓였다. 그러나 역설적으로 이 시기에도 통신망의 물리적 확장과 기술 인력의 양성은 계속되었다. 학교에서는 전기통신 관련 실습이 이루어졌고, 조선인 통신 기술자도 일부 양성되었다.
이러한 식민지기의 통신 기반과 기술 경험은, 해방 이후 대한민국 정부가 국영 통신 체계를 정비하고 정보통신 산업을 자립적으로 발전시키는 데에 중요한 밑거름이 되었다.
맺음말 – 한 줄의 전신선에서 시작된 정보통신 시대
대한민국 정보통신의 역사는 1885년 한성과 제물포를 잇는 전신선 한 줄에서 시작되었다. 전기신호가 수도에서 항구까지 단숨에 소식을 전하였고, 이어서 사람의 목소리마저 전선을 타고 오갈 수 있게 되면서, 한국 사회는 소통 방식과 정보 흐름이 근본적으로 달라지는 새로운 시대를 맞이하였다.
이처럼 조선 말기와 일제강점기를 거치며 형성된 정보통신의 기초는, 해방 이후 체신부 중심의 통신 재건과 발전의 출발점이 되었고, 오늘날 세계 최고 수준의 이동통신과 초고속인터넷을 갖춘 대한민국 정보통신 산업의 튼튼한 초석이 되었다.
첫댓글 <1885년, 조선은 일본의 기술 지원을 받아 한성전보총국과 제물포 간에 최초의 전신선을 개통하였다.>라니 140년 전 일이구나! 좋게 말하면 그 이후 세계가 하나로 된 일도 오래 전이니 정말 놀라운 발전이다. 좋은 전신 역사 이야기가 흥미롭다. 1950년 내가 살던 집에도 벽에 붙은 전화기가 있었는데 주로 은행 높으신 분들이 운전수 아버지한테 지시하는 일로 사용하였다. 물론 집도 은행 관사였고 차고에는 자동차도 있었다. 집 건너편에는 은행 관사가 있었다. 좋은 전신 소식 기대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