베 트 남
(베트남 남부 호치민 3박 4일 여행기)
1882년 프랑스의 보호국이 되면서 민족의 독립을 표방하는 반(反)프랑스운동이 맹렬히 추진되었고 프랑스 세력에 대항하기 위한 호치민이 주도하는 베트남 공산당이 결성되었으며 1972년에는 제2차 세계대전이 발발하여 일본이 베트남에 침입하여 전쟁이 시작되었고1845년 8월미군이 히로시마에 원자폭탄을 투하 하면서 2차세계대전이 끝나자 베트남민주공화국이 성립되었다. (대한민국도 일제식민지에서 벗어나 8월 15일 광복을 맞이한다.)
그러나 프랑스는 전쟁 전의 지배권을 되찾고자 다시 군대를 파견하였고 이로 인해 1946년 말부터 양국 사이에는 제1차 인도차이나 전쟁이 일어나 1954년 3월 베트남군이 대승을 거두고 프랑스군이 철수를 하면서 베트남은 독립을 맞게 되었다.
그러나, 서구 열강은 제네바 협정을 통해 베트남을 다시 북위 17도를 기준으로 남북으로 분단시켰고 (대한민국도 6.25전쟁 이 후 남과 북으로 분단된 현상과 비슷함) 약속하였던 전국 선거를 거부한 채 마지막 황제 바오 다이를 왕으로 내세워 베트남국을 수립하였다.
미국은 도미노 이론을 내세워 베트남에 개입하였으며 통킹만 사건(1964년 8월 북베트남 어뢰정이 통킹만에서 작전중이던 미 해군 구축함 매독스 호를 공격)을 빌미로 베트남 전쟁(대한민국 청룡, 맹호, 백마, 백구, 은마부대도 참전하여 많은 공을 세웠으며 특히 한국군을 만나면 모든 작전을 취소하고 철수하라는 호치민의 명령이 있었다고 하는 일화도있다고 한다.)이 벌어지게 되었다.
베트남 전쟁 기간 동안 미국은 제2차 세게대전에서 사용한 것보다 훨씬 많은 폭탄을 북베트남 지역에 투하하였고 막강한 화력과 인력을 동원하였으나,
베트남의 끈질긴 저항과 명분없는 전쟁을 계속하는 동안 일어난 전 세계와 미국내의 반전 여론에밀려 결국 1973년 파리협정을 맺고 철군하였다. 1975년 북베트남은 사이공을 점령하였고, 1976년 베트남 사회주의 공화국을 수립하였다
아직도 옛 이름인 사이공으로 더 유명한 과거 ‘동양의 진주’이자 베트남의 얼굴과 같은 도시, 호치민. 베트남 전쟁을 승리로 이끈 호치민의 이름을 따서 지어진 이곳은 도시를 장식하고 있는 많은 건물과 교회에서 19세기 당시 베트남 점령국이었던 프랑스의 흔적을 그대로 느낄 수 있다.
호치민은 베트남의 가장 큰 항구 도시로 주변 지역을 여행할 때 보트를 이용하여 수로를 따라 이동하는 것도 관광의 한 즐거움이다. 근대화와 자본주의, 그리고 사회주의 침체기. 또 다른 개방주의라는 평탄치 않은 역사의 길을 달려온 호치민 사람들. 순수함과 인정이 넘치는 그들이 있는 곳 호치민을 다녀왔다.
인천공항 오전 6시에 도착하여
일행들과 만나 8시 10분 호치민으로 출발하는 대한항공에 탑승하였다. 제주를 지나 타이페이 상공을 지나고 드디어 호치민 상공 11시 50분에 도착하였다. 베트남 시간으로는 9시 50분 우리나라와 시간차는 정확하게 2시간 차이
공항을 나와 가이드와 미팅을 하고 공항 화장실에서 여름 옷으로 갈아입고 3박 4일 동안 타고다닐 버스에 올라 여행지인 구찌로 출발하였다. 우리 일행은 우리가족을 포함하여 5섯가족 총 10명
구찌로 이동중 호치민 시내모습 도로를 차대신 오토바이가 점령하여 무질서하게 달리면서도 그 들 나름대로 질서가 있었으며 정렬적이고 생동감있는 호치민 시민들의 삶을 느낄 수 있었다.
구찌로 이동중 고무나무
고무나무에서 라텍스 재료로 쓰이는 액을 받고있는 사진 동남아지역이나 중국에가면 가이드가 꼭 가는곳이 라텍스 매장입니다. 천연라텍스 매트리스는 비싸기도하며 가짜도 많아서 구입시 주의하여야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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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입시 주의사항
매트리스카바를 벗기고 매트리스 앞면이나 옆면을 보면 제조회사 로고가 있다고 합니다. 스티커나 인쇄가 아닌 매트리스자체에 로고확인 그리고 로고를 확인하고 검색하시면 제조회사, 생산국가등을 알 수 있다고 하니 꼭 확인 하시고 구입하세요.
구찌터널 광장
호치민에서 서북쪽으로 약 70킬로미터 가량 떨어진 구찌라는 곳에 자리잡고 있는 유명한 땅굴이며 구찌시에서도 20km를 더 들어가야 하며 독립유공자들이 많이 살고 있다고한다.
구찌터널 입구
우리 일행은 버스에서 내려 가이드안내로 터널 매표소로 이동하였다.
오른쪽 사진 호미로 땅굴을 파서 흙을 산에 버리면 땅굴이 발견될까봐 메콩강에 버렸다고 하며 구찌터널에 대한 비디오를 약 10분 정도 감상
구찌터널 광장 전시장
구찌터널 광장 베트남 전쟁당시 사용하던 총 전시장
전쟁당시 사용하던 탱크와 월맹군 인물 모형이 전시가 되어있다.
베트남 현역 군인
구찌터널은 베트남 국방부에서 현역 군인이 관리하며 여행객들을 위하여 군인이 터널에 들어가는 장면을 시범을 보이고있다.
베트남 전 당시 베트콩들이 캄보디아 국경 근처에 근거지를 두고 호치민을 공격하기 전 오랜 시간에 걸쳐 땅굴을 파서 만든 지하 요새로 원래는 프랑스인에 대항하기 위해 1948~1954년에 걸친 인도차이나 전쟁 때 48km의 땅굴이 먼저 만들어졌다고한다. 그후 베트남 전쟁 때인 1967년까지 200km를 더 파서 현재의 모습을 갖추었다고한다.
직접 터널로 들어가는 장면 체구가 큰 군인은 들어가기가 힘들어 보이며 실제로는 입구가 더 적다고한다.
지하터널에 전시되어있는 인물 모형 사진 구찌시민과 군인들이 지하 터널에서 무기를 제조 하였다고 한다.
- -- 구찌터널 ---
총연장 250km의 길이와 30m 이상의 깊이이며 지하공간은 다시 3층으로 되어 있고 각 층을 연결하는 통로가 있다. 중요 연결 지점에는 위장통로와 함정도 있으며 휴계실, 회의실, 시장도 있었다고하며 입구는 잎과 흙으로 교묘하게 위장이 되어있어 현지민이나 베트콩이 아니고서는 도저히 찾을수 없도록 위장이 되어 있었다고 한다.
구찌관광을 마치고 과일시장에들려 과일구입 귤, 바나나, 용과, 망고, 두리안등 과일종류가 너무 많아 기억을 할 수 없다.
한인이 운영하는 한강 한식집
불고기에 소주한잔 하고 옆에 있는 맛사지 ?에서 전신 맛사지를 받았다. 맛사지 시간은 약 1시간정도 우리돈으로 약 20,000원 팁은 1불이나 우리돈으로는 2천원정도 그러나 팁은 어디까지나 자유 맛사지걸의 능력 베트남 화폐는(VND) 동이라고 하며 베트남 30,000동이면 우리돈 1,530원 팁으로 2,000원 주면 동으로 40,000정도
봉따우에있는 스타호텔로 출발하였다.
봉따우 해변에 있는 스타호텔
별4개인 호텔은 깨끗하고 잘 정돈되어 있었으며 봉따우 해변에 위치하여 아름다운 해변을 볼 수 있었다.
붕따우
주변은 삼면이 바다로 둘러싸인 반도로, 항구도시이자 해변휴양지이며 호치민에서 남쪽으로 125㎞ 떨어져 있고 베트남이 프랑스 식민지였을 때 총독과 고관들의 휴양지로 알려지기 시작하였다고한다. 베트남전쟁 당시에는 한국군과 미군의 주월사령부와 휴양소가 있었다.
베트남 날씨는 우리나라 여름과 같다 평균 28도 정도이며 그렇다고 땀을 흘릴정도는 아니고 공기가 습하고 오토바이 매연이 심하다.
여행 2일째
우리 일행은 호텔에서 아침을 먹고 다음 여행지인 예수상으로 출발하였다.
예수상 올라가는 계단 올라가는 중간에 조각작품들과 분재
거인 예수상
두아해변의 나지막한 산에 1974년에 만든 높이 약 30m의 예수상 월남전 막바지 미군이 철수전에 예수상을 축조하였다고한다. 내부도 구경할 수 있으며 계단을 따라 올라가면 예수상 팔위에서 봉따우 해변과 시내를 구경 할 수 있다.
예수상 계단과 정상
예수상 정상에서 베트남 한 가족이 강남스타일 노래를 듣고 있다. 음료수를 먹는 아이가 말춤을 아주 잘 추었다.(동영상 참조)
예수상을 출발하여 다음 목적지 대통령 별장으로 출발
대통령 별장
베트남 정치가 응우옌반티에우의 별장이었던 일명 화이트화우스라고도한다. 결혼을 앞둔 커플의 다정한 포즈 사진을 못찍게하는데 숨어서 한장 찰칵 옆사진은 도자기 전시장
1889년에 프랑스 총독의 별장으로 지은 건물인데 지금은 역사유물과 골동품 등이 전시되어 있다.
티우에별장을 나와 점심을 하기위하여 비원이라는 식당으로 이동
비원식당
한인이 운영하는 비원이라는 식당에서 매운탕으로 점심
배를타고 호치민시로 들어가기위하여 항구까지 이동중 우리는 버스가아닌 자전거를 타고 항구로 출발.
자전거로 항구까지 약 3Km정도거리
항구에 도착
호치민시내까지 버스는 약 3시간 정도 소요되며 배로는 약 1시간 30분 정도
호치민시 도착 중앙우체국으로 이동
중앙우체국
프랑스 식민지 시대에 지은 건축물로 웅장한 외관이 인상적이다.
기차역을 연상하게 하는 우체국은 호찌민시에서 규모가 가장 큰 우체국이다. 아치형 높은 천장은 고풍스러운 느낌이 들며, 입구 정면에는 베트남의 영웅 호찌민의 사진이 걸려 있다. 여행자들은 각 지역으로 우편과 소포 등을 보낼 수 있으며, 국제전화를 이용할 수 있어 많이 찾는다. 국제전화 이용은 접수처에 상대방의 전화번호를 적어 신청하면 된다. 이후 지정된 전화부스에서 국제전화를 이용할 수 있다
출처 : 지식백과
중앙우체국 내부
내부는 프랑스식 건축으로 웅장하고 고품스러웠다. 우리 일행은 시간상 입구에서 잠깐 매장에서는 배트남을 상징하는 많은 상품이 전시되어있어 쇼핑을 할 수 있다.
노트르담 성당
호치민에서 가장 큰 성당인 노트르담 성당이 지어지기 시작한 것은 프랑스 식민 지배하였다. 1877년부터 1883년까지 지어진 이 성당은 외부는 전형적인 네오-로마네스크 양식을 내부는 고딕양식을 보여준다.
호치민 시의 프랑스 건물 중 가장 아름다운 건물로 손꼽히는 이 성당이 이국적인 모습인 것은 물론 건축양식 때문이지만, 지을 당시 모든 자재를 프랑스에서 들여왔던 것도 한몫했을 것이다.
붉은 벽돌로 정교하게 쌓아올린 이 성당의 정면에는 성모마리아 상이 자리 잡고 있다. 두개의 첨탑은 높이가 40M이다. 최근 몇 차례 눈물을 흘린 것으로 유명한 이 성모마리아상에는 “REGINA PACIS ORA PRO NOBIS”이라는 문구가 새겨져 있다.
이 문장은 “평화의 모후여, 우리를 위하여 비소서”라는 의미이다. 수많은 관광객과 신도들이 이 성당 앞에서 사진찍기를 좋아하지만, 그중에서도 눈길을 끄는 것은 결혼을 갓 마친 커플들이다. 이곳은 결혼사진을 찍는 장소로 사랑받고 있다.
출처 : 지식백과
시간이 ?어 내부를 볼 수 없어서 상당히 아쉬웠다.
중앙우체국과 노트르담성당은 바로 옆에있으며 우리일행은 명품거리로 쇼핑을 갔다.
명품거리
우리나라 명동과도 같은 호치민시 중심지역이다.
외국의 유명한 명품상점들이 즐비하고 크리마스를 이틀앞둔 노트르담성담 광장에는 수많은 호치민시민들이 모여 축제를 열고 있었다. 밤에도 오토바이 행렬은 끝이 없이 남녀노소 구분없이 도로를 질주하고 있다.
아리랑 식당
호치민시 명품거리를 나와 맛사지?에서 맛사지를 받고 저녁을 먹기위해 아리랑 식당에 도착하여 고등어조림에 참이슬로 저녁
베트남 과일
저녁을 먹고 호텔로 이동중 과일시장에서 과일 구입
잠깐 주의사항
과일시장에서 스마트폰으로 과일을 찍던중 오토바이를탄 2인조에게 스마트폰 날치기 모면 폰으로 열심히 찍던중 오토바이 뒤에 탄 놈이 폰을 나꿔챘으나 폰 고리를 손목에 감고있어서 날치기를 모면하였다.
여행객들의 가방과 핸드폰을 노리는 오토바이 날치기 많이 있답니다. 오토바이 2대가 앞에서 날치기하고 뒤에서는 사람을 막는방법으로 한다니 일단 옆에 오토바이가 다가오면 경계를 하시고 특히 스마트폰은 고리를 하여 손목에 감고 다니시거나 호주머니에 넣고 다니세요
호치민시 스타시티호텔
여행 2일째 일정을 마치고 호텔에 도착하였다. 여기까지 호치민 여행 2일째
여행 3일째
우리 일행은 호텔에서 아침을 먹고 다음 여행지인 유니콘섬으로 이동하었다.
사탕수수 쥬스
유니콘섬으로 이동중 가이드가 우리에게 써비스로 사탕수수 쥬스 한컵 사탕수수 쥬스 만드는 과정.
유니콘섬에 들어가기 위해 정크선이라는 배로 약 10분정도
유니콘섬 도착
메이콩강에 도착하여 정크선을 타고 섬에 도착하니 벌들이 반겨주네요 그리고 우리 일행인 이사장님은 목에 뱀을 감고있네요. 간단하게 꿀과 과일도 써비스로 주면서 설명도 하고 구매도 하라고 합니다. 섬 주민들이 아리랑을 불러주고 사진도 함께 팁을 주어야 한답니다.
과일 시식 파인에플, 감, 바나나, 용과. 두리안등 과일고 꿀도 써비스로 주나 과일값은 여행경비에 포함되어있다.
유니콘섬 과일
유니콘섬 수로 관광 앞 뒤에서 노를 젖고 여행객은 4명이 타며 주의 해야 할 점은 배 안에 손잡이를 잡아야한다.
베트남 남부지역 여행코스중 하이라이트가 아닌가 생각해본다. 스릴이 있고 양쪽으로 물야자수나무가 너무 아름답다.
바나나
월남쌈 점심
수로를 나와 다시 정크선을타고 섬으로 이동하여 월남쌈으로 점심 식당 직원이 직접 월남쌈을 만들어 준다. 정크선을 타고 저녁을 먹기 위하여 선상식당으로 이동
선상식당 따우벤응애
선상식당에서 저녁
우리 일행도 가이드가 미리 주문한 돼지 바베큐에다 저녁식사
돼지바베큐 2백만동 정도 우리돈 100,000원 정도 한답니다. 관람할 수 있고한다.
우리 일행은 사간상 저녁만 먹고 내려왔다. 배에서는 쇼도하고 가수가 노래로 불러주기도 하는데 징글벨을 부루고있다.
베트남 생맥주
호프집으로 이동 호프집에서 한잔 베트남에서 먹는 생맥주 안주는 오징어튀김, 쏘세지 정말 맛있게 먹었다.
호프한잔 베트남 27,000동 우리돈 1,400원 옆사진은 도마뱀 날씨가 더우니 시원한 유리창에서 휴식
여기까지 호치민에서의 여행마무리 구찌 - 봉따우 - 예수상 - 대통령별장 - 중앙우체국 - 노트르담성당 - 유니콘섬으로 3일 동안 정신없는 일정을 마무리하고 내일이면 한국으로 가야한다.
여행 4일째
오늘은 마지막 여행 1시 비행기로 돌아가야한다. 최소한 11시까지 공항에 도착하여야 한다는 가이드말에 가까운 전쟁기념관만 보고 공항으로 가기로하고 전쟁기념관으로 이동하였다.
전쟁 기념관
미국과의 전쟁 이후 통일을 이룬 1975년 9월에 개장되었다고하며 당시는 미국 괴뢰전쟁 범죄 전시관으로 불리다가 최근, 관광객이 밀려 들자 전쟁기념관으로 바뀌었다고한다.
전쟁기념관에 전시되어있는 무기
전쟁 당시 미군측이 사용했던 군사무기들이 전시되여있다. 호치민을 여행하는 관광객이 꼭 들려야 하는 명소가 되었다고 한다. 오늘은 특히 미국인이 많았었다.
베트남 전쟁당시 사용하던 총
전시장에 있는 미군사진
월남전 당시 참혹했던 전쟁 장면과 미군들의 도강작전 사진
그런데 아쉬운점은 전시장 안내 팜플렛에 한국어도 없고 사진에도 한국어가 표기가 안되어 있어 내용을 알 수 없었다.
내부 전시관은 여러 곳으로 나뉘어져 대부분 사진이 전시되어있으며 미군측 종군기자들에게서 제공되었기 때문에 90% 이상의 사실성을 갖고 있다고 한다.
고엽제 피해
미군들이 사용한 소이엠탄과 고엽제로 후유증을 견뎌가고 있는 살아남은 사람들의 사진 구찌터널에서 보듯 당시 베트공과 월맹군은 땅굴에서 활동하기때문에 미군들의 피해가 심하여 고엽제를 대량으로 살포하였으며 우리나라 참전용사들도 고엽제 피해자가 상당 수 있다고 한다.
많은 관광객들의 표정이 밝지않고 마음이 찹찹하였다.
퓰리처상 수상작
1972년 6월 베트공과 월맹군의 저항으로 국도를 탈환이 어려워지자 공군의 전폭기가 국도주변 및 마을을 융단폭격 불바다로 만들었다.
불타는 마을에서 화상을 입고 탈출하는 소년는 당시 10세이며 그후 미국에서 살면서 방송에 출연하여 베트남전쟁의 참상을 고발하기도 하였다고 하며 이사진은 TV에서고 자주 보았던 사진
베트남 전쟁당시 희생자들의 사진
대통령궁과 대통령궁 앞 공원
호치민 대통령궁은 베트남이 통일되기전 남배트남 대통령이 살았던 곳이나 현재는 박물관역할을 하고있다.
1975년 4월 북베트남 탱크가 대통령궁의 정문을 부수고 들어오면서 30년 동안 이어진 전쟁이 끝났다.
대통령궁 입구에서 오른쪽으로 들어가면 843이라는 탱크가 전시되어있는데 이탱크가 북베트남과 남베트남 전쟁을 끝내고 통일
우리 일행은 시간이 없는 관계로 대통령궁 내부는 볼 수 없었다. 약간은 아쉬었지만 공항으로 출발하여 공항 근처에서 쌀국수로 점심 소고기 쌀국수 맛있었다. 베트남 동 20,000동 우리 돈 1,000원
우리가 탑승 할 대한항공
1시(우리시간 3시)에 출발하여 인천공항에 8시 정도 도착하여 일행들과 아쉬운 이별을 하고 버스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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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독산동부동산 한일 원문보기 글쓴이: 한일