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신: 충청북도지사. 충청남도지사. 보은군수. 계룡시장. 공주시장
참조: 지명관리위원회 위원장
제목: 속리산 천황봉 지명 변경
안녕하십니까.
저는 신 산경표(2004년 조선일보사 발행)를 만든 박성태입니다.
최근 속리산 천황봉과 계룡산 천황봉에 대한 지명변경 절차가 진행 중이라고 해서 아래와 같이 두서없는 의견을 제출하오니 참고하여 주시기를 바라며 심의결과를 상급 지명위원회에 보고할 때 그 내용을 알려주시면 대단히 고맙겠습니다.
아 래
최근 속리산 천황봉과 계룡산 천황봉의 명칭을 바꾸기 위해 해당 지명위원회에서 이를 검토하고 있다고 한다. 천황봉이 일제잔재라는 이유에서다. 2005년 광복 60년 삼일절을 맞이해서 전문성도 없는 어느 한 단체가 자세한 내용 검토도 없이 엉터리주장을 그럴싸하게 포장해 내놓았고 언론 매체는 이를 여과 없이 보도했다. 그리고 그들은 국토지리정보원에 지명 변경을 요구했다. 이름을 바꿔야 할 정당한 사유가 있을 때는 신중히 검토해서 바꿔야 할 것이지만 특정인이나 특정단체의 일방적 주장에 따라 함부로 지명이 바뀌는 일은 없어야 할 것이다. 천황봉이 일제잔재라는 이유로 바꿔야 한다는 주장은 몰라도 너무 모르거나, 아니면 알면서도 반일 감정을 이용해 자기네 특정 목적을 이루려고 하는 꼼 수에 불과하다 할 것이다.
일제 강점기에 일제가 만든 우리나라의 1:50000지형도(이하 '일제지도'라고 함)에 표기된 행정지명은 그 들이 기존의 행정구역을 통폐합하거나 신설하여 정한 바에 따랐겠지만 자연지명인 산 이름은 우리가 쓰던 그대로를 기재했다. 글자로 쓰는 산 이름은 한자로 기재하고 말로 표현하는 산이름은 일본문자로 나란히 기재했다. 예를 들면 한자와 말로 표현하는 산 이름이 같은 인왕산 등의 경우 한자는 仁王山(인왕산), 일본문자는 일본 발음이 아닌 우리 발음대로 インワンサン(인왕산) 이라고 표기하고 한자 표기와 우리말 표현이 다른 시루봉 같은 경우 한자로 甑峰(증봉)이라고 기재하고 그 옆에는 일본문자로 シルポン(시루봉)이라고 기재했다.
경상북도 의성군과 청송군 경계에 구무산이 있다. 대동여지도에 '石穴'로 기재되어있고 일제지도에는 한자로 穴山(혈산) ,일본문자로 クムサン(구무산)이라고 기재했다. 우리말 사전을 찾아보면 '구무'는 '구멍'의 옛말이다. 지형도 제작 목적이 일반인에게 공개하는 자료가 아니라 우리나라를 통치하려는 그 들만의 정보자료이기 때문에 사실을 사실대로 조사 기록한 것이 틀림없다는 대목이다. 천황(天皇)이라는 문자 자체는 그들이 자기네 왕을 지칭하는 것과 똑 같지만, 그들은 개의치 않고 우리가 쓰는 대로 지도에 기재했다. 그들은 지도에 자기네 천황을 표기한 곳이 딱 한 곳 있다. 백두산 정상이다. 그러나 白頭山 天皇峰이라고 하지 않고 천황의 연호를 따라 白頭山 大正峰이라고 표기했다. 위 단체의 주장대로라면 당연히 白頭山 天皇峰이라고 기재되었어야 한다.
일제가 지도에 천황봉 또는 천황산이라고 하여 산이름에 천황(天皇)을 쓴 것은 남한에만 9개가 있다(표 참조). 속리산의 주봉이 포함되어있지만 경남 사천시 욕지도의 76m 산봉우리도 그들은 천황봉(天皇峰)이라고 표기했다.
그리고 속리산 천황봉이 대동여지도에 천왕봉이라고 써 있다고 해서 옛날에는 천왕봉이라고만 불렀다고 하는 것은 잘못이다.
고전에는 윤휴(尹鑴.1617-1680)의 백호전서(白湖全書) 제24권의 세심당기(洗心堂記)에 ‘…起步於庭 相與指點 文壯天皇 雲煙面目…(일어나 뜨락을 거닐며 서로 함께 문장대와 천황봉의 운연어린 면모를 가리켜 보이곤 하였는데)’(민족문화추진회 고전국역총서 중에서)라고 하여 천왕이 아닌 천황이라고 했다 .
천황봉과 천왕봉이 명확한 구분 없이 ‘처낭봉’으로 발음하여 쓰이는 것이 조사시점이나 조사자에 따라 달리 표기 됐을 뿐이다. 그래서 산경표, 증보문헌비고 여지고 산천총설, 대동여지도를 비교해보면 발음이 비슷하거나, 음이 같아도 한자가 서로 다른 산이름이 많이 있다.
천황봉은 1961년 고시되어 45년 이상을 써 온 이름이다. 일제 잔재라는 이유가 아니라면 이제 와서 천왕봉으로 바꾸어야 할 이유가 어디 있겠는가. 일제잔재는 터무니없는 주장이다.(아래 연합뉴스 기사 참조).
<표> ‘천황산. 천황봉’ 표기의 국토지리정보원과 일제지도 비교
표기지명 |
높이 |
소재지 |
고시일자 |
일제지도 |
비고 |
한글 |
한자 |
도 |
시군 |
천황산 |
天皇山 |
1,189.0 |
경남 |
밀양시 |
1961.4.22 |
天皇山 |
|
(속리산)천황봉 |
天皇峰 |
1,058.4 |
충남 |
보은군 |
1961.4.22 |
天皇峰 |
|
천황산 |
天皇山 |
909.6 |
전남 |
남원시 |
1961.4.22 |
天皇峰 |
|
(계룡산)천황봉 |
없음 |
845.0 |
충남 |
논산시 |
1998.8.17 |
없음 |
|
(월출산)천황봉 |
天皇峰 |
812.7 |
전남 |
강진군 |
1961.4.22 |
天皇峰 |
|
천황봉 |
天皇峰 |
652.2 |
전남 |
구례군 |
1961.4.22 |
天皇峰 |
|
천황산 |
天皇山 |
471.0 |
경남 |
통영시 |
1961.4.22 |
天皇山 |
섬 |
천황산 |
天皇山 |
395.2 |
경남 |
남해군 |
1961.4.22 |
天皇山 |
섬 |
천황산 |
天皇山 |
392.4 |
경남 |
통영시 |
1961.4.22 |
天皇山 |
섬 |
천황봉 |
天皇峰 |
75.9 |
경남 |
사천시 |
1961.4.22 |
天皇峰 |
섬 |
*참고자료: 2005년 3월 3일 연합뉴스 김태식 기자의 천황봉(天皇峰)의 신화
천황봉이 일제 유산? 북한산 대신 삼각산? 2005/03/02 11:13 송고
(서울=연합뉴스) 김태식 기자 = 귀신(鬼神) 곡(哭)할 일이고, 기절초풍할 노릇이다. 북한산(北漢山)은 일제가 명명한 이름이니, 그 이전에 쓰던 삼각산(三角山)으로 돌려야 한다고 한다. 전국 유수에 걸쳐 산봉우리 이름에 들어간 천황(天皇)이란 명칭이 일본 천황(天皇)에서 유래했다고 한다. 그러면서 "광복 60돌이 되는 지금까지도 백두대간에는 많은 일제의 그림자가 그 땅의 역사와 문화, 유래를 가진 땅이름으로 남아 청산되지 않고 있음"을 거론한다.
"일제강점기에 우리의 민족정신과 정체성을 없애기 위해 창지개명(創地改名)된 백두대간의 이름을 되찾고자 지난 3개월 동안 백두대간이 지나가는 32개 시ㆍ군의 자연지명(산ㆍ봉우리ㆍ계곡ㆍ폭포ㆍ마을이름)과 행정지명을 조사하였습니다."(출처 녹색연합 홈페이지) 그 결과 삼각산이 바른 명칭이며, 천황봉은 천왕봉이 바뀐 이름이라고 한다. 북한산이 우리 민족정신을 말살하기 위해 삼각산 대신 만든 이름이라면 신라 진흥왕이 이미 지금의 서울 일대에 설치했다는 북한산주(北漢山州)는 어디서 출몰한 유령이며, 삼국사기 김유신 열전에 보이는 북한산성(北漢山城)도 일제가 만들었는가?
전국 산봉우리에서 자주 발견되는 천황봉(天皇峯)의 천황(天皇)은 히로히토나 다이쇼 같은 일본 천황이 아니다. 천신(天神)의 우두머리인 천황대제(天皇大帝)다. 북극성을 신격화한 천황대제라는 천신은 흔히 지상으로 강림할 때 높은 산 꼭대기로 내려온다고 간주되었다. 산봉우리 이름에 천황이라는 말이 흔한 것은 여기에서 유래한다. 천황대제라는 신은 이미 신라 문무왕릉비에서 보이기 시작한다. 신라인들이 일본천황을 숭모했다고 할 것인가? 일제가 소위 창지개명(創地改名)했으므로, 돌려 바로잡아야 할 이름이라며 한 시민단체가 3.1절을 즈음해 제시한 22개 지명 중 일부 타당한 대목도 있을 수 있다.
하지만 이 단체가 제시한 상당수는 역사를 오도하고 있다. 천황과 관련되는 산봉우리 이름이나 북한산 운운하는 대목은 말할 것도 없고, 일제 이전 지명표기에 흔히 쓰이던 龜(구)라는 글자를 九(구)자로, 鷄(계)자는 溪(계)로, 豊(풍)은 風(풍)자로 바꿨다는 것도 민족정신 말살 운운이라는 주장과는 한참이나 거리가 멀다. 龜→九, 鷄→溪, 豊→風의 교체 현상이 민족말살 정책과 무슨 관계가 있다는 말인가? 이런 교체 현상은 일제시대가 아니라 한자라를 표기 수단을 공유한 동아시아 사회에서는 비일비재한 일이다. 龜나 鷄, 豊과 같은 글자를 九나 溪나 風으로 바꾸는 현상은 말할 것도 없이 첫째, 발음이 같은 데다 둘째, 무엇보다 전자에 비해 후자가 훨씬 쓰기 쉽기 때문이다. 따라서 이런 교체 현상은 일제시대 이전에도, 심지어 갑골문(甲骨文)에서부터 보이는 흔해 빠진 일이지, 일제에 의한 민족정신 말살 운운과는 하등 관계가 없다.
천황(天皇)이란 명칭이 일본적인 냄새가 난다고 하자. 또, 그것이 정말로 일제가 민족정신 말살을 위해 종래 쓰이던 천왕(天王)을 바꿔치기(즉, 창지개명)한 것이라고 하자. 같은 논리대로라면 천왕(天王)이라는 말은 기분 좋은가? 중국 후한시대를 대표하는 대학자 채옹(蔡邕.서기 132-192년)은 그의 저서 독단(獨斷)에서 이르기를 왕자(王者)의 지존(至尊)함을 가리키는 데는 네 가지 호칭이 있다고 하면서 왕(王), 천자(天子), 천가(天家)와 함께 천왕(天王)을 거론한다.
천왕(天王)에 대해 채옹은 "제하(諸夏. 즉 중국)가 칭하는 명칭이다. 천하가 귀의하여 가는 곳이므로 천왕(天王)이라 한다"(天王, 諸夏之所稱. 天下之所歸往, 故稱天王)라고 설명한다. 그러면서 천자(天子)에 대해서는 "이적(夷狄)이 칭하는 호칭이다. 하늘을 아버지로 삼고 땅을 어머니로 삼으니, 그런 까닭에 천자라고 한다"(天子, 夷狄之所稱, 父天母地, 故稱天子)고 하고 있다. 같은 중국의 절대군주를 가리키고 있음이 명백한데 중국과 오랑캐라는 범주로 갈라 차별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천왕은 절대 중화주의 정신에 유래한 호칭이다. 천황이 싫다면, 이런 천왕은 좋은가? taeshik@yna.co.kr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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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 성 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