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楚昭王有疾,卜曰河為祟。王弗祭。大夫請祭諸郊,王曰三代命祀,祭不越望。江、漢、沮、漳,楚之望也。禍福之至,不是過乎 不穀雖不德,河非所獲罪也。遂不祭。
楚 昭王이 병에 걸리자 卜人이 말하였다. “河水의 神이 빌미가 되어 병에 걸린 것입니다.” 그런데도 昭王은 하수의 신에게 제사를 지내지 않았다. 그러자 대부들이 교외에서 제사 지낼 것을 청하였는데 昭王이 말하였다. “三代 때 王命으로 규정한 제사에는 望祭의 범위를 넘어서 제사 지내지 않았다. 長江, 漢水, 沮水, 漳水는 초나라가 望祭를 지내는 곳이다. 그러므로 禍福이 오는 것도 이곳을 벗어나지 않을 것이다. 내가 비록 不德하지만 하수의 신에게 죄를 얻지는 않았을 것이다.” 끝내 제사를 지내지 않았다.
▶卜점 복. 祟빌미(재앙이나 탈 따위가 생기는 원인) 수, 빌미를 내리다. 郊들 교. 祀제사 사. 沮막을 저. 漳강 이름 장. ※卜人: 占치는 일을 職業으로 하는 사람.
▶楚昭王: 楚平王의 태자로, 伍子胥의 공격을 받아 나라가 거의 망할 상황에서 申包胥(신포서)의 노력에 힘입어 초나라를 중흥시킨 임금이다. ※申包胥: 楚나라 昭王 때 大夫를 지냈다. 伍子胥와 친했다. 史記 伍子胥列傳에 다음의 이야기가 있다. 오자서가 부친과 형이 평왕에게 억울하게 살해당하고 도주 중 吳나라로 달아나면서 신포서에게, “나는 반드시 초나라를 멸망시키겠다.”고 하자, “그대(오자서)는 분명 멸망시키겠지만, 내가 다시 부활시키겠다.” 고 대답했다. 소왕 10년 오자서의 계략과 부국강병된 오나라가 초나라를 침략해 수도 郢(영)을 함락하는 등 나라의 운명이 위태롭게 되자, 그가 秦나라에 들어가 진 哀公에게 구원을 요청하면서 7일 동안 먹지도 마시지도 않고 울면서 초나라의 절박한 상황을 호소했다. 이에 애공이 그의 정성에 감동해서 구원병을 보내 초나라를 도왔다. 귀국하자 소왕이 불러 포상하려고 했지만, 신포서는 초나라에 있는 선조의 무덤을 지키지 못하였다고 하여 거절했다.
▶望祭: 고대 山川에 제사 지낼 때는 멀리 바라보이는 곳까지 제사를 지냈기 때문에, 望이라고 함. 먼 곳에서 祖上의 무덤이 있는 쪽을 바라보고 지내는 祭祀.
▶江漢沮漳: 楚나라 경내에 있는 네 곳의 물 이름. 江은 長江(揚子江)을 가리키며, 중국을 동서로 가르는 최대 하천. 漢은 漢水로, 장강에 합류하는 또 다른 큰 강. 沮는 沮水로 중국 중부 내륙에서 발원해 장강으로 흘러 듦. 漳은 漳水로 주로 長江 하류 지역을 지칭.
▶不穀: 백성을 잘 돌보지 못하여 곡식보다 못함을 나타내는 말로, 寡人과 같은 의미. 주로 왕이나 제후가 스스로 겸손하게 칭하는 말로, 덕이 부족하다. 또는 선하지 않다는 의미의 謙稱(겸칭)임
孔子曰楚昭王知大道矣,其不失國也宜哉 夏書曰 維彼陶唐,率彼天常,在此冀方。今失其行,亂其紀綱,乃滅而亡。 又曰 允出玆在玆,由己率常可矣。
공자가 이에 대해 말하였다. “楚 昭王은 大道를 알았으니, 나라를 잃지 않은 것이 당연하다. 夏書에 ‘저 陶唐(堯임금)으로부터 하늘의 常道를 따라서 이 冀州 지방을 소유하였는데, 이제 그 도리를 잃어 기강을 어지럽히니, 드디어 멸망하게 되었구나!’라고 하였고, 또 ‘진실로 이렇게 하면 여기에 있게 된다.’라고 하였다. 그러므로 자신의 마음으로 말미암아 常道를 따르는 것이 옳다.”
▶宜마땅 의. 冀바랄 기. 允맏 윤. 玆이 자
▶尚書(書經) 夏書 五子之歌 其三에, 惟彼陶唐,有此冀方。今失厥道,亂其紀綱,乃厎滅亡(오직 저 도당만이 이 冀州를 가졌는데, 이제 그 常道를 잃고 기강이 어지러우니 곧 멸망할 것이다) 厎숫돌 지, 부들, 갈다(표면을 매끄럽게 하기 위하여 다른 물건에 대고 문지르다) / 이를 저
衛孔文子使太叔疾出其妻,而以其女妻之。疾誘其初妻之娣,為之立宮 與文子女,加二妻之禮。文子怒,將攻之。孔子舍璩伯玉之家,文子就而訪焉。孔子曰簠簋之事,則嘗聞學之矣。兵甲之事,未之聞也。
衛나라 孔文子가 太叔疾로 하여금 아내를 내쫓게 하고, 그(孔文子)의 딸을 아내로 삼게 하였다. 그러자 太叔疾이 처음 (내쫓은) 아내의 동생을 유혹하여 집을 지어주고, 孔文子의 딸과 함께 두 명을 아내처럼 대우하였다. 孔文子가 화가 나서 太叔疾을 공격하려고 하였다. 이때 공자가 璩伯玉(거백옥)의 집에 머물고 있었는데, 孔文子가 공자를 찾아가서 묻자, 공자가 말하였다. “簠簋(제사)에 관한 일은, 듣고 배운 적이 있지만, 兵甲(전쟁)에 관한 일은, 듣지 못했습니다.”
▶娣여동생 제. 璩옥고리 거. 就나아갈 취. 訪찾을 방. 簠제기이름 보. 簋제기이름 궤. 簠簋: 祭享 때, 기장과 피를 담는 그릇. 네모난 簠와 둥근 簋가 한 벌을 이룬다.
▶孔文子는 衛나라 대부 孔圉이다. 論語 公冶長에서 子貢이 孔文子가 어찌하여 文이라는 시호를 받았는지 묻자, 敏而好學 不恥下問 是以謂之文也(明敏하면서도 배우기를 좋아하고, 아랫사람에게 묻기를 부끄러워하지 않았다. 이 때문에 文이라고 시호한 것이다) 라고 한 공자의 말이 보인다. 璩伯玉은 蘧伯玉이라고도 한다. 衛나라 대부로 이름은 瑗이다. 공자가 위나라에 갔을 때 그의 집에 머문 적이 있었는데, 공자가 노나라로 돌아가자, 거백옥이 使者를 보내왔으므로 공자가 거백옥의 안부를 묻는 내용이 論語 憲問에 보인다. 아마도 이때인 듯하다. 이와 비슷한 내용이 論語 衛靈公에도 보인다. 衛 靈公이 공자에게 陣法에 대해 묻자, 공자가 俎豆之事 則嘗聞之矣 軍旅之事 未之學也(俎豆(祭器)에 대한 일은 일찍이 들었지만, 군대에 관한 일은 배우지 못하였습니다) 라고 하고, 다음날 위나라를 떠난 일이 있었다. 圉마부 어, 감옥, 마구간. 冶불릴 야. 敏재빠를 민. 恥부끄러워할 치. 瑗도리옥 원, 佩玉(패옥). 蘧풀이름 거. 俎도마 조. 旅나그네 려, 군사, 무리
退而命駕而行,曰鳥則擇木,木豈能擇鳥乎 文子遽自止之,曰圉也豈敢度其私哉 亦訪衛國之難也。將止,會季康子問冉求之戰,冉求既對之,又曰夫子播之百姓,質諸鬼神而無憾,用之則有名。康子言於哀公,以幣迎孔子。曰人之於冉求,信之矣,將大用之。
물러나 수레를 준비하라고 명하고 떠나면서 말하였다. “새는 나무를 선택할 수 있지만, 나무가 어찌 새를 선택할 수 있겠는가?” 그러자 文子가 급히 만류하면서 말하였다. “제(圉)가 어찌 감히 개인적인 일을 도모하겠습니까? 역시 衛나라의 환난에 대해 묻는 것입니다.” 이 말을 듣고 공자가 머무르려고 하였다. 그런데 마침 季康子가 冉求에게 전쟁에 대해 묻자, 염구가 이에 대해 대답하고 나서 덧붙여 말하였다. “우리 선생님은 사람들 사이에서 명성이 두루 퍼졌고, 귀신에게 質正해 보아도 한스러울 것이 없을 정도이니, 등용하신다면 이름이 날 것입니다.” 계강자가 이 일을 哀公에게 이야기한 다음, 幣帛을 가지고 공자를 맞이하게 하면서 (哀公에게) 말하길, “사람들이 염구를 신임하니, 장차 그를 크게 등용하십시오!”
▶駕멍에 가, 타다. 擇가릴 택. 遽갑자기 거. 圉마부 어, 감옥, 마구간. 播뿌릴 파. 憾한할 감. 幣비단 폐, 禮物, 돈. 迎맞이할 영. 質正: 묻거나 따지거나 하여 바로잡음.
▶史記集解에 服虔의 注에, 鳥喩己 木以喩所之之國(새는 자신(공자)을 비유하고, 나무(木)는 자신이 속한 나라(國)를 비유한 것이다) 라고 하였다. 이 부분은 史記 孔子世家에, 會季康子逐公華公賓公林 以幣迎孔子 孔子歸魯(이때 季康子가 公華, 公賓, 公林을 내쫓고, 폐백으로 공자를 맞이하자, 공자가 노나라로 돌아갔다) 라고 하여 조금 더 자세하게 기록되어 있다. ※集解는 여러 학자의 해석을 모아 해설한 것으로, 服虔(복건) 외에도 徐廣, 譙周(조주), 宋均 등 다양한 학자의 주석이 있으며, 복건은 한나라 초기의 학자로, 史記 본문을 해석하며 다양한 典籍과 고사를 인용해 의미를 명확히 했다. 虔정성 건
齊陳恒弒其君𥳑公。孔子聞之,三日沐浴而適朝,告於哀公曰陳恒弒其君,請伐之。公弗許。三請,公曰魯為齊弱久矣。子之伐也,將若之何
齊나라 陳恒이 그 군주 簡公을 시해하였는데, 공자가 이 일을 듣고 3일 동안 목욕재계하고, 조정에 가서 哀公에게 아뢰었다. “陳恒이 그 군주를 시해하였으니, 그를 討伐하소서.” 애공이 허락하지 않았다. 공자가 세 차례 청하자, 애공이 물었다. “魯나라는 齊나라 때문에 약해진 지 오래되었습니다. 그대는 어떻게 토벌하려고 하십니까?”
▶恒항상 항, 늘. 弒윗사람 죽일 시. 沐머리 감을 목. 浴물로 몸을 씻을 욕. 伐칠 벌
▶陳恒은 陳成子로, 齊 簡公을 시해한 뒤에, 平公을 옹립하고는 스스로 재상이 되어, 公族 중에 강성한 자를 모두 죽이고, 제나라의 권력을 장악하였다.(史記 齊世家)
對曰陳恒弒其君,民之不與者半。以魯之眾,加齊之半,可剋也。公曰子告季氏。孔子辭,退而告人曰以吾從大夫之後,不敢不告也。
공자가 대답하였다. “陳恒이 그 군주를 시해하였으니, 백성 중에 편들지 않는 자가 반은 될 것입니다. 노나라의 많은 백성에다, 제나라 백성의 반을 보탠다면, 이길 수 있을 것입니다.” 그러자 애공이 말하였다. “그대는 季氏에게 고하십시오.” 공자가 사절하고 물러나 사람들에게 말하였다. “내가 大夫로 있었기 때문에, 감히 아뢰지 않을 수 없었다.”
▶剋이길 극
▶陳恒이 簡公을 시해한 일은 春秋左氏傳 哀公 14년 조와 論語 憲問에도 보이는데, 이 부분에 대해서 程子는 論語集註 憲問에서, 此非孔子之言 誠若此言 是以力 不以義也 若孔子之志 必將正名其罪 上告天子 下告方伯 而率與國以討之 至於所以勝齊者 孔子之餘事也 豈計魯人之衆寡哉(이 부분의 기록은 孔子의 말씀이 아니다. 만일 이 말과 같다면 이것은 힘으로 한 것이지, 義理로 한 것이 아니다. 공자의 뜻은, 반드시 장차 그 죄를 바로 지목하여 위로는 天子에게 아뢰고, 아래로는 方伯에게 말한 다음, 동맹국을 거느리고 토벌하려고 하셨을 것이니, 齊나라를 이길 수 있는 것에 대해서는, 공자의 餘事이다. 어찌 魯나라 사람이 많고 적음을 따졌겠는가?) 라고 하여 공자의 말이 아니라고 주장하였다. 餘事: 그다지 要緊(요긴)하지 않은 일.
子張問曰書云 高宗三年不言,言乃雍。 有諸 孔子曰胡為其不然也 古者天子崩,則世子委政於冢宰三年。成湯既歿,太甲聽於伊尹。武王既喪,成王聽於周公。其義一也。
子張이 물었다. “書經에 ‘高宗이 3년 동안 말하지 않았으나, 말하면 和樂하였다.’라고 하였는데 그러한 일이 있습니까?” 공자가 대답하였다. “어찌 그렇지 않겠는가. 예전에 천자가 돌아가시면, 世子가 冢宰에게 3년 동안 정사를 一任하였다. 成湯이 돌아가시자, 太甲이 伊尹에게 명령을 들었고, 武王이 돌아가시자, 成王이 周公에게 명령을 들었으니, 그 뜻은 똑같다.”
▶雍화할 옹. 諸어조사(語助辭) 저. 胡어찌 호, 턱 밑 살. 崩무너질 붕. 委맡길 위. 冢무덤 총, 맏(≒長), 우두머리, 거느리다. 宰재상 재. 冢宰: 吏曹判書를 달리 이르던 말.
▶書經 周書 無逸에 보인다. 雍은 禮記 檀弓 下에는 ‘讙’으로 되어 있다. 論語 憲問에도 이와 비슷한 내용이 보인다. 거기에 高宗이 居喪 중에 3년 동안 말하지 않은 이유에 대해 자장이 묻자, 공자가, 何必高宗 古之人皆然 君薨 百官總己 以聽於冢宰三年(어찌 반드시 高宗만 그러했겠는가. 옛사람들이 다 그러하였으니, 君主가 죽으면 百官들은 자기의 직책을 총괄하여 冢宰에게 3년 동안 명령을 들었다) 라고 하였는데, 朱熹(朱子)는 “百官들이 冢宰에게 명령을 들었기 때문에, 君主가 3년 동안 말하지 않을 수 있었던 것이다.”라고 풀이하였다. 伊尹은 殷나라의 어진 재상으로, 成湯이 죽은 뒤에, 그 손자 太甲이 無道하게 행동하자, 그를 3년 동안 桐宮(地名 이름)에 추방하였다가 다시 회개하자 맞아들이었다. 周公은 周 武王의 동생으로, 武王이 죽자 직접 왕위에 오르라는 주변의 유혹을 뿌리치고 어린 조카 成王을 보좌하여 나라를 잘 다스렸다.(書經 太甲 上, 史記 권35 管蔡世家) 讙시끄러울 환. 薨제후가 죽을 훙. 熹성할 희. 桐宮
衛孫桓子侵齊,遇敗焉。齊人乘之,新築大夫 仲叔于奚以其眾救桓子,桓子乃免。衛人以邑賞仲叔于奚,于奚辭,請曲懸之樂,繁纓以朝。許之,書在三官。
衛나라 孫桓子가 齊나라를 침략하는 도중에, 제나라 군대를 만나 싸워 패배하였다. 이때 제나라 사람이 틈을 타 공격하여, 新築의 大夫를 사로잡았다. 그러자 仲叔于奚가 그 군대를 거느리고 가서 桓子를 구하여, 환자가 이에 죽음을 면하게 되었다. 뒤에 위나라 사람이 중숙우해에게 고을을 상으로 주자, 우해가 사양하고 曲懸의 음악과 繁纓(반영)을 갖추고 조현할 수 있도록 청하였는데, 衛侯가 허락하고 이를 세 官府에 기록하게 하였다.
▶遇만날 우. 奚어찌 해. 懸매달 현. 繁뱃대끈 반 / 많을 번, 번성하다 / 흴 파. 纓갓끈 영. 繁纓: 제후만이 다는 말 장식으로, 양옆으로 늘어뜨리는 가슴걸이.
▶孫桓子는 孫良夫로 衛나라 卿이다. 孫林夫의 아버지이다.
▶新築大夫: 전쟁 중 새로 지어진 城의 관리자 또는 책임자
▶軒懸: 제후의 음악을 말한다. 懸은 縣과 통용된다. 周禮 春官 小胥에, 正樂縣之位 王宮縣 諸侯軒縣 卿大夫判縣 士特縣(악기를 배열하는 位次를 바로잡는데, 왕은 宮縣이고, 제후는 軒縣이고, 대부는 判縣이고, 士는 特縣이다) 라고 하였는데, 宮縣은 동서남북 사면에 악기를 배치하는 것이고, 軒縣은 동서북 삼면에 악기를 배치하는 것이고, 判縣은 동서 양면에 악기를 배치하는 것이고, 特縣은 동쪽 한 면만 악기를 배치하는 것이다.
▶繁纓은 春秋左氏傳 成公 2년 조 杜預 注에는, 馬飾 皆諸侯之服(말의 粧飾이다. 모두 諸侯의 복식이다) 라고 되어 있고, 通鑑節要 威烈王 23년 조의 釋義에는, 繁 馬鬣上飾 纓 馬膺前飾(繁은 말갈기 위의 장식이고, 纓은 말 가슴 앞의 장식이다) 라고 되어 있다. 鬣갈기 렵. 纓갓끈 영. 膺가슴 응
子路仕衛,見其政,以訪孔子。孔子曰惜也 不如多與之邑,唯器與名不可以假人。君之所司也,名以出信,信以守器,器以藏禮,禮以行義,義以生利,利以平民,政之大節也。若以假人,與人政也。政亡則國家從,不可止已。
이때 자로가 위나라에서 벼슬하고 있었는데, 이 일(政治)을 보고 공자를 찾아가서 묻자, 공자가 대답하였다. “애석하다! 고을을 많이 주는 것만 못하다. 器物과 名號만은 남에게 빌려주어서는 안 되니, 이는 임금이 주관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명호로써 백성의 信賴를 얻고, 신뢰를 바탕으로 기물을 지켜내며, 기물로써 거기에 담긴 禮를 표현하는 것이다. 예로써 義를 행하고, 義로써 이익을 내며, 이익으로 백성을 다스리는 법이니, 이는 정치의 큰 綱領이다. 만약 이것을 남에게 빌려준다면, 남에게 政權을 주는 것과 마찬가지다. 정권을 잃으면 국가도 따라서 망하게 되어 막을 수가 없는 것이다.”
▶仕벼슬할 사. 假거짓 가, 임시적, 빌다. 司맡을 사, 벼슬, 관리.
公父文伯之母紡績不解,文伯諫焉。其母曰古者王后親織玄紞。公侯之夫人,加之紘綖。卿之內子為大帶。命婦成祭服。列士之妻,加之以朝服。自庶士已下,各衣其夫。秋而戎事,烝而獻功,男女紡績,愆則有辟。聖王之制也。今我寡也,爾又在位。朝夕恪勤,猶恐亡先人之業,況有怠惰,其何以避辟 孔子聞之,曰弟子志之 季氏之婦,可謂不過矣。
公父文伯의 어머니가 길쌈을 게을리하지 않자, 공보문백이 (그만두라고) 諫하였다. 그러자 그 어머니가 말하였다. “옛날 王后는 몸소 검은 면류관 끈을 짜고, 公侯의 부인은 갓끈과 면류관의 덮개를 더 짜고, 卿의 內子는 큰 띠를 더 만들고, 命婦는 祭服을 완성하고, 列士(元士)의 妻는 朝服을 더 만들고, 庶士(下士)로부터 이하의 아내는 각기 그 남편의 옷을 해 입혔다. 가을에 軍事(武器를 준비)를 일으키고, 겨울에 烝祭를 지내고서 일한 功을 바치게 하여, 남녀가 공적을 바치고, 잘못이 있으면 형벌을 받았으니, 이것이 聖王의 제도였다. 지금 나는 寡婦이고 너는 또 높은 지위에 있으니, 朝夕으로 삼가고 근면하더라도 先人의 功業이 잊혀질까 염려되는데, 하물며 태만하면 어떻게 형벌을 피할 수 있겠는가?” 공자가 이 일을 듣고 말하였다. “제자들아! 기억하라! 계씨의 부인은 過失이 없다고 할 수 있느니라.”
▶紡길쌈(실을 내어 옷감을 짜는 모든 일을 통틀어 이르는 말) 방, (자은)실, 緋緞(비단), 깁다(떨어지거나 해어진 곳을 꿰매다), (실을)뽑다, 잣다(물레 따위로 섬유에서 실을 뽑다)실을 뽑다. 紞귀막이 끈 담. 紘갓끈 굉. 綖면류관 싸개 연. 戎되 융, 병장기. 烝김 오를 증. 辟피할 피 / 법 벽, 열다 / 비유할 비 / 그칠 미. 爾너 이. 恪정성 각. 怠게으를 태. 惰게으를 타
▶公父文伯(공보문백)은 魯나라 대부 季悼子의 손자이고 公父穆伯의 아들인 公父歜(촉)이다. 魯나라의 실권자였던 季康子의 사촌인데, 그의 어머니 敬姜은 賢母로 일컬어져서 列女傳에까지 올랐다. 悼슬퍼할 도. 歜화낼 촉. 姜성(姓) 강. ※季氏之婦: 公父氏는 季氏의 分家이므로, 公父文伯의 어머니를 季氏之婦라고 함.
▶秋而戎事: 다른 문헌에는 社而賦事(봄에 社祭를 지내고서, 일을 부여함)로 되어 있음. 戎事는 군사를 일으키는 일로 군사적 준비나 행사가 있었음을 나타냅니다. 가을철에 미리 준비를 철저히 하여 위기를 대비한다는 의미. 가을(秋)은 수확과 결실의 시기이지만, 동시에 겨울을 준비하는 시기이기도 하여, 미리 준비하는 지혜를 상징함.
樊遲問於孔子曰鮑牽事齊君,執政不撓,可謂忠矣,而君刖之。其為至闇乎 孔子曰古之士者,國有道則盡忠以輔之,無道則退身以避之。今鮑莊子食於淫亂之朝,不量主之明暗,以受大刑,是智之不如葵,葵猶能衛其足。
樊遲가 공자에게 물었다. “鮑牽이 제나라 임금을 섬길 때, 執政으로서 절개를 굽히지 않았으니, 충성스럽다고 할 수 있습니다. 그런데 임금이 그에게 刖刑을 내렸으니, 그 임금이 지극히 사리에 어두워서 그런 것입니까?” 공자가 대답하였다. “옛날 선비는 나라에 道가 있으면 충성을 다하여 임금을 보좌하였고, 나라에 道가 없으면 물러나 피하였다. 지금 鮑莊子(鮑牽)는 淫亂한 조정에서 녹을 먹고 있으면서, 군주가 사리에 밝은지 어두운지를 헤아리지 못하여, 刖刑이라는 큰 형벌을 받았다. 이는 그의 지혜가 해바라기만도 못한 것이다. 해바라기는 그래도 자신의 뿌리는 보호할 수 있느니라.”
▶樊울타리 번. 遲늦을 지. 鮑절인 어물 포. 牽끌 견. 撓어지러울 뇨. 刖발꿈치를 자를 월, 베다. 闇닫힌 문 암. 葵해바라기 규
▶鮑牽: 제나라의 대부로 鮑叔牙의 증손이다. ※鮑叔牙: 管仲(管鮑之交)과 깊은 우정으로 알려진 자로, 제나라 환공에게 관중을 추천해 제나라가 강대국으로 성장하는 데 중요한 역할을 했으며, 관중이 生我者父母, 知我者鮑叔牙(나를 낳아준 이는 부모이지만, 나를 진실로 알아준 사람은 포숙아이다) 라고 했다.
▶葵에 대해 春秋左傳 成公 17년 楊伯峻의 注에서, 古代에는 葵를 菜蔬(채소)로 사용하여, 시들기 전에 그 잎만을 따고 뿌리를 해치지 않아, 다시 연한 잎이 피어나게 하였다라고 하여, 葵를 해바라기가 아닌 채소의 한 종류로 보아야 본문의 내용과 부합한다고 하였다. 葵는 해바라기이지만, 베어서 다시 나온다는 것으로, 비유한 것이니, 葵菜(규채, 아욱)이라 보는 설도 있음.
季康子欲以一井田出法賦焉,使訪孔子。子曰丘弗識也。冉有三發,卒曰子為國老,待子而行,若之何子之不言
계강자가 하나의 井田을 만들어 놓고, 법으로 부세를 받고자 하였다. 그리고 사람을 시켜서 공자에게 자문하도록 하자, 공자가 말하였다. “나는 잘 알지 못한다.” 염유가 세 번이나 와서, 마침내 이렇게 물었다. “선생님께서 國老가 되셨기에, 계강자가 선생님의 말씀을 듣고 행하려 합니다. 만일 이와 같은데 선생님께서는 어찌 말씀을 해주지 않으십니까?”
▶訪찾을 방, 구하다, 문의하다. 冉나아갈 염. 國老: 領相職을 지낸 사람으로 나랏일에 顧問(고문) 格이 될 만한 人物. 감초(甘草).
孔子不對,而私於冉有曰求 汝來,汝弗聞乎 先王制土,籍田以力,而底其遠近 賦里以入,而量其有無 任力以夫,而議其老幼。
그러나 공자는 아무런 대답도 없었다. 그러고는 염유를 사사롭게 불러서 이렇게 말하였다. “求야! 이리 오너라. 너는 듣지 못하였느냐? 옛날 선왕이 토지를 制定할 때, 백성들의 힘에 따라서 토지를 등록하여, 그래서 멀고 가까움을 근거를 하였으며, 마을에 부세를 매기면서, 그 있고 없음의 양을 헤아렸으며, 농부의 힘에 맞게 일을 맡기고, 그 노인과 어린이에 따라 논의를 거쳐 제정하였다.
▶籍문서 적, 서적, 帳簿(장부)
於是鰥、寡、孤、疾、老者,有軍旅之出則徵之,無則已。其歲,收田一井,出獲秉缶米芻槀,不是過,先王以為之足,君子之行,必度於禮。施取其厚,事舉其中,歛從其薄。若是其已丘亦足矣。
이에 홀아비 과부 고아 병자 노인 등에게는, 특별한 軍旅의 의무일 때만 징수하고, 없으면 그것으로 그만이었다. 그 한 해의 수입은, 농토 1井에 대하여, 벼 몇 단과 몇 缶의 쌀과 가축 먹이의 꼴과 짚을 징수하고, 이를 초과하지 않았다. 이것은 선왕들이 백성이 풍족하기를 바랐던 것이다. 군자의 행실이란, 모름지기 禮를 헤아려 보아서, 그 넉넉함에서 취하고, 그 일은 중간에 맞추어 시키며, 그 부세는 넉넉하지 못한 이에게는 줄여 주었다. 만일 이렇게 하는 것으로 그친다면, 그저 丘의 조세법이면 충분한 것이다.
▶鰥환어 환, 홀아비. 徵부를 징, 거두어들이다. 獲얻을 획. 秉잡을 병. 缶장군 부, 容量의 단위. 芻꼴 추, 乾草. 槀마를 고. 度헤아릴 탁. 歛줄 감, 수여하다 / 거둘 렴, 同字 斂. 薄엷을 박
▶丘亦足矣에서 丘에 대해: 其賦法依周禮, 九夫爲井, 四井爲邑, 四邑爲丘, 丘十六井, 出戎馬一匹, 牛三頭. 四丘爲甸, 甸六十四井, 出長轂一乘, 戎馬四匹, 牛十三頭, 甲士三人, 步卒七十二人是也.(그 賦法은 주례에 따르면, 아홉 장정이 井이 되고, 4정이 邑이 되고, 4읍이 丘가 되고, 16井의 丘에서, 융마 1필과, 소 세 마리가 나온다. 4丘가 甸이 되고, 甸 64개가 井이 되며, 장곡(병거) 1승과, 융마 4필, 소 13마리, 갑사 3명, 보졸 72명을 낸다는 것이 이것이다) 甸경기(京畿) 전. 轂바퀴 곡, 수레
不度於禮,而貪冒無厭,則雖賦田,將有不足。且子孫若以行之而取法,則有周公之典在 若欲犯法,則苟行之,又何訪焉
예를 헤아리지 않고, 탐욕을 부려서 싫증 낼 줄 모를 정도로 무릅쓰고 있으니, 그렇다면 비록 賦田의 조세법을 쓴다고 할지라도, 장차 부족해질 것이다. 누구나 자손들이 만일 이러한 법을 취해서 행하고자 한다면, 周公이 만들어 놓은 법이 있으니, 그대로 시행하면 될 것이다. 그런데도 만일 법을 어기고자 한다면, 구차한 대로 하면 될 터인데, 또 어찌 다시 나를 찾아와 물어보는 것이냐?”
▶冒무릅쓸 모. 厭싫을 염. 苟진실로 구, 구차히도. 賦田: 농지에 부과하는 세금 또는 토지세를 뜻함.
子游問於孔子曰夫子之極言子產之惠也,可得聞乎 孔子曰謂在愛民而已矣。子游曰愛民謂之德教。何翅施惠哉
子遊가 공자에게 물었다. “선생님께서 子産이 은혜로운 사람이라고 극구 말씀하시니 그 이유를 들을 수 있겠습니까?” 공자가 대답하였다. “그 은혜가 백성을 사랑하는 데 있을 뿐이었다.” 자유가 물었다. “백성을 사랑하는 것을 德으로 가르친다고 하니, 이것이 어찌 은혜를 베푸는 것에 그치겠습니까?”
▶惠은혜 혜. 翅날개 시, 뿐, 다만, (날개를)펴다, (공중을)날다, 다만 ~뿐이다, 마치다, 끝내다. 施베풀 시
孔子曰夫子產者,猶眾人之母也。能食之,而不能教也。子游曰其事可言乎 孔子曰子產以所乘之車濟冬涉,是愛而無教也。
공자가 대답하였다. “자산이라는 사람은 백성들의 어머니와 같았다. 능히 먹여 주긴 하였지만 가르치지는 못하였다.” 자유가 물었다. “그 일에 대해 말씀해 주실 수 있겠습니까?” 공자가 대답하였다. “자산이 타고 다니는 수레로, 겨울에 물을 건너는 자들을 태워 건네준 것이 사랑만 있고, 가르침이 없다는 증거이다.”
▶涉건널 섭
▶자산이 鄭나라의 國政을 맡고 있을 때 자신이 타고 다니는 수레를 가지고, 溱水(진수)와 洧水(유수)에서 사람들을 건네준 일이 있었다. 孟子集註 離婁 下에서, 孟子가 이에 대해, 惠而不知爲政(은혜로우나 정치하는 법을 모르는 것이다) 라고 하였는데, 朱熹(주희, 朱子)는 惠 謂私恩小利 政則有公平正大之體 綱紀法度之施焉(惠는 사사로운 은혜와 작은 이익을 말하고, 政은 公平하고 正大한 체통과 紀綱‧法度의 施行이 있는 것이다) 라고 풀이하였다.
定公問於孔子曰二三大夫皆勸寡人,使隆敬於高年,何也 孔子對曰君之及此言也,將天下實賴之。豈唯魯哉 公曰何也 其義可得聞乎 孔子曰昔者,有虞氏貴德而尚齒,夏后氏貴爵而尚齒,殷人貴富而尚齒,周人貴親而尚齒。
定公이 공자에게 물었다. “여러 대부들이 모두 寡人에게 나이가 많은 사람을 공경하라고 권합니다. 어째서입니까?” 공자가 대답하였다. “임금께서 이런 말씀을 하시니, 장차 천하 사람들이 실로 恩澤을 입을 것입니다. 어찌 魯나라 뿐이겠습니까?” 정공이 물었다. “어째서입니까? 그 의미를 들을 수 있겠습니까?” 공자가 대답하였다. “옛날에 有虞氏(舜임금)는 德이 있는 사람을 귀하게 여기면서도 나이가 많은 사람을 높였고, 夏后氏(禹임금)는 爵位가 있는 사람을 귀하게 여기면서도 나이가 많은 사람을 높였으며, 殷人은 富貴한 사람을 귀하게 여기면서도 나이가 많은 사람을 높였고, 周人은 친한 사람을 귀하게 여기면서도 나이가 많은 사람을 높였습니다.
▶勸권할 권. 隆클 륭, 높이다. 賴힘입을 뢰, 의지. 唯오직 유. 虞헤아릴 우. 尚오히려 상, 더욱이, 또한, 반드시, 옛날. 齒이 치, 나이. 爵잔 작, 벼슬
虞、夏、殷、周,天下之上王也,未有遺年者焉,年者貴於天下久矣。次于事親,是故朝廷同爵而尚齒 七十杖於朝,君問則席 八十則不仕朝,君問則就之,而悌達乎朝廷矣。
虞, 夏, 殷, 周 시대에는 천하에 훌륭한 왕이 있어서, 나이 많은 사람을 버린 경우가 있지 않았습니다. 나이가 많은 사람이 천하에 귀하게 여겨진 지가 오래되었으니, 어버이를 섬기는 일에 버금갔던 것입니다. 이 때문에 조정에서 같은 작위일 때, 나이가 많은 사람을 높였으며, 70세가 되면 조정에서 지팡이를 짚고, 임금이 묻고자 하면 자리를 깔아 주었으며, 80세가 되면 조정에서 벼슬하지 않고, 임금이 묻고자 하면 그 집을 찾아갔으니, 공손한 도리가 조정에 두루 퍼졌기 때문입니다.
▶遺끼칠 유, 버리다. 杖지팡이 장. 悌공경할 제. 廷조정 정
▶禮記 王制에, 五十杖於家 六十杖於鄕 七十杖於國 八十杖於朝(50세가 되면 집안에서 지팡이를 짚고, 60세가 되면 鄕에서 지팡이를 짚고, 70세가 되면 나라에서 지팡이를 짚고, 80세가 되면 조정에서 지팡이를 짚는다) 라고 되어 있다.
▶不仕朝: 禮記 祭義에, 不俟朝(조회가 끝나기를 기다리지 않았다) 라고 되어 있다.
其行也,肩而不竝,不錯則隨。班白之老,不以其任於路,而悌達乎道路矣。居鄉以齒,而老窮不匱,強不犯弱,眾不暴寡,而悌達乎州巷矣。古之道,五十不為甸役,頒禽隆之長者,而悌達乎蒐狩矣
길을 갈 때에는 어깨를 나란히 하여 걷지 않으며, 조금 뒤처지게 걷거나 그렇지 않으면 따라가며, 斑白의 노인은 도로에서 짐을 지지 않았으니, 공손한 도리가 도로에 두루 퍼졌기 때문입니다. 鄕에 거처할 때는 나이 많은 사람을 존중하여 늙고 궁한 사람을 곤란하게 하지 않았으며, 강한 사람이 약한 사람을 犯하지 않았으며, 많은 사람이 적은 사람을 사납게 대하지 않았으니, 공손한 도리가 州巷에 두루 퍼졌기 때문입니다. 옛날의 道는 50세가 되면 임금이 사냥하는 일에 동원되거나 힘으로 하는 일을 하지 않았으며, 사냥한 짐승을 나누어 줄 때는 長者에게 후하게 주었으니, 공손한 도리가 蒐狩(사냥)에 두루 퍼졌기 때문입니다.
▶肩어깨 견. 竝아우를 병, 나란히 하다. 錯섞일 착. 隨따를 수. 班나눌 반, 얼룩. ※斑아롱질(아롱아롱한 점이나 무늬가 생기다) 반, 나누다, 얼룩진 무늬. 匱함(函) 궤, 삼태기, 箱子, 모자라다, 다하여 없어지다, 다하다, 缺乏(결핍)되다, 무너지다, 潰滅(궤멸). 巷거리 항. 頒나눌 반. 禽새 금. 蒐꼭두서니 수, 모으다. 狩사냥 수. ▶蒐狩(春蒐冬狩): 조선시대 왕이 계절별로 실시하던 군사 훈련 겸 사냥을 의미하며, 春蒐(춘수), 夏苗(하묘), 秋獮(추선), 冬狩 등으로 구분되었다. 苗싹 묘. 獮죽일 선, 가을 사냥 / 원숭이 미
▶不匱: 禮記 祭義에, 不遺(버리지 않았다) 라고 되어 있다.
軍旅什伍,同爵則尚齒,而悌達乎軍旅矣。夫聖人之教,孝悌發諸朝廷,行於道路,至于州巷,放於蒐狩,循于軍旅。則眾感以義,死之而弗敢犯。公曰善哉 寡人雖聞之,弗能成。
軍隊의 什伍에서 작위가 같으면 나이가 많은 사람을 높였으니, 공손한 도리가 군대에 두루 퍼졌기 때문입니다. 聖王의 가르침은 孝悌가 조정에서 일어나서, 도로에서 행해지고 州巷에 이르며, 사냥하는 데에 퍼지고 군대에서도 두루 행해졌습니다. 그래서 사람들이 감동하여 의리를 지키고 죽을지언정 감히 도리에 어긋나는 짓을 하지 않았던 것입니다.” 정공이 말하였다. “좋은 말씀입니다. 과인이 비록 듣기는 하였지만, 그 도리를 이루지는 못하겠습니다.”
▶什열사람 십 / 세간(집안 살림에 쓰는 온갖 가구, 물건) 집. 伍다섯 사람 오. 旅나그네 려, 軍士, 무리. 循좇을 순, 돌다
▶什伍: 군대의 편제 단위. 禮記集說大全 祭義 陳澔의 注에, 5人이 伍이고 2伍가 什이다. 라고 하였다.
▶州巷: 일반적으로 백성들이 사는 곳을 말함. 禮記集說大全 祭義 鄭氏 注에, 1鄕은 5州이고, 巷은 閭와 같다. 라고 하였다.
哀公問於孔子曰寡人聞東益不祥,信有之乎 孔子曰不祥有五,而東益不與焉。夫損人自益,身之不祥 棄老而取幼,家之不祥 釋賢而任不肖,國之不祥 老者不教,幼者不學,俗之不祥 聖人伏匿,愚者擅權,天下不祥。不祥有五,東益不與焉。
哀公이 공자에게 물었다. “과인이 듣기로, 동쪽으로 집을 늘리는 것은 상서롭지 못하다고 하던데 정말 그렇습니까?” 공자가 대답하였다. “상서롭지 못한 일이 다섯 가지가 있으니, 동쪽으로 집을 늘리는 것은 여기에 들지 않습니다. 타인에게 손해를 끼쳐 자신이 이득을 보는 것은, 자신에게 상서롭지 못한 일이고, 노인을 버리고 어린이를 돌보는 것은, 집안에 상서롭지 못한 일이고, 어진 사람을 가려 물리치고 무능한 사람을 들어 쓰는 것은, 나라에 상서롭지 못한 일이고, 老成한 사람이 가르치지 않고, 어린 사람이 배우지 않는 것은, 풍속에 상서롭지 못한 일이고, 聖明한 사람은 숨어 은거하고, 愚昧한 사람이 권력을 휘두르는 것은, 천하에 상서롭지 못한 일입니다. 이처럼 상서롭지 못한 일이 다섯 가지가 있으니, 동쪽으로 집을 늘리는 것은 여기에 들지 않습니다.”
▶祥상서로울 상. 與줄 여. 損덜 손. 棄버릴 기. 幼어릴 유. 釋풀 석, 풀리다, 내놓다, 내버리다, 쫓기다, 追放(추방)하다. 伏엎드릴 복. 匿숨을 닉. 愚어리석을 우. 擅멋대로 천
▶論衡 四諱篇에는, 애공이 서쪽으로 집을 늘리려 하자, 사관이 간쟁하여 그만두었다는 내용이 보인다. 郭鍾錫은 東益에 대해 俛宇先生文集 答朴會中에서, 東益은 마을 이름으로 동익이라는 마을에 상서롭지 못한 집이 있었다. 라고 풀이하였다. 俛宇先生(면우선생): 조선 말기 문인 郭鍾錫(1846~1919)으로, 자는 鳴遠, 호는 俛宇.
孔子適季孫,季孫之宰謁曰君使求假於田,將與之乎 季孫未言。孔子曰吾聞之,君取於臣,謂之取 與於臣,謂之賜。臣取於君,謂之假 與於君,謂之獻。
공자가 季孫에게 갔을 때, 계손의 家臣이 계손에게 다음과 같이 아뢰었다. “임금께서 사람을 시켜 田地를 빌려달라고 하는데, 빌려주어야 합니까?” 계손이 아무 말 하지 않자, 공자가 말하였다. “제가 듣기로 임금이 신하에게 取하는 것을 ‘취한다(取)’라고 하고, 신하에게 주는 것을 ‘하사한다(賜)’라고 하며, 신하가 임금에게 취하는 것을 ‘빌린다(假)’라고 하고, 임금에게 주는 것을 ‘바친다(獻)’라고 한다고 합니다.”
▶謁뵐 알, 아뢰다
▶田: 韓詩外傳 권5에는, 馬로 되어 있다.
季孫色然悟曰吾誠未達此義。遂命其宰曰自今已往,君有取,一切不得復言假也。
그러자 계손이 안색이 바뀌며, 깨우치고서 말하였다. “저는 진실로 이러한 뜻을 몰랐습니다.” 그리고 가신에게 이렇게 명하였다. “지금부터는 임금께서 취하시는 것이 있거든 다시는 ‘빌린다(假)’라고 일절 말하지 말라.”
▶悟깨달을 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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