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신양란의 여행 인문학 [신양란의 여행 인문학] (2) <꽁생원 포세이돈, 트로이를 멸망시키다> ♣ 웹진 《문예마루》(창간호 2025. 11) 문예마루 ・ 2025. 10. 26. 20:05 URL 복사 이웃추가 [신양란의 여행 인문학] (2) 꽁생원 포세이돈, 트로이를 멸망시키다 바티칸시국은 세계에서 제일 작은 나라이다. 면적이 고작 0.44㎢이니, 정말 작다. 그러나 그곳은 작은 거인이다. 재건축 비용을 충당하기 위해 발행한 면죄부가 종교개혁의 빌미가 되었을 정도로 웅장하고 화려한 성 베드로 대성당이 있고, ‘예배당’으로 불리는 종교 시설 중에서는 제일 유명하고 중요한 시스티나 예배당이 있다. 유럽의 3대 박물관 중 하나라고 해도 누구나 수긍할 수밖에 없는 바티칸박물관도 그곳에 있다. 그러니 그런 나라를 어찌 작다고 할 수 있겠는가. 오늘은 그 나라의 그 박물관에 있는 작품을 감상해 보자. 바로 ‘라오콘 군상’이다. ▲바티칸박물관 팔각정원에 소장된 ‘라오콘 군상’ 트로이의 사제였던 라오콘이 두 아들과 함께 거대한 바다뱀에 물려 죽어가는 순간을 새긴 대리석 조각상이다. 그리스 헬레니즘 시기의 걸작으로 알려져 있으며, 르네상스 시대의 조각 천재 미켈란젤로가 보고 좌절했다는 이야기가 전한다. 아마 그는 ‘나는 죽어도 저런 작품을 남길 수 없겠지.’ 하는 생각에 좌절했을 것이다. 그 유명한 작품을 딱 마주했을 때, 나는 라오콘의 표정에서 눈을 뗄 수 없었다. 죽음 쪽으로 끌려가는 인간의 고통과 두려움이 생생한 가운데, 어쩐지 억울한 듯한 표정도 엿보였다. ‘신이시여, 대체 내가 무슨 잘못을 했단 말입니까?’라고 호소하는 것만 같은 라오콘의 애절한 표정이 내내 내 마음을 안타깝게 했다. 그런데 알고 보니 그는 정말로 억울했다. ▲라오콘의 표정에는 고통과 두려움, 억울함 등이 복합적으로 담겨 있다. 라오콘은 바다뱀에 물려 죽었다. 바다뱀이 왜 바다뱀이겠는가? 바다에서 왔으니 바다뱀이지. 그럼 바다뱀은 누가 보냈을까. 당연히 바다의 신 포세이돈이 보냈다. 그렇다면 포세이돈은 라오콘에게 무슨 억하심정이 있어서 바다뱀을 보내 그를 죽인 것일까? 거기에는 이런 사연이 있다.
그 끔찍한 비극이 일어나기 한참 전에, 포세이돈과 아폴론이 트로이로 유배 온 적이 있었다. 죄명은 ‘제우스에 대한 항명’. 그때 트로이의 왕은 라오메돈이었는데, 약삭빠른 그는 두 신을 후하게 대접한다. 속으로 바라는 게 있어서였다. 인간에게 후한 대접을 받은 신들이 염치가 있지, 어떻게 그냥 말 수 있겠는가. “바라는 것이 있으면 말하라.”라고 하니, 라오메돈은 기다렸다는 듯이 냉큼 “누구도 함락시킬 수 없을 정도로 튼튼한 성벽을 쌓아주십시오.” 했다. 그러면서 “그리 해주시면 섭섭하지 않게 사례하겠습니다.” 했는데, 그 빈말은 덧붙이지 말아야 했다. 포세이돈과 아폴론은 기왕 약속한 일이니, 진짜로 누구도 함락시킬 수 없는 철옹성을 쌓아준다. 훗날 트로이 전쟁이 일어났을 때, 그리스 연합군이 십 년을 공격하고도 실패한 것은 그 때문이었다. 신들이 쌓은 성을 인간이 무너뜨릴 수 없었던 것이다. ▲트로이의 왕 라오메돈(가운데)의 요청을 받은 포세이돈(왼쪽)과 아폴론(오른쪽)은 누구도 무너뜨릴 수 없는 철옹성을 쌓아준다. 그게 트로이 성이다. 문제는 성이 완성된 뒤에 일어났다. 라오메돈이 사례를 거부한 것이다. 그동안 먹여주고 재워줬으면 되었지 무슨 사례를 따로 바라느냐는 논리였는데, 그럴 거였으면 애당초 약속을 하지 말았어야지. ▲포세이돈(삼지창을 든 노인)과 아폴론(월계관을 쓴 젊은이)이 약속한 사례를 요구하자, 라오메돈은 줄 돈이 없다며 시치미를 뗀다. 인간에게 농락당한 신들은 트로이를 떠나며 화풀이를 톡톡히 한다. 바다의 신 포세이돈은 해일을 보내 트로이 성을 쑥대밭으로 만들고, 아폴론은 전염병을 퍼뜨려 많은 사람의 목숨을 빼앗는다. 그러고 나서 아폴론은 그 일을 털어버리는데, 포세이돈은 달랐다. 마음속에 꽁한 앙심을 간직한 채, ‘언제든 반드시 뜨거운 맛을 보여주고야 말겠다.’고 다짐했다. ▲라오메돈에게 분노한 포세이돈과 아폴론은 그들의 방식으로 화풀이한 다음 트로이를 떠난다. 궁술의 신이기도 한 아폴론이 트로이 시민을 향해 화살을 쏘는 것은, 전염병이 신의 분노 때문에 하늘로부터 내려온다고 믿은 옛사람들의 생각을 반영한 것이다. 지금 아폴론은 전염병을 보내고 있다. 라오메돈이 죽은 뒤, 트로이의 왕위는 그의 아들 프리아모스에게 넘어간다. 그리고 프리아모스 재위기에 그 유명한 트로이 전쟁이 발발한다. 10년에 걸친 길고 지루한 전쟁 이야기는 생략하고, 라오콘이 등장하는 장면부터 살펴보자. 트로이의 사제였던 라오콘은 그리스 연합군이 두고 간 목마의 정체를 알아차린다. 그래서 시민들에게 목이 터져라 외친다. “저것을 당장 불태워버려야 한다. 안 그러면 트로이 성이 불바다가 될 것이다.” 트로이 시민들은 처음엔 무슨 좋은 전리품인가 하여 목마를 성안으로 들이려 했는데, 신전의 사제인 라오콘이 그렇게 강경하게 나오자 할 수 없이 그의 말을 따르려 한다. 그리하여 그리스 연합군의 마지막 승부수였던 목마 작전이 실패로 돌아가려는 찰나, 포세이돈이 나선다. 라오메돈에게 당한 모욕을 잊지 않고 있었던 포세이돈은 트로이 전쟁이 일어났을 때 그리스 연합군 편을 든다. 전쟁 막바지 오디세우스의 기막힌 목마 작전에 무릎을 탁 치며 ‘드디어 소원이 이루어지는구나.’ 기뻐하고 있는데, 난데없이 라오콘이란 놈이 나서서 방해하는 게 아닌가. 그놈의 입을 막아야 바라는 바를 이룰 수 있게 된 포세이돈은 바다뱀을 보낸다. 라오콘의 두 아들은 아버지를 보러 왔다가 애꿎게 죽고 만다.
절대로 목마를 성안으로 들이면 안 된다고 역설하던 라오콘이 느닷없이 바다에서 나온 뱀에 물려 죽는 것을 본 시민들은 무슨 생각을 했을까. 라오콘이 신의 뜻을 어겼기 때문에 벌을 받았다고 생각했고, 자신들이 살려면 한시바삐 목마를 성안으로 들여야 한다고 생각했다. 그들로서는 그렇게 생각할 수밖에 없었을 것이다. 그날 밤, 무슨 일이 일어났는지는 우리 모두 잘 알고 있다. 라오콘의 말대로, 트로이는 불바다가 되어 역사의 뒤안길로 사라졌다. ▲목마를 성안으로 들이는 트로이 시민들. 목마를 만든 것이 그리스 연합군의 꾀주머니인 오디세우스라면, 그것을 성안으로 들이도록 한 것은 포세이돈이었다. 자, 그러면 생각해 보자. 트로이는 누구 때문에 멸망했는가. 겁 없이 신들을 농락한 라오메돈의 책임도 있고, 천하절색 헬레네를 유혹해 트로이로 데려와 전쟁의 빌미를 만든 파리스에게도 책임이 있다. 그러나 가장 결정적인 역할은 포세이돈이 했다. 만약 그가 라오콘을 죽이지 않았다면 그리스 연합군의 목마는 불태워졌을 테고, 그랬으면 트로이 성은 절대로 함락되지 않았을 것이다. 그 성은 인간이 무너뜨릴 수 없는 철옹성이자 철벽이었으니까. 결국 성을 쌓아주고 사례를 받지 못한 일 때문에 끝까지 꽁한 포세이돈이 라오콘을 죽였으므로 트로이가 멸망한 것이다. 그러고 보면 신이 너무 쪼잔한 거 아닌가. 그런 내막을 알고 ‘라오콘 군상’을 보면, ‘대체 내가 무슨 잘못을 했다고.’ 하는 듯한 그의 억울한 표정이 이해가 간다. 솔직히 옛날에 라오메돈이 한 짓을 라오콘이 어떻게 알았겠어.
신양란 시인
신양란 시인 여행작가 인생 전반전을 대한민국의 국어 교사로 살 수 있었음에 감사하며 교단을 떠났다. 인생 후반전에는 하고 싶은 일, 즐겁고 행복한 일만 하면서 살 계획이다. 사람은 태어나는 순간 우주를 통째로 선물로 받는다고 생각한다. 너무 크고 넓어서 내가 받은 선물을 가늠도 못 하면서 살지만, 지구별만이라도 속속들이 다 살펴본 다음에 반납하고 싶다. 그렇게 세상을 떠돌아다니다가 알게 되는 흥미진진한 이야기들을 독자들과 나누며 사는 것이 여행 작가로서의 꿈이다. ■ 작가의 저서 https://search.shopping.naver.com/book/catalog/43030855619?cat_id=50005775&frm=PBOKPRO&query=%EB%84%A4%EC%9D%B4%EB%B2%84+%EB%8F%84%EC%84%9C.+%EC%8B%A0%EC%96%91%EB%9E%80&NaPm=ct%3Dmh7lvp7k%7Cci%3D714f35668feb9c673aa97ef615c2d7c98c2586e7%7Ctr%3Dboknx%7Csn%3D95694%7Chk%3Dbffe4c3e7110bd65bd66b7cd2aa65a9c856dfc28 여행자의 성당 공부 : 네이버 도서 네이버 도서 상세정보를 제공합니다. search.shopping.naver.com [출처] [신양란의 여행 인문학] (3) <아우구스투스 집안의 희한한 가족 관계> ♣ 웹진 《문예마루》제2호(2025. 12)|작성자 문예마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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