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1편 소요유: 자유롭고 한가하게 노닐다
5-1 견오1)가 연숙2)에게 물었다. “내가 접여3)에게서 어떤 이야기를 들었는데, 이야기가 거창하긴 하나 사리에 합당함이 전혀 없더니 더욱더 확대되기만 하였네. 나는 그 이야기에 놀라고 두려웠는데, 마치 은하수처럼 끝이 없었네. 현실과 크게 동떨어져 사람들의 일반적 정서와는 거리가 멀었으니, 세상에 그런 사람이 있을 수 있겠는가?”
2 연숙이 되물었다. “그의 이야기는 어떤 내용인가?”
3 견오가 대답했다. “막고야산4)에 신인(神人)들이 사는데, 살결이 색은 눈 같고 부드럽기는 처녀 같으며, 오곡5)은 전혀 먹지 않는 대신 바람을 들이키고 이슬을 마시며, 구름을 탄 채 나는 용을 몰면서 사해 밖에서 노닌다네.6)
4 또 그들이 신묘한 정기를 응집하면, 만물이 손상되거나 질병에 걸리지 않으며 그 해의 곡식이 풍성하게 익는다고 하네. 나는 이래서 그의 이야기가 상식에서 벗어나므로 믿지 않네.”
5 연숙이 말했다. “그렇겠군. 눈먼 사람은 아름다운 빛깔을 볼 수 없고, 귀먹은 사람은 아름다운 음악을 들을 수 없는 법이네. 어찌 육체에만 눈먼 사람과 귀먹은 사람이 있겠는가? 앎에도 그런 사람이 있으니, 이 말은 바로 자네를 두고 하는 말일세.7)
6 이 신인들과 이들의 덕은 장차 만물을 자연스레 뒤섞어 하나로 만들 수도 있지만, 세상 사람들이 그들에게 천하를 다스려 달라고 해도 누가 수고스럽게 천하를 다스리는 일을 하려 하겠는가?
7 이 신인들은 그 어느 것도 해칠 수 없으니, 홍수가 나서 하늘까지 닿아도 물에 빠지지 않고, 크게 가물어 쇠와 돌이 녹아 흐르고 흙과 산이 타도 불에 타지 않는다네.
8 그들은 먼지나 때나 쭉정이나 겨를 가지고도 요 임금과 순 임금 같은 자를 만들 수 있으니, 누가 세상일 따위를 기꺼이 하려 하겠는가?8) 9 어떤 송나라9) 사람이 장보관10)을 장만하여 팔려고 월나라11)로 갔더니, 월나라 사람들은 모두 머리를 짧게 깎고 문신을 하고 있어 장보관을 사용할 일이 없었다네.12) 10 또 요 임금은 천하의 백성들을 잘 다스려 나라 안의 정치를 안정시킨 후, 분수12)의 북쪽 막고야산으로 가서 이 네 신인들을 만나보고 돌아와서는 정신이 멍해져서 그만 자신이 다스리는 천하를 잊고 말았다네.”13)
주1) 견오(肩吾): 공자와 동시대의 현인<<장자>의 다른 곳에도 나오나 허구의 인물임(임희일)>
주2) 연숙(連叔): 공자와 동시대의 현인<진(秦)나라 이전 시기의 문헌에 여기에 딱 한 번 등장하므로 허구의 인물임(임희일)>
주3) 접여(接輿): 공자와 동시대의 현인<논어 제18편 미자 5장에 공자를 비판하는 초나라의 광자(狂者: 도가 계열의 은자)로 나옴. 여기선 허구적으로 차용되었음>
주4) 막고야산[藐姑射之山]: ‘아득히 먼 고야산’이라 옮기기도 하고, 판본에 따라선 ‘묘고야산(妙姑射之山)’이라 하기도 함. 어쨌든 장자가 설정한 상상 속의 산이다.
주5) 오곡(五穀): 벼[稻], 찰기장[黍], 메기장[稷], 보리[麥], 콩[菽]의 다섯 가지 곡식 또는 곡식의 총칭
주6) “‘구름을 탄 채 나는 용을 몲[乘雲氣, 御飛龍]’은 세계를 그 바탕에서 지배하고 있는 것을 말하고, ‘사해의 밖에서 노님[遊乎四海之外]’은 그것이 목적을 의식하고 추구한 것이 아닌, 최후의 궁극적인 행위로서 세계로부터 자유롭게 초월하여 노님을 나타낸다.”(이케다 토모히사)
주7) 이 말은 바로 자네를 두고 하는 말일세[是其言也, 猶時女也]: 이 구절은 “이 말은 지금의 자네에게 딱 들어맞는 말일세.”로 옮기기도 한다. 그리고 “이 말은[是其言]”은 바로 앞에 나온 “앎에도 그런 사람이 있다.” 즉 “앎에도 눈먼 사람과 귀먹은 사람이 있다.”를 가리킨다.
주8) 유가에서 성인으로 받드는 요순도 신인과 비교하면 그의 몸의 때처럼 하찮은 존재로 묘사하고 있다.
주9) 송나라[宋]: 주나라 초기에 상나라 마지막 왕 주왕(紂王)의 서형(庶兄)인 미자(微子) 계(啓)가 처음으로 책봉된 나라. 지금의 하남성(河南省) 상구현(商丘縣)에 도읍하였고, BC 286년에 제‧초‧위(魏)에게 멸망당했다.
주10) 장보관[章甫]: 상나라 시대의 화려한 모자. 송나라가 상나라의 후예였으므로, 꼭 옛 모양 그대로는 아닐지라도 장보관이 여전히 사용되고 있었다.
주11) 월나라[越]: 춘추시대에 장강 이남의 원주민이 세운 나라. 절강성(浙江省)의 회계(會稽)에 도읍하였으며, BC 306년경 초나라에게 멸망당했다.
주12) 이 구절에선 송나라 사람을 어리석은 사람(초월적 자유와 평등의 세계를 이해하지 못하는 평범한 상식인이자 문명인으로서 당시의 유가)으로 풍자하는 것인가(성헌영, 임희일 등 전통적 견해), 아니면 월나라 사람들을 어리석은 사람으로 풍자하는 것인가(박세당)에 따라 이해가 달라진다. 전자에 따르면, 송나라 사람이 장보관(문명과 차별의 상징)을 안 쓰고도 단발머리에 몸에 문신을 한 채(무위자연과 개인적 자유와 평등의 상징) 평화롭게 잘사는 월나라 사람들에게 어리석게도 쓸데없는 장사를 시도한 셈이다. 후자에 따르면, 월나라 사람들이 단발머리에 몸에 문신을 한 채 야만적으로 살면서(눈먼 사람과 귀먹은 사람의 상징) 송나라 사람의 고귀한 장보관(무위자연의 지극한 덕의 상징)을 어리석게도 사지 않은 셈이다. 둘 다 가능한 해석이나, 장자의 비유적인 측면에서 보면 역시 전자가 더 자연스럽다 하겠다.
주13) 분수(汾水): 요 임금이 도읍을 세웠다는 산서성(山西省)의 평양(平陽) 부근을 흐르는 강
주14) 9절 이하를 연숙의 말이 아닌 장자의 진술로 보기도 하나, 10절에도 계속 막고야산과 신인들이 등장하므로 연숙의 말이 계속 이어지는 것으로 보는 것이 좋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