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026년05월 서울구치소 최고수 상담 및 교리 진행 ★
오쇼의 반야심경 The Heart Sutra>지성의 길 351~354p
갔다 갔다, 저 너머로 갔도다 - “아름다운 대화의 깊은 의미와 맥락“
▷ 일 시 : 불기2570(2026)년05월18일 (월) 오후1:00~4:00
▷ 장 소 : 서울구치소 소법당
지도법사: 보광-조철주
동 참: 진공거사,
2026년05월18일(월) 서울구치소
최고수 정기 자매 상담 및 교리를 진행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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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귀의에 이어
한글 반야심경 봉독을 하고,
상담 후 생활법문 및 선지식의 가르침을 전하였으며,
사홍서원을 끝으로 회향했다.
나무석가모니불, 나무석가모니불, 나무시아본사 석가모니불_()_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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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26년05월18일(월) -★-선지식< 라즈니쉬 오쇼의 반야심경 The Heart Sutra>지성의 길 351~354p
▶-아름다운 대화
타스마즈 즈나타브얌: 프라즈나 파라미타
마하 만트로 마하 비드야만트로
'누타라 만트로' 사마사마 만트라···
타스마즈 즈나타브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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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아름다운 대화의 깊은 의미와 맥락”
해당 구절은 산스크리트어로 불교의 지혜와 깨달음을 찬양하는 문구로서.
각 구절을 풀이하면 다음과 같다.
- 타스마즈 즈나타브얌: "그러므로 지혜를 알기 때문에"
- 프라즈나 파라미타: "지혜의 완성" 또는 "지혜의 바라밀(보시, 인내, 정진 등과 함께 달음으로 가는 여섯 덕목중 하나)"
- 마하 만트로: "위대한 진언" 또는 "위대한 주문"
- 마하 비드야만트로: "위대한 지식의 주문"
- 누타라 만트로: "최상의 진언" 또는 "최상의 주문"
- 사마사마 만트라: "평등한, 모두를 위한 주문
- 타스마즈 즈나타브얌···: "그러므로 지혜로써 (또 다시 강조)"
요약하면 이 문장은 불교에서 지혜의 완성을 찬미하며,
최고의 진언과 위대한 지식의 주문을 통해 깨달음을 추구함을 표현한 것이다.
“타스마즈 즈나타브얌” 으로 시작하여 지혜의 중요성을 거듭 강조하는 내용을 담고 있다.
해당 구절은 불교에서 지혜와 깨달음, 그리고 진언(만트라)의 중요성을 강조하는 문장이다.
▶깊은 의미와 맥락의 단계별 설명.
1. 지혜의 근본과 중요성
“타스마즈 즈나타브얌”은
그러므로 지혜를 알기 때문에”로, 모든 수행과 깨달음의 토대가 되는 지혜를 바탕으로 삼아야 함을 뜻한다. 이는 불교 수행에서 ‘반야’ 즉, ‘지혜’를 가장 근본적인 덕목으로 보며, 지혜 없이는 아무것도 완성될 수 없다는 진리를 강조한다.
2. 반야바라밀다(지혜의 완성)
“프라즈나 파라미타”는
‘완전한 지혜’ 또는 ‘지혜의 완성’을 뜻하고, 이를 통해 중생들이 무명에서 벗어나
진정한 깨달음의 경지에 이르는 길을 말하는데, 불교 수행의 핵심 목표 중 하나이다.
3. 만트라의 위대함과 기능
“마하 만트로 /마하 비드야만트로 /누타라 만트로” 는
‘위대한 진언, 위대한 지식의 주문, 최상의 주문’이라는 의미로, 깨달음과 지혜를 얻기 위한 영적 수단으로서 만트라가 갖는 신성하고 강력한 힘을 나타낸다.
이는 수행자가 진언을 통해 자신의 마음을 정화하고 집중력을 높이며 궁극의 깨달음을 추구하는 과정을 의미다.
4. 평등성과 포용성
“사마사마 만트라”는
‘평등한, 모두를 위한 주문’으로 해석할 수 있으며, 깨달음과 지혜가 특정 계층이나 개인에 국한되지 않고 모든 중생에게 평등하게 열려 있다는 불교의 보편적 가치관을 담고 있다.
5. 다시 한 번 지혜의 중요성 강조
마지막 “타스마즈 즈나타브얌···”으로 반복하며,
무엇보다도 지혜를 깨닫고 닦는 것이 모든 수행과 깨달음의 근본임을 다시 한 번 강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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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문구는 짧지만,
불교 수행과 철학에서 매우 중요한 핵심 개념들인 ‘지혜(반야)’, ‘완성(바라밀다)’,
그리고 ‘진언(만트라)’의 힘과 그 의미를 함축적으로 담고 있어, 영적 깨달음에 대한 깊은 경의를 표현하고 있으며. 특히 진언이 단순한 주문이 아닌, 수행자의 마음을 정화하고 지혜의 깨달음에 이르는 신성한 길임을 상징한다. *출처: 뤼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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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문 351~p
사티얌 아미티야트바트(satyam amithyativat).
이 '아미티야(amithya)' 라는 단어는 '미티야(mithya)' 라는 어원에서 나왔다.
mithya 는 허구를 의미하고, amithya 는 허구가 아니라는 뜻 이다.
이 mithya 는 'myth(신화)' 라는 영어 단어 속에도 존재한다. 허구를 의미한다.
이 'myth' 는 'mithya' 라는 어원에서 나왔다. 신화는 실재하지 않는 것이다.
또 하나의 영어 단어 'miss(빠뜨리다, 빗 맞추다)' 도 같은 어원에서 나왔다. 'misunderstanding (오해,착각)' 이라는 단어의 'mis' 도 'mithya' 에서 나왔다.
우리는 계속해서 진리를 놓친다. 허구에 집착하기 때문이다.
만일 거짓된 허구를 버린다면 우리는 결코 진리를 놓치지 않을 것이다.
이것이
'sin(죄)' 이라는 허구에 단어의 어원적 의미이다. 352
sin' 은 과녁을 빗나가는 것을 의미한다. 허구에 집착할 때마다 그대는 죄를 저지른다. 진리라는 과녁을 놓치기 때문이다
그대는 신(神)이라는 관념에 집착한다. 그러나 이 관념은 허구이다
모든 관념이 허구이다. 그대는 신에 대한 특정한 관념에 매달리는데,
이것이 그대를 막는 장애물이다.
붓다는 이 만트라가 그대의 장애물을 제거해줄 것이라고 말한다.
이 만트라는 그대에게 무(無)를 줄 것이다.
이무(無)안에 진리가 떠오른다. 아무 걸림돌도 없기 때문이다.
무(無)는 더 이상 장애물이 없는 상태를 의미한다. 모든 거짓된 관념이 떨어져 나간 상태다.
무(無)안에서 그대는 텅 빈 공(空)이다. 활짝 열린 상태로 모든 것을 받아들인다.
그대는 벌거벗은 알몸이 된다. 이것이 진리가 찾아오는 유일한 길이다.
그때에는 아무것도 잘못될 수 없다
반야바라밀다에 의해 이 진언이 설해졌다.
붓다는 말한다.
"나는 그 안에 최후의 것. 궁극적인 것을 채워 넣었다.
거기에 더 이상 덧붙일 것은 없다 그것을 더 났게 개랑할 가능성은 전혀 없다'
나 또한 그것을 더 좋게 개선할 가능성은 없다고 말한다.
무(無)가 가장 위대한 만트라다.
무(無) 안으로 들어갈 수 있다면 그 외에는 아무것도 필요치 않다.
이것이 반아심경이 전하는 메시지 전부이다
만트라는 이처럼 되어 있다
이제 붓다는 이 반야심경 전체를,
이 대화 전체, 그의 메시지 전체를 단 몇마디로 응축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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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트라는 이처럼 되어 있다. 353
갔다. 갔다, 저 너머로 갔도다, 완전히 넘어갔도다.
오, 위대한 깨달음이여, 모두 기뻐할지어다.
붓다는 '갔다(gone)' 라는 말을 네 번이나 사용하고 있다.
광물권, 생물권, 정신권, 그리스도권이라는 네 단계에 대해 ‘
갔다' 라는 말을 사용 하고 있는 것이다.
첫 번째 '갔다' 는 물질로부터 떠났다, 육체로부터 떠났다, 눈에 보이는 것으로부터 떠났다, 만질 수 있는 것으로부터 떠났다.
붓다는
두 번째로 '갔다' 라는 말을 사용한다. 삶으로부터, 이 삶과 죽음의 수레바퀴로부터 떠났다.
그리고 '저 너머로 갔도다' 라는 말에서 그는 세 번 째로 '갔다' 는 말을 사용한다.
마음, 사념, 생각, 자아, 에고를 넘어갔다.
'완전히 넘어갔도다' 는 말에서 네 번째 '갔다' 가 나온다.
이제 저너 머에 있는 것, 그리스도 권마저 넘어갔다. 창조되지 않은 세계로 들어갔다.
삶의 원(圓)이 완성되었다.
이것이 '오메가 포인트(omega point)' 이다. 또한 이것은 알파(alpha)이기도 하다.
그대는 여러 책이나 사원에서 뱀이 제 입에 꼬리를 물고 있는 상징을 보았을 것이다. 이것이 바로 그 상징이다.
갔다, 갔다, 저 너머로 갔도다, 완전히 넘어갔도다.
이제 다시 집으로 돌아왔다. ;
오, 위대한 깨달음이여! 354
사토리(satori)! 삼매! 이것이 깨달음이다. 이것이 불성(buddhahood) 이다.
모두 기뻐할지어다!
할렐루야! 아니타(Aneeta)에게 물어보라.
그녀는 할렐루야 '를 계속 ,노래 부르고 있다.
모든 것이 사라지고 오직 순수한 무(無)만 남았을 때, 이것이 할레루야의 상태다.
이것이 은총(benediction)이다. 이것이 모든 사람이 추구하는 엑스터시(ecstasy)의 상태다.
옳은 길을 가든 그른 길을 가든 모든 사람이 이 엑스터시의 상태를 추구하고 있다.
그대는 붓다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아직 붓다가 아니다.
이것이 딜레마(dilemma)이며 역설이다.
그대는 붓다가 될 운명인데 이 운명을 놓치고 있다.
이 반야심경이 다리를 놓아준다.
이 경전은 그대에게 운명 지워져 있는 그것이 되도록 그대를 도와준다.
이 경전은 그대로 하여금 자신 의 존재를 성취하도록 돕는다. 명심하라.
이 경전은
수세기 동안 중국, 한국, 태국, 일본에서 행해지는 것처럼
단순히 독송(讀誦)하기 위한 것이 아니다.
그들은 '아제 아제 바라아제 모지 사바하' 를 계속 독송한다.
그러나
이 만트라가 단순히 반복적인 독송에 끝나서는 안된다.
이 만트라는 깊이 이해되어야 하는 것이다.
그대의 존재 자체가 이 만트라가 되어야 한다.
모든 이름과 형상을 넘어서 계속 가라.
모든 아이덴티티(identity)와 한계를 넘어서 계속 가라.
더욱 더 거대하고 광활한 존재가 되라,
저 하늘조차 그대를 제한하지 못한다.
가라, 끝없이 가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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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문출처:오쇼라즈니쉬 강의(손민규 옮김)『반야심경』초판2쇄;서울:태일출판사,200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