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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卷之一
世祖朝俗樂譜 / 俗樂譜序
(1) 국악사전 ‘대악후보’ 해제: 세조조 속악보서를 제시하였다.
世祖朝俗樂譜 〈圓丘樂〉
(1) 『韓音資叢』 해제: 世祖 때 新制한 俗樂으로 악보는 없고 漢文 가사만 있음.
(2) 국악사전 ‘대악후보’ 해제: 세조조 속악보 〈원구악〉을 음악 없이 한문 가사만 실었다.
天順七年癸未冬十月 이하 글
(1) 두 해제에서 언급하지 않음.
(2) 『韓音資叢』 권20 『세종·세조실록악보』에는 ‘後序’라고 제목붙여 성경린이 전문을 해석하였다.
登歌之圖, 軒架之圖
(1) 『韓音資叢』 해제: 악기 편성도.
二舞舞考定
(1) 『韓音資叢』 해제: 宗廟 및 園丘.
(2) 국악사전 ‘대악후보’ 해제: 종묘와 원구의 춤을 정해 놓았다.
(3) 국악사전 ‘세조실록악보’ 해제: ‘이무무고정’ 이하 내용이 새로 제정한 교묘악의 전모를 담고 있다는 점에서 전체 악보의 핵심이라고 언급하며 신제 교묘악의 제도는 역대의 제도를 연구한 뒤 그것들을 참작하여 정해졌음을 밝혔다.
二舞郊廟通用
(1) 두 해제에서 언급하지 않음.
(2) 국악사전 ‘세조실록악보’ 항: 『통전』에 근거하여 〈보태평지무〉와 〈정대업지무〉를 교묘에 통용하도록 정하였다.
附 新制雅樂譜
(1) 『韓音資叢』 해제: 世祖 때의 園丘樂인 雅樂譜와 같음. 漢文 가사
(2) 국악사전 해제: 한문 가사 옆에 율명과 공척보를 제시.
用文武舞節次
二舞進退無樂
升降·飮福無樂
宗廟用黃鐘宮, 圜丘用夾鐘宮, 社稷用林鐘宮
樂舞佾數
冠帶·衣裳之制
(1) 위의 여섯 항목에 대하여 두 해제는 언급하지 않음.
(2) 국악사전 ‘세조실록악보’ 해제
➀ 用文武舞節次: 『文獻通考』의 기록에 근거하여 초헌에는 《보태평지무》를, 아·종헌에는 《정대업지무》를 추도록 정하였다.
➁ 二舞進退無樂: 기존의 ‘문무퇴・무무진’에는 헌가가 《舒安之樂》을 연주하였으나 신제 교묘에서는 二舞가 진퇴하는 사이에 음악을 연주하지 않도록 정하였다.
➂ 升降·飮福無樂: 「대명제사직장」의 기록에 근거하여 교묘의 승강과 음복에서 음악을 연주하지 않도록 정하였다.
➃ 宗廟用黃鐘宮, 圜丘用夾鐘宮, 社稷用林鐘宮: 『주례』의 기록에 근거하여 종묘에는 황종궁을, 원구에는 협종궁을, 사직에는 임종궁을 연주하도록 정하였다.
➄ 樂舞佾數: 기존 문무무의 六佾은 매 佾이 8인이었으나 세종대에 제정한 〈보태평〉과 〈정대업〉의 매 일佾이 6인이었던 것을 인습하여 매 佾의 人數를 6인으로 정하였다.
➅ 冠帶·衣裳之制: 齋郞, 武工, 樂生 등 교묘악 담당자들의 복식 일체를 상세히 기술하였다.
〈創守曲〉
(1) 『韓音資叢』 해제: 한글 가사.
(2) 국악사전 ‘대악후보’: 여기부터 정간보가 등장한다. 3·2·3·3·2·3정간의 6대강 16정간보이다.
(3) 국악사전 ‘세조실록악보’: 원구제 후 음복연에서 사용되었다고 추정되는 속악이다.
〈敬勤曲〉
(1) 『韓音資叢』 해제: 其一∼其九. 한문 가사에 토를 달음.
(2) 정간보 위 여백에 표기된 형식: 二其부터 九其까지.
2) 卷之二
《時用保太平譜》
(1) 『韓音資叢』 해제: 13곡, 한문 가사
〈迎神熙文〉 黃鐘宮 平調 · 九成
〈奠幣熙文〉 上同
〈進饌豐安之樂〉 上同
〈初獻熙文〉 獻官 引入 · 調律 上同
〈基命〉 〈歸仁〉 〈亨嘉〉 〈輯寧〉 〈隆化〉 〈顯美〉 〈龍光貞明〉 〈重光〉 〈大猷〉 〈繹成引出〉
(1) 국악사전 ‘대악후보’ 해제: 각 곡 제목 아래 변(變)/편(篇) 및 편명 해설이 기재(<기명>~<대유>)되어 있다. 이는 『세조실록』과 다른 점으로 『세조실록』의 종묘제례악보에는 변(變)의 기재와 편명 해설이 없다.
<표1> 대악후보 권2 소재 시용보태평보의 변(變)/편(篇) 및 편명
| 곡명 | 변(變)/편(篇) | 편명 해설 |
| <기명> | 第一變一篇 | 穆祖浮海從居幹東東北 民咸歸心 |
| <귀인> | 第二變一篇 | 翼祖自赤島還居德源從心 者如歸市 |
| <형가> | 第三變一篇 | 翼祖度祖繼世忠事麗主 寵嘉之 |
| <집녕> | 第四變一篇 | 雙城遷遠撫綏失宜民無告 流徙且盡及 桓祖主之民乃復業 |
| <융화> | 第五變一篇 | 太祖威德單被遐邇寧謐山戎島 夷悉皆來款 |
| <현미> | 第六變一篇 | 太宗既平鄭道傳之亂國人請以爲 世子太宗固讓于恭靖王 鄭道傳之亂 元敬王后贊謀戡定 |
| <용광정명> | 第七變一篇 | 太宗當兄疑之際入覲敷奏 天子優禮待之 鄭道傳之亂 元敬王后贊謀戡定 |
| <중광> | 第八變 | 宣祖大王昭洗國誣戡之倭亂功光 列祖再安宗社 |
| <대유> | 第九變一篇 | 祖宗世有文德制作明備尉開太平 |
《時用定大業譜》
〈亞獻昭武引入〉 (終獻同 · 獻官 引入 · 黃鐘淸宮 界面調)
〈篤慶〉 〈濯征〉 〈宣威〉 〈神定〉 〈奮雄〉 〈順應〉 〈寵綏〉 〈靖世〉 〈赫整〉 〈永觀引出〉
(1) 『韓音資叢』 해제: 13곡, 한문 가사
(2) 각 곡 제목 아래 변(變)/편(篇) 및 편명 해설 기재(<독경>~<혁정>)
<표2> 대악후보 권2 소재 시용정대업의 변(變)/편(篇) 및 편명 해설
*국악사전이 제기한 편명 해설의 오류를 이해하기 위하여 발제자가 임의로 편명의 해설을 넣었다.
| 곡명 | 변(變)/편(篇) | 편명 해설 |
| <독경> | 第一變一篇 | 翼祖之在幹東野人將害之老嫗以告 遂避之赤島水深無舟勢甚急水 忽退渴乃得渡穆祖居幹東長 五千戶所王業之興自此始 익조께서 함동(幹東)에 계실 때 야인(野人)이 장차 해치려 하였는데, 늙은 노파가 이를 알려주었다. 이에 적도(赤島)로 피하였는데 물이 깊고 배가 없으며 물살이 매우 급하였다. 그런데 물이 갑자기 물러가 마침내 건널 수 있었다. 목조께서 함동에 오래 거주하시니, 오천 호가 모여들었고 왕업의 흥기는 여기에서 시작되었다. |
| <탁정> | 第二變一篇 | 度祖在行營宮前路雙鵲大蛇衝 置樹上超小生直千都鄕擾雙 城以叛桓祖討平之 도조께서 행영궁(行營宮) 앞길에 계실 때, 두 마리 까치와 큰 뱀이 마주쳤다. (도조가) 이를 나무 위에 올려놓고 지나가게 하였는데, 어린아이 하나가 곧 천도향(千都鄕)을 소란케 하여 쌍성이 반란을 일으켰다. 환조께서 이를 토벌하여 평정하였다. |
| <선위> | 第三變凡三篇 | 太祖慶擊倭寇殲滅之走納哈出平紅巾賊 取元刺拔東寧德興君敗胡拔都以 定禍亂度祖夢見白龍求救云里黑 龍欲奪我居乃往射獲黑龍白龍復 夢謝曰公之大慶將在子孫 태조는 왜구를 쳐서 섬멸하고, 나하추(納哈出)를 항복시키고, 홍건적을 평정하였다. 원나라의 동녕부와 덕흥군을 되찾고, 오랑캐의 우두머리 발도(拔都)를 무찔러 화란을 평정하였다. 도조는 꿈에 흰 용이 구원을 청하는 것을 보았는데, "검은 용이 내 거처를 빼앗으려 합니다." 라고 하였다. 이에 가서 검은 용을 활로 쏘아 잡자, 흰 용이 다시 꿈에 나타나 사례하며 말하였다. "공의 큰 경사가 장차 자손에게 있을 것입니다." |
| <신정> | 第四變凡三篇 | 辛禑攻遼 犯上國 太祖倡大義回軍有童謠曰西京城內 火色安州城外烟光往來其間李元 帥願言救世蒼 신우(辛禑, 우왕)가 요동을 공격하여 상국(명나라)을 범하였다. 태조가 대의를 내세워 회군하니, 당시 동요(童謠)가 있었다. "서경(평양) 성 안에는 불빛이 일고, 안주성 밖에는 연기가 피어오른다. 그 사이를 오가며 이원수(李元帥)가 세상을 구원하기를 원한다." |
| <분웅> | 第五變一篇 | 太祖駐師威化島霖霪數日 水不漲及旋師登岸水卽大 至全島墊沒 태조가 군사를 이끌고 위화도에 주둔하였는데, 장맛비가 여러 날 계속 내렸다. 그러나 물은 불어나지 않았고, 회군하여 육지에 오르자마자 물이 곧 크게 불어나 섬 전체가 물에 잠겼다. |
| <순응> | 第六變凡二篇 | 對馬島倭負國恩擾邊 太宗命將征之 太祖潛夢見神人授金尺曰公資兼文武 民望屬焉持此正國非公而誰 대마도 왜구가 나라의 은혜를 저버리고 변방을 소란케 하였다. 태종이 장수를 보내 정벌하게 하였다. 태조가 일찍이 꿈속에서 신인(神人)이 금척(金尺)을 주는 것을 보았는데 말하였다. "공은 문(文)과 무(武)의 자질을 겸비하였고 백성들의 기대가 모두 공에게 모여 있다. 이 금척을 가지고 나라를 바로잡으라.공이 아니면 누가 하겠는가." |
| <총유> | 第七變一篇 | 太祖在潛邸有僧獻異書云得 智異山岩石中有木子乘猪 下復正三韓境之句 태조가 아직 잠저(潛邸)에 있을 때, 한 승려가 기이한 책을 바치며 말하였다. "지리산 바위 속에서 '지리산 바위 속에서 ‘목자(木子)가 돼지를 타고 내려와 다시 삼한의 강역을 바로잡는다’' 이라는 구절을 얻었습니다." |
| <정세> | 第八變一篇 | 德源有大樹久枯朽 太祖開國一年復條達榮敷 덕원(德源)에 큰 나무가 있었는데 오랫동안 말라 죽어 있었다. 태조가 나라를 세운 지 1년 만에 다시 가지가 뻗고 꽃과 잎이 무성하게 피어났다. |
| <혁정> | 第九變一篇 | 太宗在潛邸有白龍見于寢室上 태종이 잠저(潛邸)에 있을 때 흰 용이 침실 위에 나타났다. |
(4) 국악사전이 제기한 ‘편명 해설의 오류’: 세조조 《정대업》은 세종조 《정대업》 6변 13편을 9변 각 1편으로 정비하고, 악장도 내용에 맞게 개편한 것이다. 그러나 내용이 논리에 어긋난다.
➀ 9곡 모두 1편이지만, 〈선위〉를 ‘제3변 범3편’이라 적고, 〈신정〉을 ‘제4변 범3편’, 〈순응〉을 ‘제6변 범2편’이라고 誤記하였다.
➁ 편명 해설도 9곡이 전부 이치에 어긋난다. 유교 제례악에서 아들이 아버지에 앞서고, 내용도 서로 앞뒤 맥락이 맞지 않는다. 〈독경〉을 예로 들면, 『세조실록』 〈독경〉은 목조의 이야기인데, 『대악후보』 〈독경〉의 편명 해설에는 목조의 아들인 익조가 목조 앞에 등장한다. 『대악후보』 〈독경〉의 익조 부분은 『세종실록』 《발상(發祥)》의 익조 악장인 〈순우(純佑)〉의 해설을 옮겨 놓고, 그 위에 『세종실록』의 〈독경〉 해설을 짜깁기한 것이다.
〈徹籩豆雍安之樂〉
〈送神興安之樂〉
〈維皇曲〉
(1) 『韓音資叢』 해제: 가사 없음
(2) 국악사전 ‘대악후보’ 해제: 조선 초기 신제 악장임에도 권2에 수록되었다.
〈靖東方曲〉
(1) 국악사전 ‘대악후보’ 해제: 조선 초기 신제 악장임에도 권2에 수록되었다.
3) 卷之三
《時用鄕樂譜》
〈致和平〉
(1) 『韓音資叢』 해제: 一·二·三은 梅東堂 이하 15장으로 國漢文 가사
〈醉豊亨〉
(1) 해제 없음.
4) 卷之四
《時用鄕樂譜》
〈鳳凰吟〉
(1) 『韓音資叢』 해제: 一·二·三. 「山河千里國」詞
(2) 국악사전 ‘대악후보’ 해제: <봉황음>1·2에 박과 노래 선율은 싣지 않았다.
☞ 〈봉황음〉1·2
(3) 정간보 위 여백에 표기된 형식
➀ 〈봉황음〉1: 2, 3, 附葉, 大餘音, 中葉, 二附, 小葉, 一附葉還入
➁ 〈봉황음〉2: 半餘音, 2, 3, 부엽, 대여음, 중엽, 반여음, 이부
➂ 〈봉황음〉3: 반여음, 2, 3, 附, 대여음, 중엽, 이부, 二大餘音
(4) 치화평, 취풍형, 봉황음이 『대악전보』와 『대악후보』 두 책에 중복 수록되었다는 사실은 세종대 악보가 이후 세조대까지 이어졌다는 정조의 발언을 상기시키는 부분으로, 세종대에 이룬 음악 업적의 승계를 강조한 의미로 해석된다.
5) 卷之五
《時用鄕樂譜》
〈眞勺〉
(1) 『韓音資叢』 해제: 一·二·三은 「내님을 그리ᄉᆞ와」 詞를 붙이고, 四는 가사가 붙지 않음.
(2) 정간보 위 여백에 표기된 형식: 2, 3, 부(附), 대여음, 대엽, 이부(각 곡 동일)
〈履霜曲〉
(1) 『韓音資叢』 해제: 「비오다가 개야아」 詞
(2) 정간보 위 여백에 표기된 형식: 여음
〈滿殿春〉
(1) 『韓音資叢』 해제: 가사 없음
(2) 정간보 위 여백에 표기된 형식: 여음, 2, 여음, 3, 여음, 4, 여음, 5, 여음, 6
〈納氏歌〉
(1) 『韓音資叢』 해제: 한문 가사에 토를 달음
〈橫殺門〉
(1) 국악사전 ‘대악후보’ 해제: 『대악후보』 전체에서 노래 선율을 실은 곡은 〈횡살문〉이 유일하다.
〈感君恩〉
(1) 『韓音資叢』 해제: 「四海바닷 기픈ᄂᆞᆫ」 詞. 大樂後譜 卷6 및 梁琴新譜 所載 感君恩譜와 다른 점이 있음
〈西京別曲〉
(1) 『韓音資叢』 해제: 「西京이 아즐가」 詞. 時用鄕樂譜 所載 感君恩譜와 같음
6) 卷之六
《時用鄕樂譜》
〈慢大葉〉
(1) 『韓音資叢』 해제: 가사 없음. 梁琴新譜의 慢大葉譜와 같음
(2) 국악사전 ‘대악후보’ 해제: 오음약보 중간에 율명 ‘협(浹)’이 한 차례 등장한다.
(3) 정간보 위 여백에 표기된 형식: 2, 3, 4, 5, 여음
〈感君恩〉 平調 指入
(1) 『韓音資叢』 해제: 大樂後譜 卷5의 感君恩譜와 약간 다름
(2) 국악사전 ‘대악후보’ 해제: 선율에 시김새를 표기한 곡은 『대악후보』 전체에서 권6 〈감군은〉이 유일하다. 권5의 〈감군은〉과 선율이 조금 다른 부분이 있지만 동일곡이다.
〈翰林別曲>
(1) 『韓音資叢』 해제: 가사 없음
〈西京別曲〉
(1) 『韓音資叢』 해제: 大樂後譜 卷6 및 時用鄕樂譜의 西京別曲譜와 부분적으로 다른 점이 있고, 拍이 빠져 있음
(2) 국악사전 ‘대악후보’ 해제: 〈서경별곡〉은 권5의 〈서경별곡〉과 같은 곡인데, 박이 기재되지 않았다.
〈雙花店〉
(1) 『韓音資叢』 해제: 時用鄕樂譜의 雙花店은 한문 가사인데 대하여 「상화뎜에 상화 사라가고」詞를 씀
(2) 정간보 위 여백에 표기된 형식: 여음, 2, 반여음, 3
〈步虛子〉
(1) 『韓音資叢』 해제: 「碧烟籠曉」詞
(2) 국악사전 ‘대악후보’ 해제: 본래 〈보허자〉 환입은 28행인데, 『대악후보』에는 23행밖에 없다. 지입의 제32~36행에 해당하는 환입 제24행 이하 5행이 보이지 않는다.
(3) 정간보 위 여백에 표기된 형식: (尾後詞)의 둘째 구에) 還入
〈靈山會相〉
(1) 『韓音資叢』 해제: 「靈山會相佛菩薩」 七字가 붙음
(2) 국악사전 ‘대악후보’ 해제: 〈영산회상〉은 『대악후보』 전체에서 판형과 기보 체계가 유일하게 다르며 음악 내용도 해명되지 않는 점이 있어, 다방면의 연구가 이루어진 곡이다. 『대악후보』에서 오직 〈영산회상〉만이 4·2·4·4·2·4정간의 6대강 20정간보에 기보되었다. 선율, 가사 등 세 줄만 필요한 경우에는 모두 4줄 판형을 사용한 점을 고려하면 『대악후보』의 영산회상 악보는 특이한 점이 많다. 두 선율이 기록된 경우 다른 악곡에서는 제1선율이 현악, 제2선율이 관악임이 음악적으로 분명히 구별되는데, 〈영산회상〉 제2선율은 고악보의 기존 〈영산회상〉 선율과 크게 달라서 출처가 불분명하다. 또한 제1·2선율이 기입된 다른 악곡은 모두 장구 장단도 적었지만, 〈영산회상〉에는 장단 표기가 없다.
7) 卷之七
《時用鄕樂譜》
〈北殿〉
(1) 『韓音資叢』 해제: 가사 없음
〈動動〉 除音 井邑除音同 · 界面調. / 指入 舞童 牙拍呈才 女妓呈才同.
(1) 『韓音資叢』 해제: 가사 없음
(2) 국악사전 ‘대악후보’ 해제: 〈동동〉은 두 부분으로 나뉜다.
〈井邑〉 指入 舞鼓呈才 用界面調.
(1) 『韓音資叢』 해제: 가사 없음
〈紫霞洞〉 一·二 界面調
(1) 『韓音資叢』 해제: 界面調. 一·二로 되어 있고 가사 없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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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댓글 9.22 최선아선생님 수업을 듣고
-323323구조의 정간보가 424424로 변화한 것은 오늘날6446의 20박 한장단 음악으로의 변화를 보여주는 것 아닌가?
선생님께서는 함화진의 글에 그 선대에 만들었다고 하셨다는데, 원문을 찾아볼 필요가 있다.
-최선아선생님의 8.13 한국음악사학회 발표 -> 올해 말 논문게재예정이신 대악후보 영산회상 제2선율에 대한 연구를 눈여겨 볼 필요가 있다. 속악원보의 선율과 관악영산회상과의 관계까지 설명해주셨는데, 최선아선생님의 연구는 어려워도 전체 맥락을 관통하는 원리를 파악하신다는 점에서 늘 재밌다.
-편명 해설에 대한 견해: 일제가 왜곡했다고 보기에는 지나치게 높은 수준의 왜곡인 듯 싶다. 단순하게 얼마든지 변형하거나 삭제할 수 있을텐데 저렇게 공들여서 진짜인 것 마냥 바꾸어놓는다고..? 그렇다고 하더라도 그 목적 역시 너무 수준이 높지 않은가. 그냥 말살할 수도 있는건데. 그리고 사실이라면, 이처럼 문화적인 깊은 이해를 수반하여 왜곡하는 경우가 고악보에서만 드러날 이유도 없다. 다른 분야에서도 마찬가지로 나타나야 한다고 생각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