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늦여름 정차
(56번 거리의 뫼르소)
Novelist 소원
여름이 끝난 뒤에도 바다는 쉽게 식지 않았다. 사람들이 하나둘 해변을 떠난 계절이었지만 모래 위에는 아직 늦여름의 열기가 희미하게 남아 있었다. 소년은 거의 매일 그 바다를 찾았다. 이유를 묻는 사람이 있었다면 대답하지 못했을 것이다. 그저 발길이 자연스럽게 그곳으로 향했다.
소년은 겉보기에는 남들과 다르지 않게 살아가려 노력했다. 아침이 되면 가장 먼저 해변으로 나가 밤사이 밀려온 해초와 부서진 나무 조각들을 한곳에 모아두었고, 파도에 떠밀려온 병이나 빈 깡통도 말없이 주워 담았다.
근처 가게 주인이 무거운 상자를 옮겨달라 하면 잠자코 도왔고, 낡은 의자를 고치거나 바닥에 흩어진 물건들을 정리하는 일도 곧잘 해냈다. 사람들 틈에 오래 섞여 있지는 못했지만 적어도 이상한 사람처럼 보이지 않기 위해 나름대로 애쓰고 있었다.
하지만 소년의 일상에는 설명하기 어려운 어긋남이 자꾸만 드러났다. 셔츠 단추를 끝까지 반대로 끼운 채 한참을 돌아다니거나 물건을 내려놓을 때마다 꼭 같은 방향으로 맞춰 두었고, 길가에 굴러다니는 돌멩이를 보면 무심코 주워 원래 있어야 할 자리처럼 보이는 곳에 다시 올려두곤 했다. 한번 흐트러진 배열을 보면 견디지 못해 다시 맞춰야 했고 누군가 그 순서를 바꾸면 내내 신경이 곤두서기까지 했다.
사람들은 그런 소년을 보며 가끔 이상하다는 듯 웃었다. 소년 역시 아주 잠깐, 자신이 남들과 다른 걸지도 모른다는 생각에 붙잡히곤 했다. 하지만 그럴 때마다 아무렇지 않은 척 하려 애썼다. 이상한 사람이 되는 순간, 사람들은 금세 등을 돌린다는 걸 이미 알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그래서 소년은 더욱 입을 열지 않았다. 웬만하면 말을 하기보단 익숙한 행동을 반복했고 마음속에 떠오르는 것들은 대부분 종이 위에 적어 내려갔다. 바다가 보이는 자리엔 늘 작은 공책 하나가 놓여 있었다. 소년은 무릎 위에 공책을 펼쳐두고 오래도록 문장을 고쳐 쓰곤 했다. 단어 하나를 적고 지우는 데에도 시간이 오래 걸렸다. 문장이 어긋나면 자신까지 어긋나는 기분이 들었다.
해가 기울 무렵이 되면 소년은 종이 한 장을 조심스럽게 찢어 모래 위에 내려놓았다. 그리고 근처에서 주운 조약돌 하나를 그 위에 얹었다. 바람에 날아가지 않게 하기 위한 행동이었지만, 어쩐지 누군가에게 말을 남겨두는 의식처럼 보이기도 했다.
소년은 한동안 그 종이를 바라보다 천천히 몸을 일으켰다. 멀리, 해변으로 이어지는 길목에는 녹이 슨 표지판 하나가 서 있었다.
‘56번 거리’
글자는 바닷바람에 바래 거의 지워질 듯 희미했다. 하지만 소년은 그 길을 잊지 못했다. 외로움을 견디기 어려운 날이면 늘 그 길을 따라 걸었다. 한때 자신과 함께 바다를 바라보던 존재가 머물던 곳이었기 때문이었다.
날지 못하고, 대신 바다를 향해 천천히 걸어가던 갈매기. 소년에게 그 갈매기는 이상하지 않은 순간 그 자체였다. 아무 말 없이 곁에 있어 주었고, 이해받으려 애쓰지 않아도 되는 유일한 존재였다. 그래서 자신이 세상의 이방인처럼 느껴질수록 소년은 더욱 그 늦여름의 바다를 떠나지 못했다.
소년은 자신이 남들과 다를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수록 불안해졌다. 불안은 쉽게 사라지지 않아 마음속에 가라앉은 채 오래 머물렀다. 그럴수록 소년은 공책과 연필, 그리고 자신이 적어내는 문장들에 더욱 몰두했다. 말을 많이 하지 않는 만큼 소년의 감정은 입 밖에 꺼내기보단 가슴속에 맺히기 일쑤였고 그것을 견디기 위해 택한 유일한 방법이 바로 시를 쓰는 일이었다.
소년은 하루에도 몇 번씩 공책을 펼쳤다. 해변에 멍하니 앉아 파도 소리를 듣다가도 그랬고, 잠들기 전 불빛이 희미하게 흔들리는 순간에도 그랬다. 생각을 글자로 옮기는 동안만큼은 머릿속을 휘젓던 감정들이 잠깐이나마 얌전해지는 기분이었다.
그렇다고 소년이 만들어낸 문장들까지 불안한 것은 아니었다. 여름의 바다 냄새와 모래의 감촉, 해가 기울 무렵의 미지근한 바람 같은 것들이 담긴 문장들은 오히려 지나치게 아름답다 여길 정도였다. 소년은 자신도 모르게 외로움과 공허를 문장 속에 녹여냈다. 그걸 읽는 모든 사람들은 소년의 결핍을 바라보기보단 재능에 박수를 쳤다.
어쩌면 당연한 일이었다. 흔히 총망받는 예술 작품들이 그렇듯이 소년의 결핍 역시 누군가에게는 아름다운 소재처럼 보였으니까.
그렇게 소년은 평범한 인간에 가까워지고 있었다. 그러기 위해 매일 해변의 빈 깡통을 주워 담고, 밀려온 해초를 걷어냈다. 다른 사람들을 따라 무언가를 하다 보면 아주 잠깐이나마 남들과 다르지 않다고 생각할 수 있었고 그러다 지칠 때 바위에 기대어 시를 쓰면 하루가 금방 지나갔다.
그날은 유독 파도가 눈에 들어왔다. 밀려왔다가 부서지고 그러다 또다시 돌아가는 물결이 꼭 자기 자신 같았다. 같은 바다인데도 파도는 매번 다른 모양으로 무너졌다. 소년은 한참 동안 문장을 고쳐 쓰고 지우기를 반복하며 그 모습을 종이 위에 담아내려 했다.
그때였다. 어디선가 익숙한 울음소리가 들려왔다. 마치 고양이 울음소리 같기도, 술에 취한 아저씨의 고성같기도 한 소리. 갈매기였다.
반가운 마음이 들기도 전에 무언가 이상했다.
갈매기는 한쪽 날개가 젖은 듯 제대로 움직이지 못한 채, 밀려오는 파도를 따라 조금씩 뒤로 밀리고 있었다.
소년은 순간적으로 몸을 일으켜 다가가려 했다. 하지만 한 걸음도 채 떼지 못하고 그대로 멈춰 섰다. 바다와 갈매기를 번갈아 바라보던 소년은 이내 천천히 고개를 떨궜다. 그러고는 마치 아무것도 보지 못한 사람처럼 쓰던 시를 다시 이어 적기 시작했다.
몇 번이고 다시 고개를 들어 갈매기의 상태를 확인했지만 그때마다 소년의 손은 멈추지 않았다. 종이 위에는 지워진 자국과 검은 연필 가루만 쌓여갔다.
소년은 자신이 다가간다 해도 할 수 있는 일은 없을 거라고 생각했다. 괜히 손을 댔다가 상황을 더 망쳐버린다면 그건 정말 자신이 감당할 수 없는 일이 될 것 같았다.
그러는 사이에도 갈매기는 계속 파도에 휩쓸리고 있었다. 물에 잠긴 몸이 뒤집혔다 떠오르기를 반복할 때마다 소년의 시선도 자꾸만 바다 쪽으로 흔들렸다. 연필 끝은 종이 위를 맴돌기만 했다.
철퍽.
짧고 둔탁한 물소리에 소년은 반사적으로 고개를 들었다. 그러나 이미 늦은 후였다. 시야에는 아무것도 보이지 않았고 검은 파도만 거칠게 밀려오고 있었다.
소년은 그제야 바다를 향해 달려갔지만 이미 닿을 수 없는 거리까지 멀어져 있었다.
분명 조금 전까지만 해도 그렇게 위태로워 보이지 않았다. 갈매기를 만나면 그동안 밀린 이야기들을 나눌 생각까지 하고 있었다. 그러나 그 짧은 틈 사이, 몇 번이고 뒤집히던 갈매기의 몸은 순식간에 바다에 잠겨 사라졌다.
소년은 그 자리에 멈춰 섰다. 손을 뻗을 수 있었던 순간은 이미 지나 있었다. 이제는 정말 아무것도 할 수 없었다.
그 모든 결과가 자신의 선택에서 비롯된 것처럼 느껴졌다.
반가움을 느낄 틈조차 없이 갑작스럽게 벌어진 일이었다. 아무리 또래 아이답지 않은 소년이라 해도 허우적대는 갈매기를 보자마자 곧바로 바다로 뛰어들 수는 없었다.
바꿀 수 없는 순간은 처음이었다. 소년은 늘 다시 쓸 수 있다고 생각했다. 고치고 싶은 문장은 지우면 됐고 엉망이 된 시는 찢어버리면 그만이었다. 하지만 바다는 아무것도 돌려주지 않았다.
모든 것은 너무 갑작스러웠다. 하지만 이미 지나가버린 뒤였다. 더 이상 되돌릴 수 없는 시간. 사건이 일어난 그 삼십분의 시간은 소년에게 지울 수 없는 한 문장이 되었다.
그로부터 며칠이 흘렀다. 소년은 여전히 시를 썼다. 남들과 다르지 않게 보이려 했던 일들은 자연스럽게 그만두었다. 하지만 사람들은 그것에 대해 깊게 생각하지 않았다.
그 일이 있고 난 후 소년은 존재에 대한 그리움보단 늦음에 대한 후회에 붙잡혀 있었다. 감정은 말이 아니라 글이 되었고, 모든 것은 문장이 되었다. 이전에도 소년의 문장은 결핍에서 비롯되었지만 이제는 그 무게가 달라져 있었다.
그래서였을까. 소년의 시는 전부 같은 의미를 반복하고 있었다. 소년에게 후회란 소재가 아닌 주체가 되어버렸다. 그리고 시간이 흐를수록 그것은 소년 자신이 되어갔다.
한때 시가 되었던 바닷바람과 모래알, 흘러가는 구름의 모양은 이제 바라보는 것조차 잊은 지 오래였다. 한자리에 오래 머물며 글을 쓰는 것도 점점 어려워졌다.
소년은 목적 없이 거리를 걸었고, 두 눈은 줄곧 공책만을 향하고 있었다. 그럼에도 시는 시가 되지 못했다. 같은 단어가 반복될 뿐이었다. 그렇게 만들어진 문장들은 서로 엉킨 모습으로 페이지 위에 늘어져 있었다.
어느 날, 연필을 힘껏 쥔 소년의 손이 종이 위에서 멈췄을 땐 같은 단어들만이 겹쳐 쓰여 있었다.
‘늦음’
‘늦음’
‘늦음’
금방이라도 부서질 듯 위태롭던 소년은 그제야 문득 움직임을 멈췄다.
‘늦음’
소년은 한참 동안 자신이 적어놓은 단어를 바라보았다. 그러다 끝내, 애써 외면해오던 장면을 다시 떠올렸다.
조금만 더 빨랐더라면.
망설이지 않았더라면.
그 생각들은 소년의 가슴 한가운데를 아프게 짓눌렀고 그림자처럼 소년을 내내 따라다녔다.
그러던 어느 순간, 소년의 머릿속에 한 가지 생각이 스쳐 지나갔다.
시간이 흐르지 않았다면 늦지도 않았을 것.
잘못 끼워진 단추처럼 어딘가 어긋난 생각이었다. 하지만 이상할 만큼, 그 생각은 소년을 차분하게 만들었다.
소년의 손이 문장 위에서 멈춰 섰다. 짙게 눌러 적힌 ‘늦음’이라는 단어 아래로 연필심이 얕게 떨리고 있었다. 손끝에는 어느새 검은 흑연 가루가 잔뜩 묻어 있었다. 소년은 한참 동안 움직이지 못한 채 종이만 내려다보았다.
그 순간이었다. 파도 소리가 끊겼다. 소년은 천천히 고개를 들었다. 방금 전까지 귓가를 메우고 있던 바람 소리도, 하다못해 옷자락이 떨리는 소리 마저도 들리지 않았다. 마치 누군가 세상의 숨통을 한순간에 틀어 막아버린 것 같았다.
멈춰 있었다. 밀려오던 파도는 허공에서 일그러진 채 굳어 있었고, 흩날리던 모래는 바닥에 닿지 못하고 공중에 떠 있었다. 고개를 돌릴 때마다 보이는 풍경들은 모두 숨을 참고 있는 것처럼 고요히 멎어 있었다.
소년은 그 광경을 오래 바라보았다. 이상하게도 두려움보단 편안함이 앞섰다.
주위를 둘러보던 소년의 눈에 무언가 들어왔다. 멈춘 세상 속에서 자신을 제외하고 유일하게 움직이고 있는 작은 톱니바퀴였다. 가까이 다가갈수록 그것의 움직임은 더 분명해지고 있었다.
소년은 돌아가는 톱니를 보자마자, 어떤 의문을 가지기 보단 오로지 멈추고 싶다는 생각만이 먼저 떠올랐다. 흐르지 않는 세상이라면 더는 늦음도, 후회도 생기지 않을 것이라는 생각이 소년을 그렇게 만들었다.
소년은 망설임 없이 톱니에 손을 댔다. 그리고 그것을 뽑아 들었다. 마치 자신이 쌓아왔던 모든 응어리를 뿌리째 뽑아내는 것과도 같았다.
그 순간, 소년의 머릿속에 오래 눌려 있던 장면들이 한꺼번에 밀려 들어왔다. 자신을 바라보던 사람들의 이상한 눈빛과 아무렇지 않게 던져지던 차별 섞인 말들, 그리고 또래 아이들의 무심한 손가락질까지.
모든 것이 파도처럼 겹쳐 지나갔다.
톱니가 빠져나간 순간, 큰 소리가 났다. 거대한 무언가가 크게 꺾이며 내려앉는 듯한 소리였다. 소년도 그 소리를 들었으나 톱니가 낸 소리는 아니었기에 어디서 비롯된 소리인지는 알 수 없었다.
그와 동시에 손안의 톱니가 미세하게 떨렸다. 그리고 정신을 차렸을 땐 거대한 구조물 한가운데에 서 있었다. 마치 풍력을 모으기 위해 세워진 것처럼 보이는 형태였다.
소년은 그것을 바라보는 순간 이유를 알 수 없는 방향성을 느꼈다. 마치 그곳이 모든 것의 기준인 것만 같았다.
소년은 그곳에서 자신이 꿈을 꾸고 있는 것은 아닐까 하는 착각이 들 정도로 신비한 일을 겪게 되었다. 멀리 공중에 멈춰 있던 작은 파편 하나를 바라보았을 때, 분명 그것은 아무런 흔들림도 없이 허공에 고정되어 있었다.
감각에 이끌린 소년은 아주 천천히 손을 들어 톱니를 쥐었다. 금속의 감각은 이상할 만큼 선명했다. 차갑다기보다는 멀리서 멈춰 있던 무언가가 이제 막 손 안으로 들어온 듯한 느낌이었다.
소년은 손에 느껴지는 감각에 집중했다. 그 순간 파편이 아주 미세하게 흔들렸다.
소년은 숨을 삼켰다.
그제야 알 수 있었다. 이 작은 톱니 하나가 멈춰 있는 것들 사이에 손을 뻗을 수 있게 해준다는 사실을.
소년은 한동안 톱니를 쥔 채 서 있었다. 어느새 소년은 자기 자신에 대한 이질감도, 늦음에 대한 후회도, 잃어버린 것에 대한 상실도 잊은 지 오래였다.
그러자 웃음이 나왔다.
좀처럼 웃지 않아 웃는 법을 모를지도 몰랐던 소년이 아주 환하게 웃었다. 그때, 고개를 숙이며 웃던 소년에게 발끝의 모래가 눈에 들어왔다. 바다에서 온 소년이라는 사실을 보여주는 유일한 흔적으로 보였다.
차가운 톱니를 더 세게 쥐며 모래알들을 바라봤다. 그러자 신발에 있던 모래가 조금씩 움직이더니 바닥으로 떨어졌다.
그러는 동안 어딘가에서는 건물이 계속해서 무너져내렸다.
무너지는 건물 안에는 사람들이 있었다. 누군가는 사랑하는 이와의 만남을 위해 기다리고 있었고, 누군가는 오래 준비해온 꿈을 향해 걸어가고 있었으며, 누군가는 아무 일도 없는 하루를 살아가고 있었다.
그들에게 그날은 특별한 날이 아니었다. 그저 평소와 다르지 않은 하루였다.
남겨진 사람들 또한 마찬가지였다. 늦어버린 삼십 분의 시간이 그들을 영영 기다릴 수조차 없게 만들 줄은 몰랐다.
대수롭지 않게 여긴 잠깐의 시간이 영영 늦은 사람으로 만들고 있었다.
그 사이 소년은 멈춰버린 세계를 끝없이 걸어 다니고 있었다.
얼마나 시간이 흐른 것인지는 알 수 없었다. 애초에 흐르는 시간 자체가 사라진 세계였다. 무너진 도로와 뒤집힌 신호등 사이를 지나자 어느 순간 커다란 건물들이 늘어선 거리가 모습을 드러냈다. 바람조차 멈춘 도시 한가운데에는 반쯤 열린 카페 문 하나가 비스듬히 흔들린 채 멈춰 있었다.
소년은 그 안으로 들어갔다. 의자에 걸터앉는 순간, 긴장이 한꺼번에 풀린 사람처럼 몸이 아래로 무너져 내렸다.
세계는 멈춰 있었다. 시간이 흐르지 않았다. 분명 자신이 원했던 모습이었다. 하지만 어째서인지 마음 한구석이 텅 빈 것처럼 허전했다.
소년은 멍하니 바닥만 바라보았다. 그러다 문득 손등 위로 낮선 감각이 느껴졌다. 좀처럼 감정을 드러내지 않던 소년의 눈가에서는 어느새 눈물이 흘러내리고 있었다.
자신의 눈물에 놀란 소년은 황급히 몸을 일으켰다. 그리고 다짐했다. 감정이라는 것은 남김없이 버리겠다고.
되돌아가던 소년은 그곳에서 남자와 소녀를 발견했다. 멈춘 세계를 헤매고 있는 두 사람을 지켜보던 소년은 자신이 들었던 굉음의 정체를 깨달았다. 톱니가 빠져나간 순간 들었던 것은 단순한 굉음이 아니었다. 누군가의 시간과, 누군가의 약속, 그리고 누군가 당연히 도착할 수 있다고 믿었던 하루였다.
소년은 한동안 말없이 두 사람을 바라보았다. 이상하게도 눈을 뗄 수가 없었다. 한편으로는 두려웠다. 가까이 다가가는 순간 어렵게 얻은 평온이 다시 흔들릴 것만 같았다. 하지만 동시에 그들을 붙잡아 주고 싶다는 생각이 강하게 들었다.
자신처럼 늦어버린 순간에 붙들린 사람들. 후회와 상실 속에서 허우적대는 그들에게, 흐르지 않는 시간은 분명 안식이 될 거라고 소년은 믿었다.
하지만 다시 마주한 두 사람은 소년의 생각과 달랐다. 무너지는 공간 속에서도 그들은 끝내 무언가를 붙잡으려 했다. 종이 한 장을 놓치지 않으려 몸을 던지고, 끝났을지도 모르는 순간을 포기하지 않았다.
소년은 그 모습이 이해되지 않았다. 아니, 어쩌면 이해할 수 없어서 화가 났는지도 몰랐다. 이미 늦어버린 것들을 붙잡으려 하는 행동들이 어리석게 느껴졌다. 희망 같은 것을 아직도 품고 있다는 사실이 이상할 만큼 거슬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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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가 아직 자신의 손아귀에 있음을 확인한 소년은 그것을 다시 확인하듯 정차의 사간을 걸어 다녔다. 소년의 두 눈에는 더 이상 감정의 반짝임이 남아 있지 않았다. 끝을 알 수 없는 터널처럼 빛을 잃은 안광만이 자리하고 있었다.
그 발걸음에 맞춰 소년의 주변 풍경이 마구잡이로 뒤틀렸다. 햇살이 내리쬐는 해변이 나타났다가, 혼자 잠들던 방의 한구석으로 바뀌었다. 그리고 다시 도시로 돌아왔을 때, 무너진 건물들 사이로 녹슨 표지판 하나가 비스듬히 서 있었다.
‘56번 거리’
하지만 소년은 그 앞을 아무렇지 않게 지나쳤다. 손에 쥔 공책에 시를 적어 내려갈 뿐이었다. 시라고 부르기에도 애매한, 의미를 잃은 줄글들이었다.
무너진 거리와 녹슨 표지판, 그 위로 스쳐 지나가는 모든 풍경은 소년에게 더 이상 특별한 것이 아니었다. 이미 그의 안에서는 다른 규칙이 작동하고 있었다.
소년의 비뚤어진 마음은 서서히 형태를 바꾸기 시작했다. 처음에는 미세한 거슬림이었고 그다음에는 이해할 수 없는 고집이 되었으며 결국 그것은 분노로 변질되었다.
그들이 여전히 품고 있는 희망. 끝을 끝으로 인정하지 않으려는 태도. 다시 늦을 수밖에 없는 선택을 반복하는 방식. 소년은 그것을 더 이상 견딜 수 없었다.
그래서 그는 그들의 ‘희망’을 한데 모았다. 붕괴된 건물 안의 사람들이었다.
이미 그의 손 안에서는 시간이 의미를 잃은 뒤였다. 태엽을 쥐는 순간부터 어떤 형태든 고정할 수 있었다.
소년은 그들 중 하나를 바라보았다. 그리고 손을 들었다. 태엽을 감듯 공기를 비틀었다. 그는 색을 잃고, 그대로 굳어갔다. 마치 석고상처럼 변하지 않는 상태로 멈췄다.
소년은 그 장면을 바라보았다. 자신의 의도대로 세계가 정렬되는 감각 속에서 그는 그것을 처음으로 ‘구원’이라고 불렀다.
소년은 공책을 펼쳐 시를 적어 내려갔다. 말보다 글을 쓰던, 오래된 습관이었다. 의미 없이 나열되는 글자들이 적힌 공책은 소년의 손에서 구겨졌다. 시라고 부르기에도 애매한 것들이었다. 소년은 계속해서 쓰고, 구기고, 던지기를 반복했다.
그러던 중 한 여자가 소년을 향해 걸어왔다. 무너진 거리와 멈춰 선 사람들 사이에서도 주저함 없는 걸음이었다.
예상치 못한 상황에 소년은 처음으로 누군가의 눈을 똑바로 바라보았다.
여자의 눈에서는 소년이 버리고자 했던 감정이란 것이 느껴졌다. 슬픔과 반가움, 그리고 설명되지 않는 안타까움이 섞여 있었다.
마치 소년을 통해 다른 누군가를 떠올리는 듯한 눈빛이었다.
정적이 잠깐 내려앉았다.
소년은 다른 이들에게 했던 것처럼 손을 들어 올렸다. 태엽을 감듯 공기를 비틀었다.
여자의 몸이 순간 멈칫했다. 그러나 완전히 굳어지지 않았다. 오히려 그 눈빛만은 더 또렷해졌다. 소년을 향한 채 흔들리지 않았다.
소년은 이전과 다른 결과를 이해할 수 없다는 듯 바라보다가 아무 일도 없었다는 듯 등을 돌렸다.
남은 것은 멈춘 사람들과 구겨진 종이들뿐이었다.
한 사람, 한빛만이 멈추지 않은 채 소년의 등을 바라보고 있었다.
작가 소원
소설과 시를 사랑하는 작가.
끝없는 상상을 글로 펼치며,
읽고 쓰는 일을 삶의 중심에 두고 내면의 세계를 확장한다.
E-mail | sowon_428@naver.com
Brunch | https://brunch.co.kr/@leesowon
Instagram | @sowon.ink
*이 소설의 권리는 크레이프사운드에 있으며, 무단 전재와 복제를 금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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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댓글 새로운 명작이 나왔네요.
이 작가는 레전드다...다른 말로 표현할 수 없어...그저 G.O.A.T
문장이 파도처럼 밀려와 가슴에 얹히는 느낌!! 넘 좋아요
사간 오타인가요?
다른 사람들과 다른 소년을 사람들은 틀렸다고 말했다. 소년은 그들과 같아질려고 노력했지만 결국 소년은 모든 것을 증오한다. (중2의 뻘글이었습니다. 캬!! 이번 소설도 짱입니다!)
이번 소설도 감명 깊게 봤습니다. 지난 번 균열의 시작 때는 소년이 정차의 시간을 만든 뭔가 초월적인 존재처럼 느껴졌는데, 소년도 결국 차오늘과 피차일반 소녀처럼 누군가에게 30분 늦어버린 존재였던 거네요… 그리고 그 누군가가 갈매기라는 건 예측은 하고 있었다만 이걸 공식에게 확인받으니 너무 충격적이었어요…
무엇보다 갈매기의 최후가 너무 슬프고 허무하기도 하고요. 하늘을 날 수 없어서 바다를 선택한 갈매기였는데, 25도의 바다에선 그렇게 해맑게 웃던 갈매기가 결국 자신이 선택한 바다에 빠져 죽었다니… 게다가 소년은 그 여파로 뒤틀린 신념을 갖고 스스로 악역이 되었다는 서사가 너무 충격적이었어요. 뭔가 제 2의 신소녀가 탄생한 기분이랄까요… 또 이 세계관의 등장인물 들은 모두 늦음에 대한 후회를 가지고있는데, 소녀는 이미 그 후회를 극복한 것 처럼 보이고, 차오늘은 소녀를 통해서 차차 후회를 극복해가고 있는 것 처럼 보이는데, 소년은 그러지 못한게 아무리 어른스러워도 아직 불안정한 아이라는 것이 느껴졌어요. 이 사람들은 어린 애들한테 도대체 왜 이럽니까…ㅠㅠ
노벨리스트 소원 님의 문체에 감동하고, 스토리에 헉하는 소설이었습니다… 다음 얘기도 기대 할게요!
정말 몰입해서 읽은 소설이었어요. 뭐랄까 이전 곡과 소설에서 만들어진 의문을 정리하면서 자연스레 새로운 의문을 제시하는데 추측 불가능한 의문이 아니라 추측 가능한 의문들이었거든요. 이 후기의 중점이 그 의문들에 있지는 않지만 한번 말하고 가고 싶었습니다. 이번 소설은 잡으려 했던 소년과 아직 잡으려 하는 이들의 이야기라고 할수 있을 것 같아요. 개인적으로 소년은 정차의 시간에서 자신을 놓아버렸지만 아직 잡으려 하는 이들을 보고 연민을 느낀 게 슬픈 지점이었어요. 그런 그들을 보며 자신이 돌아가지 않고 도와주려 했다는 게 이미 자신은 너무 멀리 와 버렸다고 말하는 것 같았거든요. 예전에 내일 약속 소설 후기에서 늦어버린 사람이 된다면 이 소설이 기억날 것 같다고 말했었는데 진짜 그렇더라고요. 거창한 게 아니더라도 다 잡을 수 없으니 하나 씩 놓치고 늦어야 하는 세상이잖아요? 늦지 않기 위해 달려가면 놓치는 게 생기고 그걸 다시 잡으려 돌아가면 늦어버리죠. 정차의 시간은 그걸 해결해주는 공간 같아요. 정차의 시간은 늦어버린 시간을 다시 살 수 있고 놓쳐버린 것들은 잠깐 멈추면 되는 말 그대로 모두가 꿈꾸는 공간이니까요. 하지만 역설적으로 정차의 시간에 간 사람들
의 문제가 해결된 건 아니었죠. 결국 놓치고 늦어버리더라도 움직여야 무언가를 심지어는 그게 고통뿐이더라도 얻을 수 있기에 정차의 시간이 없는 세상이, 우리의 이 시간이 소중한 거 아닐까요? 언제나 좋은 노래, 좋은 뮤비, 좋은 소설 감사합니다.
매번 소설을 읽으면서 느끼는건데
어떻게 이런 글을 쓰고 이런 노래들을
만드는지 늘 대단하다고 생각합니다
앞으로도 좋은 소설과 노래가 많이많이 나왔으면 좋겠습니다
이번 소설은 소년의 모습이 저와 비슷했기에 더욱 깊은 인상을 남기는 것 같습니다 또 한편으로는 생각이 많아지는 소설이기도 합니다 이상해 보이지 않으려는 모습, 나쁜 감정이 들 때는 어딘가에 의지하는 것, 주변 사람들과 다르다고 느꼈던 것, 저도 그랬던 것 같아서 읽으면서도 기분이 묘하더라고요 은근히 소년의 감정에 공감할 수 있을 것 같으면서도 의지했던 갈매기가 이젠 더 이상 곁에 없다는 것은 경험해보지 않으면 어떤 감정들이 몰려올지는 상상도 할 수 없네요 소년이 시간이 멈춘 세계로 간 것도 단순히 갈매기에게 손을 뻗지 못한 후회뿐만 아니라 그동안의 감정들이 한 번에 터져버려서 지금의 소년의 모습을 만든 걸 지도 모르겠어요 그렇게 생각하니 지금 소년은 손 내밀어줄 누군가 필요했을 것 같아요 소년의 마음 한편이 허전한 것은 갈매기의 빈자리 때문일지도요 이번 스토리는 지금까지 나왔던 사건들을 정리하면서도 앞으로의 소년의 변화를 기대하네요 생각보다 한빛의 분량은 적었지만 이번 소설에서 한빛이 나왔다는 건 한빛이 소년을 위로해 줄 사람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어요 속으로는 소년과 대화를 나눌 사람이 소녀든 차오늘이든 소년과 대화를 나눌 사람이 나타나기를 바라고 있어요
누군가 소년을 위로해주기를.... 다음 내용은 어떨지 의문을 품고 후기 끝냅니다 뭔가 이번 후기가 우울한 느낌이 있었지만 우울하기만 한 것은 아닙니다 너무너무 잘 읽었어요!! 어쩜이리 뮤비와도 잘 어울리는지...! 저와 비슷한 특징을 찾아서 지금까지 소설들과는 또 다른 느낌이라 좋았습니다 앞으로 나올 소설, 노래, 뮤비 모두 기대할게요~!
작품들이 점점 쌓여 가면서 세계관과 스토리가 조금씩 연결되어 가는 것이 느껴집니다.
후회를 가진 사람들이 올 수 있다는 정차의 시간이라는 곳에, 한빛 또한 그 장소에 도착한 것으로 보여요. 어떤 이유와 사연을 가지고 정차의 시간에 도착한 것일까요? 차오늘에게 표현 없이 기다리기만 한 것에 대한 후회일지, 아니면 또 다른 이유로 정차의 시간에 존재하고 있는 것인지 얼른 밝혀지길 바라면서 다음 작품도 기대하고 있을게요. 이번 작품도 잘 읽었습니다!
'25도의 바다' 에서 갈매기와 함께 자신만의 이상을 그리던 소년이 '바람잡이'에 와서 갑자기 변해버린 이유가 궁금했었는데 이 소설을 읽고 깊게 이해하게 되었습니다. "내가 늦은 건 아닐까? 내가 더 빨랐다면?" 하는 마음은 10살짜리 소년에겐 너무 가혹한 무게추 였겠죠. 그런 그 아이가 시간이 흐르지 않는 것이 곧 위로고 안식이라며 스스로를 다독이고, 정차의 시간속 사람들에게 '구원'을 내리는 모습이 참 안쓰러웠습니다. 저도 주위 또래들 에게서 점점 겉돌게 되어가 끝내 마음의 벽을 세워버린 적이 있기에 남들에게서 공감을 느끼지 못하는 소년이 더 잘 이해되는거 같습니다. 자신과 똑같은 상실과 후회의 일을 겪었음에도 포기하지 않는 차오늘과 소녀에게서 적대감을 느낀건 '나랑 같은데, 같은 마음인데 왜 다르지?' 하는, 어린 소년이 세상을 완전히 등져 더이상 받아들이지 않으려 한다고 느껴집니다. 어린 나이에 자신의 유일한 이해자를 잃은 그 충격이 너무나 컸던 이 소년에게도 따뜬한 온기가 내려앉길 바랍니다.
소설을 읽으며 노래를 떠올리고, 노래를 들으며 소설을 투영하는 재미는 음율의 곡에서만 느껴지는, 제가 가장 좋아하는 부분 중 하나입니다. 다음에는 어떤 곡이
등장할지, 어떤 이야기를 풀어주실지, 저희에게 어떤 울림을 주실지 기대하며 감상평 마침니다.
이번 소설중에서 기억에 남는 곳은 소년이 여전히 희망을 품고 있는 그들의 방식을 견디지 못하는 장면이었습니다. 소년은 희망을 버렸고, '그들'은 여전히 희망을 품고 있었습니다. 소년이 희망을 가진 그들을 붕괴된 건물안에 모았습니다. 소년이 희망을 부정적으로 인식하지만 '그들'은 여전히 희망을 품고 있는 것은 마치 제 마음 속의 대립같았습니다. 희망을 버릴 때면 차라리 편했지만, 제 마음 어디선가는 또 희망을 찾고 있었습니다. 희망을 버리지 않으면 또다시 상처를 받고 또다시 같은 행동을 할 것을 알면서도 결국 저는 또 희망이라는 두글자에 온 힘을 다했습니다. 희망은 나를 다시 시작하게 해주었지만, 그 만큼 괴롭게 만들었습니다.
소년의 행동과 생각은 제게 희망에 대해서 생각하게 해줬습니다. 사실 이제 그만 괴롭고 싶다면, 소년의 말대로 끝을 끝으로 인정하고 희망을 버리는게 좋을 수도 있습니다. 그렇지만 저는 또다시 희망을 선택할지도 모르겠습니다. 그래도 희망을 품다보면 무언가 달라지는게 하나쯤은 있지 않을까, 생각하면서요.
늦음, 늦음, 늦음
이번 소설도 굉장히 인상깊었어요
늦은 사람들만 들어온 곳, 정차의 시간은 소년의 늦음으로부터 만들어진 것이였다는 것이 소설에 몰입하게 해요
소설을 읽고 생각을 해보았어요, 이 세상에 소년같은 사람이 어딘가에 없을리가. 세상이 원하는 기준과 소년은 달랐고, 소년은 기준에 맞추며 평범한 사람이 되려 노력했죠. 이는 우리 주변에 분명히 있다고 생각해요. 남들에게 맞춰 사는 누군가의 삶이 소설에 녹아들었고, 소설에서도 시간은 그 무엇도 되돌려주지 않죠, 참 잔인하게도. 조금 늦어도, 조금만 늦어도, 그 시간 되돌릴 수 없는 평생이 되어 우리를 언젠가 옥죄어 오겠죠. 이 감정이 소년처럼 후회가 되고, 차오늘처럼 일상이 어렵고, 아마 누구나 그럴 수 있다 생각해요. 결국 소년은 감정을 잃었고, 이는 곧 체념이라 여겨지지만 또다른 시작이라고 저는 생각해요. 무언가를 잃은 소년이 정차의 시간을 만든 건 단순한 결핍이 아닌 발전을 나타낸다고 느끼게 되었습니다. 우리도 언젠가 이런 상황이 온다면, 무너지지 않고 결코 발전하리라 믿게 되었어요. 이번 소설도 너무 아름다웠어요! 다음 이야기도 기대하면서 감상평을 마치겠습니다. 감사합니다.
다름, 그것은 이 사회에선 쉽게 배척의 대상이 됩니다. 하지만 이 다름은 비웃고 배척할 것이 아닌 특별함으로 여겨져야 마땅하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래서 그런지 소설 속 타인들의 시선을 신경쓰며 그 특별함을 감추려 하는 소년이 안타까웠습니다. 게다가 소년은 소년과 유일하게 마음이 통하는 존재마저 잃고, 너무 늦었다는 걸 깨달았겠죠. 그 늦음의 의미는 갈매기를 구하는 것, 그리고 다시 이 세계에 속하도록 노력하는 것이지 않을까 싶은 생각도 들었습니다. 다양한 생각을 자유롭게 표현하며 과실을 맺던 소년의 시도 점차 늦음에 대한 후회에 갖혀버렸죠. 더이상 자신의 특별함에 의미를 잃고, 심지어는 세상에 속할 이유도 없다는 것을 느낀 것처럼 보였습니다.하지만 소년은 톱니바퀴를 뺌으로써 처음으로 '구원'을 느꼈습니다. 소년은 톱니바퀴처럼 맞물리며 사람들이 살아가는 흐름에 적응하지 못하였고, 이로 인해 같이 살아가던 자신의 톱니바퀴를 빼내어, 흐름에서 벗어난 자신만의, 또 '늦은' 사람들을 위한 시간을 만들었다는 걸로 느껴졌습니다. 하지만, 뒤틀린 소년의 마음도, 아직 흐르지 않는 시간 속에 멈춰있는 것이 아닐까요? 그것이 해방일지 또 다른 고립일지는 쉽게 판단할 수 없을
것 같습니다. 이때문인지 저는 소년에게 그 정차의 시간 속에선 진정으로 행복하냐고 묻고싶습니다. 사실 이 사회를 살아가다 보면 가끔 타인의 시선에 짓물리고 상처입으며 자신의 특별함을 다르다는 이유만으로 밀쳐내곤 합니다. 사실 뛰어나게 특별하지 않아도, 요즘에는 개성 자체를 무시하며 또 무시받는 것의 반복이 계속되는 것 같습니다. 이런 흐름에 괴리감과 회의감을 느끼기도 했던 저라 소년에게 더욱 공감이 가면서도 안타까웠습니다. 우리는 소년에게, 또 다른 것들에게 빛이 묻혀버린 존재들에게 무슨 말을 건낼 수 있을까요. 아마 이건 한사람 뿐만 아니라 이 세계가 생각해봐야 할 문제가 아닌가 싶습니다.
이번 소설이 워낙 제가 관심이 많은 주제이고, 비슷한 감정을 많이 느낀 터라 글이 조금 진지하고 길어졌네요..ㅎㅎ '늦여름 정차', 정말 인상깊고 흥미롭게 봤습니다! 이 세계관의 이야기가 언젠가 완성되길 간절히 바래봅니다! 좋은 글 정말 감사드립니다~
진짜 넘 잘 쓴 소설이네요ㅠㅠ 처음 보고 나서 격정적이던 감정이 꽤나 오랫동안 주체가 안 될 정도로 좋았습니다. 일단은 먼저 가볍게 소년의 증상이 자폐일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듭니다. 자폐라고 한다면 소년이 가진 강박 또한 자폐로 인한 강박일 것이고, 뛰어난 문학성과 어설픈 대인관계까지 전부 설명이 되네요. 이 글이 정차의 시간 전과 후의 느낌이 다르더라고요. 정차의 시간 전에는 무난하게 스토리가 진행된다는 느낌이었다면 정차의 시간 안에서는 어느정도의 배경지식이 전제되었으니 소년의 감정이 너무 감각적으로 잘 묘사된 것 같습니다. 진짜 그 세상속에, 소년의 모습으로 있는 듯 한 그 느낌이 들 정도로 표현이 너무 매력적이었습니다. 상징들 같은 경우에는 물을 소년이 자주 찾는 공간이며, 갈매기가 죽은 공간이며, 자신과 닮은 공간인게, 같은 바다라는 상징을 이렇게 다양하게 사용한 게 진짜 너무 좋았습니다. 특히 파도가 소년을 닮은 공간이면서 갈매기를 죽인 공간이라는 것이 소년의 죄책감을 너무 잘 표현했다고 생각해서 그 부분이 최애입니다. 그리고 톱니는 뭔가 이 모든 인물들을 연결시켜주는 한빛을 상징하는 것 같은게 잘 모르겠네요. 다시 한 번 너무 재밌게 읽었습니다.
저번 바람잡이때는 피차일반의 소녀와 차오늘의 시선이었다면 이번에는 25도의 소년의 시선으로 이야기를 풀어진게 굉장희 특이하게 느껴졌습니다.
원작인 이방인에서는 뫼르소가 타인의
이 소설에서 소년도 표지판의 "56번 거리"라는 글자가 희미하게 보이는 길을 외롭거나 힘든 날에는 계속 걸었다는 구절이 있는데.
저는 이 거리라는게 꿈 이라고 생각 했습다.
하지만 갈매기를 구하지 못한 후회와 사람들의 소년에 대한 부조리와 시선 그리고 손가락질 등으로 결국 꿈을 외면하게 돼었다 라고 생각합니다.
소설에서도 정차에 시간에 들어간 이후 56번 거리를 그냥 지나 쳤다는 구절에서 원래는 꿈을 향해 나아갔지만.. 결국 꿈을 잃고 꿈을 외면하게 돼었다.. 라고 생각 했습니다.
또한 소년은 정차의 시간 이후 자신을 비난하던 사람들과 같은 사람이 돼었다..라고 생각 합니다.
소년 또한 차오늘과 소녀처럼 30분으로 소중한걸 잃고 꿈을 잃고 좌절했지만 다시 꿈을 붙잡은 두명과는 달리 소년은 둘을 이해할수 없는 듯이 똑같이 방해하려 했습니다.
하지만 마지막에 한빛이 소년의 등을 바라봤다는 연출로 보아 나중에 소년도 오늘처럼 한빛에게 구원받지 않을까? 라고 생각했습니다.
뭔가 소년의 모습이 어찌보면 저의 모습과도 비슷하다고 느꼈어요. 자신을 드러내지 못 하고, 남들의 평범에 맞추고, 남들의 시선에 맞추는 것. 요즘 사람들 대부분 그러고 살잖아요. 아마 소년은 갈매기가 아니었더라도 언젠간 한번 억눌렀던 감정과 욕구가 터졌을거 같다고 생각을 해요. 평범을 위한 노력으로 인해 얻은 당연하다고 믿었던 것의 상실이 트리거가 되면서 숨겨야했던 것, 평범해야한다고 믿었던것에 대한 의문과, 상실로 인한 무력감을 얻어 지금의 모습이 나타났다고 생각을 하는데 저도 한때는 너무 평범을 원해서 오히려 힘들때가 있었거든요. 톱니를 뽑아서 멈추게한것도 비슷한 맥락이라고 생각을 했어요. 시간을 멈추게 하면 평범에 맞출 필요도 없을거고, 후회도 늦음도 없을테니까 상실감을 더는 느끼지 않을거라는 믿음에서 왔다고 생각을 했어요. 하지만 그 속에서 오히려 허전함을 느낀건, 자신이 진정 원했던게 시간이 멈춘 세상이 아니라, 후회했던 시간으로 돌아가는 거였다는걸 깨달아서라고 생각을 했어요. 시간을 지금 멈춰도 죽은 갈매기는 돌아오지 않을테니까요. 그리고 마지막에 늦어버린 시간속에서 두 사람을 마주했을때 두려우면서도 붙들고 싶었던 이유는 자신과 같은 감정을
갖고 같은 생각을 하고 있을거라고 굳게 믿었기 때문이었다고 생각을 해요. 그래서 자신과 달리 늦어버린 것들을 붙잡으려고 노력하고, 포기하지 않고, 희망을 마지막까지 붙들려는 그들이. 자신과 다른 그들이 자신을 틀렸다고 정의하는 거 같았을수도, 아님 단순히 자신은 이렇게 힘든데 저 둘은 일어나서 나아간다는 점에 대해 질투였을수도 있겠죠. 그래서 자신이 맞다는 걸 증명하기 위해 비뚤어진 방식으로 증명을 했고, 그게 시간을 멈추는 방식이었다고 생각해요. 그럼에도 한 소녀는 소년에게 다가갔고, 소년은 어쩌면 마음 한켠에서는 자신에게 다가와주는 그 소년이 반가웠을수도 있을거 같아요. 끝의 끝자락에서 자신을 붙잡아주고 대화를 들어줄 한 사람일지도 모른다는 생각과 같이 말이에요.
세상 일은 어떻게 될지 모르고, 이미 결과를 알았을때에는 늦다는걸, 그리고 그렇기에 이 세상이, 하루하루가. 더욱 가치 있을 수 있다는걸 다시 생각해볼 수 있었던거 같아요. 좋은 소설 감사합니다.
사람들에게는 각자 원하는 미래와 꿈을 가지고 있지만, 현실에 부딪히거나 여러가지의 이유로 꿈을 포기하고 현실에 순응하며 살아가는 경우가 많습니다. 모든 것을 포기하고 평범한 삶을 살다가 다시 도전이라는 것을 생각할때 쯤이면 이미 시기를 놓치게 되는 상황들이 종종 발생하는데, 그 장치가 소설에서는 '갈매기'라고 생각했습니다. 그리고 이미 도전의 시기를 놓쳤지만, 끊임없이 도전하고 싶다는 욕구가 '톱니바퀴' 이고 톱니를 뽑는 행동을 함으로써 실패의 두려움에 맞선 하나의 용기를 보여줬다고 생각합니다. 그리고 그 해답의 길이 바로 '56번 거리' 라는 생각이 드네요.
이 소설은 시작해보지도 않고 실패를 걱정하는 사람들에게, 무엇이든 길은 존재하고 언제든 도전할 수 있다는 희망을 주는 메시지가 담겨있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늦었다고 생각할 때가 정말 늦은 것이 아닌, 새롭게 시작한다는 꿈과 희망을 우리 모두가 가졌으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