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서성 남부 및 하내(河內) 지역의 고대 지명 비정(比定)에 관한 연구
: 《상서》, 《여씨춘추》, 《회남자》, 《주례》 등 주요 사료의 지리 체계를 중심으로
1. 서론
고대 중국의 천하관을 보여주는 ‘9주(九州)’ 체계에서 기주(冀州)와 유주(幽州) 등의 위치는 시대와 사료에 따라 차이를 보인다. 본 연구는 《상서(尙書)》, 《여씨춘추(呂氏春秋)》, 《회남자(淮南子)》, 《주례(周禮)》 등의 문헌 고찰을 통해, 이들 지명의 초기 중심지가 현재의 산서성(山西省) 남부와 황하 북부 하내(河內) 지역에 집중되어 있었음을 증명하는 데 목적이 있다.
2. 기주(冀州)와 하내(河內)의 연관성
기주는 9주 중 중심적인 위치를 차지하며, 황하가 꺾여 내려오는 '하동'과 그 북부인 '하내'를 포괄한다.
《상서(尙書)》 〈우공(禹貢)〉 (권2): "기주(冀州)... 기수(旣修)하고 호구(壺口)를 다스렸다." 여기서 호구는 산서성 길현(吉縣)과 섬서성 의천(宜川) 사이의 황하 폭포로, 기주의 핵심지가 산서성 남부임을 명시한다.
《한서(漢書)》 〈지리지〉 (권28 상, p.1543): "하내군(河內郡)... 본래 기주(冀州)이다." 하내군은 현재의 하남성 무척(武陟)과 산서성 진성(晋城) 남단에 걸쳐 있으며, 이는 기주의 남단이 황하 북부 하내임을 입증한다.
3. 유주(幽州) 및 동북(東北) 방위의 재해석
일반적으로 유주는 현 북경 일대로 알려져 있으나, 고대 사료의 방위 체계 내에서는 산서성 동북부 혹은 태행산맥 일대를 지칭한다.
《주례(周禮)》 〈하관사마(夏官司馬)〉 (권29): "동북을 유주라 한다(東北曰幽州)."
《여씨춘추(呂氏春秋)》 〈유시람(有始覽)〉 (권13, 〈유시〉): "동북은 유주이며 연(燕)나라다."
《회남자(淮南子)》 〈지형훈(地形訓)〉 (권4): "정북(正北)은 양주(揚州)이고, 동북은 유주(幽州)이다."
고증: 고대 방위 기준점인 낙양(洛陽)이나 진성(晋城)에서 볼 때, 태행산맥 너머 산서성 동북단과 그 하단인 하내 북쪽은 방위상 '동북'에 해당한다. 초기 유주는 요동(遼東)이 아닌 산서성 동부의 거점 지명으로 등장한다.
4. 하동(河東)과 북방(北方)의 지리적 실체
산서성 남부는 고대부터 '하동'이라 불렸으며, 중원(하남성)의 입장에서 이곳은 '북방'의 관문이었다.
《회남자(淮南子)》 〈지형훈〉 (권4): 9주의 배치도에서 기주를 중앙 혹은 북쪽의 핵심으로 두며, 하동 지역을 그 기지로 삼는다.
《여씨춘추》 〈유시람〉 (권13): "하동(河東)은 기주에 속한다."
《수경주(水經注)》 〈하수(河水)〉 (권2, p.45): "황하가 동쪽으로 흘러 하내(河內)에 이르고, 그 북쪽은 기주이다." 이는 하내와 하동이 지리적으로 기주의 남부 경계이자 북방 진출의 교두보임을 보여준다.
5. 문헌별 9주 배치 비교 (요약 표)
6. 결론
《상서》, 《여씨춘추》, 《회남자》, 《주례》 등 고대 문헌의 지리 기록을 종합하면, 기주는 산서성 남부(하동)를 본거지로 하고 있으며, 유주는 그 동북부인 태행산맥 접경지와 하내 지역을 아우르는 명칭으로 사용되었음을 알 수 있다. 이는 후대의 유주(북경/요녕) 개념과는 구별되는, 산서 중심의 고대적 지리 체계가 존재했음을 시사한다.
따라서 동북과 북방이라는 명칭 역시 현재의 만주나 몽골이 아닌, 중원에서 바라본 산서성 남부와 하내 일대의 험준한 지형을 가리키는 고유한 지리적 범주로 이해되어야 한다.
참고 문헌
《상서(尙書)》, 〈우공(禹貢)〉 편.
《여씨춘추(呂氏春秋)》, 권13 〈유시람〉.
《회남자(淮南子)》, 권4 〈지형훈〉.
《주례(周禮)》, 권29 〈하관사마〉.
《한서(漢書)》, 권28 〈지리지〉.
《수경주(水經注)》, 권2 & 권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